[10/12 NBA History] 폴 웨스트팔, 디트로이트 상대 데뷔!
- NBA / Jason / 2015-10-12 11:21:26
[바스켓코리아 = 이재승 기자] 10월 12일(이하 한국시간) NBA에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
먼저 지난 1938년에는 데럴 임호프가 태어난 날이다. 임호프는 올스타에 한 차례 선정된 바 있다. 이어서 지난 1955년 이날은 놈 닉슨의 생일이다. 닉슨은 올스타전에 두 번 나선 바 있다. 한 번은 LA 레이커스, 다른 한 번은 LA 클리퍼스 소속으로 뛰었다. 지난 1980년과 1982년에는 레이커스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당시 1980년 레이커스에는 카림 압둘-자바와 매직 존슨을 필두로 마이클 쿠퍼와 저말 윌크스까지 포진하고 있었다.
한편 폴 웨스트팔이 데뷔한 날이기도 하다. 웨스트팔은 지난 시즌부터 브루클린 네츠의 어시스턴트 코치로 재직하고 있다. 피닉스 선즈와 새크라멘토 킹스에서 감독경험이 있는 등 지도자로서 잔뼈도 굵은 인물이다. 다만 새크라멘토에서는 운영진의 기대와 달리 뚜렷한 방향을 제시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드마커스 커즌스와 불화를 피하지 못했다. 성명서를 냈을 정도로 커즌스의 행동에 깊은 불만이 있었다. 이후 웨스트팔 감독은 해고됐다.
웨스트팔 감독은 지난 1972 드래프트를 통해 NBA에 데뷔했다. 가드였던 그는 1라운드 10순위로 보스턴 셀틱스에 지명됐다. 당시 드래프트에서는 밥 맥아두가 1라운드 2순위로 버팔로 브레이브스(현 클리퍼스)에 호명됐다. 1라운드 12순위에는 전설적인 선수 줄리어스 어빙이 12순위로 밀워키 벅스의 부름을 받았다. 맥아두와 어빙을 제외하고는 슈퍼스타는 없었지만, 웨스트팔은 자신만의 입지를 다졌다.
웨스트팔은 데뷔시즌에서 뚜렷한 활약을 펼치지 못했다. 당시 보스턴에는 존 하블리첵과 데이브 코웬스를 필두로 폴 사일러스와 돈 넬슨까지 훌륭한 선수들이 즐비했다. 가드 포지션에는 조조 화이트와 아트 윌리엄스까지 포진하고 있었다. 웨스트팔이 이들을 밀어내고 많은 시간을 소화하긴 현실적으로 힘들었다. 화이트는 당시 82경기에 나서 경기당 39.6분을 소화하며 19.7점 5리바운드 6.1어시스트를 기록했다.
엄청난 스타들이 운집한 보스턴에서 웨스트팔이 기를 펴기는 쉽지 않았다. 웨스트팔은 이내 보스턴의 선수로 시즌에 나섰다. 지난 1972-1973 시즌 보스턴의 첫 경기. 웨스트팔은 벤치에서 경기에 나섰다. 결과는 보스턴의 승리. 보스턴은 디트로이트에 121-108로 승리를 거뒀다. 웨스트팔은 이날 코트를 밟았다. 자신의 데뷔전을 치른 것. 웨스트팔의 기록은 보잘 것 없었다. 웨스트팔은 이날 필드골 하나를 성공시키며 단 2점을 올렸다.
보스턴은 이날 하블리첵과 코웬스 그리고 화이트가 나란히 20점 이상을 득점했다. 하블리첵은 팀에서 가장 많은 29점을 올리면서 공격을 이끌었고, 코웬스와 화이트는 각각 22점, 20점을 보탰다. 여기에 사일러스와 넬슨은 물론 스티브 쿠버스키까지 두 자리 수 득점을 올렸다. 디트로이트에서는 데이브 빙과 밥 레니어가 사이좋게 28점씩 득점했지만, 팀의 패배로 빛이 바랬다. 당시 보스턴은 대서양지구 우승을 차지했다.
이후 웨스트팔은 지난 1973-1974 시즌에 우승을 차지했다. 이는 웨스트팔의 처음이자 마지막 우승. 당시에도 웨스트팔은 벤치에서 나와서 주축선수들의 뒤를 받쳤다. 이후 웨스트팔은 보스턴에서 세 시즌을 치른 뒤 피닉스 선즈로 트레이드됐다. 보스턴은 웨스트팔과 두 장의 2라운드 티켓을 피닉스에 건넸다. 피닉스는 찰리 스캇을 보스턴으로 보냈다. 웨스트팔은 피닉스에서 팀을 대표하는 선수로 성장했다.
웨스트팔은 지난 1977년부터 1981년까지 5회 연속 올스타에 선정되는 기쁨을 누렸다. 비록 피닉스를 대권주자로 이끌진 못했지만, 지난 1979-1980 시즌까지 꾸준히 팀의 주죽으로 맹활약했다. 시즌이 끝난 뒤 웨스트팔은 또 한 번 트레이드되기에 이른다. 웨스트팔은 시애틀 슈퍼소닉스(현 오클라호마시티)로 보내졌고, 피닉스는 시애틀로부터 데니스 존슨을 받는 트레이드를 단행했다. 웨스트팔은 시애틀 유니폼을 입고도 올스타에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이후 흐르는 세월을 막지 못했다. 지난 1977-1978 시즌 평균 25.2점에 달했던 웨스트팔의 평균 득점은 이후 떨어지기 시작했다. 시애틀에서는 평균 16.7점에 그쳤다. 시애틀과 웨스트팔은 그렇게 결별했다. 이후 뉴욕 닉스에 새둥지를 틀었고, 뉴욕에서 두 시즌을 소화했다. 그리고 지난 1983-1984 시즌에 다시 피닉스 유니폼을 입은 그는 시즌을 마친 뒤 은퇴를 선언했다. 보스턴에 지명됐지만, 피닉스에서 기회를 얻으면서 꽃을 피운 웨스트팔.
웨스트팔은 보스턴에서 피닉스로 팀을 옮긴 이후 자신의 기량을 마음껏 펼쳤다. 보스턴에서 스타선수들에 가려진 반면 피닉스에서는 첫 시즌부터 평균 20점을 넘긴 것. 그러나 피닉스에서 우승과는 거리가 멀었다. 꾸준히 플레이오프에 나섰지만, 가로 막히기 십상이었다. 결국 시애틀과 뉴욕으로 트레이드를 피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다시 피닉스 유니폼을 입고 마지막 시즌을 보냈다. 자신의 전성기를 보낸 팀에서 선수생활에 종지부를 찍은 것.
웨스트팔은 지난 1992-1993 시즌부터 피닉스의 지휘봉을 잡았다. 부임 첫 해 웨스트팔 감독은 피닉스를 62승 20패로 견인했다. 피닉스에는 ‘Chuck' 찰스 바클리와 함께 댄 멀리, 케빈 존슨, 리처드 듀마스, 탐 챔버스와 데니 에인지까지 서부컨퍼런스 최고의 전력을 구축하고 있었다. 태평양지구 우승을 차지한 피닉스는 여세를 몰아 플레이오프에서도 강세를 이어갔고, 서부 정상을 밟았다.
시애틀을 7차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제압한 피닉스는 파이널에서 당대의 제왕인 시카고 불스를 마주했다. 90년대 결승을 밟은 시카고는 참고로 단 한 번도 패한 적이 없다. 결국 피닉스는 필 잭슨 감독(현 뉴욕 사장)과 마이클 조던이 이끄는 시카고에 패해 아쉬움을 남겼다. 바클리의 엄청난 활약이 있었지만 결국 조던의 벽을 넘어서지 못했다. 이후 피닉스는 단 한 번도 파이널에 진출하지 못하고 있다.
먼저 지난 1938년에는 데럴 임호프가 태어난 날이다. 임호프는 올스타에 한 차례 선정된 바 있다. 이어서 지난 1955년 이날은 놈 닉슨의 생일이다. 닉슨은 올스타전에 두 번 나선 바 있다. 한 번은 LA 레이커스, 다른 한 번은 LA 클리퍼스 소속으로 뛰었다. 지난 1980년과 1982년에는 레이커스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당시 1980년 레이커스에는 카림 압둘-자바와 매직 존슨을 필두로 마이클 쿠퍼와 저말 윌크스까지 포진하고 있었다.
한편 폴 웨스트팔이 데뷔한 날이기도 하다. 웨스트팔은 지난 시즌부터 브루클린 네츠의 어시스턴트 코치로 재직하고 있다. 피닉스 선즈와 새크라멘토 킹스에서 감독경험이 있는 등 지도자로서 잔뼈도 굵은 인물이다. 다만 새크라멘토에서는 운영진의 기대와 달리 뚜렷한 방향을 제시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드마커스 커즌스와 불화를 피하지 못했다. 성명서를 냈을 정도로 커즌스의 행동에 깊은 불만이 있었다. 이후 웨스트팔 감독은 해고됐다.
웨스트팔 감독은 지난 1972 드래프트를 통해 NBA에 데뷔했다. 가드였던 그는 1라운드 10순위로 보스턴 셀틱스에 지명됐다. 당시 드래프트에서는 밥 맥아두가 1라운드 2순위로 버팔로 브레이브스(현 클리퍼스)에 호명됐다. 1라운드 12순위에는 전설적인 선수 줄리어스 어빙이 12순위로 밀워키 벅스의 부름을 받았다. 맥아두와 어빙을 제외하고는 슈퍼스타는 없었지만, 웨스트팔은 자신만의 입지를 다졌다.
웨스트팔은 데뷔시즌에서 뚜렷한 활약을 펼치지 못했다. 당시 보스턴에는 존 하블리첵과 데이브 코웬스를 필두로 폴 사일러스와 돈 넬슨까지 훌륭한 선수들이 즐비했다. 가드 포지션에는 조조 화이트와 아트 윌리엄스까지 포진하고 있었다. 웨스트팔이 이들을 밀어내고 많은 시간을 소화하긴 현실적으로 힘들었다. 화이트는 당시 82경기에 나서 경기당 39.6분을 소화하며 19.7점 5리바운드 6.1어시스트를 기록했다.
엄청난 스타들이 운집한 보스턴에서 웨스트팔이 기를 펴기는 쉽지 않았다. 웨스트팔은 이내 보스턴의 선수로 시즌에 나섰다. 지난 1972-1973 시즌 보스턴의 첫 경기. 웨스트팔은 벤치에서 경기에 나섰다. 결과는 보스턴의 승리. 보스턴은 디트로이트에 121-108로 승리를 거뒀다. 웨스트팔은 이날 코트를 밟았다. 자신의 데뷔전을 치른 것. 웨스트팔의 기록은 보잘 것 없었다. 웨스트팔은 이날 필드골 하나를 성공시키며 단 2점을 올렸다.
보스턴은 이날 하블리첵과 코웬스 그리고 화이트가 나란히 20점 이상을 득점했다. 하블리첵은 팀에서 가장 많은 29점을 올리면서 공격을 이끌었고, 코웬스와 화이트는 각각 22점, 20점을 보탰다. 여기에 사일러스와 넬슨은 물론 스티브 쿠버스키까지 두 자리 수 득점을 올렸다. 디트로이트에서는 데이브 빙과 밥 레니어가 사이좋게 28점씩 득점했지만, 팀의 패배로 빛이 바랬다. 당시 보스턴은 대서양지구 우승을 차지했다.
이후 웨스트팔은 지난 1973-1974 시즌에 우승을 차지했다. 이는 웨스트팔의 처음이자 마지막 우승. 당시에도 웨스트팔은 벤치에서 나와서 주축선수들의 뒤를 받쳤다. 이후 웨스트팔은 보스턴에서 세 시즌을 치른 뒤 피닉스 선즈로 트레이드됐다. 보스턴은 웨스트팔과 두 장의 2라운드 티켓을 피닉스에 건넸다. 피닉스는 찰리 스캇을 보스턴으로 보냈다. 웨스트팔은 피닉스에서 팀을 대표하는 선수로 성장했다.
웨스트팔은 지난 1977년부터 1981년까지 5회 연속 올스타에 선정되는 기쁨을 누렸다. 비록 피닉스를 대권주자로 이끌진 못했지만, 지난 1979-1980 시즌까지 꾸준히 팀의 주죽으로 맹활약했다. 시즌이 끝난 뒤 웨스트팔은 또 한 번 트레이드되기에 이른다. 웨스트팔은 시애틀 슈퍼소닉스(현 오클라호마시티)로 보내졌고, 피닉스는 시애틀로부터 데니스 존슨을 받는 트레이드를 단행했다. 웨스트팔은 시애틀 유니폼을 입고도 올스타에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이후 흐르는 세월을 막지 못했다. 지난 1977-1978 시즌 평균 25.2점에 달했던 웨스트팔의 평균 득점은 이후 떨어지기 시작했다. 시애틀에서는 평균 16.7점에 그쳤다. 시애틀과 웨스트팔은 그렇게 결별했다. 이후 뉴욕 닉스에 새둥지를 틀었고, 뉴욕에서 두 시즌을 소화했다. 그리고 지난 1983-1984 시즌에 다시 피닉스 유니폼을 입은 그는 시즌을 마친 뒤 은퇴를 선언했다. 보스턴에 지명됐지만, 피닉스에서 기회를 얻으면서 꽃을 피운 웨스트팔.
웨스트팔은 보스턴에서 피닉스로 팀을 옮긴 이후 자신의 기량을 마음껏 펼쳤다. 보스턴에서 스타선수들에 가려진 반면 피닉스에서는 첫 시즌부터 평균 20점을 넘긴 것. 그러나 피닉스에서 우승과는 거리가 멀었다. 꾸준히 플레이오프에 나섰지만, 가로 막히기 십상이었다. 결국 시애틀과 뉴욕으로 트레이드를 피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다시 피닉스 유니폼을 입고 마지막 시즌을 보냈다. 자신의 전성기를 보낸 팀에서 선수생활에 종지부를 찍은 것.
웨스트팔은 지난 1992-1993 시즌부터 피닉스의 지휘봉을 잡았다. 부임 첫 해 웨스트팔 감독은 피닉스를 62승 20패로 견인했다. 피닉스에는 ‘Chuck' 찰스 바클리와 함께 댄 멀리, 케빈 존슨, 리처드 듀마스, 탐 챔버스와 데니 에인지까지 서부컨퍼런스 최고의 전력을 구축하고 있었다. 태평양지구 우승을 차지한 피닉스는 여세를 몰아 플레이오프에서도 강세를 이어갔고, 서부 정상을 밟았다.
시애틀을 7차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제압한 피닉스는 파이널에서 당대의 제왕인 시카고 불스를 마주했다. 90년대 결승을 밟은 시카고는 참고로 단 한 번도 패한 적이 없다. 결국 피닉스는 필 잭슨 감독(현 뉴욕 사장)과 마이클 조던이 이끄는 시카고에 패해 아쉬움을 남겼다. 바클리의 엄청난 활약이 있었지만 결국 조던의 벽을 넘어서지 못했다. 이후 피닉스는 단 한 번도 파이널에 진출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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