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 NBA History] 그랜트 힐과 에이드리언 스미스의 생일!

NBA / Jason / 2015-10-06 11:44:38
20130712 NBA

[바스켓코리아 = 이재승 기자] 10월 6일(이하 한국시간) NBA에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

6일에는 1990년대 NBA를 대표한 슈퍼스타인 그랜트 힐의 생일이다. 힐은 지난 1972년 텍사스의 댈러스에서 태어났다. 그 이전에는 지난 1936년에는 에이드리언 스미스(가드, 185cm, 82kg)가 세상의 빛을 봤다. 두 선수 모두 NBA 올스타 경험이 있다. 힐은 무려 7회나 올스타에 선정됐다. 선수생활의 절반을 부상에 허덕였음을 감안하면, 상당히 놀라운 커리어를 보냈다.

[그랜트 힐] http://www.basketkorea.com/2013/07/82020.htm

이에 힐보다는 스미스가 보낸 NBA 생활을 들여다보고자 한다. 스미스는 지난 1966년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올스타에 뽑혔다. 올스타전에 나선 스미스는 MVP에 선정되는 기쁨을 누렸다. 이후 NBA에서 굵직한 활약을 펼치지는 못했지만, NBA 데뷔에 앞서 지난 1958년에 NCAA에서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지난 1959년에는 팬아메리카게임과 1960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지난 1960년 미국의 올림픽 대표팀은 FIBA 명예의 전당에도 이름을 올렸다. 스미스는 노스이스트 미시시피 커뮤니티 대학에 입학했다. 이곳에 2년을 보낸 그는 켄터키 대학으로 전학을 갔다. 1년 징계를 감수하고 간 그는 켄터키 와일드캐츠에서 활약했다.

대학을 졸업한 그는 1958 NBA 드래프트에 명함을 내밀었다. 하지만 웬만한 팀들은 스미스를 지명하지 않았다. 결국 스미스는 신시네티 로열스(현 새크라멘토)에 무려 15라운드 1순위이자 전체 85순위로 호명됐다. 스미스 뒤에 호명된 선수는 고작 두 명 밖에 없었다. 스미스는 당해 드래프트 유일의 15라운드 출신이었다.

당시 NBA에는 단 8팀이 있었다. 리그가 크지 않았기 때문에 단 두 개의 지역대가 있었다. 먼저 동부지구에는 보스턴 셀틱스, 시라큐스 네셔널스(현 필라델피아), 신시네티, 뉴욕 닉스가 있었다. 서부지구에는 LA 레이커스, 세인트루이스 호크스(현 애틀랜타), 디트로이트 피스턴스, 샌프란시스코 워리어스(현 골든스테이트), 시카고 제퍼스(현 워싱턴)가 있었다.

1958 드래프트에서 지명된 선수는 도합 88명이다. 이중 스미스의 순위는 85순위, 뒤에 두 명을 합치면 87명이다. 하지만 이 때 당시에는 지역출신의 선수를 선발하는 지역우선순위 지명권(territorial pick)이 있었다. 당시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는 테리토리얼픽을 통해 가이 로저스를 우선 선발했다. 이후 미네아폴리스 레이커스는 1순위로 엘진 베일러를 호명했다.

스미스가 대단하지 않아 보이지만 대단한 선수생활을 한 이유는 지난 1958 드래프티들 중에서 5라운드 이후에 이름을 불린 선수들 중 유일하게 올스타에 나선 선수가 됐다. 지난 1961-1962 시즌에 데뷔한 그는 신시네티에서 8시즌 이상을 소화했다. 스미스는 신시네티에서 소화한 7번의 풀시즌 중 단 한 번을 제외하고는 모두 70경기 이상을 소화했다. 그 중 5시즌에서 80경기 이상을 뛰는 내구성이 탄탄한 가드였다.

스미스는 지난 1965-1966 시즌에 생애최고의 활약을 펼쳤다. 80경기에 나선 그는 경기당 37.3분을 소화하며 18.4점 3.6리바운드 3.2어시스트를 기록했다. 그리고 올스타전에 나설 수 있게 됐다. 올스타치고는 다소 아쉬운 기록일지 모르겠지만, 그간 신시네티에서 보낸 꾸준한 활약에 따른 보상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신시네티는 지난 1969-1970 시즌 도중에 트레이드하기에 이른다. 신시네티는 스미스를 샌프란시스코로 보냈다. 스미스를 보내는 조건으로 신시네티가 받은 1970 2라운드 티켓. 신시네티는 2라운드 티켓을 활용해 ‘Tiny' 네이트 아치발드를 지명했다. 아치발드는 왼손잡이 포인트가드로 리그를 호령한 선수였다.

스미스는 애석하게도 우승과 인연이 없었다. 지난 1962년부터 1967년까지 연거푸 플레이오프에 나섰지만 우승과는 거리가 멀었다. 지난 1964 플레이오프에서는 디비전파이널에 나섰지만, 모자랐다. 스미스가 속한 신시네티는 1라운드에서 5차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시라큐스를 제압했다. 그러나 지구 결승에서 만난 상대는 보스턴. 신시내티는 당대 최강인 보스턴을 맞아 선전을 펼쳤다.

결국 신시네티는 빌 러셀이 이끄는 보스턴에 시리즈 스코어 4대 3으로 무릎을 꿇고 말았다. 참고로 60년대 보스턴은 8연패를 포함해 11번의 우승을 차지한 무지막지한 왕조였다. 당시 플레이오프에는 각 디비전별로 세 팀씩 진출한다. 즉 9팀 중 6팀이 플레이오프에 나선 것. 이만하면 우승기회를 어렵지 않게 잡을 만 했지만, 보스턴이 너무나도 막강했다.

스미스는 신시네티를 떠난 이후 플레이오프와 인연을 맺지 못했다. 샌프란시스코는 3위까지 주어지는 플레이오프 진출티켓을 거머쥐지 못했다. 결국 스미스는 지난 1971-1972 시즌을 끝으로 NBA를 떠났다. 지난 1972-1973시즌 ABA에서 한 시즌을 뛴 뒤 은퇴를 선언했다. 은퇴한 이후에는 은행에서 근무했다.

사진 = NBA Logo

[ⓒ 바스켓코리아.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Jason Jason

기자의 인기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