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 NBA History] 데릭 로즈, A.C. 그린, 트럭 로빈슨의 생일!
- NBA / Jason / 2015-10-05 11:10:00

[바스켓코리아 = 이재승 기자] 10월 5일(이하 한국시간) NBA에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
이 날은 세 명의 올스타들이 태어난 날이다. 먼저 지난 1951년에는 트럭 로빈슨(포워드, 201cm, 102kg), 지난 1963년에는 A.C. 그린, 그리고 지난 1988년에는 데릭 로즈가 세상 밖으로 나왔다. 공교롭게도 그린은 1회, 로빈슨은 2회, 로즈는 3회 올스타에 선정됐다. 이들 중 로빈슨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그린도 잘 알려진 선수지만, 로빈슨은 국내에서 많이 알려지지 않은 선수다. 로빈슨이 살았던 당대의 NBA에 대해 짤막하게나마 들여다보았다.
동부 최고 파워포워드로 거듭나다!
먼저 로빈슨은 플로리다의 잭슨빌 태생이다. 본명은 레오나드 유진 로빈슨으로 ‘트럭’은 별명이었고, 이름이 된 것으로 보인다. 로빈슨은 지난 1974 드래프트를 통해 NBA에 진입했다. 2라운드 4순위이자 전체 22순위로 워싱턴 불리츠(현 위저즈)의 부름을 받았다. 데뷔 시즌인 지난 1974-1975 시즌 76경기에 나서 평균 5.8점 4리바운드를 기록했다.
당시 워싱턴은 동부컨퍼런스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파이널에 올랐다. 하지만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에 속절없이 패하고 말았다. 워싱턴은 골든스테이트에게 단 한 경기도 따내지 못했다. 골든스테이트는 이 때 우승을 차지한 이후 지난 2015년에 다시 정상에 서기까지 무려 40년이 소요됐다. 이듬해는 82경기에 출장해 평균 11.2점 6.8리바운드를 올리며 나아진 모습을 선보였다.
그러나 워싱턴은 지난 1976-1977 시즌 트레이드 데드라인을 앞두고 로빈슨을 트레이드하기에 이른다. 워싱턴은 애틀랜타 호크스와의 거래로 드래프트 상위지명권을 얻고자 했고, 로빈슨과 자신들의 지명권을 묶어 애틀랜타로 보냈다. 당시 애틀랜타의 감독은 2000년대 중반에 멤피스 그리즐리스의 지휘봉을 잡은 바 있는 휴비 브라운 감독이었다. 결국 로빈슨은 워싱턴에서 단 두 시즌 반을 소화한 채 애틀랜타 유니폼을 입게 됐다.
# 로빈슨 트레이드 개요
불리츠 get 탐 헨더슨, 1977 1라운드 티켓
호크스 get 트럭 로빈슨, 1977 1라운드 티켓
애틀랜타에서 로빈슨은 펄펄 날았다. 남은 36경기를 소화한 그는 경기당 40.3분을 소화하며 평균 22.4점 12.8리바운드 2.7어시스트 1.1스틸을 기록했다. 동부컨퍼런스를 대표하는 파워포워드로 발돋움했다. 애틀랜타에서 지난 1976-1977 시즌을 마감한 그는 뉴올리언스 재즈(현 유타 재즈)에 새둥지를 틀었다.
뉴올리언스는 로빈슨을 잡은 대가로 론 베하겐과 현금을 애틀랜타에 보냈다. 뉴올리언스 입단 첫 해, 로빈슨은 자신의 역량을 마음껏 뽐냈다. 당시 뉴올리언스 감독은 엘진 베일러였다. 로빈슨은 전 경기에 출장해 평균 44.4분을 뛰며 22.7점 15.7리바운드 2.1어시스트를 기록했다. 이 때 로빈슨은 생애 첫 올스타에 이름을 올렸으며, 리바운드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하지만 뉴올리언스에서의 생활도 그리 길지 않았다. 로빈슨은 지난 1978-1979 시즌을 마치기도 전에 피닉스 선즈로 트레이드됐다. 뉴올리언스는 로빈슨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하위권을 면치 못했다. 줄곧 동부컨퍼런스 중부지구 최하위에 머무른 것. 결국 26승을 올리는데 그쳤고, 동부는 물론 리그 전체에서 가장 낮은 승률을 거둬야 했다.
뉴올리언스는 시즌이 끝나기 전에 로빈슨을 매물로 재건에 돌입해야 했다. 워싱턴은 피닉스 선즈와 트레이드에 합의했다. 피닉스는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는 팀이었기에 골밑보강이 필요했다. 워싱턴은 로빈슨을 보내는 대신 마르티 번스와 론 리, 그리고 1979 1라운드 티켓과 1980 1라운드 티켓을 보냈다.
# 로빈슨 트레이드 2 개요
재즈 get 마티 번스, 론 리, 1979 1라운드 티켓, 1980 1라운드 티켓
선즈 get 트럭 로빈슨
다시금 놓쳐버린 우승 기회
로빈슨은 피닉스에서 인사이드에서 힘을 보탰다. 피닉스에는 주득점원인 폴 웨스트팔을 필두로 월터 데이비스와 그리고 앨번 애덤스까지 있었다. 기존의 삼각편대에 로빈슨이 더해지면서 피닉스의 전력은 단번에 우승후보로 급부상했다. 1979 플레이오프에서 로빈슨이 속한 피닉스는 1라운드에서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에 2대 1, 2라운드에서 캔자스시티 킹스(현 새크라멘토)에 4대 1 승리를 거뒀다. 그러나 서부컨퍼런스 파이널에서 시애틀 슈퍼소닉스(현 오클라호마시티 썬더)에 무릎을 꿇어야 했다.
로빈슨이 피닉스에 있는 동안 피닉스는 꾸준히 플레이오프 진출했다. 비록 우승과는 인연이 없었지만 1982년까지 내리 봄나들이에 나섰다. 다만 피닉스에는 스타급 선수들이 즐비한 탓에 로빈슨도 이전의 기록을 올리지 못했다. 로빈슨은 피닉스에서 약 네 시즌 동안 평균 18.1점 9.5리바운드 2.1어시스트를 보탰다.
# 로빈슨 트레이드 3 개요
선즈 get 모리스 루카스
닉스 get 트럭 로빈슨
하지만 로빈슨은 다시 트레이드를 피하지 못했다. 우승을 차지하지 못했기 때문에 피닉스도 리툴링에 돌입하고자 했다. 결국 지난 1982년 여름 피닉스는 로빈슨을 트레이드하기에 이른다. 피닉스는 뉴욕 닉스와의 트레이드로 로빈슨과 모리스 루카스를 주고받는 트레이드를 단행했다. 로빈슨도 세월을 피해가지 못했다. 서른을 넘어서면서부터 기량이 급격히 하락했다. 로빈슨은 지난 1981-1982 시즌에 평균 9.5점 8.1리바운드에 그쳤다. 이는 데뷔 시즌을 제외한 이후 가장 좋지 않은 성적이었다.
뉴욕은 동부컨퍼런스에서 5번시드를 받았다. 1라운드에서 뉴저지 네츠를 스윕(2대 0)한 뉴욕은 2라운드에서 탑시드이자 부전승인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를 상대했다. 당시 필라델피아는 정규시즌에서 무려 65승을 쓸어 담은 최강팀이었다. 필라델피아에는 얼마 전에 작고한 모제스 말론과 ‘Dr. J’ 줄리어스 어빙이 원투펀치를 구성하고 있었다. 여기에 모리츠 칙스와 앤드류 토니 그리고 바비 존스까지 포진한 유력한 우승후보였다.
뉴욕은 필라델피아에 힘 한 번 제대로 쓰지 못했다. 뉴욕이 필라델피아에 맞서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필라델피아는 끝내 동부컨퍼런스 파이널에서 돈 넬슨 감독이 이끄는 밀워키 벅스를 연파했다. 밀워키에는 마퀴스 존슨과 시드 몽크리프라는 당대 최고의 슈퍼스타들이 자리했다. 뒤이어 파이널에서는 LA 레이커스를 상대로 완승을 거뒀다. 레이커스는 카림 압둘자바와 매직 존슨의 팀이었다. 여기에 저말 윌크스와 놈 닉슨 그리고 마이클 쿠퍼까지 스타들이 즐비했다.
이런 필라델피아였기에 로빈슨도 어쩔 방도가 없었다. 무엇보다 큰 슬럼프를 극복하지 못했다. 끝내 여기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지난 1983-1984 시즌에 65경기에 나서 평균 10.8점 8.4리바운드를 올렸지만, 이전과 같은 생산력을 기대하기는 힘들었다. 당시 팬들은 “바퀴에 바람이 빠진 트럭”이라며 로빈슨에게 거센 비난을 가했다. 그리고 로빈슨은 지난 1984-1985 시즌을 끝으로 유니폼을 벗었다. 지난 1984-1985 시즌에 소화한 경기는 단 2경기였다.
워싱턴에서 파이널 무대를 밟았고, 피닉스와 뉴욕에서 컨퍼런스 파이널에 오르며 우승기회를 엿봤지만 NBA우승은 역시나 쉽지는 않았다.로빈슨은 통산 정규시즌에서 11,988점 7,267리바운드 1,348어시스트를 기록했다. 지난 1978년 워싱턴에 있을 당시와 지난 1981년 피닉스에서 뛸 때 올스타에 뽑히는 영예를 안았으며, 지난 1978년에는 올-NBA 퍼스트팀에 선정됨과 동시에 리바운드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해냈다. 트럭이라는 별명이 말해주듯 엄청 화려한 선수는 아니었지만, 그는 견실한 플레이를 펼친 70년대 후반을 대표하는 파워포워드였다.
사진 = NBA Lo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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