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 NBA History] ‘올스타 가드’ 존 드류 태어난 날, 그는 누구?

NBA / Jason / 2015-10-01 11: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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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스켓코리아 = 이재승 기자] 10월 1일(이하 한국시간) NBA에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

이날은 NBA 올스타에 두 번이나 선정된 바 있는 ‘J.E.’ 존 드류(가드, 198cm, 93kg)가 태어난 날이다. 드류는 앨러배머주에서 태어났다. 가드너웹이라는 대학을 졸업했다. 가드웹대학 출신으로는 전설적인 선수인 아티스 길모어와 에디 리 윌킨스가 있다.

화려했던 드류의 NBA 데뷔

드류는 지난 1974 드래프트를 통해 NBA에 발을 들였다. 그는 2라운드 7순위로 애틀랜타 호크스의 지명을 받았다. 당시에는 18개 팀이 있었으며, 드류는 전체 25순위로 호명됐다. 드류는 스윙맨으로 주로 슈팅가드와 스몰포워드 자리를 오갔다. 그는 애틀랜타에서만 8시즌을 내리 뛰면서 팀의 주축 선수로 발돋움했다.

데뷔 시즌에 평균 18.5점 10.7리바운드 1.8어시스트 1.5스틸을 올린 그는 이듬해부터 매시즌 평균 20점 이상을 책임졌다. 2년차인 지난 1975-1976 시즌에는 평균 21.6점을 올리면서 스타선수로 올라섰고, 처음으로 올스타전에 나서면서 인정을 받았다.

드류는 첫 세 시즌 동안 평균 득점을 꾸준히 늘려나갔다(18.5 -> 21.6 -> 24.2). 하지만 이후 발군의 기량을 선보였음에도 올스타에 이름을 올리지 못한 그는 지난 1979-1980 시즌에 올스타에 다시 뽑히는 기쁨을 누렸다.

플레이오프와는 큰 인연이 없었다. 플레이오프에 5차례에 나섰던 그는 지난 1978-1979 시즌에 팀을 동부컨퍼런스 세미파이널까지 견인했다. 드류는 2라운드를 넘어서지 못했다. 당시 컨퍼런스 세미파이널에서는 워싱턴 불리츠와 마주했다. 당시 워싱턴에는 밥 댄드리지와 엘빈 헤이즈가 있었다. 애틀랜타는 7차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아쉽게 패했다.

트레이드와 도미니크 윌킨스

애틀랜타의 전부나 다름없었던 드류는 지난 1981-1982 시즌을 끝으로 애틀랜타를 떠났다. 이유는 트레이드였다. 애틀랜타는 드류와 함께 프리먼 윌리엄스를 유타 재즈에 보냈다. 그리고 애틀랜타가 유타로부터 받은 선수는 바로 도미니크 윌킨스다.

윌킨스는 현재에도 애틀랜타 호크스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선수. 당시 인터넷은 물론 정보통신이 발달하지 않은 시절에 화려한 경기를 펼치며 ‘The Human Highlight Film'으로 불렸던 선수다. 지난 2009년에는 아시아챌린지를 치르기 위해 NBA 레전드로 내한한 적도 있다.

드류에게는 좋지 않은 기억이지만, 애틀랜타는 구단 역사상 가장 잘한 트레이드인 셈. 하지만 애틀랜타는 애석하게도 애틀랜타에서 약 12시즌을 뛰며 올스타를 넘어 리그를 대표하는 선수로 발돋움했다. 하지만 애틀랜타는 지난 1993-1994 시즌 트레이드 데드라인을 앞두고 윌킨스를 트레이드했다.

애틀랜타는 다소 노쇠화한 윌킨스와 1994 드래프트 1라운드 티켓을 LA 클리퍼스에 보냇다. 그 대가로 데니 매민을 받아들였다. 프랜차이즈의 최전성기를 이끈 선수를 너무 손쉽게 내쳤다. 윌킨스는 도합 9회 올스타였다. 모두 애틀랜타에서 이룬 성과였다.

드류의 아쉬운 말로

윌킨스가 애틀랜타에서 잘 나갈 때, 드류는 하락세를 면치 못했다. 유타에서의 첫 시즌은 성공적이었다. 드류는 지난 1982-1983 시즌에 평균 21.2점 5.3리바운드 2.2어시스트를 기록했다. 이어진 지난 1983-1984 시즌에는 NBA에 진출한 이후 처음으로 81경기에 나서는 기염을 토해냈다. 4경기를 제외하고 모두 벤치에서 출격했지만, 나쁘지 않은 성과였다.

드류는 지난 1984-1985 시즌을 끝으로 NBA에서 뛰지 못했다. 19경기를 소화하는데 그친 그는 평균 16.2점을 올리면 건재함을 과시했다. 그러나 드류는 유타에서 마약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코카인에 중독됐고, 지난 1982-1983 시즌에는 38경기나 결장했다. 하지만 이듬해 ‘올해의 재기상’을 수상하며 또 다른 이야기를 써내려갔다.

그러나 이도 잠시, 드류는 1985년에 다시 마약을 남용했고 약물과 관련된 규정을 여러 차례 위반한 죄로 지난 1986년에 NBA로부터 영구적으로 제명됐다. 그는 마약과 관련이 있는 선수들 처음으로 NBA로부터 추방된 선수다. 데뷔 시절부터 스타선수로 자리매김했던 선수의 선수생활이 쓸쓸하게 마감되는 순간이었다. 그의 나이 고작 서른(현지 나이)이었다.

이후 드류는 CBA의 와이오밍 와일드캐터스에서 두 시즌을 보냈고, 은퇴했다. 드류는 NBA에서 11시즌을 뛰며 739경기에 나서 경기당 29.5분을 뛰며 20.7점 6.9리바운드 1.7어시스트를 기록했다. 데뷔 시즌에는 올루키 퍼스트팀에 선정됐다.

그는 득점에 일가견이 있는 선수였으며, 가드였음에도 불구하고 데뷔 시즌에 두 자리 수 리바운드를 잡아내는 등 리바운드에도 탁월한 감각이 있었다. 누적기록으로는 15,291점 5,088리바운드 1,004 스틸을 기록했다. 11시즌을 뛰고 만든 기록치고는 상당히 훌륭했다. 그랬기에 그의 이른 선수생활 마감이 더욱 아쉽다.

현재 그는 코카인 중독에서 헤어난 것으로 파악되며, 휴스턴에서 택시 기사로 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 2002년에 찰스 바클리에 의해 그의 이름이 거론된 적이 있기도 하다.

1974 드래프트

1974 드래프트에는 여러 명의 대단한 선수들이 배출됐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빌 월튼이 1라운드 1순위로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에 지명됐다. 또한 저말 윌크스로 알려져 있는 키스 윌키스가 1라운드 11순위로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의 부름을 받았다. 윌크스도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이 밖에도 1974 드래프트에서는 다수의 올스타를 배출했다. 바비 존스와 스캇 웨드먼 그리고 캠피 러셀과 브라이언 윈터스가 1라운더로 올스타에 선정됐다. 이어 빌 나이트와 드류가 2라운드 출신으로 올스타로 뽑힌 선수들이다.

또한 1974 드래프트하면 떠오르는 선수가 바로 ‘Ice Man' 조지 거빈이다. 거빈은 당시 3라운드 4순위로 피닉스 선즈에 호명됐다. 전체 40순위로 뽑힌 그도 현재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리고 있으며, 샌안토니오 스퍼스를 대표하는 전설로 알려져 있다.

사진 = Atlanta Hawks Embl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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