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기획] ‘최초’ 그리고 ‘최고’의 사나이, 서울 SK 주희정
- 대학 / duk hyun / 2015-03-09 11:08:42
[바스켓코리아 = 편집부] 서울 SK 나이츠의 주희정(37, 181cm)은 1997~98 시즌부터 18시즌 동안 선수 생활을 하고 있다. 자신이 세울 수 있는 모든 기록을 세웠고, 그 기록을 갱신하고 있다. 주희정은 KBL의 대표적인 ‘진행형 레전드’다. 그 기반에는 숱한 ‘첫 경험’이 있었다. 두 번째 연중 기획에서는‘최초’이자 ‘최고’의 남자인 주희정의 이야기를 담았다. (주희정의 KBL 통산 기록은 1월 10일 기준)
▲ 쓰라린 데뷔전, 그 속에 피어난 첫 번째 기록들
1997년 11월 11일. 주희정이 데뷔전을 치른 날이다. 잊을 수 없는 날이다. 창원실내체육관에서 경남 LG(현 창원 LG)를 상대로 23분 18초를 소화했다. 4점 2어시스트 2스틸을 기록했다. 주전이었던 이인규의 부상으로 예상보다 많은 시간을 소화했다. 주희정은 이날 수많은 첫 번째 역사를 작성했다. 첫 득점과 첫 어시스트, 첫 스틸이 그랬다.
1쿼터 시작 1분 9초 만에 첫 어시스트를 기록했다. 돌파 후 윌리엄 헤이즈에게 볼을 건넸다. 헤이즈는 주희정의 패스를 득점으로 연결했다. 첫 어시스트 후 13초 만에 첫 스틸을 기록지에 남겼다. 강력한 압박수비로 오성식(현 KBL D 리그 연합팀 코치)의 볼을 가로챈 것. 1쿼터 종료 1분 4초 전에는 속공 상황을 만들었다. 빠른 스피드로 첫 득점을 신고했다.
주희정은 데뷔전 상황을 어렴풋이 기억했다. 자신이 세운 첫 번째 기록도 머릿속에 생생하게 남아있었다. 그러나 썩 좋은 기억은 아니었다. 팀이 97-102로 패했고, 자신이 준비한 것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했기 때문.
“비시즌부터 열심히 준비했다. 이미지 트레이닝도 많이 했다. 그렇지만 나의 농구를 하지 못했다. 정말 속상했다. 경기에 패하며 충격을 많이 받았다. 무엇보다 어시스트가 너무 적었다. 포인트가드로써 역량을 발휘하지 못했다.”
그러나 쉽게 주저앉지 않았다. 자신의 준비를 믿기로 결정했다. 더욱 독기를 품었다. 최명룡 감독(현 한양대 감독)을 포함한 코칭스태프와 정인교(현 신한은행 감독)-강병수(현 고려대 코치) 등 고참들도 신인 포인트가드를 신뢰했다. 데뷔전의 쓰라린 기억은 주희정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
▲ 안도의 첫 승, KBL 최초 신인왕
1997년 11월 15일. 주희정은 원주치악체육관에서 첫 홈경기를 치렀다. 나래는 청주 SK를 117-91로 격파하며 첫 승을 신고했다. 주희정은 이날 13점 4어시스트 4스틸을 기록했다. 야투 성공률 100%(2점슛 6/6)를 기록했다. 동료와 첫 승의 기쁨을 나눈 후,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생각했다. 플레이오프를 향한 믿음도 생겼다.
하루 뒤. 주희정은 자신의 첫 번째 3점슛을 성공했다. 광주 나산과의 경기에서 1쿼터 시작 3분 32초 만에 나온 기록이었다. 경기 종료 1분 11초 전에는 첫 리바운드를 기록했다. 나산 김상식(전 삼성 코치)이 놓친 볼을 자신의 볼로 만들었다. 나래 역시 115-103으로 승리하며, 2연승을 기록했다.
“3점시도 자체가 적었다. 자신도 없었다. 개인 운동을 많이 했지만, 3점 슛 준비를 많이 하지 않았다. 첫 번째 3점 슛도 어부지리였다. 상대 수비가 나를 막지 않았고, 나도 3점을 넣으려고 하지 않았다. 공격 시간에 쫓겨서 던졌는데, 그게 들어갔다.(웃음) 하지만 자신감을 얻었다. 경기를 뛰며 코트 밸런스를 익혔기 때문. 첫 번째 리바운드를 잡은 이유도 코트 밸런스 적응에 있다고 본다.”
주희정은 정규리그 45경기를 모두 소화했다. 평균 36분 15초를 코트에 있었고, 12.73점 4.2어시스트 4.1리바운드에 2.9개의 스틸을 기록했다. 나래는 26승 19패로 정규리그 4위에 올랐다. 플레이오프에도 진출했다. 식스맨에서 주전 포인트가드로 거듭난 주희정은 KBL 최초 신인왕에 올랐다. ‘최초 신인왕’은 서막에 불과했다. ‘최초’라는 수식어가 지겹도록(?) 주희정의 앞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 첫 번째 이적, 첫 번째 우승, 첫 번째 MVP
주희정은 영향력 있는 신진급 가드였다. 하지만 신인왕을 거머쥐고 나서 유니폼을 갈아입었다. 첫 번째 이적이었다. 행선지는 수원 삼성. 그러나 이적의 아픔도 잠시. ‘최고의 희열’이 주희정을 기다렸다. 삼성은 2000~01 시즌 정규리그 1위(34승 11패)를 차지했다. 챔피언 결정전에 진출해 창원 LG를 4-1로 격파했다. 통합 우승을 차지했다.
“이적은 어린 나이에 충격이었다. 하지만 삼성이라는 그룹에 걸맞게 성적을 내야겠다고 생각했다. 문경은 감독과 이규섭 코치 등 기라성 같은 국내 선수가 있었고, 아티머스 맥클래리와 무스타파 호프 등 외국인선수도 탄탄했다. 문 감독님은 정말 최고의 슈터였다. 수비가 없는 상황에서는 무조건 슛을 넣었다. (이)규섭이는 대학 때부터 친했다. 눈을 마주치지 않아도, 어떻게 움직일지 예상했다. 서로가 서로의 특성을 너무 잘 파악했다. 맥클래리는 선수들 사이에서 ‘벤츠’로 불렸다. 추진력이 좋고, 돌파를 하면 막지 못했다. 호프가 리바운드를 하면, 이미 반대 코트에 갈 정도로 속공 능력도 뛰어났다.”
주희정은 정규리그 45경기를 모두 소화했고, 평균 34분 52초를 코트에 나섰다. 11.56점 7.2어시스트 4.3리바운드에 1.7개의 스틸을 기록했다. 4강 플레이오프에서는 평균 40분 이상을 코트에 나섰고, 12.75점 9.8어시스트 3.5리바운드에 1.8개의 스틸을 기록했다. 챔피언 결정전에서는 평균 10.8점 11.8어시스트 4.0리바운드를 기록했다. 플레이오프 MVP는 주희정의 몫이었다. 주희정은 데뷔 후 4시즌 만에 첫 번째 통합 우승과 첫 번째 MVP를 경험했다. 첫 번째 시련이 첫 번째 희열을 맛보게 했다.
▲즐거웠던 KT&G, 그 속에 만들어진 최초의 기록
주희정은 2005~06 시즌 안양 KT&G로 이적했다. 김동광 감독(현 MBC 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과 유도훈 감독(현 전자랜드 감독) 밑에서 농구를 배웠다. 두 명의 명장으로부터 농구라는 종목을 제대로 이해했다.
2008~09 시즌에는 평균 15.06점 8.3어시스트 4.8리바운드에 2.3개의 스틸을 기록했다. 커리어 통산 최다 평균 득점을 기록했다. KT&G는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지만, 주희정은 정규리그 MVP를 차지했다. 플레이오프 탈락 팀 선수 중 최초로 정규리그 MVP를 차지했다. 본인의 첫 정규리그 MVP이기도 했다.
“나는 최초를 좋아한다.(웃음) 누구나 세울 수 없는 기록이기 때문이다. 정규리그 MVP 역시 마찬가지였다. 뿌듯하고 좋았다. 하지만 미안한 마음도 있었다. 아쉽고 씁쓸한 마음도 있었다. 특히, 유도훈 감독님과 이상범 감독님께 죄송했다.”
KT&G의 팀 컬러는 ‘런 앤 건’. 주희정이 ‘빠른 농구’를 주도했다. KT&G는 주희정이 있었던 2005~06 시즌부터 2008~09 시즌까지 평균 5.60개(1,209개)의 속공을 기록했다. 4시즌 중 3시즌을 속공 1위(2005~06 시즌 공동 1위, 2007~08 시즌, 2008~09 시즌)에 올랐다. 주희정 역시 자긍심을 가졌다.
“지금 빠른 선수가 국내 리그에 많다. 나 역시 신인 때는 그에 못지않게 빨랐다고 생각한다. 어릴 때부터 빠른 농구를 하다 보니, 속공 전개에는 자신 있었다. 내가 있는 팀은 아무리 못해도 속공 3위를 했던 것 같다. 체력 역시 괜찮았다. 35~40분을 뛰어도 지치지 않았다. 타임아웃을 좋아하지 않았다. 끊기는 것 자체가 재미없었기 때문.(웃음) 그 정도로 뛰면서 농구하는 게 재미있었다”
주희정-마퀸 챈들러의 2대2 역시 KT&G의 강점이었다. 주희정 역시 챈들러와의 2대2를 즐겁게 추억했다. 챈들러는 두뇌와 기교, 슈팅 능력을 갖춘 선수. 주희정의 입장에서 쓰임새가 다양한 선수였다. 덕분에, 캘빈 워너의 질투 섞인 우스갯소리를 듣기도 했다. “나는 덩크가 가능하고, 챈들러는 그렇지 않다. 나에게는 볼을 높이만 주면 된다”고 말이다. 주희정은 외국인선수의 시샘을 받을 정도로 최고의 시절을 보냈다.
▲ 실패는 하되, 후회는 없이
주희정은 2009~10 시즌부터 SK 유니폼을 입었다. 2013~14 시즌(52경기)을 제외하고, 4시즌 동안 정규리그 54경기를 모두 소화했다. 철저한 자기 관리와 독기 없이 이뤄질 수 없는 기록. 지난 2014년 12월 22일 새로운 역사를 수립했다. KBL 역대 통산 최초로 900경기 출장을 달성한 것. 모두가 주희정의 목표를 1,000경기 출전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주희정은 의외의 말을 남겼다.
“사실 900경기도 뛰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아니, ‘900경기까지 뛸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맞았다.(웃음) 33살이나 35살 정도까지 농구하고, 지도자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주위 환경이 내 목표를 만드는 것 같다. 내가 뭔가를 이루고 나면, 주위 사람들이 다음 목표는 뭐냐고 물어본다. ‘그래도 주희정이라면 뭔가 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내가 어느새 1,000경기 출전을 목표로 삼고 있더라(웃음)”
주희정은 출전 경기 수 외에도 KBL 통산 어시스트 1위(5,101개)와 스틸 1위(1,434개)를 기록하고 있다. 1,081개의 3점 슛은 역대 3위이자 현역 선수 1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역대 가드 포지션 중 유일하게 3,000리바운드 이상(3,229개)을 기록하기도 했다. 가드 중 유일하게 8,000점 고지(8,151점)를 밟기도 했다. 선수이자 포인트가드로써 세울 수 있는 기록을 거의 수립했다.
주희정 역시 기록에 욕심을 내지 않았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다 했다고 생각했기 때문. 그러나 정체되기는 싫었다. 결국 또 하나의 목표를 설정했다. 개인 통산 ‘10번째 트리플더블’ 달성. 주희정은 데뷔 후 8번의 트리플더블을 달성했다. 리온 데릭스-크리스 윌리엄스와 공동 2위. 10번의 트리플더블을 작성한 이는 앨버트 화이트가 유일하다. 이는 국내 선수 중 아무도 10번의 트리플더블을 달성한 이가 없다는 뜻이다. 주희정은 또 한 번 ‘최초’이자 ‘최고’의 기록에 도전한다.
“솔직히 이룰 수 있는 건 다 이뤘다고 생각한다.(웃음) 주변에서 1,000경기 출전 말고 다른 목표가 없냐고 물어봤다. 무엇이 있을까 생각하다가, 트리플더블이 나왔다. 쉽지 않지만, 욕심은 난다. 실패하는 것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하지만 미련이나 후회는 무섭다. 실패는 다음에 한 번 또 도전할 수 있다. 공부가 된다. 미련이나 후회는 돌이킬 수 없는 것 아닌가. 돌아갈 수 없는 과거에 얽매이는 건 너무 싫다.”
기자는 주희정의 말을 듣고 깊은 울림을 받았다. 주희정이 괜히 레전드가 아님을 새삼 깨달았다. 인터뷰가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쉽게 체육관을 떠나지 못했다. 그가 살아온 인생을 조금이나마 더 느끼고 싶었다. ‘최초’이자 ‘최고’의 인생을 말이다.
▲ 후배의 기록 달성을 지켜보며
김주성은 지난 1월 6일 인천 전자랜드와의 경기에서 대기록을 달성했다. 1쿼터 종료 1분 6초 전 개인 통산 3,830번째 리바운드를 잡았다. 조니 맥도웰(3,829개)을 제치고, KBL 통산 리바운드 2위에 올랐다.
동부의 공격이 끝나자, 경기는 잠시 중단됐다. 전자랜드는 김주성의 기록 달성을 축하했다. 김주성은 자신이 리바운드 한 볼에 사인을 했고, 유도훈 감독과 김영만(43) 동부 감독 그리고 4,988명의 관중으로부터 축하를 받았다.
주희정은 900경기 출전 당시 아무런 축하를 받지 못했다. 정규리그 출전경기 시상 규정이 500경기 단위로 이뤄지기 때문. KBL은 뒤늦게 특별 시상으로 대체했다. 주희정은 인터뷰에서 아쉬움을 드러낸 바 있다. 그러나 이는 자신을 위한 일이 아니었다. 김주성을 포함한 여러 후배들이 혜택을 누려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
“(김)주성이가 원정 경기에서 축하받았다는 것 자체가 좋았다. 축하 받을 자격이 있다. 리바운드 2위 자체가 대기록이기 때문이다. 나는 솔직히 그런 행사를 하지 않아도 된다.(웃음) 다만, 이러한 행사들이 후배들에게 동기 부여가 됐으면 한다. 후배들이 발자취를 남겼을 때,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으면 좋겠다. 이러한 스포트라이트가 농구 인기를 다시 끌어올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주희정은 진정 한국 농구와 농구 후배를 생각하는 남자였다. 깊은 생각이 아직도 그의 열정을 끌어올리고 있다. 그 열정은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주희정의 농구 인생에 존경의 마음을 담아야 하는 이유다.
글 = 손동환 기자 사진 = 이솔 기자, KBL 제공
[이 기사는 농구 전문 잡지로 2015년 1월 새롭게 창간한 더 바스켓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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