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승 칼럼] 선수생활을 마감한 빌럽스, 그가 걸어온 길을 돌아보며
- NBA / Jason / 2014-11-27 08:12:33

[바스켓코리아 = 이재승 기자] 이번 여름 NBA팬들은 또 한 명의 멋진 선수와 이별해야 했다. 그 선수는 바로 'Mr. Big Shot' 천시 빌럽스. 디트로이트 피스턴스에서 전성기를 구가하며 팀을 우승시키기도 했으며, 올스타 가드로 2000년대 중반을 호령했던 그가 수없이 누볐던 농구코트를 떠났다.
빌럽스는 숱한 트레이드를 겪은 와중에도 끝내 한 팀의 주축선수로 정착했고, 이후 리그를 대표하는 선수로 발돋움했다. 이후에도 트레이드되는 와중에도 해당 팀들을 플레이오프로 이끌면서 기량을 인정받는 등 남부럽지 않은 선수생활을 한 훌륭한 선수였다.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그런 빌럽스의 18시즌을 되돌아 보는 시간을 가져봤다.
쉽지 않았던 선수생활 초반
빌럽스는 커리어 초반만 하더라도 여러 팀을 떠돌아다녔다. 보스턴 셀틱스를 시작으로 토론토 랩터스, 덴버 너기츠, 그리고 미네소타 팀버울브스까지 4팀을 전전했다.
1997 드래프트를 통해 빌럽스는 NBA에 발을 들였다. 보스턴 셀틱스는 빌럽스를 지명했는데, 당시 감독이 릭 피티노(현 루이빌 대학 감독)였다. 보스턴은 지난 1997년 여름, 켄터키 대학의 감독이었던 피티노를 데려오면서 변화를 꾀했다. 그 순간에 빌럽스가 있었다. 당시 보스턴에는 앤트완 워커와 론 머서가 팀을 이끌고 있었다. 빌럽스는 51경기에 나서 11.1점 2.2리바운드 4.3어시스트를 기록했다. 빌럽스는 데뷔 첫 경기이자 팀의 첫 경기에서 벤치에서 나서서 15점을 올리면서 주목을 받았다. 이후 보스턴의 주전 가드로 발돋움했다.
하지만 빌럽스는 한 시즌을 채 채우지 못하고 토론토 랩터스로 트레이드됐다. 빌럽스는 디 브라운, 로이 로저스, 존 토마스와 함께 토론토 유니폼을 입게 됐다. 빌럽스는 보스턴 시절을 두고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많은 기회를 주지 않았다"면서 "재앙이나 다름없었다"며 자신을 트레이드한 보스턴에 대한 감정을 여과 없이 전달했다. 실제로 당시 보스턴의 코칭스탭은 빌럽스를 두고 포인트가드와 슈팅가드를 두고 전문화를 시키지 못했다. 보스턴은 트레이드 데드라인을 앞두고 '올스타 가드' 케니 앤더스을 데려오기 위한 트레이드를 단행한 것이었다.
몇 달이 지나 빌럽스는 자신의 고향인 덴버 너기츠 유니폼을 입게 된다. 또 트레이드된 것. 빌럽스는 콜로라도 대학 출신으로 덴버와 인연이 있었다. 덴버에서 빌럽스는 잘 정착했다. 보스턴과 토론토에서 겪었던 혼선을 뒤로하고 빌럽스는 지역스타로 자리잡아가기 시작했다. 1998-1999 시즌 45경기에 나서 13.9점 2.1리바운드 3.8어시스트를 기록했다. 직장폐쇄로 단축시즌이 열렸지만, 빌럽스의 활약만큼은 변함이 없었다. 훗날 뛰게 될 미네소타와 시즌 첫 경기를 벌였는데 빌럽스는 단 7점에 그쳤다. 하지만 피닉스 선즈와의 원정경기에서 21점 6어시스트를 올린 것을 시작으로 내리 6경기에서 두 자리 수 득점을 올리면서 빌럽스의 진가는 발휘되기 시작했다.
이 뿐만이 아니다. 달력을 넘겨 4월 2일(이하 한국시간) 시애틀 슈퍼소닉스와의 홈경기에서는 3점슛 4개를 포함 생애 최다인 32점을 기록했다. 백투백으로 이어지는 그 다음 경기에서도 빌럽스의 존재감은 단연 빛났다. 3점슛을 무려 7개나 터트리며 30점을 올린 것. 빌럽스에게는 가장 뜨거운 이틀이었다. 이후 18경기에서 빌럽스는 무려 15경기에서 두 자리 수 득점을 올렸다. 빌럽스는 닉 밴 엑셀과 함께 팀의 백코트를 잘 이끌었다. 덴버는 안토니오 맥다이스라는 확실한 득점원과 함께 공격적인 농구를 펼쳤다(이 때 덴버의 감독이 마이크 댄토니였다). 하지만 공격농구에 한계를 드러내며 덴버는 14승 36패에 그치며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다.
빌럽스의 덴버 정착은 나쁘지 않았다. 밴 엑셀과 함께 팀의 주축가드로서 댄토니 감독의 공격농구라는 옷을 입으며 차차 성장을 거듭할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빌럽스는 이듬해인 1999-2000 시즌, 빌럽스는 단 13경기를 나서는데 그쳤다. 빌럽스가 부상을 당한 것. 결국 덴버는 그를 트레이드하기에 이른다. 빌럽스는 올랜도 매직으로 트레이드됐다. 하지만 올랜도에서 단 1경기도 소화하지 못했다. 빌럽스는 올랜도에서 2번을 배정받았지만, 올랜도에서 남긴 기억은 프로필 사진밖에 없었다.
생애 첫 자유계약선수가 된 빌럽스는 미네소타 팀버울브스와 계약을 맺었다. 빌럽스는 미네소타와 다년 계약을 체결하면서 좀 더 올라설 수 있는 전기를 마련하게 된다. 빌럽스는 주전으로 나선 첫 31경기에서 평균 13.4점 2.8리바운드 4.7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자신의 존재감을 각인시키기 시작했다. 결국 빌럽스는 미네소타 유니폼을 입고 생애 첫 플레이오프 나들이에 나서게 된다. 하지만 플레이오프에서 빌럽스는 그 어느 때보다 작아졌다. 빌럽스는 샌안토니오 스퍼스와의 1라운드 3경기에서 도합 3점에 그쳤다. 1차전과 3차전에서는 무득점에 머물렀다. 결국 팀은 샌안토니오에 힘 한 번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스윕을 당했다. 케빈 가넷이 분전했지만, 가넷 혼자서는 역부족이었다.
2001-2002 시즌에는 터렐 브랜든이 무릎을 다치면서 빌럽스에게 더 많은 기회가 왔다. 빌럽스에게는 자신의 커리어에서 가장 큰 돌파구였던 시즌. 빌럽스는 가넷과 함께 미네소타를 50승으로 이끌었다. 빌럽스는 브랜든이 없는 공백을 잘 메웠다. 미네소타는 덕 노비츠키와 스티브 내쉬 그리고 마이클 핀리가 이끄는 댈러스 매버릭스와 1라운드 맞대결을 벌였다. 미네소타는 전력의 한계를 드러내며 댈러스에 단 1승도 따내지 못하고 주저앉고 말았다. 하지만 빌럽스의 활약만큼은 엄청났다. 빌럽스는 시리즈 첫 2경기에서 각각 25점을 기록하는 등 당시 시리즈 평균 22점 5리바운드 5.7어시스트를 기록하며, FA를 앞둔 자신의 존재감을 알리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디트로이트에서 꽃을 피우다
당초 빌럽스는 미네소타에 잔류하고 싶은 마음이 강했다. 하지만 미네소타는 샐러리캡에 작은 압박을 받기 시작했고, 브랜든의 무릎 수술 경과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이는 빌럽스보다는 그래도 브랜든을 추후 포인트가드로 낙점했다는 것. 빌럽스는 팀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이내 디트로이트 피스턴스와의 계약이 성사됐다. 빌럽스는 디트로이트와 계약기간 6년에 3,500만 달러의 장기계약을 맺었다. 이로써 그는 디트로이트의 새로운 포인트가드로 낙점됐다.
디트로이트에서는 1번을 달았다. 4번은 조 듀마스(당시 단장)의 영구결번이었기 때문. 빌럽스의 가세로 디트로이트는 포인트가드가 보강됐고, 그의 수비가 덧입혀지기 시작했다. 이미 디트로이트에는 벤 월러스, 리차드 해밀턴 그리고 클리포드 로빈슨과 콜리스 윌리엄슨이 포진하고 있었다. 정확히 포인트가드 자리가 비는 상황에서 빌럽스가 들어오면서 완벽한 퍼즐이 완성된 것. 벤치멤버도 처키 에킨스, 존 배리, 마이클 커리, 테이션 프린스, 메멧 오쿠어까지 나쁘지 않았다.
그 결과 디트로이트는 2001-2001 시즌에 이어 중부지구 우승을 차지했다. 빌럽스도 생애 첫 지구우승을 맛봤다. 특히 지난 2003년 2월 20일부터 4월 15일까지 치른 28경기에서는 모두 두 자리 수 득점을 기록하면서 단일 시즌 가장 긴 두 자리 수 득점을 기록했다. 당시 빌럽스는 경기당 36.9분을 뛰며 21점 4.2리바운드 4.5어시스트를 기록하며 디트로이트의 중흥을 이끌 선두주자로 올라섰다. 플레이오프에서 빌럽스의 진가는 더욱 빛났다. 이때부터 1라운드 시리즈도 기존의 5전제가 아닌 7전제로 바뀌었는데, 디트로이트는 올랜도 매직에 시리즈 스코어 3대 1로 뒤지면서 탈락 위기를 맞았다.
하지만 이내 5~7차전을 모두 잡아내며 디트로이트는 가까스로 승리를 거두면서 2라운드에 올라갈 수 있었다. 이 와중에 빌럽스의 진가가 단연 돋보였다. 빌럽스의 별명이 왜 Mr. Big Shot인지 여실히 알 수 있었는데, 빌럽스는 6차전과 7차전에서 각각 40점(플레이오프 생애 최다 득점), 37점을 기록하면서 팀을 위기의 수렁에서 구해냈다. 일리미네이션게임서 엄청난 집중력을 선보였다. 도합 3점슛을 10개나 터트리면서 트레이시 맥그레이디에게 또 한 번의 1라운드 징크스를 선사했다.
비록 동부 컨퍼런스 세미파이널에서 앨런 아이버슨이 이끄는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에 무릎을 꿇었지만, 디트로이트가 동부의 강호로 자리매김했다. 그리고 2003-2004 시즌. 디트로이트는 트레이드 데드라인을 앞두고 라쉬드 월러스를 영입하기 이른다. 디트로이트는 애틀랜타 호크스와 보스턴 셀틱스와의 삼자트레이드로 골밑을 보강하며 우승후보로 발돋움했다. 월라스는 디트로이트로 트레이드되기 열흘 전에 친정인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에서 애틀랜타로 트레이드 됐다. 하지만 애틀랜타는 다루기 힘든 월러스를 매물로 리빌딩을 택했고, 디트로이트가 손길을 내밀면서 트레이드는 단행됐다.
# 돌아보는 월러스 트레이드
디트로이트
in 라쉬드 월러스
out 젤리코 레브라차, 밥 수라, 처키 애킨스, 린지 헌터, 2004 1라운드 티켓 2장
애틀랜타
in 젤리코 레브라차, 밥 수라, 크리스 밀스, 2004 1라운드 티켓*
out 라쉬드 월러스, 마이크 제임스
보스턴
in 처키 애킨스, 린지 헌터, 마이크 제임스, 2004 1라운드 티켓*
out 크리스 밀스
* 애틀랜타 지명권 - 조쉬 스미스(디트로이트) 지명 / 보스턴 지명권 - 토니 앨런(멤피스) 지명
월러스를 품은 디트로이트는 짜임새 있는 주전 라인업을 구성했다. 래리 브라운 감독과 함께 우승여정을 떠나기에 결코 부족하지 않았다. '빌럽스-해밀턴-프린스-라쉬드-벤 월러스'까지 디트로이트는 막강한 주전 라인업을 꾸렸다. 5명 모두 포지션대비 월등한 수비능력을 갖추고 있어 브라운 감독의 조직적인 농구가 날개를 달게 됐다.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 밀워키 벅스를 몰아낸 디트로이트는 이어 뉴저지 네츠(현 브루클린)와 인디애나 페이서스와 마주한다. 뉴저지는 제이슨 키드를 위시로 한창 전성시기를 구사할 즈음이다. 이미 지난 2시즌 동안 동부 컨퍼런스 챔피언에 올랐을 정도.
하지만 딱 갖춰진 디트로이트를 상대하기엔 역부족이었다. 빌럽스도 키드에 크게 밀리지 않았다. 1차전에서는 6점으로 부진했지만, 2차전에서 28점 13어시스트를 퍼부으며 팀의 승리를 이끌었다. 홈코트 어드밴티지에 힘입어 안방에서 2승을 내리 따낸 디트로이트. 하지만 적지에서 열린 2경기를 모두 패했고, 심지어 홈에서 열린 5차전마저 내주며 탈락 위기에 놓였다. 이 때 또 빌럽스가 있었다. 패한 5차전에서 31점 10리바운드 8어시스트로 감각을 끌어올린 빌럽스는 6차전과 이어지는 7차전에서 11점, 22점을 올리면서 팀의 승리에 기여했다. 7차전에서는 21점을 올린 해밀턴과 팀의 공격을 주도했고, 무엇보다 키드를 무득점으로 틀어막으면서 팀의 동부 컨퍼런스 결승 무대를 선사했다. 빌럽스도 컨퍼런스 파이널에 처음 진출하면서 설렘을 맛봤다.
당시 인디애나는 저메인 오닐, 레지 밀러, 론 아테스트(전 메타 월드피스, 현 팬더프랜즈), 스티븐 잭슨, 제프 포스터, 알 해링턴, 저말 틴슬리, 케니 앤더슨까지 탄탄 멤버를 갖추고 있었다. 2000년대 초반은 빌럽스의 디트로이트와 인디애나가 양분하고 있었을 정도로 두 팀의 시리즈는 동부 최강팀들의 경기였던 셈. 디트로이트는 비록 1차전을 패했지만, 2차전과 3차전을 내리 잡았고 끝내 6차전에서 시리즈를 끝내며 동부 컨퍼런스 우승을 차지했다. 디트로이트는 1989-1990 시즌 이후 첫 파이널 진출했다.
디트로이트로서도 우승이 절실했다. 그러나 상대는 샤킬 오닐, 코비 브라이언트, 칼 말론, 게리 페이튼이 버티고 있는 LA 레이커스. 전문가들은 모두 레이커스의 손을 들었다. 브라운 감독은 지난 2000-2001 시즌에 필라델피아를 이끌고 파이널에 올랐지만 필 잭슨 감독(현 뉴욕 사장)이 이끄는 레이커스에 무참히 패한 바 있다(시리즈 스코어 4대 1). 그러나 전문가들의 예상과 달리 '명예의 전당 멤버가 모인' 레이커스를 잡아내며 자신의 첫 우승에 입맞춤했다.
빌럽스는 파이널에서의 활약으로 말미암아 '파이널 MVP'에 선정되는 기쁨까지 누렸다. 시리즈 5경기에서 평균 38.4분을 뛴 빌럽스는 21점 3.2리바운드 5.2어시스트를 기록했다. 특히나 3차전부터 필드골 성공률을 끌어올리면서 효과적으로 레이커스의 림을 공략했다. 당시 레이커스의 주전 포인트가드였던 게리 페이튼에게도 전혀 밀리지 않았다. 필요할 때마다 득점을 올려주면서 90년 이후 디트로이트에 첫 우승을 선사했다. 빌럽스도 감격에 찬 첫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이어진 2004-2005 시즌에도 디트로이트는 동부 컨퍼런스 우승을 차지하며 파이널에 진출했다. 빌럽스는 변함없는 기량을 과시하며 80경기에 나서 평균 16.5점 3.4리바운드 5.8어시스트를 기록했다. 이미 우승을 차지했던 멤버가 고스란히 남아 있었기 때문에 2연패를 위한 시동은 충분했다. 플레이오프에서는 필라델피아, 인디애나, 마이애미 히트를 차례로 상대했다. 마이애미는 샤킬 오닐이 합류하면서 우승권 전력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오닐과 드웨인 웨이드를 내세운 마이애미는 디트로이트를 위협했다. 하지만 웨이드가 부상으로 7차전에 최종 결장하게 되면서, 최종 승자는 디트로이트였다. 디트로이트는 2시즌 연속 동부를 제패하며 파이널에 진출했다.
파이널에서의 상대는 팀 던컨의 샌안토니오. 전문가들이 회자하는 '가장 멋진 파이널'에 이름을 올릴 정도로 수비전술에 근간을 두고 있는 양팀의 시리즈는 그야말로 불꽃 튀는 경기들이 줄을 이었다. 빌럽스는 시리즈 7경기 평균 20.4점 5리바운드 6.3어시스트를 보탰지만, 아쉽게도 7차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디트로이트는 샌안토니오에 패했다. 5차전에서 단 1점차로 패한 것이 아쉬웠다. 디트로이트가 안방에서 열린 5차전을 잡아냈자면, 충분히 우승을 차지할 수도 있었을 터. 하지만 디트로이트는 5차전을 넘어서지 못했고, 7차전에서 7점차로 석패했다.
이후에도 빌럽스가 이끄는 디트로이트의 전성기는 계속됐다. 빌럽스는 2005-2006 시즌부터 올스타에 이름을 올리면서 동부를 대표하는 가드로 발돋움했다. 디트로이트도 작은 변화를 맞이했다. 브라운 감독이 지휘봉을 내려놓으면서, 플립 선더스(현 미네소타 감독)이 새로운 사령탑으로 부임했다. 브라운의 수비전술에 선더스의 공격전술이 더해지면서 디트로이트는 더욱 더 강한 면모를 드러냈다. 주축들이 오랫동안 손발을 맞춘 것은 디트로이트만의 빼 놓을 수 없는 특장점이었다. 디트로이트는 무려 64승 18패를 기록, 프랜차이즈 역사상 가장 좋은 정규시즌을 치렀다.
디트로이트는 지난 2002-2003 시즌부터 2007-2008 시즌까지 동부 컨퍼런스 파이널에 오르며 전성기를 유지했다. 2006년 마이애미를 맞아 컨퍼런스 파이널에서 패했고, 2007년에는 르브론 제임스의 클리블랜드에 덜미를 잡히며 주저앉았다. 2008년에는 '극강의 BIG3'가 있는 보스턴에 아깝게 패하면서 우승 문턱에서 번번이 좌절해야 했다. 지난 2006년, 빌럽스는 디트로이트와 계약기간 5년에 6,000만 달러(마지막 해 팀옵션)의 계약을 체결했다. 빌럽스는 디트로이트와 더 큰 장기계약을 맺으면서 영원한 디트로이트맨으로 남을 것처럼 보였다.
디트로이트와의 작별을 고하고
2008-2009 시즌, 디트로이트는 여전히 변치 않은 멤버로 또 다른 시즌을 기다리고 있었다. 빌럽스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조 듀마스 단장은 변화의 길을 모색하고 있었다. 그 결과, 2경기를 치른 뒤 덴버 너기츠의 앨런 아이버슨을 데려오는 조건으로 빌럽스를 트레이드시켰다. 디트로이트는 아이버슨을 데려오는 조건으로 빌럽스와 안토니오 맥다이스와 세네갈 센터 칙 삼을 보냈다. 빌럽스는 그렇게 정들었던 디트로이트와 작별을 고했다.
그러나 덴버는 자신의 고향이자 NBA 데뷔한 후, 초창기에 뛰었던 팀이다. 그 때의 빌럽스와는 달랐다. 빌럽스는 카멜로 앤써니와 함께 팀의 중추로 자리매김했다. 빌럽스는 덴버에서 평균 18.2점 3리바운드 6.5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앤써니와 함께 덴버를 플레이오프로 견인했다. 컨퍼런스를 바꿨음에도 올스타에 이름도 올렸다. 덴버의 팬들 또한 올스타가 되어 돌아온 빌럽스에게 박수갈채를 아끼지 않았다.
빌럽스 영입 효과는 곧바로 드러났다. 덴버는 공격의 짜임새를 더하면서 좀 더 안정된 팀으로 자리를 잡아나갔다. 빌럽스는 아이버슨만큼 폭발적인 득점력을 갖추고 있진 않았지만, 안정적인 경기운영을 펼치면서 앤써니의 공격을 도왔다. 안정된 포인트가드가 들어오면서 덴버의 전력은 좀 더 짜임새를 갖췄다. 이는 플레이오프에서 잘 드러났다. 1라운드에서 크리스 폴의 뉴올리언스 호네츠(현 펠리컨스)를 가볍게 제압한데 이어 덕 노비츠키가 이끄는 댈러스 매버릭스까지 잡아냈다. 특히 뉴올리언스와의 시리즈 첫 2경기에서는 각각 36점, 31점을 터트리며 폴을 한 수 지도했다. 댈러스와의 서부 컨퍼런스 세미파이널 3차전에서도 32점을 기록하며 팀에게 1점차 짜릿한 승리를 선사했다. 이날 승리로 덴버는 첫 3경기를 모두 승리했고, 댈러스의 예기를 꺾으면서 컨퍼런스 파이널에 올랐다.
이는 덴버의 무려 24년에 컨퍼런스 파이널 진출. 그 기쁨은 실로 남달랐을 터. 빌럽스도 고향팬들에게 멋진 선물을 안겼다. 빌럽스는 지난 2003년부터 2009년까지 무려 7시즌 연속 컨퍼런스 파이널 무대에 진출하는 기염을 토해냈다. 이를 달성한 선수는 매직 존슨, 마이클 쿠퍼, 카림 압둘자바, 커트 램비스, 빌 러셀이 전부. 빌럽스는 전설적인 선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누적된 피로도 결코 적잖았겠지만, 빌럽스는 꾸준한 경기력을 유지하며 팀을 옮기는 와중에도 제 몫을 다해냈다. 오히려 팀이 필요할 때 득점에 적극 가담하며 팀이 상위라운드로 가는데 있어서 가교 역할을 너무나도 잘 수행해냈다. 비록 3라운드에서는 (지난 2004 파이널 이후 오랜 만에 만난) 우승 후보인 LA 레이커스에게 6차전까지 치른 끝에 패하면서 아쉽게 탈락의 고배를 마셔야 했다.
2009-2010 시즌도 나쁘지 않았다. 빌럽스가 마지막 올스타에 뽑힌 시즌이기도 했지만, 이 시즌을 끝으로 '빌럽스=컨퍼런스 파이널 진출'이라는 공식이 깨지기 시작했다. 덴버는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 지구 라이벌은 유타 재즈와 진검승부를 벌였다. 당시 북서지구는 덴버와 유타가 양강 구도를 형성하고 있었다. 유타는 데런 윌리엄스, 안드레이 키릴렌코(이상 브루클린), 카를로스 부저(레이커스), 메멧 오쿠어 등 짜임새 있는 주전라인업을 내세운 팀. 키릴렌코가 시즌 중반 부상으로 낙마했지만, 유타의 전력은 결코 무시할 수 없었다. 하지만 빌럽스가 속한 덴버는 끝내 유타에 패했다. 1차전을 잡은 이후 내리 3연패하며 탈락 위기에 놓였다. 6차전에서 양팀 최다인 30점을 퍼부었지만, 정작 앤써니가 야투 난조에 시달리면서 8점차로 아쉽게 무릎을 꿇었다.
그래서였을까, 빌럽스는 2010-2011 시즌에 또 다시 트레이드되기에 이른다. 당시 화두는 'Melo Drama' 앤써니의 거취 여부였다. 당시 덴버는 계약기간이 2년(1년은 선수옵션) 남은 앤써니를 트레이드하기로 결심했다. 앤써니가 덴버에 남을 의사를 전혀 피력하지 않자 덴버는 시즌 초반부터 앤써니를 트레이드블락에 올렸다. 앤써니의 트레이드 루머는 시즌 내내 줄을 이었을 정도. 가장 앞서 있는 팀은 뉴저지와 뉴욕 닉스였다. 덴버는 이를 잘 활용하며, 상대로 하여금 다수의 카드를 꺼내게 만들었다. 그리고 끝내 뉴욕과의 트레이드에 합의했다. 이 때 빌럽스도 앤써니와 함께 팀을 옮기게 된다. 빌럽스는 'Melo Drama'에 연루되어 아마레 스타더마이어가 있는 뉴욕에 새둥지를 틀게 된다. 빌럽스는 "어려운 일이다"며 소회를 밝힌 후 "내 딸아이에게 트레이드됐음을 이야기해야 하는데 행복한 순간은 아니다"라며 딱 잘라 말했다.
# 다시 보는 'Melo Drama' 앤써니 트레이드
뉴욕
in 카멜로 앤써니, 천시 빌럽스, 레날도 벌크만, 앤써니, 카터, 쉘든 윌리엄스, 코리 브루어
out 윌슨 챈들러, 다닐로 갈리니라, 레이먼드 펠튼, 티모피 모즈고프, 현금, 드래프트 티켓 3장
덴버
in 윌슨 챈들러, 다닐로 갈리니라, 레이먼드 펠튼, 티모피 모즈고프, 코스타 쿠포스, 현금, 드래프트 티켓 3장*
out 카멜로 앤써니, 천시 빌럽스, 레날도 벌크만, 앤써니, 카터, 쉘든 윌리엄스, 드래프트 티켓
미네소타
in 드래프트 티켓*
out 코스타 쿠포스, 코리 브루어
* 덴버 to 미네소타 지명권 - 2015 2라운드 지명권 / 뉴욕 to 덴버 지명권 - 2012 2라운드(퀸시 밀러 지명), 2013 2라운드(로메로 오스비 지명), 2014 1라운드(덕 맥더밋 지명 후 시카고의 유수프 누르키치와 트레이드)
빌럽스는 뉴욕에서 앤써니, 스타더마이어와 함께 새로운 트리오를 구성했다. 당시 마이애미 히트가 르브론 제임스, 드웨인 웨이드, 크리스 보쉬와 함께하는 첫 시즌인 만큼 뉴욕도 나름의 BIG3를 꾸려 플레이오프 진출에 대한 열망을 드러냈다. 빌럽스는 빅애플의 유니폼을 입고 21경기를 뛰며 평균 17.5점 3.1리바운드 5.5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앤써니와 스타더마이어와 함께 팀을 지탱했다. 오르내림이 있는 등 결코 녹록치 않은 시즌이었지만, 뉴욕은 끝내 42승 40패를 기록하며 동부에서 6번시드를 받았다. 이는 지난 2003-2004 시즌 이후 7시즌만의 플레이오프 진출이었다.
빌럽스는 덴버를 상위라운드에 올려놓은데 이어 뉴욕마저 길고 길었던 플레이오프 가뭄을 해갈하는데 주춧돌과 같은 역할을 해냈다. 무엇보다 빌럽스는 지난 2004년부터 2011년까지 꾸준히 플레이오프의 코트를 밟으며 '플레이오프 보증수표'다운 모습을 선보였다. 하지만 빌럽스에게 뜻하지 않은 악재가 닥쳤으니 바로 부상이었다. 빌럽스는 보스턴 셀틱스와의 1라운드 1차전에서 무릎을 크게 다쳤고, 끝내 남은 플레이오프를 소화하지 못했다. 그렇게 시즌이 끝났고, 빌럽스는 뉴욕에서 뛰고 싶은 마음을 드러냈다. "트레이드된 후에 30경기를 채 뛰진 않았지만, 이 선수들과 뛸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돼서 너무 좋았다"라며 입을 연 빌럽스는 뉴욕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않았다.
하지만 빌럽스는 끝내 뉴욕의 유니폼을 입지 못했다. 뉴욕은 2011년 직장폐쇄로 말미암아 새로이 시작된 사치세 규정(징벌적 사치세 + 누진적 사치세)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결국, 뉴욕은 2011년 이후 새로이 발효된 CBA에 의거, 1번 사용할 수 있는 사면방출을 빌럽스에게 사용했다. 빌럽스는 2011-2012 시즌에 1,200만 달러를 받도록 되어 있었다. 뉴욕은 타이슨 챈들러를 영입하면서 골밑보강을 택했다. 빌럽스와 함께 했다면 더욱 좋았을 수도 있겠지만, 뉴욕의 샐러리캡은 이미 과포화상태였고, 끝내 빌럽스와의 작별을 고했다.
이미 여러 번 트레이드를 겪었기에 트레이드는 빌럽스에게 아무 상처가 되지 않았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방출은 달랐다. 빌럽스는 말년에 방출을 당하면서 새로운 팀을 찾아야 하는 처지로 전락했다. 이 와중에 가장 적극적으로 다가온 팀은 바로 LA 클리퍼스였다. 클리퍼스는 빌럽스를 웨이버 클레임으로 영입했고, 이어 폴을 트레이드로 합류시켰다. 빌럽스는 기쁨을 숨기지 않았다. 폴의 합류로 포지션을 바꿔야 했지만 크게 개의치 않았다. 하지만 무릎부상의 여파가 있었을까, 빌럽스는 클리퍼스에서 이렇다 할 존재감을 남기지 못했다. 시즌 첫 11경기에서 모두 두 자리 수 득점을 올리기도 하는 등 첫 20경기에서 폴과 함께 클리퍼스의 백코트를 잘 이끌었다. 그러나 이후 부상으로 남은 시즌을 통째로 날렸고, 다시 1년 계약을 맺은 2012-2013 시즌에도 22경기를 소화하는데 그쳤다. 평균 득점도 15점에서 8.4점으로 급전직하했다.
결국 부상으로 얼룩진 빌럽스는 클리퍼스와 더 이상 함께할 수 없었다. 계약도 끝이 났다. 빌럽스는 실망감을 감추지 않았다 "더 이상 가치 있다고 여겨지지 않는다"고 입을 열며 "솔직히 실망스럽다"며 자신의 심경을 전했다. 결국 지난 2013년 7월 17일, 빌럽스는 자신의 전성기를 보낸 친정인 디트로이트와 계약에 성공했다. 디트로이트는 빌럽스와 계약기간 2년(2년째 팀옵션)에 500만 달러로 빌럽스를 영입했다. 디트로이트는 브랜든 제닝스와 조쉬 스미스를 데려오면서 변화를 모색했고, 빌럽스가 베테랑으로서 팀원들을 잘 이끌어주길 바랐다. 하지만 빌럽스는 지난 1999-2000 시즌 이후 가장 적은 경기에 나섰으며, 득점, 출전시간, 스틸, 필드골 성공률과 3점슛 성공률에서 모두 생애최저의 기록으로 시즌을 마감했다. 디트로이트는 29승 53패를 기록했고, 빌럽스는 플레이오프에 나설 수 없었다.
이번 여름 디트로이트는 빌럽스와의 팀옵션을 사용하지 않았다. 디트로이트는 스탠 밴 건디를 새로운 사령탑에 앉힘과 동시 사장으로 임명했다. 디트로이트의 경영진에서는 빌럽스를 택하기 보다는 젊은 선수들에게 좀 더 많은 기회를 부여하길 원했던 것으로 보인다. 빌럽스는 제임스가 복귀한 클리블랜드로의 합류가 예상되기도 했지만, 단지 소문에 불과했다. 그리고 지난 9월 10일 빌럽스는 자신의 17년 NBA 커리어를 마감한다고 발표했다. 긴 시간을 돌아온 빌럽스의 농구선수로서의 인생이 마침표를 찍는 순간이었다.
사진 = NBA Mediacentr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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