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코 인사이드] 영화 ‘감동 캐롯’, 주연 ‘이정현’
- BAKO INSIDE / 손동환 기자 / 2023-06-01 05:55:55

1년 내내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선수들은 잡음에 휘말리지 않았다. 돈을 받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도 기대 이상의 성과를 냈다. 그래서 ‘감동 캐롯’이라는 영화가 탄생했다. 영화를 흥행시킨 주연은 ‘이정현’이었다.

이정현은 2021 KBL 국내신인선수 드래프트에서 전체 3순위로 고양 오리온에 입단했다. 그러나 오리온은 2021~2022시즌 종료 후 농구단 운영을 종료했다. 이정현은 졸지에 실업자로 전락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실업자 신세는 다행히 면했다. 오리온 프로농구단을 인수할 주체가 나왔기 때문. 데이원스포츠가 새로운 주인이 됐고, 이정현은 데이원스포츠의 일원이 됐다.
데이원스포츠는 ‘캐롯손해보험’으로부터 네이밍 스폰서를 유치했다. 새로운 구단 명칭도 네이밍 스폰서와 깊이 연관됐다. 새로운 구단의 이름은 고양 캐롯 점퍼스. 이정현은 캐롯의 선수로 프로 두 번째 시즌을 준비했다.
오리온이 프로농구단 운영을 종료했습니다.
저를 지명해준 구단이 한 시즌 만에 농구단 운영을 종료했습니다. 아쉽고 힘들었어요. 마음이 복잡하더라고요.
데이원스포츠가 농구단을 인수했습니다. 농구단 명칭은 고양 캐롯 점퍼스로 변경됐고요.
감독님과 코치님께서 새롭게 오셨고, (이)대성이형(대구 한국가스공사)과 (이)승현이형(전주 KCC)이 다른 팀으로 옮겼어요. 그리고 (전)성현이형이 저희 팀으로 왔고요. 프로 선수로서 비시즌을 처음 겪었기에, 그런 변화들이 더 새롭게 느껴졌어요.
프로농구단 창단식은 좀처럼 하기 힘든 경험입니다.
어떻게 창단식을 하는지 전혀 몰랐어요.(웃음) 막상 가보니, 규모가 정말 크더라고요.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기대만큼은 컸습니다. 새로운 구단에서 농구를 하는 거였으니까요.

캐롯은 김승기 감독을 초대 사령탑으로 영입했다. 김승기 감독은 2015년부터 7년 동안 안양 KGC인삼공사의 사령탑을 맡았던 인물. KGC인삼공사에 있는 7년 동안, 3번의 챔피언 결정전과 2번의 4강 플레이오프를 주도했다.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한 적은 한 번(2018~2019)밖에 없다.(2019~2020시즌은 코로나19로 조기 종료됐다) 성적을 낼 줄 아는 감독이다.
또, 김승기 감독은 젊은 선수들을 잘 육성하는 지도자다. 변준형과 문성곤(이상 안양 KGC인삼공사), 전성현(고양 캐롯)이 김승기 감독의 밑에서 최고의 선수로 성장했다. 특히, 변준형은 김승기 감독의 지도 하에 리그를 대표하는 포인트가드로 성장했다.
그런 김승기 감독이 “이정현을 키우겠다”고 공언했다. 이정현을 팀의 미래이자 현재로 생각한 것. 그래서 이정현에게 혹독한 지도를 예고했다. 이정현은 김승기 감독 밑에서 쉽지 않은 과정을 거쳤다.
김승기 감독님께서 새롭게 부임했습니다.
주변에서는 걱정을 많이 하셨어요.(웃음) 그렇지만 저는 오히려 기대를 많이 했습니다. 김승기 감독님께서는 안양에서 좋은 성적을 내셨고, 어린 선수들을 많이 키워내셨거든요. 저 개인적으로는 재미도 클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직접 겪어보니, 어떻던가요?
정말 많이 혼났지만,(웃음) 정말 많이 배웠어요. 물론, 서로를 받아들이지 못했던 때도 있었습니다. 저도 제 플레이만 고집했고, 감독님께서도 추구하는 방향을 강하게 말씀하셨거든요.
어떤 게 제일 어려웠나요?
제 농구 인생 처음으로 포인트가드를 맡았어요. 어렸을 때부터 원했던 포지션이었지만, 제가 원하는 포지션이라 기대를 했습니다. 하지만 많이 부족하더라고요. 시행착오도 많이 했고요.
구체적인 예가 있을까요?
키가 큰 선수가 저의 앞에 있을 때, 감독님께서는 “수비수의 타이밍을 빼앗거나, 멈춰서 외곽 찬스를 봐라. 아니면 몸을 붙여서 파울을 얻어”라고 하셨어요. 머리로는 알지만, 몸이 순간적으로 반응하지 못했어요.
어려웠던 이유는 기존의 습관 때문이겠죠?
맞습니다. 저는 수비를 달고 뜨는 걸 워낙 좋아해요. 그게 안 됐을 때, 점프 패스를 많이 했어요. 과감하다고 볼 수도 있지만, 위험한 플레이기도 해요. ‘포인트가드는 턴오버를 적게 해야 한다. 안정적으로 운영해야 한다’는 걸 아는데도, 그런 동작들이 쉽게 안 나오더라고요.(웃음) 그래서 시간이 오래 걸린 것 같아요.
감독님께서 칭찬을 해주신 적은 없었나요?
비시즌 때는 없었던 것 같아요. 해야 할 것도 많고, 적응해야 할 것도 많았거든요. 또, 감독님께서는 시즌 중에도 칭찬을 잘 안 하셨어요. 칭찬받은 직후의 경기를 시원하게 말아먹었거든요.(웃음) 그래서 그때 이후로 칭찬을 못 받은 것 같아요.

이정현의 2022년 여름이 더 어려웠던 이유. 위에서 간단히 이야기했듯, 포지션을 바꿨기 때문이다. 공격형 가드가 대세라고는 하나, 포인트가드와 슈팅가드는 엄연히 다르다. 동선과 타이밍도 다르다. 팀의 스타일 그리고 사령탑의 스타일에 따라, 차이가 더 클 수 있다.
오랜 시간 다져진 습관도 바꿔야 한다. 특히, 몸으로 다져온 습관은 금방 바뀌지 않는다. 그래서 변화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정현은 변화에 적응해야 했다. 변화가 궁극적인 답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프로 데뷔 전에 포인트가드를 해본 적이 있나요?
아예 없지는 않았어요. 조금씩은 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프로에서는 1번을 맡고 싶다’는 욕심도 컸어요. 그렇지만 포인트가드를 할 때마다, 알게 모르게 답답함을 느꼈어요. ‘포인트가드는 나한테 맞지 않는 옷’이라는 생각도 들었거든요. 그래서 포인트가드를 처음 맡았을 때, 걱정을 많이 했어요.
프로에서의 포인트가드는 조금 다를 것 같습니다. 김승기 감독님의 주문사항도 더 세밀했을 것 같고요.
감독님께서는 위험한 플레이를 적게 하되, 과감한 플레이를 원하셨어요.(웃음) 또, 저는 로슨과 (전)성현이형을 보면서, 제 공격을 봐야 했어요. 감독님께서 여러 상황을 알려주셨지만, 개인적으로는 어려움이 컸습니다.
가장 어려웠던 건 어떤 거였나요?
저희가 앞서다가 상대의 추격을 받을 때가 있잖아요. 그렇게 되면, 경기 분위기가 상대한테 넘어가요. 그럴 때 부담이 많았고, 그런 경기를 놓친 적도 있었습니다.
KGC인삼공사전이 생각이 납니다.
(캐롯은 2022년 12월 27일 KGC인삼공사를 잡을 뻔했다. 그러나 마지막 1분을 지키지 못했다. 82-84로 역전패했다. 이정현의 자유투 실패와 수비 실수가 결정적인 패인이었다)
마지막에 실수를 너무 많이 했어요. 자유투도 놓치고, 제 앞에서 이뤄진 실점도 많았어요. 그렇지만 그렇게 질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어요. 어떻게 말씀드려야 할지 모를 정도로, 멘붕이 강하게 왔어요.(웃음)
포인트가드를 하는 동안, 희망을 본 것도 있었나요?
(전)성현이형이 뛰지 못할 때, 제가 2번을 본 적이 있어요. 그런데 2번이 오히려 불편하더라고요.(웃음) 시즌 내내 1번을 하다 보니, 1번에 적응을 한 것 같아요. 1번이 편하게 느껴졌다는 생각에, 내심 뿌듯하기도 했어요.(웃음)

이정현이 연세대 시절부터 높은 평가를 받았던 이유. 각종 대학대회의 결승전에 강했고, 고려대학교와 정기전에서 더 뛰어난 퍼포먼스를 선보였기 때문이다. 2021~2022시즌 4강 플레이오프에서도 김선형을 상대로 뛰어난 경기력을 보여준 바 있다.
이정현은 2022~2023시즌 정규리그를 통해 한층 성장했다. 이번 6강 플레이오프에서 독보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줬다. 5경기 평균 36분 46초 동안 24.0점 2.8리바운드 2.8어시스트로 맹활약했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캐롯의 4강 플레이오프를 이끌었다.
4강 플레이오프에서도 믿기 힘든 공격력을 뽐냈다. 특히, 2차전에서 37분 31초 동안 32점 5스틸 2리바운드 2어시스트로 벽 같았던 안양 KGC인삼공사를 무너뜨렸다. 비록 캐롯은 1승 3패로 챔피언 결정전에 나서지 못했지만, 플레이오프는 이정현 같은 대어를 담아야 하는 무대임이 증명됐다.
6강 플레이오프를 한 번 돌아봐주세요.
저희가 안 될 거라는 예상이 강했어요. 그렇지만 포기를 못하겠더라고요. 너무 이기고 싶었어요. 그리고 이겨서 너무 좋았어요. 물론, 아쉬움도 있었지만요.
어떤 게 아쉬우셨나요?
1번으로 나서기는 했지만, 경기 운영을 포기했습니다. 성현이형이 빠져서, 제가 공격을 많이 해야 했거든요. 제가 득점하지 못하면 팀이 힘든 상황이라, 공격에만 치중했던 것 같아요.
감독님께서도 공격을 많이 주문하셨습니다. 그래서 다른 선수들이 저 대신 볼 운반을 해줬고, 저는 저로 인한 찬스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상대와 대등한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그렇게 했던 것 같아요.
6강 플레이오프를 5경기나 치렀습니다. 하지만 4강 플레이오프에서도 믿기 힘든 퍼포먼스를 보여줬는데요.
저도 그랬지만, 선수들 모두 많이 아팠습니다. 힘들어하는 것도 보였어요. 그러면서도 볼 하나에 몸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이기기 위해 끝까지 뛰었어요. 그래서 저희 팀이 너무 멋졌고, 저 또한 저희 팀원들에게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더욱 끝까지 했던 것 같아요.
플레이오프 같은 큰 경기가 이정현 선수의 피를 더 끓게 하나요?
당연하죠.(웃음) 플레이오프는 정규리그와 다른 분위기여서 그런지, 전투력이나 투지가 조금 더 올라가는 것 같아요.

캐롯은 2022~2023시즌 KBL의 새로운 식구가 됐다. 그러나 2022~2023시즌 내내 잡음을 일으켰다. 가장 큰 건 돈 문제. 선수단 임금이 지급되지 못할 정도로, 캐롯의 재정은 열악했다. 네이밍 스폰서를 자처했던 캐롯이 지원을 끊었고, 모기업인 대우조선해양건설도 법정 관리에 들어갔다.
그래서 데이원스포츠는 3월 말부터 캐롯이라는 이름을 쓸 수 없었다.(다만, KBL 이사회의 승인이 없어, 데이원스포츠는 2022~2023시즌 종료 시점까지 고양 캐롯 점퍼스로 활동했다) 창단 1년도 지나지 않아 새로운 운영 주체를 찾고 있다. 캐롯 농구단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이정현 역시 또 한 번 기로에 섰다. 최악의 경우에는 실업자가 될 수 있다.
캐롯과 이정현의 미래는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러나 ‘선수 이정현’의 미래는 그렇게 암울하지 않다. 오히려 아름다울 수 있다. 더 높은 클래스의 선수로 거듭날 있는 가능성을, 리그를 지배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4강 플레이오프 마지막 경기가 완패(61-89)로 끝이 났습니다. 그렇지만 팬 분들은 선수들의 곁을 마지막까지 지켜줬어요.
작년에는 그런 걸 느끼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뭔가 달랐습니다. 끝났다는 생각이 들었고, 눈물도 났습니다. 또, 팬들이 계셨기에, 저희가 끝까지 할 수 있었습니다. 팬 분들에게는 감사하다는 말씀과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데이원스포츠가 좋은 주인을 찾겠죠?
그럴 겁니다.(웃음)
어쨌든 ‘선수 이정현’은 미래를 준비해야 합니다.
앞서 말씀 드렸듯이, 1년 내내 1번을 소화한 건 처음입니다. 팀을 이기게 하는 방향이 무엇인지 공부했고, 제가 부족했던 점들도 많이 떠올랐습니다. 특히, 시즌 후반으로 갈수록 제 야투 성공률이 떨어진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그런 점을 유지할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그런 기복을 줄인다면, 더 좋은 가드로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승기 감독님께서는 이번 비시즌 때 어떤 걸 알려주실까요?
2022~2023시즌이 이제 막 끝났습니다. 그래서 잘 모르겠어요.(웃음) 하지만 감독님께서 미드-레인지를 강조할 거라는 기사를 봤습니다.
또, 저의 강점은 미드-레인지와 3점슛, 페인트 존 득점 모두 가능하다는 겁니다. 그렇지만 완성도가 떨어져요. 감독님께서도 저를 더 완성시키는데 초점을 둘 것 같습니다.
1년 후의 이정현은 어떤 선수가 되면 좋을까요?
이번 시즌을 하는 동안, 자신감을 많이 얻었습니다. ‘내가 원했던 것들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입니다. 그리고 저의 방향성을 생각해봤습니다. ‘더 좋은 포인트가드’ 혹은 ‘더 좋은 플레이 메이커’가 저의 방향이 될 것 같습니다.

사진 제공 = KB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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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동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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