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코 인사이드] 김용국 kt 통역을 만든 2가지 키워드, ‘후회 없는 포기, 끝없는 도전’

BAKO INSIDE / 손동환 기자 / 2021-03-12 14:54:49

본 기사는 바스켓코리아 웹진 2021년 2월호에 게재됐습니다.(바스켓코리아 웹진 구매 링크)

미련 없는 인생은 찾기 어렵다. 후회 없는 인생도 그렇다. 하고 싶었던 일을 쿨하게 끝냈다고 생각해도, 문득 ‘그 때는 이렇게 했어야 했는데...’라는 미련 혹은 후회의 감정을 갖게 된다.
야구 선수를 꿈꿨던 김용국 kt 통역(이하 김용국 통역)도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 ‘미련’이나 ‘후회’는 찾기 힘든 단어였다.
김용국 통역은 자기 인생에서 ‘미련’이나 ‘후회’를 최소화했다. 그리고 ‘도전’이라는 단어에 집중했다. 과거가 아닌 ‘현재’와 ‘미래’를 위해 달릴 수 있는 이유였다.

부산 kt 농구단 통역인 김용국 통역에게는 범상치 않은 과거가 있다.(사진 = 부산 kt 농구단 제공)


‘kt 농구단 통역’에게는 범상치 않은 과거가 있다?

누구에게나 사연은 있다. 그 사연으로 인해 생기는 임팩트도 다르다. 다양한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는 게 다양한 경험으로 다가오는 이유다.
김용국 통역도 마찬가지다. 그의 과거(?)는 남다르다. 꽤나 재미있었고, 꽤나 감동적이었다. 남들과 다른 과거를 지녔기에, 남들과 다른 현재를 산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 시절 야구 선수를 했다고 들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축구나 야구 등 모든 운동을 좋아했어요. 제가 다니던 영일초등학교에 야구부가 있었는데, 친구인 홍상삼(인터뷰 시기 기준 : 기아 타이거즈 소속)이 2학년 때부터 야구를 했어요. (홍)상삼이가 유니폼 입은 모습이 멋져보였고, 저도 야구를 해보자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초등학교 3학년 때 야구를 시작하게 됐고, 대학교 1학년 때까지 야구를 했죠.
일본에서도 야구를 하셨더라고요. 정말 색다른 이력인 것 같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중학교 2학년 때까지 연령대별 대표팀에 들었어요. 해외 대회에도 나갔는데, 일본 대표팀 감독님께서 저를 좋게 봐주셨어요.
그러다가 그 분께서 오카야마현 쿄우세이고등학교(Okayama Prefectural Kyosei High School)의 야구부 감독님으로 부임하셨어요. 그 학교가 마침 외국학생 특성화 프로그램이 있었고, 저를 눈여겨보셨던 감독님께서 그 프로그램을 통해 저를 스카우트하셨어요.
감독님께서 장학금과 생활비도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셨어요. 감독님 덕분에, 저는 2년 반 정도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었어요. 야구가 나라마다 다를 수도 있구나라는 생각을 했고, 일본만의 야구 문화와 일본만의 코칭 스타일을 접할 수 있었어요. 정말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이유가 있으셨을 것 같은데요.
삼성 라이온즈의 스카우트 부장님께서 저를 보시려고 저희 학교를 많이 오셨어요. 저를 보고 한국에 들어오라고 권유해주셨죠. 부장님께서 ‘2차 지명에서 하위권으로라도 너를 지명을 하겠다. 그런데 너가 프로를 진출하려면, 연고가 있어야 한다. 한국에 들어와서 기록을 남기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해서, 저는 서울에 있는 중앙고등학교로 전학을 했죠.
그런데 제가 한국으로 들어오자마자 다쳤어요. 연습 경기를 하다가 왼쪽 손목에 볼을 맞았죠. 미세 골절이라고 하더라고요. 드래프트가 6~7개월 밖에 안 남았는데, 그렇게 됐죠. 프로는 생각도 할 수 없었어요. 대신 동국대학교로 진학했고요.

김용국 통역은 평생 해온 야구를 부상으로 그만둬야 했다.(사진 = 김용국 통역 제공)


‘시련’ 그리고 ‘시련 속에 얻은 것’

‘시련은 극복할 수 있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농구만화 ‘REAL’의 대사 중 하나다.
프로야구선수를 꿈꿨던 김용국 통역은 ‘부상’이라는 시련과 마주했다. 시련 앞에 야구선수를 그만둬야 했다. 좌절도 많이 했고, 눈물도 많이 흘렸다.
하지만 시련 속에 얻은 것도 있었다. 아니, 많았다. 그 경험이 있었기에, 새로운 인생을 살 수 있었다. 야구 선수로서 얻은 경험을 소중히 여겼던 이유다.

야구를 그만뒀을 때, 누구보다 마음이 아팠을 것 같습니다.
동국대학교에 진학하고 나서, 어깨 부상을 당했어요. 수술을 했죠. 그런데 재활이 잘 안 됐어요. 조급했거든요. 다른 선수들이 제 포지션(유격수)에 많이 있었고, 저는 경쟁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쫓겼어요.
그래서 빨리 복귀했어요. 그렇지만 다시 아팠죠. 또, 원래 허리 디스크가 있었는데, 허리 통증이 다시 올라왔어요. 이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학교 내에 있는 선수들과도 경쟁이 안 됐으니까요. 결국 그만두기로 결심했죠.
마지막 날이 됐어요. 연습하는데 하나도 안 아프더라고요.(웃음) 연습하고 나서, 라커룸에서 모든 짐을 싸는데 엄청 울었어요. 같이 계시던 선배님들과 친구들도 많이 울었어요. 정말 슬펐어요. 그렇게 운 적이 있나 싶을 정도로 정말 많이 울었어요. 아무래도 평생 해왔던 걸 그만둬서...
또, 제가 야구를 그만둘 때, 아버지께서 처음으로 저한테 ‘고생했다’는 말씀을 해주셨어요. 저희 아버지가 제 경기를 보면서 한 번도 칭찬해주신 적이 없으셨는데... 그래서 더 울음이 터진 것 같아요.
평생 해온 걸 그만두는 건 슬픈 일입니다. 하지만 야구를 하면서 얻은 게 많을 것 같습니다.
전부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근성과 인내심, 사회 관계 등을 배웠죠. 그 중에서도 근성을 특히 배운 것 같아요. 중학교 때부터 몇 년 동안 하루에 ‘새벽 운동-오전 운동-오후 운동-야간 운동’의 일정을 모두 소화했으니까요. 그렇게 몸에 밴 근성이 미국에서 공부를 하는데 큰 도움이 된 것 같아요.
일본에서 운동을 하는 것도 아무나 하는 경험이 아닙니다. 그것 역시 큰 자산이 됐을 것 같은데요.
정말 아무 것도 모르고 갔어요. 히라가나도 몰랐죠. 인사말 정도만 알고 간 것 같아요. 말 그대로 부딪히면서 일본어를 배웠어요. 먹고 살아야 되고 야구를 해야 됐으니까요. 그야말로 생존 본능 때문에 일본어와 부딪힌 거죠.
제가 일본어를 처음 공부할 때, ‘눈의 꽃’이라는 노래를 엄청 들었어요. 그게 원래 일본 노래거든요.(일본어 제목 : 유키노 하나) 그 노래를 듣고, 한글로 받아적었어요. 제가 받아적은 한글을 보고, 일본어로 옮겨봤어요. 옮겨본 일본어를 친구들한테 봐달라고 했고, 수정해달라고 부탁했어요.
그렇게 하기 위해 ‘유키노 하나(눈의 꽃)’를 수백번 넘게 들은 것 같아요. 그런 방식으로 수십개의 일본 노래를 공부했어요. 그러다 보니, ‘일본어가 이런 느낌이구나’를 알게 됐죠. 일본어와 한국어가 점점 매치가 되기도 했고요.

영어 문외한이었던 김용국 통역은 스포츠마케팅을 공부하겠다는 일념으로 미국 유학을 선택했다.(사진 = 김용국 통역 제공)


영어 문외한, 미국으로 향하다
야구를 그만둔 김용국 통역은 차디찬 현실과 마주했다. 우선 병역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공부도 시작해야 했다.
남들보다 늦은 시기에 시작한 공부. 그렇기 때문에, 더욱 열정적이었다. 야구를 할 때처럼 시간과 열정을 아끼지 않았다. 그 속에서 또 다른 자산을 적립했다. 제2의 인생은 그렇게 시작됐다.

모든 운동 선수들이 그렇겠지만, 김용국 통역도 운동을 그만 두고 막연함과 막막함을 느꼈을 것 같습니다.
야구를 그만두고 군대를 갔어요. 군대에 가면, 동기 부여할 수 있는 뭔가가 생길 거라고 생각했죠. 사실 아버지께서는 저에게 선생님을 하라고 하셨어요.(김용국 통역의 동국대 시절 전공은 체육교육학과였다) 하지만 그게 제 길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그렇지만 저한테 붙은 스티커를 없애고 싶었어요. ‘프로 진출에 실패한 낙오자’라는 스티커였죠. 무언가에 도전하고 싶었는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는 잘 몰랐던 것 같아요.
영어 공부도 그렇게 시작한 거라고 볼 수 있겠군요.
친구 소개로 ‘워킹 홀리데이’라는 걸 알게 됐어요. 그걸 알고서는 호주를 갔죠. 호주에 있는 영어 학원에서 영어 공부를 하는 게 재미있더라고요.(웃음) 모르는 걸 배우니 재미있었고, 열심히 할 수 있었어요. 공부를 하면서 좋은 사람들도 만날 수 있었고, 그 분들이 여러 가지 삶의 방향을 제시해줬어요.
영어 공부를 하고 여러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1년을 보냈어요. 그러면서 저한테 새로운 꿈이 생겼죠. 스포츠인으로서 스포츠 산업에서 뭔가 해보겠다는 꿈이었어요.
그게 미국 유학을 결심한 이유였어요. 호주에서 돌아온 후, 미국에 있는 대학교를 가기 위해 1년 동안 토플을 공부했어요. 야구를 했던 것처럼 새벽-오전-오후-야간 이렇게 공부했어요. 잘 때까지 그냥 막 했어요.
23살인가 24살부터 공부를 한 거니, 처음에는 앉아있는 게 엄청 불편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효율적인 공부 방법을 모르니, 일단 시간 투자를 한 거죠. 돌이켜보면 무식한 방법이었어요.
그래서 어떻게 되셨나요?
저를 가르쳐주셨던 동국대 코치님한테 그런 이야기를 했더니, 야구 해설과 야구 분석일을 하시던 이종열 선배님(이종열 SBS스포츠 해설위원)을 소개시켜주셨어요.(동국대 코치와 이종열 위원을 친구 사이라고 이야기했다) 이종열 선배님께서 볼링그린주립대학교에 있는 교수님을 컨택해주셨고, 저는 시험을 통해 오하이오주에 있는 볼링그린주립대학교(Bowling Green State University)에 입학했어요. 그 곳에서 ‘스포츠 매니지먼트’ 프로그램을 공부했죠.
원하는 공부를 시작했군요.
맞습니다. 저는 그 곳에서 전반적인 스포츠 경영을 배웠습니다. 스포츠 안에서 이뤄지는 마케팅과 스포츠 간의 관계, 스포츠를 이용하는 마케팅 등 스포츠 산업의 전반적인 걸 배웠어요. 해당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에게 강의를 듣기도 했고요. 여러모로, 미국 유학이 저를 키워준 소중한 기간이었다고 생각해요.

농구는 잘 몰랐던 김용국 통역은 통역 초창기에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사진 = 박영태 기자)


야구만 알던 남자, 농구단에 발을 들이다

미국 유학을 했던 김용국 통역은 한국으로 들어왔다. 한국에서 스포츠 관련 업무를 배우고 싶었다. 이왕이면, 야구 관련 업무를 하고 싶었다.
그러나 김용국 통역이 발을 디딘 곳은 부산 kt 농구단의 통역. 자신이 해왔던 스포츠 그리고 자신이 해왔던 공부와는 전혀 다른 성격의 업무였다. 하지만 자신이 공부해온 것을 활용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kt 농구단의 통역을 맡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미국에서 운 좋게 취직을 했습니다. 새로 생긴 제조업 회사에 취직했는데, 저는 거기서 통역과 구매, 재고 관리 등을 했습니다. 돈도 많이 주고, 미국 영주권자 자격까지 얻었죠.
하지만 그게 제 길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제 꿈은 스포츠와 관련된 일을 하는 거였거든요. 결국 퇴사했고, 2018년 4월에 한국으로 들어왔어요. 스포츠 관련 취업 공고를 확인하다가, kt 농구단 통역 모집 공고롤 봤죠. 지원을 했고, 운 좋게 합격을 했어요.
야구 선수 출신이기에, 농구단 통역이 낯설어보입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농구를 엄청 좋아한 건 아니었어요. 단순히 스포츠와 관련된 일을 해보자는 차원에서 시작을 했죠. 새로운 걸 시작하는 것 자체가 좋았던 거죠.
하지만 지금은 달라요. kt 농구단 통역을 한 게 정말 잘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새로운 걸 경험하면서, 농구를 점점 좋아하게 됐어요. 농구가 정말 좋아졌어요.
통역을 맡기 전에는 농구를 접할 기회가 적었을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그게 농구단 통역 업무에는 좋지 않은 요소일 것 같은데요.
처음에는 감독님이나 코치님, 선수들의 말을 외국 선수에게 전달만 했어요. 외국 선수의 말을 있는 그대로 선수들에게 전달했고요. 그런데 말씀하신 대로, 제가 농구를 잘 몰랐잖아요. 제가 농구를 이해하지 못했는데, 코칭스태프와 국내 선수들, 외국 선수들의 의사소통을 해야 하는 게 힘들었어요.
예를 들어, 사람들끼리 똑같은 한국말을 해도, 제가 모르는 분야는 못 알아듣잖아요. 제가 그랬던 거죠. 저는 통역을 처음 했을 때, 농구 관련 내용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어요. 게다가 그걸 영어로 전달하려니 더 힘들었던 거죠.
농구도 공부를 많이 하셨겠군요.
일본어와 영어 공부할 때처럼 엄청 했어요.(웃음) 먼저 농구를 계속 봤어요. NBA를 보면서, 외국 선수들이 쓰는 농구 용어가 무엇인지를 알려고 했어요. 그리고 KBL을 보면서, 10개 구단의 패턴과 움직임, 선수들의 특성을 파악하려고 했죠.
특히, 저희 감독님께서 패턴을 통해 어떤 걸 원하시는지 파악하려고 했어요. 패턴의 1옵션과 2옵션이 어떤 건지, 패턴 내에서의 움직임이 어떻게 이뤄지는지를 꼼꼼히 체크했어요.
결국 감독님께서 말씀하시는 걸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감독님과 코치님께서 전략 회의를 하실 때, 저도 항상 들어갔어요. 받아적고 공부했죠. 그러면서 농구를 조금씩 이해할 수 있었어요.
그리고 이제는 3년차가 되다 보니, 감독님의 눈빛만 봐도 무엇을 원하는지 알게 됐어요. 감독님의 감정이 어떤지, 감독님이 원하는 움직임이 어떤 건지를 알게 된 거죠. 이제는 ‘감독님께서 지금 타이밍에 어떤 걸 이야기하실 거다’는 것까지 예상할 수 있게 됐어요.
실수도 많았을 것 같습니다. 실수와 관련된 에피소드가 있었을까요?
아마 통역 1년차 때였을 거에요. 2019년 1월 29일(vs. 삼성) 오후 6시까지 저스틴 덴트몬을 교체 등록해야 했는데, 서류 하나를 깜빡했다는 걸 알았어요. 그 때가 오후 5시 반이었는데, 큰일 났다고 생각했어요. 30분 밖에 없었으니까요.
서류를 급하게 받고 급하게 보내야 했어요. 먼저 전화를 붙잡았고, 팩스 보낼 곳을 찾아서 엄청 뛰어다녔어요. 선수 등록 5분 전(오후 5시 55분)에야 서류 제출을 겨우 했어요. 그 때가 한겨울이었는데, 식은 땀이...(웃음) 그 기억은 아직도 생생해요.
그리고 경기 중에 한 실수도 있었어요. 그 때도 아마 1년차였을 때일 거에요.(웃음) 감독님께서 타임 아웃 중 지시를 하시는데, 선수가 있어야 할 위치를 잘못 지시하셨어요. 그런데 저는 당시에 농구도 모르고 감독님 스타일도 몰라서, 감독님의 지시 사항을 그대로 전달했어요. 아니나 다를까, 선수들이 그 플레이에서 실수가 나왔어요.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아요. 감독님께서 잘못 지시하셔도, 제가 수정해서 이야기를 하거든요.(웃음)
농구단 통역을 하시면서, 농구 선수와 야구 선수의 차이를 느끼셨을 것 같습니다.
야구는 1경기를 4시간 동안 하고, 한 시즌에 144경기를 합니다. 그래서 힘들 거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농구만큼 체력적으로 힘든 운동은 아닌 것 같아요. 경기 안에서 힘든 건 농구만큼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또, 농구는 부상도 많잖아요. 그래서 농구 선수들이 고생을 많이 한다고 느꼈어요.
또, 개인적으로 느낀 건, 농구 선수들은 너무 친절하고 너무 젠틀한 것 같아요. 근면성실하기도 하고, 열정적인 것 같아요. 우리 팀 선수들을 보면서, 농구에 관한 이미지가 더욱 좋아진 것 같아요.
특히, (김)영환이형을 보면서 더 그렇게 느꼈어요. 영환이형께서 농구를 잘 하기도 하시지만, 농구를 잘 하는 사람과 농구를 못하는 사람을 대하는 게 똑같아요. 모두에게 일관적이고 친절하게 대해주세요. 훈련에 임하는 태도도 누구보다 성실하고, 팬 서비스에 충실한 것도 일관적인 것 같아요.

김용국 통역은 외국 선수를 돕는 게 자기를 돕는 거라고 생각했다.(사진 = 박영태 기자)


Help me, Help you
영화 ‘제리 맥과이어’의 주인공인 제리 맥과이어는 ‘Help me, help you’라는 대사를 남긴다. 직역을 하면, ‘나를 돕는 게 너를 돕는 거다’는 뜻이다.
어느 말이나 그렇듯, 말은 듣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해석된다. ‘Help me, help you’ 또한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김용국 통역이 ‘Help me, help you’를 받아들이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의 위치에서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해당 문구를 해석했다. 김용국 통역은 이 문구를 어떻게 해석했을까?

기억에 남는 외국 선수가 혹시 있을까요?
브랜든 브라운이요. 지금 함께 해서 그런 게 아니고(웃음), 브라운과 저는 선수와 스태프 이상의 관계에요. 친구 혹은 형제 같은 관계에요.
보통 외국 선수들은 비즈니스적으로 이야기하고, 본인들을 위해 이야기해요. 하지만 브라운은 다른 것 같아요. 정이 많고, 제가 갖고 있는 고민에 많은 조언을 해줘요.
무엇보다 다른 사람을 배려할 줄 알아요. 예를 들어, 저에게 사소한 것 하나를 부탁할 때도, ‘고맙다’ 혹은 ‘미안하다’는 말을 먼저 해요. 다른 선수들 같으면 ‘이것 좀 갖다줘’라고 할 걸, 브라운은 ‘미안한데 이것 좀 갖다줄래?’라고 표현해요. 결국은 똑같은 의미라고 하지만, 듣는 사람은 다르게 받아들이는 거죠.
사실 이번 시즌 외국 선수들의 기량이 전반적으로 높아져서, 브랜든 브라운이 통할까라는 의문이 있었습니다. 통역님도 그런 걱정을 했을 것 같은데요.
저도 사실 그런 고민을 많이 했어요. 브라운에 관한 안 좋은 편견도 있었죠. ‘독불장군이고, 자기 밖에 모른다. 팀 플레이는 전혀 하지 않는다’는 편견이었죠.
그런데 그런 선수가 전~~~혀 아니었어요. KBL 경험이 많다 보니, 팀에서 무슨 역할을 해야 하는지를 정확히 알고 있었어요.
본인 스스로도 ‘나는 이전의 브랜든 브라운과 다른 브랜든 브라운이다. 예전의 브랜든 브라운은 득점만 신경 썼다면, 지금의 브랜든 브라운은 팀을 위해 뛴다. 팀만 이기면 되고, 내 목표는 팀의 우승이다. 또, 내 기량을 이미 증명했기 때문에, 이제는 팀의 우승과 함께 하는 선수가 되고 싶다’고 이야기하더라고요.
자기가 했던 말을 잘 실천하고 있어요. 국내 선수들의 힘든 걸 대신 해주기도 하고, 어린 선수들을 잘 도와주기도 해요. 코트 밖에서도 많은 도움을 주고요. 이제는 kt에 완전히 녹아들었다고 생각해요. 그런 걸 보면서, 저도 힘을 얻어요. 브라운은 정말 좋은 친구인 것 같아요.
통역의 업무와 관련된 주제로 넘어가려고 합니다. 통역의 최대 임무는 외국 선수를 돕는 일이라고 생각하는데요. 김용국 통역은 이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계신가요?
영화 ‘제리 맥과이어’의 주인공인 제리 맥과이어가 ‘Help me, Help you’라는 대사를 합니다. 직역을 하면 ‘나를 돕는 게 너를 돕는 거다’는 말인데, 저는 ‘내가 우리 팀 외국 선수를 돕는 게 나를 돕는 거다’는 뜻으로 제 업무에 대입하고 있어요. 저희 팀 외국 선수가 팀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 게, 저를 위한 일이라는 마음을 가지게 됐죠.
스태프는 최적의 경기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팀을 도와야 된다고 생각해요. 저 또한 단순히 통역을 하는 게 아니라, 팀의 스태프로서 제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스태프로서 제가 해야 할 일은 외국 선수의 경기력을 끌어올리는 일이에요. 그렇게 하려면, 제가 외국 선수의 친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비즈니스로 다가가는 게 아니라, 마음으로 다가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하려면, 제가 담당하는 선수한테 무슨 일이 생겼는지를 알아보고, 무슨 걱정거리가 있는지 파악해야 해요. 미세한 감정 변화까지 알아야 해요. 그걸 알아야, 그 선수를 보듬어줄지 혹은 강한 말을 할지 판단할 수 있거든요. 그래서 외국 선수의 행동을 더 세심하게 파악하려고 해요. 

새로운 곳에 도전해온 김용국 통역. 그의 최종 목적지는 어디일까?(사진 = 박영태 기자)


계속 달려온 남자, 그가 남긴 메시지는?

김용국 통역은 어렸을 때의 꿈을 이루지 못했다. 하지만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법을 터득했다. 어떻게 달려야 원하는 길에 도달할 수 있는지도 알게 됐다.
김용국 통역이 달려온 길은 운동을 그만 둔 이들에게 귀감이 될 수 있다. 위에서 말했듯, 제2의 인생을 성공적으로 살고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김용국 통역은 자신의 미래를 계속 설계하고 있다. 자신의 미래를 위해 계속 달리고 있다. 그게 자신과 같은 경험을 했던, 혹은 자신과 같은 경험을 할 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인 것 같았다.

한국에서 엘리트 스포츠를 경험했습니다. 그게 한국 프로 스포츠단 통역을 맡는데 큰 장점일 것 같습니다.
우리 나라 스포츠 팀 대부분은 수직 관계(상하 관계)가 정확한 집단이라고 생각해요. 우선 감독님과 코치님, 선수의 수직 관계가 이뤄지고, 선수들 간에도 수직 관계가 형성되죠.
저는 선수 시절 때 그걸 체험을 했고, 그게 통역 업무를 하는데 상당히 유리했어요. 운동을 하지 않으셨던 분들은 ‘왜 지금 분위기가 안 좋은 거지?’라고 의아해할 수 있는 걸, 저는 예전의 경험을 통해 쉽게 파악할 수 있었어요. 코칭스태프와 선수들이 ‘왜 이 때 힘들어할까? 왜 지금 화를 낼까?’를 조금은 쉽게 알 수 있었던 거죠. 아무래도 코칭스태프와 선수들의 분위기나 기분을 빨리 이해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강점이라고 생각해요.
반면, 통역 경험이 그렇게 긴 건 아닙니다. 보완해야 할 점들도 있을 것 같은데요.
저 스스로 부족하다는 걸 깨달았어요. 사람으로서도 미숙하고, 통역 일에 관해서도 고쳐야 될 게 많더라고요.
처음에는 다른 통역과 저를 비교했어요. ‘내가 이 사람보다 잘 하는 것 같다’거나 ‘내가 이 사람보다 못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죠.
그런데 비교는 끝도 없이 하게 되더라고요. 저 스스로 비교 속에 위축이 되기도 했고요. 통역은 말을 해야 하는 직업인데, 위축 되면 말도 잘 못하더라고요.
그래서 단순한 비교보다 다른 통역들의 구체적인 장점을 본받으려고 했어요. ‘A 통역은 이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하고, B 통역은 이렇게 대처하는구나. 나도 저런 상황이 생기면 저렇게 해봐야겠다’고 말이죠. 구체적인 상황 대처 요령을 키워야 한다고 느꼈고, 그 속에서 얼마나 역량을 발휘하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한 거죠.
통역으로서의 목표가 있으신가요?
통역으로서 목표보다, 제 인생 목표를 말씀드리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스포츠 산업에서는 통역 외에도 할 일이 많고, 저 스스로 통역 외에 다른 것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통역이 저한테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것 같아요. 회사 내부 일과 팀 내부 일을 알아야 제 업무를 잘할 수 있고, 통역이라는 업무가 스포츠 구단의 전반적인 사항을 알 수밖에 없는 직종이거든요. 그래서 통역이 너무 좋은 직업이라고 생각해요. 제 능력을 발전시킬 수 있는 직업이라고도 생각해요.
보통 기사 마지막에 팬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을 부탁드립니다. 하지만 통역님한테는 다른 말씀을 부탁드리고 싶네요. 운동 선수를 그만두고 다른 일을 하는 분이기에, 같은 길을 걸을 수 있는 분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솔직히 이런 말씀을 드릴 때마다 마음이 너무 아파요. 주변에 운동을 그만 둔 이들이 다음 진로를 막막하게 여길 때, 저의 예전 일들이 떠오르거든요.
그렇지만 그 친구들한테 하는 말은 늘 명확해요. ‘운동을 하고 있을 때 최선을 다하고 후회 남지 않게 하라’고 말이죠. 운동을 그만두고 나서 본인 스스로에게 ‘후회가 남지 않는다’고 할 수 있을 때, ‘다시 시작할 수 있고, 다른 것에 도전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해주고요.
특히, 운동 선수가 운동을 하고 있을 때, ‘내가 그만 두면 뭐해야 하지?’라고 생각하는 건 부질없는 것 같아요. 시간 낭비라고 생각해요. 운동을 할 때 운동에 집중해야지, 운동을 하고 있는데도 ‘그만두면 뭘 해야 하지?’라고 생각하는 건 옳지 않은 행동이라고 봐요. 여기도 집중할 수 없고, 저기도 집중할 수 없거든요.
저는 야구를 그만두는 날까지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야구를 다시 하고 싶다는 마음을 1도 안 가진 것 같아요. 그렇기 때문에, 미련 없이 다른 일에 도전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사진 = 부산 kt 농구단 제공, 김용국 통역 제공, 박영태 기자
바스켓코리아 / 손동환 기자 sdh25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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