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코 인사이드] 이주윤 현대모비스 통역, 그를 지탱하게 하는 원동력은?
- BAKO INSIDE / 손동환 기자 / 2021-05-30 11:50:31
본 기사는 바스켓코리아 웹진 2021년 4월호에 게재됐습니다.(바스켓코리아 웹진 구매 링크)
누구나 생각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 있다. 집념 어린 도전 정신과 확고한 신념 없이 하기 힘든 일이 있다는 뜻이다.
울산 현대모비스의 이주윤 통역은 새로운 것에 도전할 줄 아는 사람이다. 새로운 것에 도전해야 하는 확실한 이유와 확고한 신념도 갖고 있다.
도전에 필요한 요소도 무엇인지를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발전적인 도전을 하고 있다. 이는 이주윤 통역이 속한 현대모비스에 큰 힘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 본인의 미래에도 큰 자산이 될 것이다. (본 인터뷰는 2021년 3월 17일 오후 7시에 이뤄졌다)

INTRO
이주윤 통역은 2019년 8월부터 울산 현대모비스의 통역을 맡고 있다. 오랜 시간 통역을 맡았던 차길호 전 통역(현 울산 현대모비스 사무국 매니저)의 공백을 잘 메우고 있다.
대부분 통역이 그렇듯, 이주윤 통역도 어린 시절부터 오랫동안 해외 생활을 했다. 다양한 나라에서 생활하며, 다양한 문화를 접했다. 어린 시절부터 접한 다양한 경험들이 이주윤 통역에게는 분명 긍정적인 요소였다.
통역을 하시는 분 중 대부분이 오랜 시간 동안 해외 생활을 했더라고요. 이주윤 통역은 어떠셨나요?
저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버지의 직장 때문에, 6살부터 해외에서 생활했죠. 사이판과 과테말라, 베트남에서 12년 정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한국으로 들어와 대학교를 졸업한 후, 현대모비스에서 통역 업무를 시작했습니다.
제가 국제 학교를 다녀서 그런지, 다양한 문화를 접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과테말라가 멕시코 부근이다 보니 스페인어를 공부할 수 있었고, 베트남어 역시 어느 정도 공부할 수 있었죠.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그러면 대학교 입학을 위해 한국으로 오신 건가요?
어렸을 때부터 외국에서 지냈습니다. 그러다 보니, 한국 문화를 경험해보고 싶었어요. 한국에서도 교육을 받고 싶었죠. 군 문제도 있었고요. 계속 해외에 있다 보면, 군대에 늦게 갈 것 같았습니다.
해외에서도 학교를 다녔고, 한국에서도 학교를 다녔습니다. 차이가 분명 있었을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는 아무래도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더 보는 것 같아요. 나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는 것보다,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안 끼치는 게 더 중요하다고 느껴졌습니다. 그런 것들이 (한국에서 생활하는데) 조금 어려웠던 것 같아요.

대한민국에 있는 신체 건강한 남자라면 누구나 군대를 간다. 철저한 계급 중심의 사회와 단체 생활을 경험한다. 사회 생활의 기초를 배우게 된다.
특히, 훈련과 기수 문화가 엄격한 해병대 생활은 해병대를 경험한 이들에게 많은 깨달음을 준다. 해병대만의 끈끈한 전우애도 쌓이고, 해병 정신이라는 특유의 마인드도 생긴다.
이주윤 통역 역시 군대를 가야 했다. 일반 부대로 갈 수도 있었지만, 쉽게 선택하기 힘든 길을 선택했다. 그 길은 해병대였다. 누구나 지원할 수 있지만 아무나 되기 힘든 해병의 길을 걸은 이유가 궁금했다.
해병대를 나오셨다고 들었습니다.
이왕 군에 가는 거, 어려운 곳을 가보자고 생각했습니다.(웃음) 다른 사람들이 선택하지 않는 길로 가고 싶다는 생각도 했고요.
해병대는 교육훈련단 훈련부터 힘들다고 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해병대를 선택한 걸 후회하지 않았나요?
후회는 안 했어요.(웃음) 오히려 좋은 경험이었다고 생각했어요. 그 곳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고, 어려운 환경에서도 생활을 해냈거든요.
그 때를 떠올리면, 사회에서의 힘든 일도 크게 힘들지 않다고 생각해요. 남들은 교육훈련단 시설이 열악하다고 하지만, 저는 다른 부대를 가보지 않아서 모르겠어요. 시설이 부족하다고 느껴진 것도 없었고요.
그래도 실무 생활(일반 부대로 치면 자대 생활)은 만만치 않았을 텐데요.
실무 생활은 정말 힘들었어요.(웃음) 훈련이 힘든 게 아니라, 생활관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힘들었어요. 큰 잘못을 범한 게 아닌데도, 큰 잘못을 한 것처럼 혼날 때도 있었죠.
또, 제가 백령도에서 실무 생활을 했어요. 시설이 다른 곳에 비해 열악했어요. 그리고 새벽에 근무를 설 때, 너무 추웠어요.
아무래도 백령도가 섬이다 보니, 휴가 출발하고 휴가 복귀할 때도 제약이 있었어요. 예를 들면, 배가 뜨는 날이 정해져있는데, 휴가 출발일과 배가 뜨는 날이 일치하지 않을 때가 있어요. 그러면 휴가 출발일에 백령도 밖으로 못 나가요.
그런 날은 자대에 있었어요. 자대 밖을 나가도 할 게 없었거든요. 그렇게 휴가일이 사라지는 경우도 꽤 있었어요.
어렵기는 하셨겠지만, 그런 경험이 인생에 큰 자산이 됐을 것 같습니다.
흔히 말하는 해병 정신은 제대 후 1주일 만에 없어졌습니다.(웃음) 하지만 이것만 견디면, 다른 것도 다 견딜 수 있다는 걸 느꼈습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끝까지 해내고 버티면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배웠던 것 같습니다.

울산 현대모비스는 지난 2019년 7월 외국 선수 통역을 구한다는 공고를 냈다. 이주윤 통역은 SNS를 통해 공고를 확인했고, 곧바로 자기소개서를 제출했다. 당당히 합격한 이주윤 통역은 2019년 8월부터 현대모비스 농구단에 출근했다.
울산 현대모비스가 이주윤 통역에게는 첫 직장이다. 제대로 된 사회 생활을 처음 하는 곳이기도 하다. 기대와 설렘, 불안함과 부담감이 이주윤 통역에게 공존할 수 있다.
이주윤 통역은 위에 언급된 감정들을 모두 경험했다. 그러나 부정적인 감정보다 긍정적인 감정의 비중이 컸다. 새로운 걸 배운다는 설렘과 새로운 일을 한다는 기대감이 이주윤 통역의 잠재력을 깨우는 것 같았다.
현대모비스 통역에 지원하게 된 이유가 있을까요?
어렸을 때부터 운동을 다 좋아했습니다. 미식축구와 농구, 축구 등 구기 종목을 좋아했죠. 그래서 스포츠 마케팅이나 스포츠 의류를 다루는 업체 등 스포츠와 관련된 일을 하고 싶었어요.
그러다가 현대모비스에서 통역을 구한다는 공고를 봤어요. 하지만 통역이 정확히 어떤 일을 하는 건지 몰랐어요. 그래서 어떤 일을 하는지 찾아봤는데, 재미있을 것 같았어요. 벤치에서 경기를 보며, 코칭스태프와 선수단과 소통할 수 있다는 게 너무 좋았어요. 그래서 지원을 했습니다.
실제로 현대모비스 선수단과 마주했습니다. 첫 인상은 어떠셨나요?
TV로만 보던 선수들을 실제로 봐서 많이 놀랐어요. 특히, (양)동근이형을 볼 때, 많이 실감했어요. ‘내가 이 팀에서 통역을 해야 하는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죠.
유재학 감독님에게서 느낀 인상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Youtube에서 유재학 감독님을 검색하면, 감독님의 작전 타임 영상이 많이 나오잖아요. 감독님의 영상을 볼 때마다 무섭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처음에는 눈치도 많이 봤고요.
하지만 감독님과 지내다 보니, 제가 영상으로 느꼈던 것과는 정반대의 분이시더라고요. 제가 모르는 걸 친절하게 알려주시고, 쉽게 설명해주셨어요. 그래서 저도 감독님의 말씀을 외국 선수에게 편하고 쉽게 알려줄 수 있었어요.
2019~2020 시즌부터 통역으로 합류했습니다. 그렇지만 그 때 현대모비스의 성적(현대모비스는 2019~2020 시즌을 8위로 마쳤다)은 썩 좋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대형 트레이드도 있었고, 외국 선수 교체도 많았잖아요. 첫 시즌이었기에, 더 정신없었을 것 같습니다.
라건아(현 전주 KCC)가 트레이드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어요. 전혀 모르고 있었죠. 하지만 자코리 윌리엄스가 방출될 때, 제가 사무국의 말을 직접 통역해줬어요. 그걸 통역하는 게 감정적으로 어려웠어요. ‘너와 같이 할 수 없다’는 말을 해야 했으니까요.
그래도 이전에 통역하셨던 차길호 매니저께서 많이 도와주셨습니다. 그래서 적응을 빨리 할 수 있었습니다. 또, 일을 배우는 초반에 이런 문제를 경험해봐야, 나중에 더 빨리 대응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야심차게 첫 시즌을 맞았지만, ‘코로나 19’ 때문에 ‘조기 종료’됐습니다.
그 때는 별 생각이 없었어요. 그런데 이번 시즌을 치르다 보니, ‘시즌이 원래는 정말 길구나’라고 느꼈어요. 지난 시즌에는 3월부터 농구를 안 했으니까요.
첫 시즌이었기에, 많은 걸 느끼셨을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농구를 알게 됐고, 통역하는 요령도 배웠습니다. 우리 나라와 외국의 문화 차이가 있어서, 감독님이나 코치님의 말을 그대로 다 통역하면 선수가 기분 나빠할 수 있다고 느꼈어요. 조절해서 통역하는 요령을 나름 터득한 것 같아요.

위에서 살짝 언급했지만, 울산 현대모비스는 2019~2020 시즌을 8위(18승 24패)로 마쳤다. 조기 종료로 인해, 플레이오프 막차를 탈 수 있다는 희망도 놓쳤다.
사실 현대모비스는 2019~2020 시즌부터 리빌딩을 단행했다. 트레이드를 통해 새로운 전력(김국찬 영입, 이대성-라건아 트레이드)을 꾸렸고, 팀의 심장이었던 양동근이 2019~2020 시즌 종료 후 은퇴했다.
또, 현대모비스는 2020년 5월에는 외부 FA(자유계약)를 4명(장재석-기승호-김민구-이현민)이나 영입했다. 이전과 새로운 틀을 형성했다.
하지만 국내 선수로는 한계가 있었다. 중심을 잡아줄 외국 선수가 필요했다. 현대모비스는 정상급 외국 선수인 숀 롱을 데리고 왔다.
완전 새로운 팀이 된 현대모비스는 시즌 초반 시행착오를 겪었다. 그러나 숀 롱이 KBL에 적응하고 이적생들이 현대모비스 농구에 적응하면서, 현대모비스는 2위(29승 19패, 3월 24일 오전 기준)를 달리고 있다.
특히, 숀 롱의 적응은 현대모비스에 큰 힘이 됐다.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만든 이가 이주윤 통역이었다. 현대모비스를 최고의 팀으로 만들기 위해 나름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통역으로서 두 번째 시즌이었지만,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잘 아는 것 같았다.
숀 롱을 영입하기 전, 이주윤 통역도 숀 롱을 기대했을 것 같습니다.
어느 팀이든 그렇겠지만, 저희 팀도 외국 선수 선발 전에 성격이 어떤지를 많이 체크합니다. 여러 스카우팅 리포트를 챙겨봤죠. 하지만 어떤 스카우팅 리포트에서는 성격이 괜찮다고 하고, 다른 스카우팅 리포트에서는 성격이 좋지 않다는 분석이 있었습니다. 그래도 기량 면에서는 검증된 선수였기에, 구단에서 선발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처음 숀 롱이 온다고 했을 때, 스카우팅 리포트 때문에 긴장하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착하고 말도 잘 듣는 친구입니다. 가끔 투덜거릴 때도 있지만, 훈련 태도가 좋고 훈련 집중력도 좋은 친구입니다.
‘코로나 19’라는 특수성 때문에, 입국한 외국 선수 모두 자가 격리를 해야 했습니다. 그 때 도와줘야 되는 일이 있었을 거고, 그 때 소통해야 하는 것들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필요한 식자재나 필요한 배달 음식을 물어보고, 제가 직접 가져다줬습니다. 그리고 외국 선수들이 자가 격리 기간 동안 코로나 검사를 주기적으로 받는데, 제가 그 때 외국 선수들의 집 밖에서 전화통화로 코로나 검사 절차를 통역했습니다.
사실 외국 선수들은 자가 격리 기간 동안 집에만 있어야 해서, 저와 외국 선수가 크게 소통할 건 없었습니다. 다만, 외국 선수가 필요한 물건이 어떤 건지를 파악한 후, 제가 필요하다고 한 물건을 갖다주는 절차가 있었던 것 뿐이었어요.
숀 롱 같은 경우, 2주 동안 직접 밥을 해먹었습니다. 제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서 숀의 집 앞에 필요한 식자재를 갖다놓고, 숀이 문 앞에 있는 식자재를 챙겨서 밥을 해먹었죠.
숀 롱은 승부욕이 강하고, 감정을 잘 표출하는 선수입니다. 그것 때문에, 팀 전체가 영향을 받을 때도 있었습니다. 숀 롱의 마인드를 어떻게 잡아주려고 했는지 궁금합니다.
긍정적인 말을 많이 해줬습니다. 또, 숀 롱한테 ‘너가 지금 겪고 있는 건, 앞으로 더 좋은 선수가 되기 위한 과정’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했습니다.
사실 이번 시즌은 이전 시즌보다 (외국 선수와) 쉽게 소통하고 있습니다. 아이라 클라크 코치가 많이 도와주거든요. 농구 면에서 설명을 잘 해줘서, 제 업무가 한결 수월해졌습니다.
KBL을 오래 경험한 아이라 클라크 코치가 있고, KBL을 경험한 버논 맥클린이 대체 외국 선수로 합류했습니다. 많은 힘이 될 것 같은데요.
맞습니다. 많은 도움을 얻고 있어요. 아이라 클라크 코치 같은 경우, 제가 농구 쪽에서 이해를 못한 점을 잘 짚어줍니다. 그리고 선수로서도 KBL 생활을 해봤기 때문에, 외국 선수가 어떤 걸 원하고 어떤 걸 불편해하는지를 잘 파악합니다. 팀 훈련 강도 또한 잘 판단해서, 외국 선수의 마인드를 잘 컨트롤하는 것 같아요.
또, 숀 롱과 자키넌 간트가 있을 때에는, 그래서 제가 이런저런 설명을 많이 해줘야 했습니다. 둘 다 KBL을 경험해본 선수가 아니었거든요. ‘이건 해도 되고 저건 하면 안 된다’는 식의 이야기를 많이 했죠. 하지만 맥클린이 오면서, 맥클린이 제 역할을 대신할 때가 있어요. 저 대신 KBL에서의 경험과 KBL에서의 노하우를 잘 전달해줘요.
그리고 숀 롱이 아주 가끔 훈련에 불만을 가질 때도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맥클린이 오고 나서, 자기 경험을 잘 이야기해줬어요. 맥클린이 ‘우리 팀은 훈련 많이 하는 거 아니다. LG에 있을 때는 훈련을 엄청 많이 했다’는 이야기를 해줬고, ‘너는 지금의 상황이 최악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내가 느끼기에는 그렇지 않다’는 식으로 숀 롱의 마인드를 잡아주고 있어요. 그런 게 저한테는 큰 힘이 되는 것 같아요.
사실 맥클린도 부친상이라는 큰 슬픔을 겪었습니다. 외국 선수를 담당하는 이로서 도움이 되고 싶었을 것 같은데요.
새벽 3시쯤이었을 거에요. 맥클린한테서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았죠. 저 또한 충격을 받았어요.
먼저 맥클린에게 그날 오전 운동을 쉬게 했습니다. 맥클린은 그날 오후부터 운동을 했죠. 맥클린의 소식을 들은 감독님과 코치님들, 국내 선수들 모두 힘이 되는 말을 많이 해줬습니다. 그 때, 팀이 하나로 더 뭉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분위기를 바꿔보겠습니다. 아이라 클라크 코치, 그리고 두 외국 선수와 얽힌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있으신가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하루하루가 재미있습니다. 아이라 클라크 코치와 두 외국 선수의 얘기를 들어보면, 일상 자체가 재미있는 것 같아요.(웃음) 그래서 특별한 에피소드를 꼽는 게 더 어려워요.

이주윤 통역은 현대모비스에서 두 번째 시즌을 보내고 있다. 많은 걸 배우고 많은 걸 느꼈지만, 아직 더 많은 걸 공부하고 더 많은 걸 깨달아야 한다.
그래서 자신의 능력에 높은 점수를 주지 못했다. 다만, 업무에 관해 확고한 신념을 가졌기에, 발전 속도가 느릴 것 같지 않았다. 이주윤 통역이 가진 신념은 무엇이었을까?
통역을 한 지 두 시즌 밖에 안 됐지만, 기억에 남는 외국 선수가 있을 것 같습니다.
보통 외국 선수를 관리할 때 음식 걱정을 많이 해요. 어떤 걸 먹는지 그리고 어떤 걸 안 먹는지를 관리해야 하는데, 에메카 오카포는 그런 면에서 한 번도 걱정하지 않았어요.
또, 원정 경기 때, 외국 선수와 국내 선수는 식사를 따로 해요. 외국 선수는 보통 통역을 따라 아웃백 같은 곳을 가는데, 오카포는 무조건 국내 선수들과 함께 한식을 먹었어요. 오카포의 그런 점이 먼저 기억나요.
리온 윌리엄스(현 창원 LG)도 기억이 납니다. 한국 경험을 많이 한 선수여서, 국내 선수들의 주문사항을 빨리 캐치하고 빨리 이행했어요. 감독님께서 본인에게 어떤 걸 원하는지도 잘 알았고요.
통역의 업무는 외국 선수와 국내 선수의 의사 소통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농구단이 어떻게 운영되고 선수단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알아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지난 해에는 정말 뭐가 뭔지 몰랐어요. 특히, 구단이 어떻게 운영되는지를 파악하는데 어려움을 겪었어요. 그래서 업무를 파악하는데 더 오래 걸린 것 같아요.
하지만 지금은 많이 수월해졌어요. 사무국장님을 포함한 사무국 직원들과 이전에 통역을 맡으셨던 차길호 매니저님, 코칭스태프와 선수들 모두 많이 도와주고 있거든요.
농구 지식 또한 해박해야 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저 역시 농구를 많이 이해하려고 했고, 외국 선수들을 파악하기 위해 NBA G리그와 여러 해외 리그를 많이 봤습니다.
농구를 계속 보다 보니, 농구를 더 빨리 습득하게 됐습니다. 또, 지난 시즌에 유재학 감독님을 포함한 코칭스태프와 (양)동근이형을 포함한 선수들이 많이 알려줘서, 농구를 더 편하게 공부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행착오는 있었을 것 같습니다.
한국어를 영어로 통역하는 건 그래도 쉬운데, 영어를 한국어로 통역하는 게 가끔 어려웠습니다. 어떤 말로 바꿔야 하는지 까먹을 때가 있었고, 그것 때문에 공식 인터뷰에서 버벅거렸던 기억이 나요.(웃음)
통역으로서 자신에게 점수를 매긴다면?
10점 만점에 5점 정도인 것 같아요. 못하는 것도 아닌 것 같지만, 잘 하는 것 같지도 않아요.(웃음) 아직은 더 많이 공부하고, 더 많이 배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통역으로서 목표가 있으신가요?
다양한 일들에 관심은 있지만, 그 일들을 당장 하고 싶은 건 아니에요. 아직은 이번 시즌에 우승하고 싶은 것 말고는 생각해보지 않았어요.
통역을 꿈꾸는 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도 있을 것 같습니다.
상대의 감정을 잘 받아줘야 하지만, 제 감정 표현을 잘하는 건 안 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 단순히 통역으로서 통역을 하는 것만 아니라, 외국 선수의 친구가 되어주고 외국 선수의 매니저도 되어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유시간이 부족하다고 느낄 수 있지만, 팀이 이길 때의 희열도 큰 직업이라고 생각해요.
마지막으로 팬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이번 시즌에도 ‘코로나 19’ 때문에, 팬들께서 체육관을 찾아오기 어려우실 겁니다. 하지만 TV나 SNS를 통해 저희 현대모비스를 응원해주시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통역으로서 맡은 바 업무를 잘하기 위해 더 노력하겠습니다. 그게 팬들의 응원에 보답하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진 제공 = 이주윤 통역(본문 1~2번째 사진), KBL
바스켓코리아 / 손동환 기자 sdh25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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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동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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