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코 인사이드] 진경석이 전한 흥미로운 말, “농구가 너무 재미있어요”

BAKO INSIDE / 손동환 기자 / 2024-10-12 11:35:22

본 기사는 바스켓코리아 웹진 2024년 9월호에 게재됐다. 인터뷰는 8월 8일 오후에 진행됐다.(바스켓코리아 웹진 구매 링크)

농구를 진지하게 여기는 농구인들은 많다. 그러나 농구를 재미있어하는 농구인은 많지 않다. 그런 이유로, 진경석(현 청주 KB 수석코치)의 이야기는 흥미로웠다. 인터뷰 말미에 “농구가 너무 재미있어요”라고 이야기해서다.

낙생고 3인방
진경석은 수비와 3점을 겸비한 선수였다. 일명 3&D. 특히, 이한권(현 부천 하나원큐 수석코치)-정훈(전 전주 KCC)과 함께 ‘낙생고 3인방’으로 불렸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종별선수권과 쌍용기, 전국체전 등 3개의 대회에서 우승했다.
‘낙생고 천하’의 주역이었던 진경석은 성균관대로 진학했다. 비록 성균관대에서는 우승하지 못했지만, 1학년 때부터 경기 경험을 착실히 쌓았다. 그리고 2002 KBL 국내신인선수 드래프트에 참석했다.
2002년 드래프트는 일명 ‘김주성 드래프트’였다. 모든 시선이 김주성(현 원주 DB 감독)에게 향했다. 그러나 진경석은 김주성 드래프트에서도 실속(?)을 챙겼다. 전체 3순위로 여수 코리아텐더(현 수원 KT)의 부름을 받은 것.

2002년에 열린 KBL 국내신인선수 드래프트에서 전체 3순위로 여수 코리아텐더에 입단했습니다.
(김)주성이가 무조건 1순위였지만, 2순위 후보는 여러 명으로 압축됐습니다. (정)훈이와 (이)한권이, 박지현(현 수원 KT 수석코치) 등이 그랬죠. 저는 그저 ‘1라운드에만 포함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또, 코리아텐더가 3순위를 호명할 때, “성균관대”를 먼저 이야기했습니다. 저는 내심 ‘한권이가 나가겠구나’라고 생각했어요(웃음). 그런데 제 이름이 불려서, 많이 놀랐습니다.
코리아텐더의 첫 인상은 어땠나요?
팀 사정이 너무 어려워서, 코리아텐더를 기피하는 4학년도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출전 기회를 얻고 싶었습니다. 뛸 수 있는 팀으로 가고 싶었죠. 마침 코리아텐더가 저를 선택해줘서, 너무 감사했습니다.
당시 코리아텐더의 여건은 어땠나요?
제가 코리아텐더에 처음 갔을 때만 해도, 선수들이 용인에 있는 아파트에서 다 같이 지냈습니다. 그러다가 여수로 옮겼고, 팀 전원이 30평짜리 아파트 2채에서 생활했습니다. 전용 체육관도 없었고요. 여러모로, 힘들었습니다. 그렇지만 선수들은 더 끈끈하게 지냈던 것 같아요.
데뷔 시즌은 어떠셨나요?
(진경석은 2002~2003시즌 53경기 평균 24분 9초를 뛰었다. 경기당 7.2점 2.6리바운드 1.5어시스트에 1.2개의 스틸을 기록했다)

원래 선수 구성이 약했는 데다가, 주축으로 꼽혔던 (전)형수형(현 명지고 코치)이 2002~2003시즌 직전에 트레이드됐습니다. 팀 전력이 더 약해졌죠. 그리고 감독님과 형들이 저를 배려해주셔서, 제가 기회를 생각보다 많이 얻었던 것 같아요.
‘선수 진경석’의 데뷔와 별개로, 소속 팀이었던 여수 코리아텐더는 4강에 진출했습니다. 기대 이상의 성과였는데요.
당시 이상윤 감독님(현 해설위원)께서 선수들과 소통을 많이 하셨고, 선수와 코치를 병행하신 (김)용식이형이 맏형 역할을 잘해줬습니다. 선수들을 잘 아우르셨죠. 무엇보다 선수단 자체의 끈끈함이 컸습니다.
선수 구성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에릭 이버츠와 안드레 페리가 중심을 잡아줬고, (황)진원이형과 (정)락영이형도 외곽에서 잘해줬습니다. 무엇보다 선수들 모두 열심히 뛰어줬습니다.

터뜨리지 못한 잠재력
여수 코리아텐더가 재정난으로 프로농구단을 운영할 수 없었다. 이를 지켜보던 KTF(현 KT)가 코리아텐더 농구단을 인수했다. 그래서 진경석은 2003~2004시즌부터 부산 KTF(현 수원 KT) 소속으로 뛰었다.
하지만 진경석은 2007~2008시즌 종료 후 창원 LG로 트레이드됐다. 2008~2009시즌 종료 후 FA(자유계약) 신분으로 LG와 재계약했지만, 또 한 번 트레이드. 원주 동부(현 원주 DB) 유니폼을 입었다.
동부로 이적한 진경석은 두 시즌 연속으로 챔피언 결정전을 뛰었다.(2010~2011, 2011~2012) 많은 시간을 뛰지 못했지만, 최고의 무대에서 경쟁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진경석은 기대만큼의 기량을 보여주지 못했다. 포텐을 터뜨리지 못한 진경석은 2012~2013시즌 종료 후 유니폼을 벗었다.

2007~2008시즌 종료 후 LG로 트레이드됐습니다.
KTF의 선수 구성이 훨씬 좋아졌습니다. KTF를 이끄셨던 추일승 감독님(전 대한민국 남자농구 국가대표팀 감독)께서도 “너가 남는 것도 좋지만, 너가 뛸 수 있는 팀으로 가는 것도 기회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LG 사령탑이셨던 강을준 감독님(전 고양 오리온 감독)께서도 저를 좋게 봐주셨어요. 덕분에, 저는 새로운 환경에서도 많이 뛸 수 있었습니다.
2008~2009시즌 종료 후 LG와 재계약했습니다. 그렇지만 동부로 트레이드됐는데요.
동부로 트레이드된 후에, 기회를 많이 얻었습니다. 또, 새로운 환경이지만, 열심히 하려고 했고요. 그때를 돌아보면, 트레이드는 선수에게 새로운 기회라고 생각해요.
동부에서 챔피언 결정전을 두 번 경험했습니다. 다른 경기와의 차이점이 있다면?
저희 팀이 정규리그에는 식스맨들을 많이 기용했습니다. 그렇지만 단기전이다 보니, 저 같은 식스맨들이 출전 기회를 많이 얻지 못했습니다. 전술 변화도 많았고요. 특히, 집중력과 몰입도의 차이가 컸습니다. 관중들의 열기 또한 달랐고요.
2012~2013시즌 종료 후 은퇴하셨습니다. 고교와 대학 시절 기대를 많이 받았지만, 그만큼의 역량을 보여주지 못했던 것 같아요.
저 같은 유형의 선수는 많은 것 같아요. 그렇지만 저의 피지컬이나 운동 능력, 슛 모두 다른 경쟁자들보다 특출나지 않아요. 그래서 수비를 해야 한다고 느꼈어요. 오랜 시간 살아남고 싶어서, 수비에 더 집중했죠.
물론, 대학 시절에 받은 기대만큼, 발전하지 못한 건 맞습니다. 저도 그 점을 아쉬워하고 있어요. 하지만 식스맨으로서 가치를 보여주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팀에서도 수비와 슛을 원할 때, 저를 투입하셨고요. 그러다 보니, 제가 적정한 시기에 은퇴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터닝 포인트
프로 스포츠 선수는 누구나 새로운 인생과 마주한다. 선수만 평생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진경석도 마찬가지였다. 선수 생활을 더 하고 싶었지만, 그렇지 못했다.
그러나 선수 생활을 마쳤기 때문에, 새로운 포인트와 마주할 수 있었다. 유니폼을 벗은 진경석은 안양고 A코치로 부임했다. 그리고 2015년 5월에 서동철 감독(현 대한민국 남자농구 국가대표팀 코치)의 부름을 받았다.
서동철 감독이 사퇴했고, 바통을 이어받은 안덕수 감독(현 KBS N 스포츠 해설위원)도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러나 진경석 코치는 KB의 현재 사령탑인 김완수 감독과 함께 하고 있다. 10년 가까이 KB 선수들과 호흡하고 있다.

은퇴 후 안양고 A코치로 부임했습니다.
당시 안양고 부장 선생님께서 국제 대회 심판으로 파견됐습니다. 그때 대표팀 매니저였던 성준모 코치(현 KBL 경기본부 운영차장)를 만났고, 성준모 코치에게 “우리 학교 A코치로 추천할 만한 사람이 있을까?”라고 물어보셨어요. 그때 제 이야기가 나왔다고 하더라고요.
그렇지만 저는 은퇴 직후 다른 일을 준비했습니다. 지도자를 준비하는 과정 없이 은퇴를 했거든요. 그러다가 안양고 부장 선생님에게 “A코치를 해보지 않겠냐?”고 제의를 받았고, 저는 감사한 마음으로 안양고에 갔습니다. 지도자를 처음 했기에, 더 많은 걸 배웠던 것 같아요.
2015년 5월부터 청주 KB 코치를 맡았습니다.
안양고 A코치로 있다가, 성남중 메인 코치로 잠시 일했습니다. 그러다가 서동철 감독님으로부터 “얼굴 한 번 보자”고 연락을 받았습니다. 서동철 감독님과는 아무 인연이 없었기에, ‘무슨 일이지?’라는 의구심이 들었죠.
그런데 감독님께서 “코치가 한 명 더 필요한데, 너를 추천해준 분이 계셨다”고 하셨어요. 너무 놀랐고, 감사했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해보겠습니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여자농구는 처음이었습니다.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을 것 같아요.
서동철 감독님께서 코치를 제의하셨을 때, “제가 사실 여자농구를 거의 보지 않았습니다”고 말씀드렸어요(웃음). 하지만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하겠습니다”고 이야기했죠.
그리고 KB에 처음 갔습니다. 여자들이 그렇게 많은 공간은 처음이라, 어색하더라고요. 적응도 안 됐고요. 그런 이유로, 1주일 가량 아무 말도 못했던 것 같아요. 그걸 보던 감독님께서 “코치가 멀뚱멀뚱 서있으면 어떻게 하냐?”고 할 정도로요(웃음).
감독님의 말씀을 들은 후, 제 일을 더 적극적으로 하려고 했습니다. 우선 선수들이 5대5 훈련을 할 때, 제가 상대 팀 역할을 했습니다. 본 훈련 때는 토킹을 많이 했고, 야간 훈련 때는 어린 선수들을 가르쳤어요. 또, 감독님께서 의견을 물어보실 때, 제 생각을 소신껏 말씀드렸습니다. 그런 식으로 조금씩 적응했던 것 같아요.
KB에서만 9년을 계셨습니다. 그 동안, ‘코치 진경석’이 쌓은 철학은 무엇인가요?
철학이라고 하긴 거창하지만, 선수 때부터 품어온 생각이 있습니다. ‘경기를 뛰려면, 수비를 해야 한다’예요. 특히, 제가 은퇴했던 동부는 수비 위주의 팀이라, 제가 더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일각에서는 ‘수비 농구가 재미없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저는 수비가 너무 재미있어요(웃음). 상대 팀에서 원하는 전술을 수비로 차단할 수 있으니까요.
또, 누구 한 명 월등하다고 해서, 수비가 이뤄지지 않아요. 반대로, 1명만 허점을 보여도, 그 팀의 수비는 약점으로 변해요. 수비가 공격보다 더 유기적으로 이뤄져야 하는 이유죠. 그래서 수비할 때, 소통을 더 많이 해야 하고요.
무엇보다 ‘수비를 잘하는 팀이 강팀’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수비를 더 확고히 다지려고 해요. 대신, 공격할 때에는 하고 싶은 걸 자신 있게 하도록, 선수들에게 창의성과 자율성을 심어주려고 해요.

“농구가 너무 재미있어요”
‘뭐하고 지내세요?’의 마지막 주제는 자신의 농구 인생을 돌아보는 것이다. 진경석에게도 같은 질문을 했다. “농구 인생을 돌아봐달라”고 말이다.
진경석은 30년 넘게 코트와 호흡하고 있다. 코트에 있는 시간 동안, 숱한 일들을 겪었다. 그리고 코트 안에서 여러 감정을 느꼈다. 그 감정을 아들과 공유하고 있다. 아들도 클럽 팀에서 농구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농구’는 어떤 의미인가요?
먼저 ‘준비’의 의미가 강한 것 같아요. 선수들을 운동시킬 때, 제가 준비를 많이 해야 하거든요. 공부도 많이 해야 하고요.
그러나 더 큰 의미는 따로 있습니다. 농구가 너무 재미있어요. 선수 생활 때도 재미있게 했고, 지금도 재미있어요. 농구를 보는 것도 재미있고, 가르치는 것도 마찬가지예요. 또,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는 점도 너무 감사해요.
‘진경석의 농구 인생’을 한 번 돌아봐주세요.
저는 잘하는 선수가 아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감독님과 코치님, 동료들로부터 ‘(진)경석이는 정말 열심히 해’라고 인정받고 싶었습니다. 훈련량만큼은 다른 선수들에게 밀리면 안 된다고 생각했죠. 그것도 해내지 못하면, 경쟁력이 없다고 판단했고요. 그런 생각을 지금도 갖고 있습니다. ‘진경석 코치는 정말 열심히 한다. 열정적이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다시 태어나도 농구를 하실 건가요?
앞서 말씀드렸듯, 저는 농구를 너무 좋아합니다. 농구가 너무 재미있어요. 그래서 초등학교 5학년인 아들에게도 “농구 한 번 해볼래?”라고 권유를 했고, 아들이 클럽에서 농구를 하고 있습니다. 아들도 농구를 너무 좋아해요. 그런 아들을 보면, 저도 농구공을 다시 잡고 싶어요. 다시 태어나도, 농구를 하고 싶고요.
또, 농구는 단체 운동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배려와 소통, 희생 등 여러 덕목을 농구에서 배울 수 있습니다. 아들이 농구를 통해 그런 걸 알았으면 좋겠어요.

일러스트 = 락(본문 첫 번째 사진)
사진 = KBL(본문 2~3번째 사진)-WKBL 제공(본문 4~5번째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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