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코 인사이드] ‘DB 원 클럽 맨’ 김현호가 맞이한 제2의 농구 인생

BAKO INSIDE / 손동환 기자 / 2024-07-08 10:30:17

본 기사는 바스켓코리아 웹진 2024년 6월호에 게재됐다. 인터뷰는 5월 21일 저녁에 진행됐다.(바스켓코리아 웹진 구매 링크)

매년 5월. KBL 선수들의 변화를 알 수 있는 시간이다. 특히, FA(자유계약)를 맞은 선수들은 큰 변화를 마주한다.
김현호도 마찬가지였다. 2011년 프로에 입성한 김현호는 2024년 5월 FA를 취득했다. 그리고 선수 유니폼을 벗었다. 그러나 선수 시절 함께 했던 원주에서 제2의 인생을 시작한다. 김현호의 새로운 직함은 ‘DB 전력분석 및 스카우터’다.

최고의 공격형 가드

2006년. 전주고가 아마추어 무대를 주름잡았던 해다. 특히, 김현호의 주가가 높았다. 고교 최고의 공격형 가드였던 김현호는 ‘NO.1 유망주’로 꼽혔다.
고교 최대어였던 김현호는 연세대로 진학했다. 그러나 무릎 부상 때문에, 재능을 꽃피우지 못했다. ‘최대어 김현호’는 점점 잊혀졌다.
그러나 김현호는 2011 KBL 국내신인선수 드래프트에서 5순위로 원주 동부(현 원주 DB)에 입단했다. 오세근과 김선형(현 서울 SK), 최진수(현 울산 현대모비스) 등 황금 세대들이 대거 등장했음에도, 김현호의 가치는 높았다. 생각보다 빠른 순번으로 프로에 입성할 수 있었다.

2011년에 열린 KBL 국내신인선수 드래프트에서 전체 5순위로 원주 동부에 입단했습니다.
한없이 어렸고, 한없이 철없던 시기였어요.(웃음) 자신감 하나로 무장했죠. 그렇지만 정말 좋은 감독님과 함께 할 수 있었고, 정말 좋은 빅맨 형들과 함께 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팀이라면, 내가 제대로 농구할 수 있겠구나’고 생각했죠.
2011~2012시즌 동부는 그야말로 최강이었습니다. 하지만 ‘선수 김현호’는 기회를 얻기 어려웠는데요.
비시즌을 준비하는 동안, 강동희 감독님으로부터 기회를 많이 받았습니다. 연습 경기를 많이 뛸 수 있었죠. 그렇지만 시즌 개막 2달 전에 다쳤습니다. 무릎 연골을 크게 수술해야 했죠. 그래서 1년 동안 운동을 못했습니다. 아쉬움이 너무 컸어요.
2012~2013시즌에야 정규리그 데뷔전을 치를 수 있었습니다.
(김현호는 2012년 10월 13일 안양 KGC인삼공사를 상대로 데뷔전을 치렀다. 당시 9분 26초를 뛰었다. 그리고 2012~2013시즌에는 19경기 평균 11분 21초를 소화했다)

데뷔전을 하는데, 너무 신이 났습니다. 너무 좋더라고요. 하지만 제가 생각했던 경기력은 아니었습니다. 실망이 컸어요. ‘이대로는 안 되겠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노력을 더 많이 해야 한다고 다짐했어요.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는 무엇이었나요?
우선 학교에서는 외국 선수들과 뛰지 않았습니다. 외국 선수들의 높이부터 적응하기 어려웠어요. 그리고 제 스피드가 선배들보다 빠르기는 했지만, 선배들의 힘이 저보다 훨씬 셌습니다. 영리함과 노련함 또한 훨씬 강했고요. 그래서 ‘대학교까지 했던 농구는 농구가 아니었구나. 내 수준이 그야말로 아마추어였구나’라고 돌아봤습니다.

짧았던 도약, 그리고...
김현호는 2013~2014시즌 46경기에 나섰다. 평균 출전 시간은 11분 55초. 그 후 자기 가치를 조금씩 끌어올렸다. 특히, 2019~2020시즌에는 34경기 평균 20분 48초를 소화했다. 경기당 6.3점 2.5리바운드 2.3리바운드로 커리어 하이를 찍었다.
그러나 김현호는 큰 시련과 마주했다. 2020년 7월 28일 성균관대와 연습 경기 도중 오른쪽 아킬레스건을 다친 것. FA(자유계약) 직후 첫 시즌을 준비했으나, ‘시즌 아웃’이라는 가혹한 결과와 마주했다.
하지만 김현호는 부활을 위해 날갯짓했다. 그래서 생각보다 빠르게 복귀할 수 있었다. 그러나 2021년 2월 9일에 열린 KBL D리그 경기에서 왼쪽 아킬레스건을 다쳤다. 너무 잔인한 결과들이 김현호의 농구 인생을 덮쳤다.

2016~2017시즌부터 출전 시간을 조금씩 끌어올렸습니다.
저는 공격 성향이 강한 가드였습니다. 프로 초반에는 공격력을 발휘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그렇지만 프로에서 생활하다 보니, ‘나보다 공격 잘하는 선수들이 정말 많구나’라고 인정하게 됐습니다. 그런 이유로, 경기에 뛰기 위한 노력을 먼저 생각했습니다. 팀을 위해 할 수 있는 것들을 준비했죠. 그런 걸 생각하고 그런 걸 실천하다 보니, 출전 시간이 자연스럽게 늘어난 것 같아요.
2019~2020시즌에는 커리어 하이를 찍었습니다. DB 또한 정규리그 공동 1위를 달성했고요.
(코로나19가 2019~2020시즌 도중 발생해, KBL은 해당 시즌을 조기 종료해야 했다. 그래서 28승 15패를 기록했던 DB는 SK와 공동 1위로 2019~2020시즌을 마쳐야 했다)

(조기 종료로) 아쉽기는 했지만, 제일 행복했던 시즌이었습니다.(웃음) 출전 시간이 늘다 보니, 자신감이 올라갔거든요. 또, 저희 팀원들 모두 매 경기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졌기에, 저희 팀이 좋은 결과를 얻었던 것 같아요.
그렇지만 2020~2021시즌을 준비하는 도중에 오른쪽 아킬레스건을 다쳤습니다.
자신감과 여유가 달라졌습니다. 그야말로 어깨가 올라갔어요.(웃음) 하지만 큰 부상이 찾아왔습니다. 내심 ‘다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농구를 조금 더 하지 않았을까?’라는 궁금증도 있어요.(웃음)
어렵게 복귀했습니다. 그렇지만 복귀전에서 왼쪽 아킬레스건을 다치셨어요.
세상이 무너지는 줄 알았습니다. 그렇지만 상심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해보자’고 다짐했습니다. 무엇보다 가족들이 저에게 힘을 불어넣어줬기 때문에, 제가 힘을 낼 수 있었습니다.

다가온 마지막
두 번의 큰 시련을 마주했다. 그러나 김현호는 땀을 계속 흘렸다. 코트에 서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 그리고 2022~2023시즌에 45경기를 나섰고, 경기당 17분 27초를 뛰었다.
하지만 2023~2024시즌에는 달랐다. 김주성 감독의 구상에서 제외됐다. 김현호가 얻은 기회는 ‘27경기’와 ‘평균 4분 33초’였다. DB가 2023~2024 정규리그 1위에 올랐으나, 김현호는 이를 지켜봐야 했다.
모든 걸 지켜봐야 했던 김현호는 2023~2024시즌 후 FA를 맞았다. 많은 FA 선수들이 계약 소식을 알렸지만, 김현호는 5월 21일 ‘은퇴’라는 단어를 팬들에게 전해야 했다. 선수 유니폼을 벗어야 했다.

두 번의 큰 부상을 경험했지만, 어렵게 복귀하셨습니다. 특히, 2022~2023시즌에는 이전의 경기력을 조금은 회복한 듯했는데요.
복귀 초반만 해도, 어느 정도 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저의 몸은 예전 같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저는 빠른 발로 승부를 보던 선수였습니다. 그래서 한계점이 더 명확하게 드러났어요.
2023~2024시즌에는 기회를 거의 얻지 못했습니다.
현대 농구는 더 빠른 스피드를 요구합니다. 수비 강도 역시 더 세졌고요. 그렇지만 저는 달라진 템포를 쫓아가지 못했습니다. 몸싸움 강도 역시 마찬가지였고요. 그렇다고 해서, 제 공헌도가 어린 선수들에 비해 높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2023~2024시즌 종료 후 FA를 맞았습니다. 보여준 게 없었기 때문에, 마음이 복잡했을 것 같고요.
사실 시즌 끝나갈 무렵부터 은퇴를 준비했습니다. 또, 팀 성적이 좋았기 때문에, 팀원들과 즐겁게 지낼 수 있었습니다. 마무리를 잘 준비할 수 있었죠.
‘은퇴’가 공식적으로 결정됐습니다. ‘은퇴’를 생각하기는 했지만, 심경이 복잡할 것 같아요.
평생 농구만 했기 때문에, 허전한 건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마음을 빨리 다잡아야 합니다. 그리고 주어진 임무를 열심히 수행해야 합니다.

“팀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선수 유니폼을 벗은 김현호는 제2의 인생과 마주했다. 김현호의 미래가 막막할 수 있었다. 그때 DB가 김현호에게 손을 내밀었다. ‘전력분석 및 스카우터’ 임무를 김현호에게 맡긴 것.
‘전력분석 및 스카우터’는 눈에 드러나지 않는 스태프. 하지만 팀의 기반을 만드는 스태프이기도 하다. 코칭스태프와 선수들에게 경기 관련 자료를 정확하게 전달해야 하기 때문.
또, ‘전력분석 및 스카우터’는 성실함을 필요로 하는 직업. 김현호는 선수 시절처럼 집념을 보여줘야 한다. 김현호도 이를 알고 있었다. 그런 이유로, 마음을 새롭게 다졌다.

‘전력분석 및 스카우터’ 업무를 맡게 됐습니다.
선수로서 한계를 느꼈을 때, 감독님과 코치님께서 좋은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구단에서 마침 좋은 제안을 해주셨습니다. 그래서 저도 망설임 없이 결정할 수 있었습니다.
새롭게 배워야 하는 것들도 많을 것 같아요.
우선 저희 팀 전력분석 형을 따라다녀야 합니다. 바지를 붙잡고서라도, 그 형의 노하우를 배워야 해요.(웃음) 영상 편집과 보고서 작성 등 기초적인 것부터 배워야 합니다.
무엇보다 농구 경기를 정말 많이 봐야 할 것 같아요. 선수 시절에는 상대할 팀의 영상만 봤다면, 이제부터는 모든 농구 경기를 챙겨봐야 해요. 농구 용어와 영어, 전력분석에 필요한 부수적인 것들 또한 공부해야 하고요.
‘전력분석 및 스카우터’로서의 각오도 남다를 것 같아요.
원주에만 13년을 있었습니다. 이제는 원주가 저의 집 같아요. 그래서 저는 팀에 조금이라도 도움을 줘야 해요. 그렇게 하려면, 최선을 다해야 하고, 정말 많은 노력을 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응원해줬던 팬들에게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선수 생활은 끝났지만, 지원스태프로서 팀원들에게 힘을 주고 싶어요. 팀원들이 힘을 얻을 수 있도록, 노력을 더 많이 하겠습니다. 그리고 넘치는 응원을 주신 팬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씀 전하고 싶습니다. 앞으로도 저를 많이 응원해주시고, 잘 지켜봐달라는 말씀 역시 전하고 싶습니다.

일러스트 = 락
사진 제공 = KBL

[ⓒ 바스켓코리아.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