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코 인사이드] 정영삼은 여전히 농구와 함께 하고 있다
- BAKO INSIDE / 손동환 기자 / 2022-10-10 10:10:02

정영삼은 김태술(방송인)-양희종(안양 KGC인삼공사)-김영환(수원 KT)-함지훈(울산 현대모비스) 등과 함께 황금 세대로 꼽혔다. 2008 베이징 올림픽 최종 예선전에서는 고란 드라기치(슬로베니아)를 상대로 인상적인 경기력을 보여줬다.
그런 그가 2021~2022 시즌 종료 후 은퇴했다. 농구 팬들은 2022~2023 시즌부터 유니폼 입은 정영삼을 볼 수 없다. 하지만 농구공과 코트가 있는 곳에서 정영삼을 볼 수 있다. 정영삼은 여전히 농구와 함께 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영삼은 2007 KBL 국내신인선수 드래프트에서 전체 4순위로 LG의 부름을 받았다. 그렇지만 전자랜드가 최승태(현 안양 KGC인삼공사 코치)를 LG로 보냈고, LG는 전자랜드에 1라운드 지명권을 건넸다. 그래서 정영삼은 LG가 아닌 전자랜드에 입단했다.
약간의 사정이 있었다. 그러나 정영삼은 2007~2008 시즌부터 2020~2021 시즌까지 전자랜드에서만 활약했다. 전자랜드 소속으로 뛴 경기만 565경기. 전자랜드의 진정한 원 클럽 플레이어가 됐다.
그렇지만 전자랜드는 2020~2021 시즌 종료 후 구단 운영 종료를 선언했다. 정영삼 역시 전자랜드와 함께 할 수 없었다. 평생 입었던 유니폼을 입지 못한다는 건 정영삼에게 상실감으로 다가왔다. 정영삼은 어쩔 수 없이 전자랜드 유니폼을 벗어야 했다.
‘인천 전자랜드’는 정영삼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늘 말씀드렸듯이, 감사함이 큰 팀입니다. 언제 생각해도, 마음이 푸근해지고 편안해지는 곳이죠. 집이자 고향 같은 곳입니다.
전자랜드가 2020~2021 시즌 종료 후 구단 운영 종료를 선언했습니다. 여러 감정이 들었을 것 같은데요.
제가 농구를 그만 둔 건, 할 만큼 해서였습니다. 은퇴를 결심한 후, 오히려 홀가분했죠. 그렇지만 신인 때부터 함께 한 전자랜드가 운영을 그만한다는 건... 그래서 제가 은퇴할 때보다, 전자랜드의 마지막이 더 가슴 아팠던 것 같아요.
전자랜드 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어떤 거였나요?
먼저 신인 시즌이 기억에 납니다. 당시 전자랜드를 맡으셨던 최희암 감독님과 인연이 있었어요. 제가 중학교에 다닐 때, 최희암 감독님께서 “크면 연세대에 와야 된다(정영삼이 중학생일 때, 최희암은 연세대 감독이었다)”고 하셨거든요.(웃음) 그런 인연을 안고 있다가, 프로에서 만났어요. 또, 최희암 감독님께서는 저에게 신인치고는 많은 기회를 주셨어요. 여러모로, 첫 시즌은 설렘이 가득했던 것 같아요.
2018~2019 시즌도 생각납니다. 찰스 로드와 기디 팟츠가 맹활약해서, 저희 팀이 처음으로 챔피언 결정전에 갔거든요. 우승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죠. 그렇지만 그 기회를 놓쳤어요. 아쉬움이 컸습니다.

전자랜드는 구단 운영 종료를 선언했고, KBL은 새로운 구단 운영 주체를 찾았다. 그리고 2021년 6월. 전자랜드를 인수한 기업이 결정됐다. 한국가스공사였다.
전자랜드는 인천을 연고지로 삼았지만, 한국가스공사는 본사가 있는 대구를 홈 코트로 선택했다. 대구는 정영삼에게 추억이 있는 곳이다. 정영삼이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낸 곳이 대구이기 때문.(정영삼은 대구 대성초등학교-계성중학교-계성고등학교를 나왔다)
한국가스공사는 2021~2022 시즌부터 KBL의 새로운 식구가 됐다. ‘창단 첫 우승’이라는 원대한 목표도 삼았다. 하지만 2021~2022 시즌은 정영삼에게 마지막이 됐다.
한국가스공사가 전자랜드를 인수했습니다.
한국가스공사는 제가 있을 곳이 아닌 것 같았어요. 너무 한 회사에만 오래 있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왠지 모르게 그랬어요. 끝이 보이는 느낌이었고, 이제 그만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연고지가 대구로 변경됐습니다. 학창시절을 보냈던 곳인데요.
앞서 말씀드렸지만, 내려갈까 말까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만할까?’라는 마음이 있었거든요. 대구가 저에게 고향 같은 곳이지만, 대구에서 1년 더한다고 해서 제 인생이 바뀔까라는 생각도 컸거든요.
그렇지만 대구에서 농구한다는 의미는 컸습니다. 그래서 선수 생활을 조금 더 잘 마치고 싶었어요.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신경도 많이 썼던 것 같아요.
그렇지만 기대했던 만큼의 기량이 나오지 않았는데요. 기량도 ‘마지막’이라는 마음에 영향을 미쳤을까요?
(정영삼은 2021~2022 시즌 정규리그 35경기에 나섰지만, 경기당 8분을 나서는데 그쳤다)
그건 아니었던 것 같아요. 전성기만큼은 아니더라도, 10~15분 정도는 책임질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앞서 말씀 드렸듯이, 전자랜드의 원 클럽 플레이어로 남고 싶은 마음이 컸던 것 같아요.
지친 것도 있었어요. 어떤 일을 하든,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잖아요. 그래서 ‘마지막’이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2021~2022 시즌 끝난 후에 감독님과 ‘은퇴’를 결정했습니다.
선수들과는 어떤 이야기를 나누셨나요?
“고마웠다”고 이야기해주는 후배들이 많았습니다. 대부분은 일반적인 주제로 대화를 나눴던 것 같아요.(웃음) 그런데 (정)효근이가 “다쳐서 정말 죄송했다. 재활하고 건강하게 돌아와서, 형과 우승을 같이 하고 싶었는데... 형이 1~2년 정도 더 하실 줄 알았는데, 함께 하지 못해서 아쉽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1~2년 더 해서 뭐하냐. 너희가 더 열심히 하면 돼”라고 이야기했습니다.(웃음)
전자랜드와 한국가스공사는 다른 기업이지만, 선수단 역사는 동일합니다. 그런 의미로 보면, 정영삼 선수는 한 팀에서만 뛴 프랜차이즈 스타입니다. 한국가스공사에서 지도자 제의를 받지는 않으셨나요?
저도 지도자를 꿈꾸고 있지만, 팀마다 사정이 있습니다. 지금 당장 코치로 합류하지 못하는 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요.(웃음)
10개 구단 선수들 모두 비시즌 훈련을 받고 있습니다. 은퇴한 선수들이 자신의 위치를 실감하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선수 때는 팀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게 일상이었죠. 가족들과 함께 있는 시간이 길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지금은 거꾸로 됐어요.(웃음) 아이들이 처음에는 너무 좋아했는데, 지금은 일상이라서...(웃음) 하지만 가족과 오랜 시간 함께 할 수 있어서서, 좋은 게 많은 것 같아요.
아들이 농구를 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농구 이야기도 많이 하시나요?
제가 누군가에게는 농구 관련 조언을 해야 하는 사람이지만, 아들에게는 평범한 아빠입니다. 농구 선생님이 아니에요. 물론, 어쩌다가 아들한테 농구 이야기를 할 때도 있지만, 아들은 제 말을 듣지 않아요.(웃음) 아마 잔소리로밖에 느끼지 않을 거예요.

정영삼은 은퇴 후 전국을 돌아다녔다. 이유는 단 하나였다. 농구와 함께, 농구를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하기 위해서였다.
현역 시절 ‘돌파의 달인’으로 불렸던 정영삼은 자신의 노하우를 다양한 사람에게 전수하고 있다. 엘리트 선수들뿐만 아니라, 동호인과 유소년 클럽 선수들에게도 농구에 필요한 덕목과 기술을 가르치고 있다.
정영삼도 인생과 농구를 다시 한 번 배웠다. 농구를 보는 눈이 달라졌고, 농구를 보는 시야도 넓어졌다. 그리고 인천에서 ZERO3 ELITE BASKETBALL_LAB을 열었다. 대상은 엘리트 선수들이지만, 목적과 이유는 하나다. 농구와 함께 하기 위해서다.
ZERO3 ELITE BASKETBALL_LAB을 열었습니다.
은퇴를 하게 되면, 지도자를 하고 싶었습니다. 제가 경험하고 느꼈던 것들을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제 열정을 담아,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선수로 발전할 수 있는지 가르쳐주고 싶었어요. 그런 마음이 점점 커졌고, 8월부터 센터를 열었습니다. 엘리트 농구를 하고 있는 친구들이나 엘리트 농구를 하려는 친구들을 주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제 시작하고 있는 단계라고 보시면 됩니다.
다른 센터와 차별화되는 요소가 있을까요?
어린 친구들이 보통 화려한 걸 많이 쫓아갑니다. 공격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죠. 그렇기 때문에, 공격과 수비 모두 가르치고, 기본적인 것과 세심한 요소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차근차근 단계를 밟으면서 배울 수 있도록, 커리큘럼을 작성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인원을 수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1대1이나 1대2 수업 위주입니다. 저를 찾아온 수강생들에게 집중하기 위해서죠. 또, 어떤 운동을 가르치든, 제가 몸으로 부딪히려고 합니다. 그게 수강생들에게 더 와닿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농구를 보는 관점이 달라졌을 것 같아요.
은퇴를 결정한 후, 농구를 하는 곳이나 농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라면 어디든 가고 싶었습니다. 농구 동호인과 유소년 캠프, 선수를 꿈꾸는 아이들과 클럽에서 농구를 하고 있는 아이들 모두 만나고 있어요.
제가 농구를 알려준다고는 하지만, 저 또한 저에게 배우는 사람들로부터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가르치는 사람들에게 맞춰 농구를 알려주다 보니, 농구를 더 멀리 보고 더 넓게 보는 것 같아요.
인생의 폭도 넓어지셨나요?
예전에는 ‘최고가 돼야지’라는 마음이 컸습니다. 성적에만 얽매였고, 성적과 기록만 집중해서 봤습니다.
지금은 ‘최고’라는 목표를 설정하기보다, 사람한테 맞는 목표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A라는 사람의 역량이 이것 밖에 안 되는데, 무작정 그 이상을 강조할 수 없잖아요. 그건 엘리트 선수들에게도 적용되는 사항이라고 봐요.
또, 사람마다 스타일이 다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사람의 스타일에 맞게 접근해야 합니다. 저 역시 제 가치관이 아닌, 배우는 사람의 가치관이나 스타일에 맞추려고 합니다. 제가 하는 말이 잘못된 것도 많을 거니까요.
앞으로의 목표는 어떻게 되시나요?
제가 하는 농구는 끝이 났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제 농구 인생이 끝난 건 아닙니다. 지금은 누군가에게 농구를 알려주고, 누군가에게 농구를 가르치고 있을 뿐입니다.
저를 찾아오는 사람들의 능력과 목표는 모두 다릅니다. 저를 찾아오는 사람들이 원하는 만큼 향상할 수 있도록, 제가 제 역할을 다해야 합니다. 좋은 선생님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해요.
무엇보다 농구가 있고 농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에 함께 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지도자의 꿈을 이루고 싶어요. 꼭 프로 팀의 감독이나 코치가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사진 = KBL-정영삼 제공
일러스트 = 정승환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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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동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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