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1 NBA 역사 속 오늘] 레임비어와 맥헤일의 데뷔 날!
- NBA / Jason / 2016-10-11 13:39:27

[바스켓코리아 = 이재승 기자] 10월 11일(이하 한국시간) NBA에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
이날은 1980년대를 수놓은 두 명의 올스타가 데뷔한 날이다. 그 주인공은 바로 빌 레임비어(센터, 211cm, 111kg)와 ‘Black Hole’ 케빈 맥헤일(포워드, 208cm, 95kg).
레임비어는 이후 디트로이트를 대표하는 선수로 자리매김했고, 디트로이트가 지난 1989년과 1990년에 2연패를 달성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맥헤일의 업적도 뒤지지 않는다. 맥헤일은 래리 버드, 로버트 패리쉬와 함께 BIG3로 나서면서 보스턴읜 80년대에 보스턴에 무려 세 번이나 우승하는데 절대적인 역할을 했다.
이들 둘은 나란히 올스타 경력에 우승 경험까지 갖추고 있는 당대를 대표하는 스타였다. 동시에 감독 경험까지 갖추고 있어 선수생활을 마친 이후에도 꾸준히 농구계에서 큰 역할을 맡아왔다. 레임비어는 WNBA를 대표하는 감독으로 우뚝 서 있으며, 맥헤일은 단장과 감독까지 여러 역할을 맡았다. 비록 지난 시즌 초반에 휴스턴 로케츠로부터 경질 당했지만, 지난 해까지 굵직굵직한 경력을 이어왔다.
레임비어와 맥헤일은 지난 1980년 10월 11일, 같은 날에 코트를 밟았다. 먼저 레임비어는 보스턴 셀틱스를 상대로 경기에 나섰다. 지난 1979 드래프트에서 3라운드 21순위로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의 부름을 받은 레임비어는 클리블랜드에서 한 시즌 반을 뛴 뒤 디트로이트로 트레이드됐다. 디트로이트는 클리블랜드로부터 레임비어 케니 카를 받았다. 대신 클리블랜드로 현 전주 KCC의 코치인 필 허바드와 폴 모케스키 그리고 1982 1라운드 티켓을 건넸다.
골밑 수비 보강을 원했던 디트로이트는 1라운드 지명권을 포기하면서까지 레임비어를 데려왔다. 이 트레이드를 통해 디트로이트는 확실히 전력보강에 나섰다. 비록 우승에 도전하기까지 적잖은 시간이 소요됐지만, 레임비어의 합류로 디트로이트 ‘배드보이스’가 완성됐다. 레임비어는 이후 지난 1993년 12월 2일에 코트를 떠나기까지 디트로이트 유니폼을 입었다. 그의 등번호 40번은 디트로이트의 영구결번으로 지정되어 있다.
레임비어는 지난 1986년에 리바운드 1위를 차지하는 등 디트로이트에 에너지를 불어넣었다. 앞선에서 조 듀마스와 아이제아 토마스가 있었지만, 디트로이트는 골밑 전력을 구축하는데 난항을 겪었다. 확실한 백코트를 보유하고 있는 만큼 골밑에서 리바운드와 궂은일을 해줄 재원이 필요했다. 레임비어는 바야흐로 가장 확실한 적임자였다. 전투적인 자세로 코트에 나서는 그는 1980년대 디트로이트를 거론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존재다.
하지만 레임비어의 데뷔전은 다소 초라했다. 클리블랜드에서 벤치에서 나선 그는 무득점에 그쳤다. 공교롭게도 상대는 맥헤일이 속해 있는 보스턴. 어려웠던 데뷔전을 마친 그는 첫 시즌에 81경기에 나서 경기당 30.4분을 뛰며 평균 9.8점 8.6리바운드 2.7어시스트 1블록을 기록했다. 이후 디트로이트로 트레이드된 이후에는 해마다 성장을 거듭하면서 디트로이트의 페인트존을 확실히 사수했다.
같은 날 맥헤일도 출격했다. 맥헤일은 지난 1980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3순위로 지명된 확실한 유망주였다. 당시에는 3라운드 이상까지 지명되는 선수들이 많았음을 감안하면 맥헤일이 얼마나 돋보인 선수였는지 알 수 있다. 이후 그는 1993년에 은퇴하기까지 보스턴에서만 뛴 원클럽맨으로 남았다. 그의 등번호 32번은 보스턴의 영구결번으로 지정되어 있다. 그는 루키 퍼스트팀을 시작으로 올스타(7회), 디펜시브팀(6회), 식스맨상(2회)까지 다수의 수상경력까지 갖추고 있다.
특히 우승을 차지한 지난 1984년을 시작으로 2회 연속 리그 최고의 식스맨으로 선정되면서, 보스턴의 벤치 공격을 이끌었다. 데뷔 시즌부터 평균 10점을 올린 그는 전성기에는 평균 20점을 웃도는 득점력을 선보였다. 1984년에 처음으로 올스타에 선정된 이후 1986년부터는 6회 연속 올스타에 뽑히는 등 도합 7번이나 올스타에 이름을 올리는 등 남부럽지 않은 이력을 쌓았다. 뿐만 아니라 NBA 50주년 기념 팀에도 포함되는 기쁨을 누렸다.
데뷔전에서도 맥헤일의 싹은 남달랐다. 보스턴에 이미 M.L. 카, 제럴드 헨더슨(필라델피아 헨더슨 아님) 그리고 버드가 공격을 주도하면서 점수 차는 일찌감치 벌어졌다. 보스턴은 이날 130점을 폭발시키면서 클리블랜드를 일찌감치 따돌렸다. 그 덕이었을까 맥헤일도 적잖은 시간 코트를 밟을 수 있었다. 필드골과 자유투까지 고루 곁들인 그는 이날 10점을 올리면서 보스턴의 승리에 일조했다.
남부럽지 않은 선수생활 이후에도 이들의 능력은 빛났다. 레임비어는 WNBA의 디트로이트 샥의 감독으로 부임했다. 지난 2002년을 시작을 2009년까지 7년 동안 선수들을 잘 이끌었다. 디트로이트는 레임비어 감독이 부임한 2002년은 물론 2003년과 2006년까지 세 번의 우승을 차지했다. 레임비어는 디트로이트에만 도합 5번의 우승을 안기며 디트로이트 농구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이후 그는 미네소타에 코치로 있기도 했다. 2009년을 끝으로 디트로이트 샥의 감독직을 내려놓은 그는 미네소타 코칭스탭으로 합류했다. 당시 미네소타에는 케빈 러브가 홀로 팀을 이끌고 있었다. 하지만 좋은 성적과는 거리가 멀었다. 두 시즌 동안 미네소타 생활을 뒤로 한 그는 2013년부터 WNBA 뉴욕 리버티에서 지휘봉을 잡고 있다. 뉴욕은 지난 시즌 플레이오프에는 나섰지만, 우승에는 실패했다.
맥헤일은 은퇴 이후 2005년과 2008-2009 시즌에 잠시 미네소타의 감독으로 부임하기도 했다. 지난 1993년부터 미네소타의 단장이 된 그는 1995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5순위로 케빈 가넷을 지명하며 이목을 집중시켰다. 미네소타를 가넷 중심의 팀으로 만들었으며, 가넷이 떠난 이후에는 케빈 러브(클리블랜드)를 불러들였다. 그러나 미네소타는 가넷이 팀을 떠난 이후는 물론 지난 2004년 이후 단 한 번도 플레이오프에 나서지 못했다.
맥헤일은 미네소타를 떠나 휴스턴 로케츠에서 지휘봉을 잡았다. 지난 2011-2012 시즌부터 휴스턴의 감독이 된 그는 첫 시즌을 제외하고 팀을 꾸준히 플레이오프로 견인했다. 지난 2014-2015 시즌에는 서부컨퍼런스 파이널에 팀을 올려놓았다. 하지만 정작 지난 시즌에 휴스턴이 다소 부진한 출발을 보이자 11경기 만에 해고됐다. 직전 시즌 팀을 3라운드까지 이끈 감독을 조기에 경질한 것은 실로 이례적이었다.
지난 1980년 오늘에 코트를 밟은 이들 둘은 여전히 농구계에서 빠질 수 있는 거목들이다. 레임비어는 여자농구로 무대를 옮겨 명장으로 거듭났으며, 맥헤일은 팀버울브스 프랜차이즈가 자리를 잡는데 적잖은 공헌을 했다. 휴스턴에서도 팀을 높은 곳으로 이끄는 등 경영은 물론 지도력까지 인정을 받았다. 미네소타에서 단장과 코치로 재회할 수 있었지만, 정작 성사되진 않았다.
사진 = NBA Lo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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