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BA Inside] 21시즌 코트 누빈 가넷, 그의 위대했던 여정(1)
- NBA / Jason / 2016-09-25 00:03:32

[바스켓코리아 = 이재승 기자] 미네소타 팀버울브스의 ‘The Big Ticket’ 케빈 가넷(센터-포워드, 211cm, 114.8kg)이 끝내 코트를 떠났다. 가넷은 최근 미네소타와의 계약해지협상에 나섰다. 은퇴를 위해서였다. 지난 시즌에도 부상으로 많은 경기에 나서지 못했던 그는 불혹을 넘긴 만큼 이제는 농구공을 내려놓기로 결심했다. 가넷은 지난 여름에 미네소타와 2년 1,650만 달러의 계약을 체결했다. 적어도 다가오는 2016-2017 시즌을 끝으로 코트를 떠날 것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가넷은 끝내 정들었던 농구공을 내려놓기로 했다.
가넷의 여정은 실로 대단했다. 지난 1995년부터 시작된 그의 NBA 생활은 데뷔 때부터 화제였다. 이후 그는 미네소타를 대표하는 선수로 발돋움했다. 미네소타의 각종 누적 기록은 모두 그가 싹 다 갈아치웠다. 심지어 긴 시간 동안 동부 여행을 하고 왔음에도 미네소타에서 그가 남긴 행적들을 따라갈 이는 아무 것도 없었다. 미네소타를 떠나 보스턴 셀틱스에서 우승을 차지했고, 이후 브루클린 네츠를 거쳐 다시 미네소타로 돌아오기까지 가넷은 우리들에게 많은 이야기를 몸소 들려줬다.
[드래프트 당시 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3sQn4A8sCvM
늑대 군단의 심장!
가넷의 영향력은 엄청났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곧바로 NBA로 뛰어들었다. 미네소타는 1995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5순위로 가넷을 지명했다. 당시 미네소타의 케빈 맥헤일 단장은 가넷의 잠재력을 높이 평가했다. 많은 이들이 그를 1라운드 로터리픽으로 지명한 것에 대한 의구심을 숨기지 못했다.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인데다 보여준 것이 그리 뚜렷하진 않았다. 고등학교에서 탁월한 기량을 선보였다지만, 5순위라는 높은 순번으로 그를 지명하기에는 위험성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가넷은 데뷔 때부터 자신의 입지를 잘 다졌다. 이내 주전 자리를 꿰찼다. 첫 시즌에 평균 10.4점 6.3리바운드 1.8어시스트 1.1스틸 1.6블록을 기록하면서 다재다능한 모습을 뽐냈다. 그는 드래프트 당시 포지션이 스몰포워드였다. 3년차 시즌부터 본격적인 파워포워드로 나서기 시작했고, 이후 리그를 대표하다 못해 리그 최고의 빅맨으로 떠올랐다. 공수를 가리지 않고 내외곽을 넘나들 수 있는 그의 능력은 약체인 미네소타가 필요로 하는 가장 확실한 인재였다.
그는 2년차에 풀타임 주전으로 올라선 그에게 2년차 징크스는 없었다. 평균 17점 8리바운드 3.1어시스트 1.4스틸 2.1블록을 올리면서 금세 팀을 대표하는 선수가 됐다. 곧바로 올스타에 선정되면서 굵직굵직한 이력을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이후 가넷은 미네소타를 넘어 서부를 대표하는 선수가 됐다. 가넷이 좋은 성적을 기록하면서 각 구단들은 고졸 선수들에 시선을 본격적으로 돌리기 시작했다. 가넷의 성공이 가져다 준 여파는 실로 컸다.
이후 가넷은 승승장구했다. 가넷이 들어오기 전 황무지와 같았던 미네소타는 어느덧 플레이오프를 노릴 수 있는 팀으로 변모했다. 가넷은 미네소타의 공격과 수비는 물론 각종 살림까지 모든 것을 책임졌다. 그는 직장폐쇄가 있었던 지난 1998-1999 시즌부터 ‘20-10’ 고지를 점령했다. 엘리트 빅맨의 제 1 척도라 할 수 있는 득점과 리바운드에서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바야흐로 가넷의 전성시기가 도래했다.
이를 시작으로 가넷은 무려 9시즌 내리 평균 20점 10리바운드 이상을 꾸준히 기록했다. 하물며 이 기간 동안 꾸준히 평균 4어시스트 이상을 보태면서 9시즌 연속 ‘20-10-4’를 기록하는 전인미답의 기록을 쌓았다. 이 뿐만이 아니다. 1999-2000 시즌부터는 평균 어시스트가 5개를 넘어섰다. 이 때를 시작으로 가넷은 6시즌 연속 ‘20-10-5’를 작성했다. 종전 래리 버드의 기록(5시즌)을 넘어선 것. 가넷이 코트에서 어떤 선수인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지표다.
가넷이 이와 같은 기록을 꾸준히 달성하는 동안 미네소타도 플레이오프를 꾸준히 두드렸다. 다른 팀들은 미네소타에서 가넷을 중점적으로 막으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그를 막기는 쉽지 않았다. 큰 신장(216cm라 봐야하나, 본인이 굳이 211cm라고)에 수려한 슛터치를 갖추고 있는데다 골밑에서 상대를 요리하는 기술까지 두루 갖췄다. 여기에 확실한 스크리너로서 동료들의 공격을 돕는 등 그가 갖고 있는 기술은 빅맨들이 지녀야하는 기술의 총집합과도 같았다. 여기에 수비에서의 존재감은 가히 남달랐다. 대인수비와 지역방어를 가리지 않는데다 도움수비를 너끈히 펼칠 수 있는 등 수비에 대한 이해도도 최고 수준이었다.
상대는 가넷만 수비하면 미네소타를 넘을 수 있었지만, 막상 수비하기 쉽지 않았다. 가넷을 뚫어내는 것도 쉽지 않았다. 가넷은 승부욕이 남달랐다. 승리에 대한 열망은 다른 어느 누구에도 뒤지지 않았다. 미네소타는 1997년부터 꾸준히 플레이오프 진출에 성공했다. 가넷을 호명한 이후 팀은 확실히 달라졌다. 이에 미네소타는 일찌감치 가넷을 붙잡기로 했다. 1997-1998 시즌 도중 미네소타는 가넷에게 엄청난 연장계약을 안겼다. 계약기간 6년 1억 2,600만 달러. 당시 계약기간의 제약이 없었다 하더라도 실로 상당한 금액이었다. 그만큼 미네소타가 가넷을 중심으로 팀을 구축하겠다는 의지가 강력했다.
가넷도 책임감을 더욱 가졌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가넷에게 집중된 몸값은 미네소타의 전력보강을 가로 막았다. 다른 수준급의 선수들을 영입하기 쉽지 않았다. 합당한 몸값을 제시하지 못하면서 이적시장에서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플레이오프에는 꾸준히 나섰지만, 2003년까지 1라운드에서 모두 탈락했다. 그러는 동안 좋은 신인을 지명하지 못했다. 여기에다 조 스미스의 이면계약 건이 터지면서 미네소타는 향후 5년 동안 1라운드 티켓을 박탈당했다. 당장 1라운더를 데려올 수 있는 통로까지 막히게 됐다. 가넷은 플레이오프에서 번번이 고개를 숙였다. 그가 엄청난 활약을 펼쳐도 정작 팀은 승리할 수 없었다.
미네소타로서 아쉬운 순간은 레이 앨런 지명이었다. 1996 드래프트에서 미네소타는 1라운드 5순위로 앨런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나 미네소타는 곧바로 밀워키와의 트레이드를 단행했다. 앨런을 보내는 대신 밀워키로부터 스테판 마버리와 1998 1라운드 티켓(라쇼 네스트로비치)을 바꾸기로 했다. 앨런을 데리고 있었다면 최고의 원투펀치를 구축했겠지만, 이미 물은 엎질러진 뒤였다. 문제는 마버리도 오래지 않아 트레이드를 원했다. 미네소타는 마버리도 오랫동안 데리고 있을 수 없었다. 마버리는 더 많은 역할을 바랐고, 가넷이 기둥이었던 미네소타와의 견해 차이가 너무나도 컸다. 가넷은 2003년에는 올스타 MVP에 뽑혔다(조던의 마지막 올스타전).
적잖은 시간이 흐른 뒤인 2003년. 미네소타는 오프시즌의 화두로 떠올랐다. LA 레이커스가 칼 말론과 게리 페이튼을 영입한 것 못지않게 이적시장을 뜨겁게 했다. 미네소타는 라트렐 스프리웰과 샘 커셀을 영입했다. 가넷을 받쳐줄 수 있는 선수들을 불러 모으며 BIG3를 구축했다. 미네소타는 일약 우승후보로 떠올랐다. 리그 최고의 선수인 가넷의 곁에 지원사격을 가해줄 수 있는 올스타 선수들이 들어온 것. 가넷은 이 때 정규시즌 MVP에 선정됐다. 미네소타가 가장 잘한 트레이드로 미네소타는 끝내 1라운드를 뚫어내면서 우승에 대한 기대치를 높였다. 서부컨퍼런스 세미파이널에서는 웨버와 페이아 스토야코비치가 이끄는 새크라멘토 킹스와 명승부를 펼친 끝에 7차전 접전 끝에 두 번째 관문을 넘어섰다.
# 스프리웰 트레이드
미네소타 팀버울브스
in 라트렐 스프리웰,
out 터렐 브랜든, 마크 잭슨
뉴욕 닉스
in 키스 밴 혼
out 라트렐 스프리웰,
애틀랜타 호크스
in 터렐 브랜든, 랜디 홀콤
out 글렌 로빈슨, 2006 2라운드 티켓,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
in 글렌 로빈슨, 마크 잭슨, 2006 2라운드 티켓,
out 키스 밴 혼, 랜디 홀콤
# 커셀 트레이드
팀버울브스 get 샘 커셀, 어빈 존슨
밀워키벅스 get 앤써니 필러, 조 스미스
하지만 미네소타는 거기까지였다. 미네소타는 ‘Famers4’가 이끄는 레이커스에 결국 무릎을 꿇었다. 이후 미네소타는 쇠락했다. 자유계약선수가 된 스프리웰은 미네소타의 계약을 거절했다. 연간 1,200만 달러 정도의 계약을 준비했으나, 스프리웰은 가족부양을 이유로 연간 2,000만 달러짜리 고액 계약만을 고집했다. 결국 미네소타와 스프리웰의 협상은 일찌감치 결렬됐다. 이후 스프리웰은 NBA에서 종적을 감췄다. 커셀이 남아 있었지만, 역부족이었다. 결국 커셀도 2005년 여름에 LA 클리퍼스로 트레이드됐다. 스프리웰과 커셀과 정이 채 들기 전에 떠나면서 가넷은 다시 홀로 남게 됐다. 2004년은 가넷이 미네소타에서 맛 본 마지막 플레이오프였으며, 미네소타를 가장 높은 곳으로 이끈 해이기도 했다.
셀틱 프라이드의 기수!
2005년부터 2007년까지 3년 동안 미네소타는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다. 드래프트에서 지명한 1라운더들은 죄다 기대이하의 모습을 보였고, 얼마 지나지 않아 NBA에서 모습을 볼 수 없었다. 미네소타의 경영진에서 유망주들을 데려오지 못했고, 이적시장에서 번번이 고배를 마시는 사이 미네소타는 특급 선수들이 오지 않는 외딴곳이 됐다. 가넷도 지쳐갔다. 급기야 그가 12시즌을 뛴 미네소타를 떠나기로 결심했다. 팀버울브스 프랜차이즈의 상징인 그조차도 이제는 미네소타가 아닌 다른 곳에 뛰길 원했다. 던컨이 무려 네 번째 우승반지를 챙기는 사이 그는 플레이오프에 조차 오르지 못했다.
마침 보스턴이 달려들었다. 보스턴은 다수의 현역선수(유망주)와 복수의 1라운드 티켓을 매물로 가넷을 영입하는데 성공했다. 가넷 트레이드에 앞서 보스턴은 트레이드로 앨런을 품었다. 기존의 폴 피어스에 앨런과 가넷까지 들어오면서 보스턴이 막강한 BIG3를 갖추게 됐다. 보스턴은 일약 우승후보로 떠올랐다. 여기에 보스턴은 제임스 포지(클리블랜드 코치)까지 데려오면서 이들 3인방을 받칠 선수까지 데려왔다. 보스턴의 데니 에인지 단장은 협상 도중 레존 론도(시카고)와 켄드릭 퍼킨스(무직)만은 끝까지 고수했다. 이들을 지킨 채 트레이드를 끌어냈고, 가넷을 데려온 것이다.
# 가넷 트레이드
셀틱스 get 케빈 가넷
울브스 get 라이언 곰스, 세바스찬 텔페어, 제럴드 그린, 알 제퍼슨, 디오 라틀리프, 2009 1라운드 티켓 2장
*2009 드래프트에서 조니 플린과 웨인 엘링턴 지명
[BIG3 결성] https://www.youtube.com/watch?v=uB1Eb7PFcNE
[BIG3 출범식 1] https://www.youtube.com/watch?v=DfAtxXSkcfI
[BIG3 출범식 2] https://www.youtube.com/watch?v=DfAtxXSkcfI
[BIG3 출범식 3] https://www.youtube.com/watch?v=By83nOS5xdY
가넷은 셀틱스 프랜차이즈가 다시 일어서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보스턴에서 6시즌을 뛰는 동안 보스턴은 동부를 호령했다. 6시즌 내내 동부컨퍼런스 세미파이널에 진출했다. 2008년(우승), 2010년(컨퍼런스 우승), 2012년(동부 결승 진출)까지 짝수 해에 동부컨퍼런스 파이널에 오르는 등 많은 승리를 맛봤다. 가넷을 영입한 보스턴은 곧바로 66승을 쓸어 담으면서 리그를 주름 잡았다. 가넷은 ‘올 해의 수비수’에 선정되는 쾌거를 이룩했다. 플레이오프에서는 조 존슨(유타)이 이끄는 애틀랜타 호크스, 르브론 제임스의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와 당시 동부의 패자였던 디트로이트 피스턴스를 어렵사리 꺾고 파이널에 올랐다. 이후 파이널에서 코비 브라이언트가 이끄는 레이커스를 맞아 보스턴은 6차전에서 낙승을 거두면서 우승을 차지했다. 1995년에 데뷔한 가넷이 드디어 생애 첫 챔피언트로피를 들어올렸다.
가넷은 파이널 MVP에 선정되지 못했다. 피어스와 함께 공동 MVP가 됐어도 무방한 활약을 펼쳤다. 하지만 그는 우승에 더 큰 쾌감을 느꼈다. 트로피를 품에 안은 채, 모자를 한껏 눌러쓴 그는 ‘Anything is possible’이라고 크게 소리쳤다. 그 동안 많은 시간을 돌아간 그가 차지한 첫 우승에 대한 감동과 여운은 실로 컸다. 던컨과 브라이언트가 좋은 동료들과 함께 서부를 지배하고 우승을 나눠가지는 사이 가넷은 항상 뒷전이었다. 그랬던 그도 보스턴에서 피어스와 앨런이라는 훌륭한 선수들과 함께 비로소 첫 우승을 일궈낸 것이다. 동시에 피어스와 앨런도 처음으로 우승트로피에 입맞춤했다.
[우승까지의 여정] https://www.youtube.com/watch?v=HaU4W-Qq7Ds
[가넷의 포효!] https://www.youtube.com/watch?v=zyjOy7fRzs0
강골이었던 가넷은 2008년에 큰 부상을 당했다. 부상과 담을 쌓은 것으로 여겨졌던 그였지만, 생애 첫 중상과 마주했다. 가넷은 시즌을 마감했다. 보스턴은 2009 플레이오프에서 시카고 불스, 올랜도 매직과 진땀나는 승부를 연출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드와이트 하워드(애틀랜타)를 막지 못한 것이 컸다. 그의 부재는 역시나 컸다. 피어스는 가넷이 다친 이후에도 그가 벤치를 지켜주길 바랐다. 평상시에도 가넷은 작전시간이 요청되면 가장 먼저 나와 동료들을 맞이하고 수건을 건넸다. 중요한 순간이면 강한 기합을 불어넣으며 동료들에게 승리에 대한 의욕을 불어넣은 그였다.
보스턴의 연속우승은 물거품이 됐다. 2010년에도 결승에 올랐지만, 6차전에서 퍼킨스가 무릎 부상을 입고 만 것. 보스턴은 결국 7차전에서 레이커스에 졌다. 퍼킨스가 다치지 않았다면 이야기가 달라졌을 수도 있다. 이전에 가넷의 부상이 없었다면, 보스턴이 3연패를 달성했을지도 모를 이야기다. 하지만 가정은 없다. 가넷의 두 번째 우승도전은 물거품이 됐다. 후일담이지만, 당시 보스턴의 네이트 로빈슨이 레이커스 라커룸을 흘깃 보고 왔다. 이를 본 가넷은 로빈슨에게 큰 고함을 질렀다. 가넷은 분에 사무칠 정도로 2010 파이널에서의 패배에 크게 아쉬워했다.
이후에도 보스턴은 동부를 대표하는 팀이었다. 정규시즌에서의 승수는 갈수록 떨어졌지만, 큰 경기에서의 위력은 여전했다. 노쇠화와 마주한 BIG3였지만, 플레이오프에서의 저력은 여전했다. 여기에 론도의 성장이 동반되면서 보스턴은 꾸준히 동부를 호령할 수 있었다. 2011 플레이오프에서는 2라운드에서 제임스가 이끄는 마이애미에 4대 1로 패했다. 2010년 여름, 제임스와 크리스 보쉬는 마이애미로 이적했다. 마이애미는 제임스, 웨이드, 보쉬를 모두 앉혔고, 마이크 밀러와 유도니스 해슬럼도 붙잡으며 우승전력을 갖췄다. 보스턴은 BIG3를 규합한 이후 처음으로 제임스에 백기를 들었다.
2012년에도 마찬가지. 보스턴은 동부컨퍼런스 파이널까지 오르는 저력을 선보였다. 그야말로 마지막 불꽃이었다. 첫 두 경기를 내줬지만, 내리 3연승을 거두면서 다시 한 번 더 결승 진출에 대한 희망을 봤다. 그러나 보스턴 선수들의 발은 6차전, 7차전이 이어질수록 느려졌다. 6차전에서 제임스의 원맨쇼(45점 15리바운드 5어시스트)에 당했고, 7차전에서는 속절없이 무릎을 꿇었다. 가넷을 필두로 노장선수들이 마지막까지 분전했지만, 역부족이었다. 7차전 막판, 보스턴의 닥 리버스 감독은 타임아웃을 불렀다. 그리고 가넷, 피어스, 앨런을 불러들였다. 마이애미팬들도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최선을 다해 자신들을 상대해준 상대팀에 대한 가장 멋진 예우였다.
[닥 리버스 감독의 마지막 작전시간] https://www.youtube.com/watch?v=bNg8XklNU1Y
가넷은 2012년부터 센터로 나서기 시작했다. 보스턴이 마땅한 센터감을 찾지 못했고, 때마침 가넷의 발도 느려지기 시작했다. 큰 부상이 없던 그가 2009년에 당한 부상은 그의 경기력을 크게 앗아간 느낌마저 들었다. 센터로 나선 그는 남다른 효율성을 발휘했다. 보스턴 유니폼을 입은 직후 개인통산 평균 20점대가 무너졌지만, 그는 여전히 코트 위에서 수비를 통해 제 몫 이상을 해내는 선수였다. 30대 중반의 센터치고는 수비에서 발휘하는 영향력은 여전했다. 비록 운동능력은 많이 상실된 상태였지만, 리바운드와 스크린을 필두로 자신이 여전히 갖추고 있는 기술들을 잘 활용했다. 론도 중심이 된 팀에서 가넷의 스크린은 여전히 빼놓을 수 없는 수단이었다.
하지만 가넷도 보스턴과 작별을 고했다. 보스턴의 에인지 단장은 BIG3 시대를 종언할 뜻을 여러 차례 드러냈다. 앨런, 피어스를 매물로 여러 차례 트레이드를 시도했다. 트레이드가 이뤄졌다고 취소된 적도 있었다. 이에 지친 앨런은 2012년 여름에 마이애미로 이적했다. 앨런은 론도와의 관계와 팀내에서의 입지에서 적잖은 불만을 가졌다. 에이브리 브래들리의 등장 이후 벤치에서 나섰다. 하지만 마이애미에서도 벤치에서 출격해야 했고, 계약규모도 훨씬 적었다. 가넷은 앨런이 라이벌팀인 마이애미로 향하자 그와 연락하지 않겠다고 공언하기도 했다. 처음엔 앨런의 인사를 무시했다. 하지만 플레이오프에서 다시 만난 가넷은 앨런에게 손을 내밀었다. 두 선수는 팔을 부딪치며 하이파이브를 나눴다. 비록 짧은 순간에 지나갔지만, 멋진 순간으로 회자될 만하다.
사진 = NBA Mediacentr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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