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BA Inside] 19시즌 치른 던컨의 위대한 여정!
- NBA / Jason / 2016-07-12 11:14:40

[바스켓코리아 = 이재승 기자] 샌안토니오 스퍼스의 ‘The Big Fundamental’ 팀 던컨(센터, 211cm, 113.4kg)이 은퇴를 선언했다.
현지 소식통에 따르면, 던컨이 지난 2015-2016 시즌을 끝으로 코트를 떠나기로 결심했다고 전했다. 던컨은 지난 오프시즌에 2년 계약을 행사했다. 계약 마지막 해를 앞두고 선수옵션이 있었다. 한 시즌 뛰어본 후에 자신의 거취를 결정할 것으로 여겨졌다. 던컨은 이적시장으로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고심한 그는 끝내 선수로서의 생활을 마감하기로 했다.
던컨의 엄청난 이력!
던컨은 지난 1997-1998 시즌에 데뷔한 이후 지난 시즌까지 19시즌을 뛰었다. 샌안토니오 스퍼스에 지난 1997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1순위로 지명된 이후 줄곧 샌안토니오에서만 머물렀다. 던컨이 들어온 이후 샌안토니오는 무려 5번의 우승을 차지하는 등 전성시기를 열었다. 샌안토니오는 던컨의 데뷔 전후로 나누어봐야 할 정도다.
던컨의 등장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데뷔 때부터 ‘20-10’을 기록한 그는 8시즌 연속 NBA 퍼스트팀과 디펜시브 퍼스트팀을 석권했다. 추가적으로 2007년과 2013년에도 포함되는 등 NBA 퍼스트팀에만 10회 선정되는 등 올 NBA팀에만 15번씩이나 자신의 이름을 집어넣었다. 올-디펜시브팀도 마찬가지. 던컨은 데뷔 당시부터 무려 13시즌 연속 올-디펜시브 퍼스트팀과 세컨드팀에는 무조건 속했다. 이후 2013년과 2015년에 각각 세컨드팀에 호명된 것을 끝으로 디펜시브팀에도 15번이나 뽑히는 엄청난 실력을 발휘했다.
처음부터 최고였던 그는 지난 2001-2002 시즌과 2002-2003 시즌에 걸쳐 정규시즌 MVP를 차지했으며, 3번이나 파이널 MVP(1999, 2003, 2005)에 뽑히면서 선수생활 내내 어마어마한 이력을 쌓았다. 덧붙여 데뷔 이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플레이오프에 나가지 못한 적이 단 한 번 밖에 없었다. 첫 시즌부터 영향력이 엄청나 많은 시간을 소화했지만, 2005년부터는 본격적으로 샌안토니오 코칭스탭의 관리를 받았다. 그럼에도 정규시즌(1,392경기)부터 플레이오프(251경기)까지 그가 소화한 경기 수는 엄청나다.
그는 올스타전에도 꾸준히 나섰다. 화려함으로 대변되는 올스타전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지만, 리그를 대표하는 빅맨인 그에게 팬들과 감독들은 올스타로 뽑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놀랍게도 15번이나 나섰을 정도로 리그를 대표하는 선수였다. 올스타전이 열리지 않았던 1999년을 제외하고는 데뷔 때부터 지난 2011년까지 13회 연속 내리 올스타전에 출전했다. 지난 2000년에는 샤킬 오닐과 함께 공동 MVP를 차지하면서, 올스타전 MVP까지 수상하는 영광을 안았다.
이로써 던컨은 선수생활 내내 각종 MVP(정규시즌, 올스타전, 플레이오프)를 모두 휩쓸었다. 올-NBA팀, 올-디펜시브팀, 올스타 선정까지 모두 15번씩 자신의 이름을 올렸다. 데뷔와 동시에 8시즌 연속 ‘20-10’을 기록했으며, 첫 10시즌 동안 9시즌에서 ‘20-10’을 곁들였다. 마찬가지로 시작과 동시 13시즌 연속 평균 두 자리 수 리바운드는 너끈히 잡아냈다. 지난 2005년부터 많은 시간을 소화한 탓에 족저근막염을 앓아 출장시간이 조절됐지만, 그럼에도 13시즌 연속 17점+ 10리바운드+를 만들어내며 샌안토니오의 기둥으로 자리를 든든하게 지켰다.
지난 시즌을 제외하고는 모두 평균 13점 이상을 득점했으며, 불과 얼마 전인 지난 2012-2013 시즌에는 36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17.8점 9.9리바운드를 기록하는 저력을 발휘했다. 이후 그의 기록은 본격적으로 하락하기 시작했지만, 지난 2015년에 마지막 올스타에 뽑히면서 대미를 장식했다. 지난 시즌에는 데뷔 이후 처음으로 평균 13점 9리바운드에 다가서지 못했다. 그는 지난 시즌에 NBA 선수가 된 이후 가장 적은 평균 25.2분을 소화하며 평균 8.6점 7.3리바운드에 머물렀다.
던컨의 우승도전기!
던컨은 NBA에 데뷔할 때 파워포워드로 뛰었다. 자신의 NCAA 웨이크포레스트 데먼디컨스에서 4년을 보낸 그는 모교에서 자신의 번호가 영구결번되는 영광을 안았다. 대학 최고의 센터였던 그가 NBA에 데뷔할 당시 어느 팀이 1순위 지명권을 갖는지가 화두였다. 하필 샌안토니오는 지난 1996-1997 시즌에 팀의 간판이 데이비드 로빈슨이 중부상을 당해 시즌을 망쳤다. 샌안토니오는 이 때 팀의 백년대계를 함께할 계획을 세울 수 있게 됐다. 1997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1순위 티켓을 가진 것. 샌안토니오는 주저앉고 던컨을 지명했다. 팀에 이미 로빈슨이 있었기 때문에 젊고 빠른 던컨이 포워드로 나서게 됐다.
샌안토니오는 그렉 포포비치 감독의 지도 아래 막강한 골밑 전력을 구축했다. 말이 좋아 포워드지, 리그를 위협하고도 남을 수준의 센터 둘이 동시에 뛰는 것과 같았다. 샌안토니오의 트윈타워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렸다. 때마침 마이클 조던이 자신의 두 번째 3연패를 달성한 이후 은퇴를 선언했다. 샌안토니오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지난 1998-1999 시즌에 구단 역사상 첫 우승을 달성했다. 던컨은 첫 파이널 MVP를 손에 넣으며 명실공이 리그를 대표하는 선수로 우뚝섰다.
던컨의 영향력은 날로 더 커졌다. 이제 로빈슨이 아닌 던컨이 주축이 된 샌안토니오는 지난 2003년에 다시 파이널에 올랐다. 로빈슨에게 마지막 우승을 선사했다. 던컨은 뉴저지 네츠(현 브루클린)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2000년대 동서 전력차이는 현격했다. 서부를 뚫으면, 우승을 차지한다는 말이 있었을 정도. 서부를 뚫은 던컨은 당연히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던컨은 로빈슨의 여정을 마무리했다.
이후 던컨은 팀에 차례로 들어온 마누 지노빌리, 토니 파커와 함께 팀을 비상시켰다. 지노빌리는 1999 드래프트 2라운드 28순위로 샌안토니오의 부름을 받았다. 곧장 NBA에서 뛰진 않았지만, 지난 2002-2003 시즌에 샌안토니오로 들어왔다. 파커는 2001 드래프트 1라운드 28순위로 NBA에 진출했다. 파커와 지노빌리의 등장으로 샌안토니오는 백코트에 안정적인 전력을 구축할 수 있게 됐다. 향후 파커와 지노빌리 또한 샌안토니오를 대표하는 선수로 발돋움했다.
던컨은 이들 둘과 함께 2005년과 2007년에 우승을 엮어냈다. 2005년에도 파이널 MVP를 차지한 그는 비록 2007년에는 파이널 MVP를 거머쥐지 못했다. 하지만 던컨이 없었다면 샌안토니오의 우승은 없었다. 그 정도로 던컨의 존재감은 대단했다. 공격에서의 역할은 서서히 무뎌졌지만, 수비에서의 존재감은 탁월했다. 또한 골밑에서의 실속 있는 기술 못지않게 그의 스크린은 탁월했다. 던컨의 스크린을 받은 전성기 지노빌리는 긴 머리 휘날리며 유로스텝을 여지없이 밟았다. 파커의 돌파도 마찬가지. 돌파에 능한 파커와 지노빌 리가 힘을 낼 수 있었던 것은 탁월한 개인기량을 갖추고 있었지만, 그 이면에는 던컨의 역할도 적지 않았다.
지난 2009년 여름, 샌안토니오는 대대적인 변화에 나섰다. 리처드 제퍼슨(클리블랜드)과 안토니오 맥다이스를 영입하며 우승도전에 나섰다. 샌안토니오가 던컨을 영입한 이후 스타급 선수를 동시에 영입한 적은 없었다. 팀의 중심 모두 자체적으로 드래프트를 통해 발굴한 선수들이 전부. 하지만 공격적인 행보에 나선 샌안토니오는 제퍼슨과 맥다이스를 데려오면서 포워드 포지션을 대폭 보강했다. 우승후보로 떠오르는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정작 우승권에도 다가서지 못했다. 제퍼슨이 팀에 제대로 녹아들지 못했고, 맥다이스의 나이는 적지 않았다.
더 이상 샌안토니오에 우승기회는 다가오지 않을 것처럼 여겨졌다. 이윽고 지난 2013년, 샌안토니오는 2007년 우승 이후 처음으로 파이널에 진출했다. 던컨은 의지를 불살랐다. 시리즈 리드도 꾸준히 지켰다. 하지만 르브론 제임스(클리블랜드)가 이끄는 마이애미 히트의 저력은 남달랐다. 2대 2 상황에서 샌안토니오가 5차전을 잡은 가운데 벌인 6차전. 샌안토니오의 승리가 눈앞에 다가왔다. 하지만 마이애미가 크리스 보쉬의 리바운드에 이은 레이 앨런의 3점슛으로 가까스로 경기를 잡았다.
이윽고 벌인 7차전. 샌안토니오는 끝내 한 끗 차이로 마이애미에 무릎을 꿇었다. 카와이 레너드가 자유투를 놓쳤고, 제임스에게 득점을 허용했다. 이후 던컨이 공격에 나섰지만, 애석하게도 던컨의 슛이 림을 외면했다. 백코트를 한 던컨은 자신의 손을 코트에 세차게 내리쳤다. 데뷔 이후 코트 위에서 단 한 번도 감정표현을 않던 그가 기회를 놓친 것에 대해 진심으로 아쉬워했다. 지난 2013 파이널은 던컨이 파이널에서 당한 첫 패배였다. 결승에 올랐다 하면 무조건 우승했던 그였지만, 더 이상 아니었다.
지노빌리의 경기력이 실로 아쉬웠다. 지노빌리는 승부처인 6차전에서만 무려 8실책을 범했다. 이도 모자라 최종전인 7차전에서만 4실책을 범하는 등 가장 중요한 2경기에서 무려 12실책을 저질렀다. 지노빌리 통산 최악의 경기가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나오고 말았다. 다른 누구도 아닌 지노빌리의 경기력이 온전치 않으면서 샌안토니오가 동력을 잃었다. 반면 마이애미에게는 큰 기회였다.
하지만 샌안토니오는 이듬해 곧바로 우승을 차지했다. 서부컨퍼런스 파이널에서 지난 2012년에 패배를 안겼던 오클라호마시티 썬더를 잡아냈고, 파이널에서 마이애미를 다시 만났다. 샌안토니오는 시리즈 내내 마이애미를 압도했다. 던컨의 5번째이자 마지막 우승이 달성됐다. 1년 전 당한 패배를 통쾌하게 갚았다. 지노빌리는 경기 도중 화끈한 드리블 돌파에 이은 호쾌한 덩크로 2013 파이널에서의 부진을 만회했다. 샌안토니오가 우승을 확정 지었을 때, 지난 1999년에 우승 당시의 전설들이 코트를 찾았다. 데이비드 로빈슨, 션 엘리엇, 에이브리 존슨까지. 이들은 던컨, 지노빌리, 파커를 격려했다.
2014 파이널 MVP는 레너드가 수상했다. 레너드의 성장이 도드라지기 시작했으며, 지난 오프시즌에는 라마커스 알드리지가 합류했다. 이제 던컨이 알드리지와 레너드에게 자신이 로빈슨에게 받았던 것처럼 서서히 뒷자리로 물러났다. 알드리지와 레너드는 향후 샌안토니오를 이끌어갈 선수들이다. 던컨이라는 지극히 모범적인 선수가 좋은 선례를 남겼다. 공격권이 넘어가는 것에 대해 발끈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팀이 승리하는 최적의 길을 찾는데 골몰했다. 그 결과 지난 시즌에는 구단 역사상 가장 많은 67승을 기록할 수 있었다. 오클라호마시티에 패해 우승도전에 나서진 못했지만, 충분히 기념비적인 시즌을 보냈다.
던컨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
던컨의 선수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준 인물은 바로 포포비치 감독이다. 2005년 이후 던컨의 출장시간을 꾸준히 관리한 덕에 던컨은 불혹을 앞두고도 리그에서 수준급인 센터로 군림할 수 있었다. 출전시간은 줄었다고 위력이 주는 것은 아니었다. 던컨은 코트 위에서 여전히 리그 최고의 센터였다. 그는 지난 2004-2005 시즌부터 포워드보다 센터로 뛰는 빈도가 높았다. 로빈슨이 은퇴한 이후부터는 본격적으로 센터로 나섰고, 지난 2006-2007 시즌부터 지난 시즌까지는 센터로 뛰면서 리그를 휘어잡았다.
여러 팀들의 감독이 바뀌는 와중에도 포포비치 감독은 샌안토니오를 떠나지 않았다. 던컨과 포포비치 감독은 평생의 동반자로서 샌안토니오의 가장 확고부동한 중심축이었다. 이들이 있었기에 로빈슨의 마지막, 파커와 지노빌리는 물론이고 여러 선수들이 샌안토니오로 찾아들었고, 또 우승을 합작할 수 있었다. 던컨의 선수생활에서 포포비치 감독은 단연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오죽했으면, 지난 2001년 여름에 던컨이 올랜도 매직으로 이적하려 했을 당시 포포비치 감독이 던컨을 붙잡았을 정도. 던컨이 올랜도에 갔더라면, 트레이시 맥그레이디와 공포의 원투펀치를 구성할 수도 있었다. 맥그레이디가 2000-2001 시즌부터 올랜도 유니폼을 입었다. 던컨이 들어갔다면, 섣부른 가정이지만 던컨과 맥그레이디는 물론 그랜트 힐까지 막강한 BIG3를 갖추었을지 모르는 일이다(샐러리캡 때문에 힘들었을 것이 유력). 던컨이 맥그레이디와 만났다면, 당대 최강의 원투펀치였던 샤킬 오닐과 코비 브라이언트 못지않았을 것으로 판단된다.
하지만 로빈슨과 포포비치 감독이 던컨을 설득했다. 로빈슨은 휴가를 반납하고 던컨을 만나기 위해 비행기에 몸을 싫은 일화는 유명하다. 던컨은 결국 이적이 아닌 잔류를 택했고, 현재 샌안토니오의 전설로 남았다. 결국 샌안토니오에 남으면서 여러 번의 우승을 달성할 수 있었다. 던컨의 선택은 탁월했다. 그는 샌안토니오에서 모든 것을 이뤘다. 현재 샌안토니오 구단 역사상 가장 많은 득점을 올린 선수는 던컨이다. 은퇴를 발표한 지금, 그의 등번호 21번이 영구결번이 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는 이는 없다. 팀을 떠나지 않은 그는 스퍼스의 전설이 됐다.
그는 탁월한 대장이었다. 승부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냉철했다. 중요한 순간마다 탁월한 리더십을 선보였다. 동료들을 재촉하는 경우는 없었다. 오히려 그는 오프시즌서부터 모범적인 행동으로 주변동료들에게 귀감을 주었다. 작전지시 때 모든 선수들이 던컨 주변으로 머리를 모으는 장면은 던컨이 어떤 선수인지 엿볼 수 있는 대표적인 순간이다. 개인적으로는 앞서 언급한 2013년 결승에서 마이애미와의 경기 도중 코트를 친 장면이다. 감정표현에 인색한 그가 얼마나 아쉬웠으면, 그랬을까 싶을 정도. 다른 누구도 아닌 던컨이 그랬기에 더 크게 다가오는 순간이라 여겨진다.
던컨하면 또 탁월한 유머감각과 웬만한 사람들은 이해하기 힘든 탁월한 패션센스가 있다. 이상한 개그코드로 동료들을 웃게(?) 만드는 재주도 갖고 있다. 여기까진 이해된다. 하지만 그의 출근 복장을 보면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우리가 던컨의 심오한 패션 철학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인지 의심스럽다. 그럼에도 던컨은 꿋꿋하게 자신의 옷 입는 방식을 고집해왔다. 이 또한 던컨만의 꾸준함과 우직함으로 표현하기에는 너무 아쉽다. 러셀 웨스트브룩이 출근길의 이목을 집중시키기 이전에 던컨이 먼저 있었다. 웨스트브룩은 아직 던컨의 미적 감각을 따라가려면 멀었다.
그가 만든 엄청난 대기록!
던컨은 개인통산 정규시즌에서 26,496점(14위) 15,091리바운드(6위) 4,225어시스트 1.025스틸 3,020블락(5위)을 올렸다. NBA 역사상 26,000점 15,000리바운드 3,000블락을 달성하고 있는 선수는 카림 압둘-자바와 던컨이 유일하다. 15,000리바운드 이상을 잡아낸 선수도 던컨을 포함해 단 6명이 전부다. 신의 영역에 있는 3대 센터(체임벌린, 러셀, 압둘-자바)를 포함해 엘빈 헤이즈와 모제스 말론 그리고 던컨 뿐이다. 3,000블락 이상을 기록한 선수도 단 5명 밖에 없다(올라주원, 무톰보, 압둘-자바, 이튼, 던컨).
플레이오프에서의 기록도 탁월하다. 그는 플레이오프에서 5,172점(6위) 2,859리바운드(3위) 764어시스트 168스틸 568블락(1위)을 더했다. 플레이오프에서 누적 5,000점 이상을 기록한 선수는 단 6명(조던, 압둘-자바, 브라이언트, 제임스, 오닐, 던컨)밖에 없다. 리바운드 기록도 마찬가지. 던컨보다 많은 리바운드를 잡아낸 선수는 러셀과 체임벌린까지 딱 둘이다. 블락에서는 압도적인 1위다. 500블락을 넘어선 선수는 단 한 명도 없다. 그러나 던컨은 500개를 훌쩍 넘어 568개의 블락을 곁들였다.플레이오프 더블더블 1위(164회) 기록도 갖고 있다.
NBA 역사상 정규시즌에서 1,000경기 이상을 소화한 선수는 단 3명이다. 압둘-자바(1,074경기), 로버트 패리쉬(1,014경기), 던컨(1,001경기)으로 모두 가드가 아니라 센터라는 점이 이채롭다. 또한 이들은 모두 6할이 넘는 승률을 기록했는데 이 가운데서도 던컨은 유일하게 71.9%의 엄청난 승률을 기록했다. 던컨은 NBA를 넘어 미 4대 메이저 스포츠 최고 승률 기록을 갔고 있다. 19시즌 동안 샌안토니오는 최소 6할대의 승률은 유지했다. 이는 NBA 최고 기록으로 남아있으며, 지난 시즌에는 무려 80%가 넘는 엄청난 승률을 거뒀다(67승 거두고 컨퍼런스 2위에 그친 것이 옥의 티).
샌안토니오는 포포비치 감독과 던컨의 체제 아래 무려 5번이나 챔피언으로 우뚝 섰다. 샌안토니오는 NBA 구단 역사상 4번째로 많은 우승을 거둔 팀이다. 그는 지난 1990년대(1999), 2000년대(2003, 2005,2007), 2010년대(2014)에 걸쳐 우승을 차지했다. 단순 의미에 불과할지로도 각기 다른 10년씩 30년대에 걸쳐 우승을 차지한 선수는 던컨과 존 샐리까지 단 2명. 그러나 샐리의 우승 당시 영향력을 감안할 때 던컨과 비교하기는 부족하다. 심지어 던컨은 모두 주축으로 뛰었다. 던컨이 선수생활 내내 얼마나 꾸준했는지 잘 드러나는 부분이다. 그는 또한 압둘-자바(17년)이후 첫 우승과 마지막 우승의 연차(15년)이 길다.
던컨은 또한 존 우든상(NCAA MVP), NBA 올 해의 신인(NBA 신인상), NBA MVP, NBA 파이널 MVP, NBA 올스타전 MVP를 모두 석권했다. 이를 모두 달성한 선수는 던컨 이전에 래리 버드와 마이클 조던 뿐이었다. 그는 또한 코비 브라이언트(20시즌, 레이커스)에 이어 역대 두 번째로 한 팀에서 가장 많은 시즌을 소화한 선수가 됐다. 던컨은 샌안토니오에서만 19시즌을 뛰었다. 역대 19시즌 이상 한 팀에서 뛴 선수는 브라이언트와 던컨 외에 존 스탁턴(19시즌, 유타) 밖에 없다.
던컨하면 로빈슨도 있지만, 보다 많은 세월을 함께한 지노빌리와 파커가 단연 떠오른다. 이들 셋은 정규시즌에서만 무려 575경기를 소화했다. 특정 3인방이 가장 많은 경기를 뛴 NBA 최고 기록에 해당한다. 동시에 플레이오프 이들 트리오는 126승을 합작했는데, 이 또한 NBA 최고 기록이다. 2위는 LA 레이커스의 매직 존슨, 압둘-자바, 마이클 쿠퍼의 110승이다. 레이커스의 당시 3인방도 던컨, 지노빌리, 파커와 같은 도합 4번의 우승을 합작했다.
시대를 지배한 던컨도 이제 코트와 작별을 고했다. 던컨의 은퇴는 곧 2000년대 빅맨의 시대가 끝내 종식됐음을 뜻하기도 한다. 샌안토니오가 파우 가솔이라는 괜찮은 센터를 영입한 만큼 부담 없이 은퇴를 택했을 수도 있다. 무엇보다 지난 시즌의 자신의 경기력을 보고 이제는 은퇴를 택할 때를 직감했을 가능성이 크다. 샌안토니오가 오클라호마시티의 원투펀치에 전혀 손을 쓰지 못할 때, 던컨도 부진했다. 데뷔 이후 처음으로 플레이오프에서 0점에 그친 것. 지난 시즌 중에도 무려 2경기에 0점을 기록했는가 하면 1점에 그친 적도 있었다. 그럼에도 던컨의 19시즌 통산 평균 기록은 19점 10.8리바운드 3어시스트 2.2블락으로 상당히 훌륭하다. 이게 던컨이다.
전성기 시절 얼마나 대단했으면 출장시간의 하락 속에 기록까지 줄어든 와중에도 ‘19-10’을 유지했다. 동시에 40을 바라보는 센터가 얼마나 꾸준했는지도 알 수 있는 대목. 던컨이 그간 밟아간 여정은 결코 화려하진 않았다. 2000년대에는 파워포워드와 함께 슈팅가드가 활보한 시기이기도 하다. 이들에 가려 그는 많은 이목의 집중을 받지 못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는 승리자로 기억될 것이다. 누구보다 많은 우승을 차지했고, 혁혁한 공을 세웠으며, 범접하지 못할 기록들을 만들어냈다. 이제 그도 흐르는 세월을 뒤로하고 농구공을 놓기로 했다. 우리는 던컨의 시대에 살았다.
사진 = NBA Mediacentr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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