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BA Champions] ‘첫 우승’ 캐벌리어스, 우승의 주역들(3)

NBA / Jason / 2016-06-26 00:09:17
Cleveland Cavaliers

[바스켓코리아 = 이재승 기자] 2015-2016 NBA의 우승은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가 차지했다. 클리블랜드는 지난 1970년에 창단한 이후 첫 우승을 수확하는 감격적인 순간을 맞았다. 클리블랜드는 손쉽게 동부컨퍼런스 우승을 차지하며 파이널에 올랐다. 하지만 파이널에서 2년 연속 마주한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는 넘기 힘든 벽이었다. 모든 전문가들이 골든스테이트의 손을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4차전을 마친 상황에서 클리블랜드는 단 1승을 따내는데 그쳤다. 클리블랜드의 패색이 짙었다.

NBA 역사상 파이널에서 3대 1을 뒤집은 전례는 없다. 7차전까지 몰고 간 경우도 단 3번 밖에 되지 않았을 정도. 그마저도 최근 기록이 지난 1966년(보스턴)이다. 하지만 클리블랜드는 이를 극복했다. 50년 만에 3대 1로 뒤진 형세를 뒤로하고 시리즈를 최종전까지 이끌었다. 이윽고 7차전에서 단 4점차의 진땀승을 거두면서 클리블랜드가 끝내 우승을 차지했다. 6차전까지 치러 누적 점수에서 610-610으로 팽팽하게 맞섰다. 결국, 클리블랜드가 7차전에서 경기 종료 직전에 4점을 앞섰고, 우승을 차지했다.

클리블랜드가 만들어낸 이야기는 엄청났다. 역대 최초로 결승에서 3대 1을 뒤집은 팀이 됐다. 홈코트 어드밴티지가 없는 상황에서 만든 만큼 그 의미는 더욱 컸다. 하물며 7차전의 성적은 홈팀이 압도적으로 유리했다. 이전까지 파이널에서 7차전 승부가 펼쳐진 적은 18회. 이중 안방에서 치르는 팀이 15승 3패로 크게 앞섰다. 최근 홈팀이 6연승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클리블랜드는 이를 뒤집고, 역사상 4번째로 결승에서 7차전을 잡은 팀이 됐다. 지난 1978년 워싱턴 불리츠 이후 처음으로 적지에서 열린 7차전을 잡았다.

이번 우승이 뜻 깊은 이유는 클리블랜드가 지난 1964년 이후 처음으로 우승을 맛봤다는 점이다. 지난 1964년 클리블랜드 브라운스(NFL)가 트로피를 들어 올린 이후, 그 동안 클리블랜드와 오하이오주에 우승은 없었다. NCAA에서 10번의 우승을 차지한 존 우든 감독이 첫 우승에 성공했고, 비틀즈가 처음으로 미국 대중가요를 주름잡고, 롤링스톤스가 첫 앨범을 발매한 이후 클리블랜드는 우승과 연을 맺지 못했다. 52년 동안, 클리블랜드는 우승의 맛을 보지 못했다. 하지만 클리블랜드는 이 모든 것을 뒤집고 가장 극적인 순간에 가장 높은 곳에 섰다.

순서

1편_ 르브론 제임스

2편_ 카이리 어빙, J.R. 스미스, 트리스탄 탐슨

3편_ 케빈 러브, 리처드 제퍼슨, 이만 셤퍼트, 채닝 프라이 외

Kevin Love

‘미운오리’ 케빈 러브

지난 플레이오프에서 러브는 부상으로 단 1라운드만 치렀다. 러브는 당시 보스턴 셀틱스와 1라운드 4차전에서 켈리 올리닉(보스턴)의 동업자 정신이 결여된 파렴치한 행위의 희생양이 됐다. 러브는 곧바로 어깨를 부여잡았고, 이후 남은 플레이오프를 소화할 수 없었다. 데뷔 후 처음으로 나선 플레이오프에서 러브는 그렇게 허무하게 전열에서 이탈했다. 그리고 지난 여름, 러브는 클리블랜드로부터 최고 대우를 보장 받았다. 클리블랜드는 러브에게 계약기간 5년에 1억 1,000만 달러의 대형 계약을 안겼다. 클리블랜드의 주축이자 BIG3의 일원인 러브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정규시즌 중반까지 러브는 몸값에 걸맞은 활약을 펼쳤다. 팀의 백코트 에이스인 카이리 어빙이 지난 2015 파이널 1차전에서 당한 부상으로 시즌 초반에 나서지 못한 탓이었다. 러브는 르브론 제임스와 함께 팀의 공격을 이끌었다. 흡사 마이애미 히트에서 드웨인 웨이드가 부상으로 나서지 못했을 당시 크리스 보쉬가 공격에서 맹위를 떨친 부분과 엇비슷했다. 하지만 러브는 어빙이 돌아온 이후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 이전처럼 공격에서 적극성을 띄지 못했다. 제임스와 어빙이 볼을 들고 있는 탓에 그럴 틈도 많지 않았다. 클리블랜드 코칭스탭도 어빙이 돌아온 이후 러브가 기여할 수 있는 전술적인 흐름을 만들지 못한 탓도 컸다.

시즌 막판에는 트레이드될 수도 있다는 소문이 나돌기도 했다. 클리블랜드가 라이언 앤더슨(뉴올리언스)이나 채닝 프라이와 같은 스트레치 빅맨을 영입하려 나섰다. 그 매물대상으로 떠오른 이가 러브였다. 결국 러브는 트레이드되지 않았다. 클리블랜드는 ‘1/4 시즌용’에서 ‘응원단장’으로 보직을 옮긴 앤더슨 바레장을 통해 프라이를 엎어오는 수완을 발휘했다. 러브는 어렵사리 자리를 지켰다. 문제는 그의 경기력이 좀체 돌아오지 않았다. 시즌 중반 터란 루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이후 비중이 높아지나 했지만, 거기까지였다.

플레이오프에서는 달랐다. 플레이오프가 막이 오르면서 러브의 경기력도 몰라보게 달라졌다. 경기마다 더블더블을 작성하는 것은 물론 정확한 슛터치로 확률 높은 득점을 올렸다. 공격에서 득점을 올려주면서 제임스가 많이 쉴 수 있었다. 수비에서는 확실한 리바운드를 통해 팀에 안정감을 선사했다. 러브의 가세가 클리블랜드에 이토록 큰 도움이 됐다. 실제로 클리블랜드가 동부컨퍼런스 파이널에 오르기까지 플레이오프 첫 8경기에서 러브의 역할은 결코 적지 않았다. 실로 주축다운 모습이었고, 이름값에 걸맞은 활약을 펼쳤다. 클리블랜드는 BIG4가 함께했던 지난 2015 1라운드와 이번 플레이오프에서 전승을 이어갔다.

하지만 토론토 랩터스와의 동부컨퍼런스 파이널에서 러브는 이전의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오히려 시즌 막판 한참 부진할 때의 모습과 같았다. 러브는 좀체 자리를 잡지 못했다. 공격에서 기여도가 떨어지면서 자연스레 출장시간도 줄었다. 클리블랜드가 첫 8경기에서 모두 승리를 거둘 당시 클리블랜드는 대승을 거둔 빈도가 많았다. 그럼에도 평균 35분에 가까운 시간은 소화했다. 하지만 이후에서는 이전과 같은 경기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리바운드도 전처럼 잡아내지 못했다. 더블더블도 단 2회만 추가하는데 그쳤다. 지난 컨퍼런스 파이널 6차전과 파이널 1차전이 전부였다.

# 러브의 2016 플레이오프

처음 8경기 34.2분 18.9점(.364 .444 .818) 12.5리바운드 2.1어시스트

이후 10경기 28.2분 11.8점(.411 .375 .857) 6.3리바운드 2.1어시스트

시즌 막판에 보여줬던 경기력(?)이 다시 살아났다. 러브는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했다. 불운도 따랐다. 파이널 2차전에서 해리슨 반스의 팔꿈치에 뒤통수를 가격 당했다. 이후 잠시 뛰기도 했지만, 끝내 남은 시간을 소화하지 못했다. 결국 NBA의 엄격한 뇌진탕 검사과정을 통과하지 못한 그는 3차전에서 나서지 못했다. 3차전에서 러브를 대신해 제퍼슨이 러브를 대신해 주전으로 출장했다. 제퍼슨은 러브 이상의 활약을 펼쳤다. 볼이 없는 움직임을 통해 기회를 엿봤고, 이를 통해 공간을 만들었다. 제임스와 어빙이 공격에 나설 여건이 근소하게나마 좀 더 좋아졌다. 볼을 받았을 때는 슛이 아닌 돌파를 택할 수도 있어 클리블랜드에 보다 많은 옵션을 제공했다.

러브가 결장한 3차전에서 클리블랜드가 뒤늦게나마 파이널 첫 승을 신고했다. 4차전에서 러브가 어떻게 나설지 주목됐다. 그는 벤치에서 출격했다. 지난 2010년 이후 본인에게 처음 있는 일이었다. 4차전에서는 비록 패했지만, 11점을 올리면서 체면치레에 나섰다. 관건은 리바운드. 러브는 단 5리바운드에 그쳤다. 5차전에서는 제임스와 어빙이 터진 탓에 공격에서 기회를 잡기 쉽지 않았다. 그는 이번 플레이오프에서 가장 좋지 않은 2점 3리바운드에 그쳤다. 6차전에서도 마찬가지. 17점 13리바운드가 아닌 7점 3리바운드가 전부였다. 파이널 2차전부터 6차전까지 4경기(3차전 결장)에서 그는 평균 22.6분 동안 6.3점(.333 .273 .667) 3.5리바운드를 기록했다.

그는 끝내 7차전에서 마지막 자존심은 세웠다. 러브는 이날 수비리바운드를 확실히 단속하면서 팀이 우승의 마침표를 찍는데 공헌을 했다. 비록 많은 득점은 올리지 못했지만, 7차전에서 14리바운드 3어시스트 2스틸로 힘을 보탰다. 실책도 단 1개에 불과했다. 7차전에서는 탐슨이 리바운드에서 크게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반대로 러브가 잘 해낸 성과라고 봐도 되지 않을까. 러브는 7차전에서 오랜 만에 두 자리 수 리바운드를 신고하면서 파이널 시리즈에서 부진의 어느 정도 날렸다. 골든스테이트의 마지막 슛이 림을 외면하는 순간, 러브는 그 누구보다 기뻐했고 제임스와 격하게 끌어안았다.

미네소타 팀버울브스에서 많은 승리를 거두지 못하며 설움의 세월을 보냈던 그. 기대를 안고 동부로 건너왔지만, 러브는 제임스와 어빙이라는 2명의 슈퍼스타와 나머지 선수들 사이에서 애매모호한 시즌을 치러야 했다. 영입 당시는 물론이고 이번 시즌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그는 BIG3의 당당한 일원이었다. 이번 플레이오프 초반에 보여준 경기력도 그간 숱한 올스타 이력을 쌓고, 클리블랜드가 그를 왜 영입했는지를 입증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후는 아니었다. 결승에서는 오히려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했다. 그의 몸값을 고려할 때는 좀체 이해하기 힘든 활약을 펼쳤다.

그는 쉽지 않은 상황에서 끝내 자신이 해야 할 역할을 했고, 개인통산 처음으로 가장 높은 곳에 섰다. 비록 기대와 다른, 시즌 초반이나 플레이오프 초반과 엇나간 경기력으로 때로는 보는 이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하지만 그는 누구보다 이번 우승을 기쁘게 받아들였다. 미네소타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 후, 보스턴 셀틱스에서 웃을 수 있었던 케빈 가넷과의 모습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끝내 자신의 역할을 해내며 팀이 우승하는데 작게나마 지분을 보탰다. 러브도 이제 우승경험을 갖춘 선수로 우뚝 섰다.

Richard Jefferson

‘백전노장’ 리처드 제퍼슨

제퍼슨이 다시 결승 무대에 서기까지, 이토록 많은 시간이 걸릴 줄 몰랐다. 데뷔 당시 그는 파이널에 진출하는 기쁨을 누렸다. 제이슨 키드(밀워키 감독)가 이끄는 뉴저지 네츠(현 브루클린)에서 2년 연속 결승에 진출했다. 하지만 서부를 휩쓸고 올라온 팀들의 진가는 남달랐다. 서고동저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던 당시, 뉴저지는 지난 2002 파이널에서 샤킬 오닐과 코비 브라이언트가 이끄는 LA 레이커스가 정말 힘 한 번 쓰지도 못하고 4전 전패를 당했다. 이듬해 다시 동부의 권좌에 앉았지만, 샌안토니오 스퍼스의 팀 던컨에게 무참히 유린당했다.

제퍼슨이 2년차인 지난 2002-2003 시즌에는 곧바로 주전 자리를 꿰찼다. 이전까지 주전 스몰포워드였던 키스 밴 혼이 토드 맥컬러프와 함께 트레이드로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로 향했다. 뉴저지는 골밑 강화의 목적으로 디켐베 무톰보를 데려왔다. 제퍼슨도 주전으로 나설 기회를 가졌다. 뉴저지는 잠시 숨을 골랐다. 빈스 카터(멤피스)를 트레이드로 데려온 이후 다시 기회를 맞았다. 제퍼슨은 키드 덕에 자신의 기량을 더욱 일취월장시킬 수 있었다. 제퍼슨은 당시 삼각편대(키드-카터-제퍼슨)의 한 축으로 떠올랐다.

이후 뉴저지는 재건사업에 돌입했다. 그는 밀워키로 트레이드됐다. 뉴저지는 제퍼슨의 가치가 어느 정도 높을 때, 그를 보내기로 결심했다. 밀워키에서 한 시즌을 뛰었다. 그러나 이후 큰 기회가 찾아왔다. 샌안토니오가 그를 영입하기로 한 것. 제퍼슨을 데려오는 대가로 현역선수 3명을 밀워키에 건넸다. 당시 샌안토니오는 디트로이트 피스턴스와 계약이 만료된 안토니오 맥다이스를 이적시장에서, 제퍼슨을 트레이드로 불러들이면서 전력을 강화했다. 토니 파커와 마누 지노빌리가 백코트를 책임지고 있는 가운데 맥다이스와 제퍼슨의 합류로 프런트코트까지 전력을 대폭 끌어올렸다.

제퍼슨은 샌안토니오에서 다시 우승도전에 나설 기회를 마련했다. 하지만 이는 불행의 단초가 됐다. 그는 샌안토니오에서 좀체 적응하지 못했다. 그는 이전까지 상대적으로 자율적인 농구를 바탕으로 둔 팀에서 뛰었다. 빠른 공수전환이 가능한 뉴저지에서 키드의 패스를 적재적소에 받았고, 이를 득점으로 연결했다. 샌안토니오에서는 달랐다. 철저한 체계적인 농구를 표방하는 곳에서 제퍼슨은 갈 길을 잃었다. 그렉 포포비치 감독의 큰 신뢰도 받지 못했다. 공격의 자율권을 맡기기에 제퍼슨도 준비가 덜 된 느낌도 있었다. 결국 샌안토니오와 불편했던 동거를 뒤로 한 후 골든스테이트로 트레이드됐다.

제퍼슨의 가치는 많이 떨어졌다. 뉴저지에서 마지막 시즌을 보낸 지난 2007-2008 시즌을 끝으로 평균 득점이 꾸준히 하락했다. 전성기에서 너무 빨리 내려온 것. 그는 골든스테이트에서 어린 선수들을 독려하는 전형적인 노장 선수의 역할을 맡았다. 골든스테이트가 스테픈 커리 중심의 팀으로 변모할 즈음이었다. 골든스테이트로 트레이드되자마자 나름 평균 9점을 올렸다. 문제는 지난 2012-2013 시즌. 그의 시즌 기록은 평균 3.1점. 뛰는 날도 있었지만, 뛰지 않는 날도 적잖이 많았다. 그는 56경기에 나서는데 그쳤다.

제퍼슨은 또 트레이드를 피하지 못했다. 골든스테이트는 몸값대비 전혀 활약을 못하는 안드레스 비에드린쉬 처분을 원했다. 갓 부임한 밥 마이어스 단장은 골든스테이트의 샐러리캡을 비워내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비에드린쉬, 브랜든 러쉬와 함께 유타로 보내졌다. 유타에서 한 시즌을 보낸 그는 지난 2014년 여름에 댈러스 매버릭스에 둥지를 틀었다. 더 이상 그는 1,000만 달러를 받는 선수는 아니었다. 약 150만 달러에 댈러스 유니폼을 입었다. 어느 덧 30대 중반에 돌입한 그가 코트 위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애석하게도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러나 지난 여름에 기상천외한 일이 터졌다. 댈러스는 디안드레 조던(클리퍼스)과 웨슬리 메튜스를 동시에 앉혔다. 댈러스의 오프시즌 성과가 돋보였다. 하지만 조던이 돌연 댈러스와의 구두계약을 취소했다. 그는 클리퍼스와 계약했다. 댈러스의 마크 큐반 구단주는 격분했다. 이후 큐반 구단주는 기존에 새로 계약을 맺은 선수들과의 계약도 사실상 전면 백지화했다. 자포자기한 심정이었다. 이 때 메튜스와 J.J. 바레아가 댈러스에 잔류를 선언했다. 큐반 구단주는 감동한 나머지 계약을 대폭 수정해 이들에게 보다 큰 계약을 안겼다. 이 때, 제퍼슨은 떠나기로 마음을 먹었고, 클리블랜드와 1년 계약을 체결했다.

클리블랜드에서의 역할은 크지 않았다. 그러나 플레이오프에서는 이따금씩 출전기회를 얻었다. 이유인즉슨 일찌감치 경기결과가 갈린 탓이었다. 그래도 간간이 나와서 3점슛을 터트리며 알토란같은 활약을 펼쳤다. 1라운드 4차전에서 클리블랜드는 2점차의 진땀승을 거두며 시리즈를 싹 쓸었다. 이 때도 제퍼슨은 3점슛을 집어넣었다. 이후 제퍼슨은 서서히 로테이션에 진입했다. 2라운드에서의 3점슛 감각도 좋았다. 시리즈 첫 2경기에서 도합 4개를 던져 모두 득점으로 연결시켰다. 애틀랜타 호크스와의 동부컨퍼런스 세미파이널에서 도합 5개의 3점슛을 신고했다.

토론토 랩터스와의 동부컨퍼런스 파이널에서 제퍼슨은 고정된 출전시간을 확보했다. 하지만 큰 존재감은 보이지 못했다. 그러나 이번 플레이오프에서 첫 연패를 당한 클리블랜드가 연패를 탈출하는 시점(5차전)을 시작으로 6차전까지 3점슛 1개씩 추가했다. 2경기 도합 클리블랜드가 +64의 엄청난 대승을 거두긴 했지만 말이다. 제퍼슨은 팀이 파이널에 오르는데 역할을 했다. 2년차였던 지난 2003년 이후 다시 가장 높은 무대를 밟기까지 13년의 세월이 소요됐다. 철없던 시절에 올랐던 정상 문턱을 다시 본다는 게 그렇게 힘든 일이었다.

제퍼슨의 백미는 단연 2차전. 클리블랜드는 이날 패색이 짙었다. 33점차 대패를 당하며 탈락 위기에 놓였다. 모든 선수들이 고개를 숙이고 힘없는 플레이로 일관했다. 하지만 제퍼슨은 아니었다. 제퍼슨은 끝까지 열심히 뛰며 12점을 책임졌다. 코트 위에서 부지런히 움직였다. 다시 이곳을 밟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았던 탓일까, 코트 위에서 어느 누구보다 부지런히 움직였다. 공이 오지 않더라도 끝까지 달렸다. 러브가 부상으로 자리를 비운 탓도 컸다. 3차전에 러브의 결장이 확정되자 그가 주전으로 출장했다. 2003년 이후 처음으로 주전으로 경기를 치렀다. 2차전과 같은 활약은 없었다. 하지만 공이 없을 때, 러브보다 유연한 움직임을 가져가며 팀에 보탬이 됐다.

3차전을 잡은 클리블랜드는 4차전에서 다시 주저앉고 말았다. 클리블랜드에게 중요했던 5차전에서 제퍼슨은 8점 3스틸로 팀의 연패탈출을 도왔다. 6차전에서는 3점 6리바운드 1어시스트 2스틸로 다수의 리바운드까지 잡아냈다. 이는 약과에 불과했다. 7차전에서는 단 2점에 머물렀지만 9리바운드를 잡아내는 기염을 토해냈다. 러브가 벤치에 있을 때마다 틈틈이 리바운드를 단속한 결과였다. 마지막 순간에 코트 위에서 우승의 순간을 만끽하진 못했지만, 그는 뛰는 순간까지 자신의 소임을 다했다. 생애 첫 트로피를 들어 올린 그는 코트와의 작별을 고했다. 누구보다 멋진 마무리였다.

그러나 그는 최근 클리블랜드의 우승기념 퍼레이드에서 자신의 결정을 뒤집었다. 멋진 마무리대신 값진 선수생활을 택한 것. 제임스가 우승하는 이면에는 수준급의 슈터들도 있었지만, 스몰라인업을 활용할 때 준수한 포워드 파트너가 있었다. 마이애미에서 쉐인 베티에가 대표적. 베티에는 수비에서 상대 파워포워드를 수비하면서 제임스의 부담을 덜게 했다. 공격에서는 3점슛을 지원했다. 상황은 다를 수 있겠으나 제퍼슨이 이번 클리블랜드의 우승에서 마이애미 우승 당시 베티에와 엇비슷한 역할을 잘 맡았다. 그는 중요한 순간이나 위기 시, 베테랑 포워드의 가치가 이렇게 높을 수도 있다는 것을 몸소 증명했다.

Iman Shumpert

‘수비귀재’ 이만 셤퍼트

셤퍼트는 J.R. 스미스와 함께 트레이드되어 제임스와 한솥밥을 먹게 됐다. 뉴욕 닉스에서 카멜로 앤써니와 호흡한 바 있는 그는 스미스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는 제임스와 조우하게 됐다. 스미스가 공격에 특화된 재원이라면, 셤퍼트는 상대적으로 수비에 좀 더 초점이 맞춰진 선수다. 셤퍼트는 클리블랜드에서 상대 주득점원을 막는 재원으로 가치가 크다. 클리블랜드가 셤퍼트를 데려온 이유다. 클리블랜드 유니폼을 입고, 그는 지난 2015 파이널에 올랐다. 우승은 실패했지만, 생애 첫 파이널에서 굵은 땀을 흘렸다. 지난 여름에는 클리블랜드와 장기계약도 체결했다. 클리블랜드는 셤퍼트에게 계약기간 4년 4,000만 달러의 계약을 안겼다.

하지만 셤퍼트는 이번 시즌 중반까지 나서지 못했다. 이유는 부상. 뉴욕에서도 이따금씩 다쳐서 자리를 비우곤 했다. 장기계약 첫 해 그는 시즌 중반에야 경기에서 뛸 수 있었다. 지난 플레이오프에서는 스미스가 징계로 자리를 비운 사이 주전 가드로 꾸준히 나섰다. 셤퍼트의 주전 출장으로 어빙이 수비 부담을 떨칠 수 있었다. 스미스가 벤치 공격을 이끄는 부분도 상당히 긍정적이었다. 공수 밸런스를 고려했을 시, 좀 더 나은 부분도 없지 않았다. 이번 시즌에는 부상으로 그럴 여력이 없었다.

다만 셤퍼트의 경기력이 좋지 않았다. 부상 이후 시간을 갖고 복귀했지만, 여파가 없지 않았다. 지난 시즌 클리블랜드로 온 이후 평균 7.2점을 올린 그는 이번 시즌에 평균 5.8점을 올렸다. 수비에서 제 몫을 해줄 수 있는 선수지만, 슛 성공률이 무너지면서 공격에서 어정쩡한 재원이 되고 말았다. 그는 데뷔 이후 처음으로 3점슛 성공률이 30% 미만에 그쳤다. 플레이오프에서는 좀 더 나았다. 간간이 3점슛도 넣으면서 경기력을 끌어올렸다. 2라운드 2차전부터 3라운드 3차전까지는 6경기 연속 3점슛을 성공하기도 했다.

그는 파이널 첫 3경기에서 내리 3점슛을 신고하기도 했다. 하지만 전반적인 활약은 여전히 아쉬웠다. 파이널에서 그의 기록은 평균 3점이 전부. 8점 이상은 너끈히 책임져주면서 상대 에이스가드를 막아주는 모습은 적어도 이번 플레이오프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이제 어엿한 장기계약자가 됐다. 적잖은 돈을 만지는 만큼 팀에 좀 더 보탬이 되어줘야 한다. 만약 이번 파이널에서 셤퍼트가 건재했다면, 시리즈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을 수도 있다. 클리블랜드가 결과론적으로 극적인 우승을 차지했지만, 그는 틀림없이 아쉬운 시즌을 보냈다.

셤퍼트가 확실히 지난 시즌과 같은 경기력이었다면, 클리블랜드의 선수운영의 폭은 좀 더 넓었을 터. 스미스와 셤퍼트가 같이 뛰는 모습도 지난 2015 파이널에서 왕왕 활용한 바 있다. 그러나 그러기에는 그의 경기력이 전처럼 완연하지는 않았다. 그는 지난 시리즈에서 경기당 18.3분을 뛰는데 그쳤다. 지난 2015 플레이오프에 비해서는 출전시간이 대폭 줄었다. 뒤늦게 시즌을 시작한 만큼 아무래도 몸 상태가 좋지 않았던 여파도 있었을 터. 다가오는 시즌에 클리블랜드가 다시금 우승에 도전하기 위해서는 셤퍼트의 가세가 좀 더 필요하다. 셤퍼트가 온전한 경기력을 발휘했을 때, 클리블랜드 백코트가 좀 더 균형을 갖출 것으로 예상된다.

Channing Frye

채닝 프라이, 메튜 델라베도바, 티모피 모즈고프, 모리스 윌리엄스, 제임스 존스, 조던 맥레이, 샤샤 쿤

프라이는 트레이드 데드라인을 앞두고 올래도에서 클리블랜드로 건너왔다. 제임스와 어빙이라는 탁월한 볼핸들러를 보유하고 있는 만큼 스트레치 빅맨이 절실히 필요했다. 프라이는 적임자였다. ‘인생의 표본’ 바레장(골든스테이트)을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로 보내는 대신 프라이를 부를 수 있었다. 지난 플레이오프에서 그의 역할은 잘 드러났다. 애틀랜타를 상대로 3점슛 세례를 퍼붓는 중심에 프라이가 있었다. 비록 지난 파이널에서의 역할은 거의 없었지만, 클리블랜드가 우승 전선까지 오는데 있어 그가 책임진 역할만큼은 잘 소화해냈다.

델라베도바도 있다. 여전히 쓸 때 없는 행위를 저지르지만, 이번에는 웃었다. 지난 파이널에서는 앤드류 보거트의 우승을 지켜봐야만 했지만, 이번에는 아니었다. 지난 파이널에서 어빙이 부상으로 전열에서 이탈했을 당시, 델라베도바는 주전 가드로 나서 스테픈 커리를 수비하는데 열을 올렸다. 지난 2015 파이널 2, 3차전에서 커리를 잘 막으며 팀이 시리즈 리드를 잡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하지만 이후에는 아니었다. 커리는 어렵지 않게 그의 수비를 뚫었고, 그는 이후 전과 같은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했다.

이번 파이널에서는 많은 기회를 잡을 수 없었다. 어빙이 다치지 않은 채 시리즈에 임했다. 백업 가드로도 나설 만 했지만, 공격에서 역할이 극히 제한적인 만큼 델라베도바가 코트를 밟을 틈은 그리 많지 않았다. 이번 파이널에서는 6경기에 나서 7분여를 뛰는데 그쳤다. 7차전에서는 출전조차 못했다. 하지만 그는 정규시즌에서 백업 가드 역할을 성실히 수행했다. 어빙이 없을 때, 모리스 윌리엄스와 함께 포인트가드 포지션을 책임졌다. 지난 시즌에 비해 경기력도 좀 더 나아졌다. 1년 계약을 맺은 그의 계약도 끝났다. 이적시장으로 나오게 된 것. 클리블랜드를 포함해 백코트 수비를 강화하려면 그를 데려갈 팀은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모즈고프도 기쁘지만 아쉬운 시즌을 보냈다. 어김없이 주전 센터 자리를 꿰찼다. 문제는 경기력이 지난 시즌만 못했다는 점. 결국 감독이 교체되는 홍역을 치른 클리블랜드는 끝내 모즈고프를 벤치로 보냈다. 터란 루 감독은 탐슨을 주전을 기용했다. 큰 신장을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세로 수비에도 일가견이 있는 그가 지난 시즌과 같은 경기력을 발휘했다면, 러브와의 공생에도 큰 도움이 됐을 터. 그러나 모즈고프는 끝내 지난 시즌과 같은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파이널에서는 물론 플레이오프 내내 가비지타이머가 됐다. 우승을 차지했지만 씁쓸한 성적표였다. 그의 계약도 종료됐다.

윌리엄스는 지난 시즌을 앞두고 다시 클리블랜드 유니폼을 입기로 결심했다. 어빙이 시즌 초반에 나서지 못하는 만큼 가드 보강을 위해 클리블랜드의 부름을 받았다. 윌리엄스의 영입은 클리블랜드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예상됐다. 어빙이 돌아온 후에 백업 가드로 나서게 될 터. 클리블랜드의 선수층이 더 두터워지는 것을 의미한다. 비록 부상을 당하면서 자리를 비우곤 했지만, 노장으로서 자리를 잘 지켰다. 제임스와 클리블랜드에서 이미 한솥밥을 먹은 경험이 있다. 당시 제임스 덕에 올스타에 뽑히는 등 나름 성공적인 이력을 쌓았다. 비록 제임스와 함께 우승을 차지하진 못했지만, 지금에서야 그 기쁨을 누릴 수 있게 됐다.

제임스와 함께 수년 째 함께 하고 있는 제임스 존스. 그는 마이크 밀러(덴버)가 팀을 떠난 이후에도 꾸준히 제임스의 곁을 지켰다. 3점슛이 탁월하지만 나머지 부분에서 많이 뒤처지는 만큼 대부분의 경기에서 모습을 드러내지 못했다. 정규시즌에는 분위기를 바꿀 때나 3점슛이 필요할 때 이따금씩 코트에 들어섰지만, 지난 파이널에서는 벤치를 지켜야 했다. 하지만 그는 우승이 확정된 후 제임스와 끌어안으면서 눈물에 잠긴 제임스에게 덕담을 안기지 않았다. 마이애미 시절부터 지금까지 누구보다 함께한 시간이 많은 만큼 제임스를 다독였다. 제임스 덕에 클리블랜드 유니폼을 입은 그도 이제는 계약이 만료됐다. 어느덧 30대 중반이 된 만큼 선수생활 지속여부를 두고 거취를 결정할 것으로 예상된다.

조던 맥레이는 지난 시즌 D-리그에서 엄청난 활약을 펼쳤다. 1경기에서 61점을 퍼부은 그는 존재감을 확실히 각인시켰다. ‘Orange Mamba’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것만 보더라도 득점력이 얼마나 탁월한 지 알 수 있다. 결국 시즌 막판 10일 계약을 통해 클리블랜드 유니폼을 입었고, NBA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당연히 많은 경기에선 뛰진 못했다. 다음 시즌 계약은 팀옵션으로 묶여 있다. 단테이 존스도 시즌 막판에 합류했다. 어느덧 노장인 그는 엄청 저렴한 몸값(8,819 달러)으로 클리블랜드로 합류했다. 시즌 막판에 계약한 부분인 것도 있다. 그는 지난 4월 14일(이하 한국시간)에 클리블랜드 유니폼을 입었고, 우승반지를 손에 넣었다. 샤샤 쿤도 있다. 지난 시즌을 앞두고 클리블랜드와 계약했다. 러시아 출신의 백업 센터였지만 중용을 받지 못했다. 그는 2016-2017 시즌까지 계약되어 있다.

사진 = NBA Mediacentr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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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son Ja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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