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NBA 역사 속 오늘] 클라이드 드렉슬러, 새크라멘토전 50점 올린 날!
- KBL / Jason / 2016-01-07 11:14:58

[바스켓코리아 = 이재승 기자] 1월 7일(이하 한국시간) NBA에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
이날은 지난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 중반까지 리그를 호령한 ‘The Glide’ 클라이드 드렉슬러(가드-포워드, 201cm, 95kg)가 맹폭을 가한 날이다. 드렉슬러는 지난 1988-1989 시즌 새크라멘토 킹스를 상대로 시즌 최다인 50점을 퍼부었다. 이는 드렉슬러의 1경기에서 올린 가장 많은 득점이기도 하다. 드렉슬러는 당시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에 속해 있었다. 당시 동부컨퍼런스에 마이클 조던(시카고)이 있었다면 서부컨퍼런스에는 드렉슬러가 있었다.
드렉슬러는 이날 엄청난 득점력을 뽐냈다. 드렉슬러는 이날 3점슛을 하나도 집어넣지 못했다. 하지만 자유투로 12점을 곁들인 것을 시작으로 2점슛 성공률에서 엄청난 적중률을 자랑했다. 드렉슬러는 이날 25개의 2점슛을 시도했고 이중 19개를 적중시키는 엄청난 성공률을 과시했다. 이날 필드골 성공률만 70%에 육박했을 정도(.679). 3점슛 시도를 제외하면 순수 2점슛 성공률은 하늘을 찔렀다. 뜨거운 손맛을 과시하며 새크라멘토의 림을 사정없이 두드렸다.
보통 슛이 잘 들어가면 득점에 치중된 기록이 나오기 십상이다. 그러나 드렉슬러는 이 와중에도 7리바운드 4어시스트 3스틸까지 보태면서 팀의 승리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실책도 단 3개밖에 기록하지 않았다. 드렉슬러의 활약 끝에 포틀랜드가 2차 연장까지 가는 접전 끝에 147-142로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연장전에서도 맹활약한 드렉슬러는 이날 49분을 소화했다.
나머지 선수들의 도움도 컸다. 케빈 덕워스는 골밑에서 30점 11리바운드로 생애최고 경기를 펼쳤다. 테리 포터는 이날 양팀에서 가장 많은 52분 동안 코트를 지키며 22점 6리바운드 17어시스트 7스틸을 곁들이면서 드렉슬러를 잘 보좌했다. 새크라멘토에서 7명의 선수들이 두 자리 수 득점을 거둔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새크라멘토에는 케니 스미스(현 『TNT』 Inside NBA 패널)가 포진하고 있었다. 공교롭게도 스미스는 이후 애틀랜타 호크스로 트레이드됐다가 지난 1990년 여름에 다시 휴스턴으로 트레이드됐다. 지난 1987-1988 시즌 새크라멘토에서부터 주전자리를 꿰찬 스미스는 휴스턴에서도 꾸준히 주전 포인트가드로 나섰다. 드렉슬러와 함께 휴스턴의 주전 가드로 나섰고, 휴스턴에서 올라주원과 드렉슬러를 도와 2연패를 일구는데 일조했다.
쉽지 않았던 드렉슬러의 반지 원정!
드렉슬러는 지난 1983 드래프트를 통해 NBA에 데뷔했다. 1라운드 14순위로 포틀랜드의 부름을 받은 그는 휴스턴 로케츠로 트레이드되기 전인 지난 1994-1995 시즌 트레이드 데드라인까지 약 12시즌을 포틀랜드에 몸담았다. 휴스턴에서 하킴 올라주원과 함께 원투펀치를 구성하며 팀을 2회 연속 우승으로 견인하기 전까지 드렉슬러는 좀체 우승과 연을 맺지 못했다. 드렉슬러가 데뷔 시즌부터 은퇴 시즌까지 15시즌 연속 플레이오프에 나섰지만, 우승은 휴스턴에서 맛 볼 수 있었다.
드렉슬러는 포틀랜드의 고독한 에이스였다. 팀을 항상 플레이오프로 견인했지만 우승과는 거리가 있었다. 드렉슬러라는 확실한 득점원은 있었지만, 그를 뒷받침하는 선수들의 면면이 다소 부족했다. 지난 1998-1989 시즌에는 지난 2000년대 후반 피닉스 선즈에서 지휘봉을 잡은 바 있는 포터를 시작으로, 포틀랜드에서 반짝했던 덕워스, 유능한 득점원인 벤더웨이가 있었다.
그러나 이들 중 드렉슬러를 제대로 도와 준 선수는 없었다. 포터는 포인트가드로서 팀에 보탬이 됐다. 드렉슬러의 백코트 파트너로서 나쁘지 않았다. 내구성도 탄탄했다. 하지만 백코트만으로 우승에 다가서긴 역부족이었다. 덕워스는 포틀랜드에서 평균 두 자리 수 득점을 올리는 빅맨이었지만, 세기에서 다소 부족한 부분이 없지 않았다. 포틀랜드는 드렉슬러와 함께 팀의 공격을 맡길 목적으로 벤더웨이를 트레이드해왔다. 포틀랜드는 켈빈 냇, 웨인 쿠퍼, 펫 레버 그리고 드래프트 티켓 2장을 덴버에 보내는 대신 벤더웨이를 영입했다. 벤더웨이를 데려오게 되면서 포틀랜드는 드렉슬러와 벤더웨이로 이어지는 멋진 다이내믹듀오를 갖추게 됐다.
하지만 벤더웨이는 지난 1987-1988 시즌에 등부상을 당했고 이후 기량회복에 실패했다. 부상 전까지만 하더라도 벤더웨이는 덴버 너기츠의 주득점원이었다. 벤더웨이도 50점 이상을 퍼부은 바 있으며(51점 기록), 지난 1981-1982 시즌부터 부상 전까지 7시즌 연속 평균 20점 이상을 득점했다. 벤더웨이도 드렉슬러를 도와주지 못했다. 벤더웨이가 건강했던 포틀랜드에서의 첫 3시즌 동안에도 꾸준히 플레이오프를 두드렸지만, 지난 1985년을 제외하고는 모두 1라운드 문턱에서 좌절해야 했다.
드렉슬러는 휴스턴으로 트레이드되고 나서야 높은 무대에 올라설 수 있었다. 드렉슬러는 지난 1994-1995 시즌 트레이드 데드라인을 앞두고 포틀랜드에서 휴스턴으로 보내졌다. 이는 마감시한 이전에 나온 트레이드 들 중 손꼽히는 성공작으로 평가된다. 휴스턴은 드렉슬러와 트레이시 머레이를 영입했고, 오디스 도프(전 올랜도 단장)과 마르셀로 니콜라와 1995 드래프트 1라운드 티켓을 보냈다. 지난 1993-1994 시즌에 프랜차이즈 역사상 첫 우승을 차지한 휴스턴은 드렉슬러를 영입하면서 전력을 대폭 끌어올렸다.
드렉슬러는 포틀랜드의 프랜차이즈스타였지만 정작 휴스턴에서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 우승을 차지할 수 있었다. 휴스턴은 드렉슬러가 대학시절을 보낸 곳이다. 그의 22번은 휴스턴 코거스의 영구결번으로 지정되어 있다. 아직도 포틀랜드의 구단 역사상 정규시즌 최다득점 순위에서 드렉슬러가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드렉슬러는 이후 휴스턴에서 선수생활을 마무리했다. 지난 1997-1998 시즌을 끝으로 코트를 떠났다. 여전히 녹슬지 않은 기량을 갖추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드렉슬러는 농구공을 놓기로 결심했다.
드렉슬러는 포틀랜드와 휴스턴에 모두 영구결번을 갖고 있다. 포틀랜드에서는 힘들었던 팀을 이끌어 준 공로가 크다. 휴스턴에서는 중요한 순간에 팀의 첫 연속 우승에 힘을 보탰다. 더불어 ‘NBA 위대한 50인’에도 이름을 올리는 등 굵직굵직한 커리어를 쌓았다. NBA 역사를 통틀어 복수 구단에 영구결번된 인물은 도합 9명. 이중 선수시절에만 한정 짓는다면 제리 슬로언 전 유타 재즈 감독을 제외한 8명이 된다. 또한 복수의 구단에서 모두 뛰고 결번된 선수는 7명이 전부(조던 제외)다. 단일 구단에서도 해내기 힘든 일을 복수의 구단에서 해낸 것만으로도 대단한 업적이다.
# 역대 복수 구단 영구결번자
윌트 체임벌린_ 골든스테이트(13번), 필라델피아(13번), 레이커스(13번)
네이트 써먼드_ 골든스테이트(42번), 클리블랜드(42번)
피트 매러비치_ 유타(7번), 뉴올리언스(7번)
오스카 로버트슨_ 새크라멘토(14번), 밀워키(1번)
카림 압둘-자바_ 밀워키(33번), 레이커스(33번)
줄리어스 어빙_ 브루클린(32번), 필라델피아(6번)
클라이드 드렉슬러_ 포틀랜드(22번), 휴스턴(22번)
마이클 조던_ 시카고(23번), 마이애미(23번)
※ 조던은 마이애미에서 뛰지 않았다.
※ 슬로언 전 유타 감독은 시카고(4번)와 유타(1,223번)이 결번되어 있다.
드렉슬러는 지난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드림팀의 당당한 일원이 되어 미국의 금메달 탈환에 역할을 다했다. 지난 1983년부터 지난 1998년까지 드렉슬러는 개인통산 22,195점 6,677리바운드 6,125어시스트 2,207스틸을 기록했다. NBA에서 20,000점+ 6,000리바운드+ 6,000어시스트+ 이상을 기록하는 기염을 토해냈다. 현역 선수 중에는 코비 브라이언트(레이커스)와 르브론 제임스(클리블랜드)가 기록하고 있다. 이만하면 당대에 드렉슬러가 어떤 선수였는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으로 사료된다.
사진 = Google.com Cap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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