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승 칼럼] 우승 반지를 낚은 남자, '낚시왕' 데릭 피셔의 18시즌을 돌아보며 (1)

NBA / Jason / 2014-08-25 07:50:37
Derek Fisher

[바스켓코리아 = 이재승 기자]'D-Fish' 데릭 피셔가 18시즌을 수놓았던 NBA 선수생활을 마감했다.

피셔는 지난 6월 11일(이하 한국시간) 뉴욕 닉스 감독으로 선임되면서 선수로서의 은퇴를 고했다. 피셔는 스타급 선수는 아니었지만, 팀이 필요할 때마다 제 몫을 다하면서 개인통산 다섯 차례 우승을 거두는 등 남부럽지 않은 선수시절을 보냈다.

지난 1996 드래프트에서 피셔는 LA 레이커스의 지명을 받으면서 NBA 무대에 발을 들였다. 1996 드래프트는 앨런 아이버슨(1순위), 레이 앨런(5순위), 코비 브라이언트(13순위), 스티브 내쉬(15순위) 등 여러 슈퍼스타들이 지명된 드래프트로 잘 알려져 있다. 그 와중에 피셔의 이름도 있었다.

그의 곁에는 샤킬 오닐, 브라이언트를 시작으로 케빈 듀랜트까지 여러 슈퍼스타들과 함께 뛰는 행운까지 누렸다. 특히 레이커스 시절에는 브라이언트와 함께 모든 우승을 합작하면서 브라이언트와 좋은 호흡을 선보이기도 했다.

또한 피셔는 지난 2006년에 선수협회 회장으로 선임되면서, 그 역할까지도 잘 수행했다. 특히 지난 2011년에는 2005년에 체결한 CBA(Collective Bargain Agreement)가 만료되면서 직장폐쇄(Lockout)를 맞이하기도 했다.

피셔는 직장폐쇄 와중에도 선수협회장으로서 선수협회 이사인 빌리 헌터와 함께 선수들의 권익을 주장하는데 앞장서기도 했다. 직장폐쇄가 길어지면서 'NBA 직장폐쇄가 길어지는 것이 피셔 때문'이라는 오명을 덮어쓰기도 했지만, 피셔는 선수들의 이권을 포기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그의 선수시절 대부분은 레이커스에서 보냈다. 특히 지난 2011-2012 시즌 트레이드 데드라인을 앞두고 휴스턴 로케츠로 트레이드되면서 여러 팀들을 떠돌기도 했다. 피셔는 휴스턴 로케츠를 시작으로 오클라호마시티 썬더, 댈러스 매버릭스에서 뛰었으며, 오클라호마시티에서 길었던 그의 선수생활을 마감했다.

피셔의 길고 길었던 18시즌 간의 대장정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져봤다.

목차

1. 1996-2004 시즌

2. 2004-2014 시즌

프로필

1996 드래프트 1라운드 24순위, LA 레이커스에 지명

1996-2004 레이커스

2004-2006 워리어스

2006-2007 유타재즈

2007-2012 레이커스, 로케츠, 썬더

2012-2013 매버릭스, 썬더

2013-2014 썬더

*우승 5회, 슈팅스타 챔피언(2004)

1996-2000, 주전으로 도약하기까지

레이커스에 드래프트된 것은 피셔의 운인지도 모르겠다. 레이커스는 1996 드래프트에서 샬럿 호네츠(현 뉴올리언스)가 지명한 코비 브라이언트를 트레이드해왔다. 피셔는 뒤이어 24순위로 레이커스 유니폼을 입게 됐다.

피셔는 데뷔 때부터 빛을 발휘하는 듯 했다. 피셔는 피닉스 선즈와의 데뷔경기에서 12점을 터트리며 팀이 승리하는데 크게 일조했다. 여타 슈퍼루키였다면 어렵지 않게 가능했을는지도 모르겠지만, 레이커스에서 그 것도 1라운드 후반에 지명된 피셔의 활약은 향후 피셔가 레이커스에서 가져온 활약의 서막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이후 피셔는 2경기 연속 두 자리 수 득점을 두 차례나 만들어내기도 했고, 1997년 4월 7일에 있었던 댈러스와의 경기에서는 시즌 최다인 21점에다 6어시스트까지 곁들이며 이날 승리의 수훈갑이 됐다. 하지만 전반적인 시즌은 들쑥날쑥했다. 아무래도 신인이다보니 제대로 된 기량을 펼치기조차 쉽지 않았다. 피셔는 데뷔 첫 해 3.9점을 올리는데 그쳤다.

이어진 1997-1998 시즌에는 피셔가 한 단계 도약하는 시즌이었다. 피셔는 82경기 중 무려 36경기에서 주전으로 나서면서 점차 레이커스 백코트의 핵심으로 자리매김했다. 피셔는 시즌 초반을 닉 밴 엑셀의 백업으로 시작했다. 그러나 트레이드 데드라인을 앞두고 레이커스는 밴 엑셀을 덴버 너기츠로 트레이드했다. 이후 피셔는 레이커스의 주전 포인트가드 자리를 꿰찼다.

피셔는 1998년 3월 5일부터 5경기 내리 두 자리 수 득점을 터트렸다. 시즌최다이자 생애최다동률인 21점을 폭발하기도 했고, 두 자리 수 어시스트를 연거푸 기록하기도 했다. 당시 피셔의 5경기 성적은 16.6점 6.2리바운드 7.4어시스트에 달했다. 3점슛 성공률은 66.7%나 기록했을 정도. 피셔의 상승세와 함께 레이커스는 연승을 이어나갔다.

플레이오프에서도 피셔의 진가는 발휘되기 시작했다. 피셔는 데뷔 이후 처음으로 서부 컨퍼런스 파이널 무대를 밟았다. 하지만 상대는 칼 말론과 존 스탁턴이 이끄는 유타 재즈. 레이커스는 힘 한 번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유타에 시리즈 스코어 4대 0으로 참패를 면치 못했다. 피셔는 서부 결승 4경기를 포함 13경기에서 경기당 6점 3.8어시스트를 보탰다.

1998-1999 시즌은 직장폐쇄로 말미암아 단축시즌이 열렸다. 피셔는 50경기 모두에 출전했으며, 그 중 21경기에서 주전으로 출장했다. 이윽고 1999-2000 시즌, 레이커스는 시카고 불스에서 마이클 조던과 무려 여섯 차례 우승을 합작했던, 'Zen Master' 필 잭슨 감독에게 지휘봉을 맡겼다.

2000-2004 주전가드 그리고 챔피언십

트라이앵글 오펜스를 구사하는 잭슨 감독의 부임은 피셔에게만큼은 호재가 아니었다. 트라이앵글 오펜스에서는 포인트가드의 역할이 작다보니 피셔의 역할이 극히 제한적이었다. 아무래도 신장이 좋은 포인트가드를 원한 잭슨 감독의 의중과 피셔는 적어도 가까이 있지 못했다. 결국, 시카고에서 잭슨 감독의 휘하로 있던 론 하퍼가 레이커스에 새둥지를 틀게 되면서 피셔는 다시 벤치로 밀려나게 됐다.

하지만 오는 게 있으면 가는 게 있다고 했던가? 피셔는 그런 와중에도 하퍼와 브라이언트의 백업을 성심성의껏 잘 소화했다. 하퍼와 브라이언트가 부상으로 자리를 비웠을 때는 주전으로 나서며 공백을 메우는 데 최선을 다했다. 레이커스는 시즌 막판 엄청난 기세로 질주했다. 19연승과 11연승을 곁들이며 시즌 마지막 33경기에서 31승을 쓸어 담았다. 그야말로 리그내 여타 팀들을 밀어버릴 기세였다.

피셔는 잭슨 감독의 지도 아래 오닐과 브라이언트라는 역대급 원투펀치와 함께 우승트로피에 입맞춤을 했다. 피셔의 생애 첫 우승이었다. 피셔의 활약이 크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적은 것은 절대 아니었다. 피셔는 당시 인디애나 페이서스와의 파이널 3차전에서 10점 10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생애 첫 플레이오프에서 더블더블을 작성했다.

이어지는 레이커스의 행보에는 거침이 없었다. 큰 전력변화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레이커스는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피셔는 부상으로 많은 시간을 함께하지 못했다. 오른발이 피로골절 부상을 입으면서 62경기나 결장했다. 하지만 복귀 이후의 페이스는 단연 최고였다. 피셔는 복귀전인 보스턴 셀틱스와의 경기에서 커리어하이인 26점을 폭발시켰다. 5리바운드 8어시스트 6스틸까지 곁들이면서 공수 양면에서 맹활약했다.

피셔의 복귀가 레이커스에게 큰 힘이 됐던 것일까? 시즌 내 주춤하던 레이커스는 플레이오프를 앞두고 기세를 올리기 시작했다. 지난 1999-2000 시즌 막판에 19연승을 포함 67을 올린 것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레이커스는 8연승으로 시즌을 마무리하면서 플레이오프를 앞두고 있었다.

이어지는 플레이오프. 2001 플레이오프는 레이커스의 기세가 무지막지했다. 레이커스가 결승까지 가는 데는 단 1패도 헌납하지 않았다. 레이커스는 서부 컨퍼런스 전체를 스윕하며 파이널에 고개를 내밀었다. 2연패를 위한 본격적인 시동이었다. 피셔는 1라운드부터 서부 결승까지 치른 12경기에서 평균 15.1점 5리바운드 3.5어시스트로 오닐과 브라이언트의 뒤를 단단히 했다. 3점슛 성공률도 51%로 결정적일 때마다 '한 방'을 터트렸다.

특히 샌안토니오와의 서부 결승 4차전에서는 플레이오프 최다이자 개인 한 경기 최다인 28점을 몰아쳤다. 피셔는 이날 3점슛을 7개를 시도해 6개를 적중시키는 엄청난 폭발력을 자랑했다. 6리바운드 5어시스트는 덤이나 다름없어 보였을 정도. 이후 피셔는 큰 경기에서 여지없이 '스퍼스 킬러'로 자리매김했다.

파이널에서 필라델피아를 4대 1로 물리친 레이커스는 2연패에 성공했다. 피셔는 파이널 5차전에서 3점슛 8개를 던졌는데 이 중 6개가 림을 갈랐다. 레이커스 2연패의 축포나 다름없었다. 피셔는 이날 18점을 더하면서 팀의 2연패에 크게 공헌했다.

2001-2002 시즌에는 부상으로 70경기에 나섰다. 그 중 절반인 35경기에서 주전으로 나선 피셔는 평균 11.2점을 올렸다. 3점슛 성공률은 시즌 통산 최다인 41.3%로 레이커스의 외곽공격을 이끌었다. 오닐과 브라이언트가 상대 수비를 끌어 모으기 때문에 피셔가 열리는 기회가 적잖은 것이 사실. 그러나 피셔는 이와 같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잘 잡아냈다.

레이커스는 플레이오프에서 서부의 강적을 연이어 만나기 시작했다. 지난 1999-2000 시즌은 정규시즌, 2000-2001 시즌은 플레이오프에서 각각 엄청난 버닝모드로 우승배너를 걸어올렸다. 하지만 2001-2002 시즌은 결코 녹록치 않았다. 무엇보다 플레이오프에서 서부의 내로라하는 강적들을 연이어 상대했다.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 샌안토니오 스퍼스, 새크라멘토 킹스까지 결코 호락호락한 팀들이 아니었고, 전력은 물론이고 선수구성적인 면에서 결코 뒤처지는 팀들이 아니었다.

레이커스는 꾸역꾸역 상대들을 물리치며 파이널까지 올랐다. 파이널에서 피셔는 제이슨 키드에 맞섰다. 피셔는 파이널 4경기 평균 12.8점을 올렸고, 3점슛 성공률도 66.7%에 달했다. 피셔의 세 번째 우승반지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피셔는 2002-2003 시즌 풀타임 주전가드로 거듭났다. 그러나 플레이오프에서 샌안토니오에 발목이 잡히며 4연패의 꿈은 무산되고 말았다.

뒤이은 2003-2004 시즌, 피셔는 다시 벤치에서 시즌을 출발하게 됐다. 2003년 여름 칼 말론과 게리 페이튼이 할리우드에 전격 합류했다. 레이커스는 'Fantastic4'를 구성하며 일약 챔피언 타이틀을 노릴 유력한 후보로 여겨졌다. 피셔는 벤치에서 페이튼의 백업 역할을 맡았다.

2004 플레이오프. 샌안토니오와의 서부 컨퍼런스 세미파이널 5차전. 피셔가 역사적인 장면을 만들어냈다. 피셔는 0.4초가 남겨진 상황에서 페이튼의 인바운드패스를 받아 바로 점프슛으로 연결했다. 피셔의 슛은 림을 관통했고, 레이커스가 5차전을 잡아내며 서부 결승으로 가는데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다.

브라이언트와 팀 던컨이 한 차례씩 주고받은 클러치 상황에서 샌안토니오는 브라이언트를 적극 수비했다. 하지만 피셔는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가 그림과 같은 버저비터를 만들어냈다. 레이커스의 짜릿한 1점차 승리였다. 그야말로 작전의 승리였다. 0.4초가 남겨진 상황에서 세 번이나 연달아 타임아웃이 요청됐다. 레이커스, 샌안토니오, 레이커스가 부른 상황에서 페이튼의 패스가 피셔에게 갔고 피셔가 이를 성공시킨 것이다.

# '강태공' 피셔의 0.4초 버저비터

https://www.youtube.com/watch?v=NSnAvhvfniw

레이커스는 홈에서 열린 6차전을 잡고 서부 결승으로 향했다. 이어 케빈 가넷-라트렐 스프리웰-샘 커셀이 버티고 있는 미네소타를 6차전에서 잡아내며 결승에 올랐다. 하지만 결승에선 디트로이트 피스턴스에게 패하고 말았다. 그리고 다가온 2004년 여름, 피셔는 레이커스를 떠나기로 결심한다.

사진 = Derek Fisher Face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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