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에 미치다 人] 청주 KB스타즈 정상호 운영팀장
- 대학 / sportsguy / 2014-02-17 10:37:52

[바스켓코리아 = 김우석 기자] 최근 잘 나가나는 WKBL 팀을 꼽으라면 단연 청주 KB스타즈이다. 신장의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KB스타즈는 승승장구하며 3위를 질주하고 있다. KB스타즈는 3인 코치 체제를 확립, 효율적인 업무 분담을 통해 좋은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여기에 ‘농구에 미치다 人’에 소개될 정상호 운영 팀장이 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농구에 미쳐’ 지금까지 농구계에 몸담고 있는 정상호 팀장을 만나보았다.
농구공, 그 우연과 필연의 만남
어린 시절 우연히 접한 농구의 매력에 푹 빠져 농구를 즐기게 된 정상호 팀장은 고등학교 시절 교내 클럽 팀인 ‘골통’에 가입하면서 농구라는 운동에 더욱 심취하게 되었다.
작은 키로 인해 크게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던 정 팀장은 창원대학교로 진학한 1991년에도 다르지 않았다. 농구라는 운동의 특성 상 신장이 작은 사람에게 크게 유리할 것이 없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농구 중독증’에 걸린 정 팀장은 신장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선수가 아닌 생활체육인 임에도 불구하고 1년 동안 슛팅 연습에 매진했다. 농구라는 운동의 재미를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또, 대학 1년 시절 내내 벤치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이유도 그의 승부 근성을 자극하는 한 가지 요인이 되었다.
1년 동안 각고의 노력을 기한 정 팀장은 동년배 중에 슛팅에서 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실력이 올라섰고, 자신의 키와 기술에 어울리는 슛팅 가드라는 자리를 2학년 때부터 차지할 수 있었다.
정 팀장은 “당시 농구를 너무 좋아했는데, 게임을 뛰지 못하니 정말 속상하더군요. 그래서 정말 선수도 아닌 사람이 미친듯이 농구를 했던 것 같아요. 수업 시간을 제외하곤 거의 농구장에 살다시피 했어요. 그리고 나에게 적합한 포지션을 찾다가 ‘슛팅 가드’라는 위치를 찾아냈고, 엄청난 슛팅 연습을 했지요. 지금 생각해도 정말 즐겁게 미쳤던 시절이었던 것 같아요”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후 2학년 내내 도내에서 열리는 시합에 빠짐없이 참여하면서 ‘농구와의 여행’으로 젊은 날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던 정 팀장은 군대에 입대하기 전날까지 농구공을 놓지 않았다고 한다.
그야말로 ‘농구에 미친’ 정 팀장의 면모를 느낄 수 있었던 한 마디였고, 그렇게 군대에 입대하며 농구와 새로운 인연의 시작을 알리게 되었다.
새로운 인연, 농구 심판
군에 입대하기 직전 정 팀장은 심판과의 연으로 새로운 농구와 인연을 시작했다. 1992년 대한농구협회 심판 강습회를 수료한 정 팀장은 경남농구협회 심판으로 간간히 심판의 ‘맛’을 보았다.
당시 경상남도 남자 농구는 전국 체전 선발권을 두고 고등부는 마산고와 가야고, 중등부는마산동중과 임호중, 그리고 여자부는 마산여고과 삼천포여고의 치열한 접전이 펼쳐질 때였다. 정 팀장은 부산 출신이라는 중립적인 입장을 갖을 수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다소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게임에 심판으로 역할을 부여 받을 수 있었다.
정 팀장은 “심판 자격증을 소지한 사람들이 많지 않아 누릴 수 있던 행운이었죠. 정말 치열함 이상의 게임이었어요. 자격증을 소지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누릴 수 있던 ‘대단한 경험’이었죠. 지금 생각해도 정말 손에 땀이 나요”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그렇게 생활체육 선수와 심판으로 소중한 경험을 한 정 팀장은 2년 여가 넘는 군 생활 이후에도 경남 농구협회 심판으로 활동하며 농구의 지식과 경험을 더해갔다. 당시 기억 중에 하나는 현재 WKBL 대표 선수로 성장한 마산여고 듀오 신정자(KDB생명), 임영희(우리은행) 등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한다.
그리곤 더욱 큰 경험을 더하기 위해 1996년 대한농구협회에서 발급하는 2급 심판 자격증을 취득하며 심판에 대한 커리어를 높혔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정 팀장의 열정은 성에 차지 않았고, 1998년 대한농구협회 심판으로 활동하기 위해 당시 8주 동안 펼쳐졌던 심판 학교에 등록해 두달 동안 창원과 서울을 오가며 열정적으로 교육에 임했다. 당시 창원과 서울은 왕복 10시간이 넘을 정도의 장거리 코스였다. 하지만 시간이 정 팀장의 농구와 관련된 열정은 막아설 수 없었던 것 같다.
그리곤 98년 후반 전격적으로 서울로 상경해 대한농구협회 심판으로 활동을 하면서 농구에 대한 갈증을 해소시켜 갔다. 그리곤 다시 새로운 길을 선택하며 농구인으로서 세번째 새로운 도전을 하게 된 정 팀장이었다.
새로운 도전, WKBL 경기 운영 팀
1년여의 아마농구 심판으로 활동하던 정 팀장은 1999년 WKBL심판 모집에 응시해 그 해 겨울 리그부터 WKBL 심판으로 활동했다. 이후 두 시즌(여름, 겨울 리그)을 심판으로 활동하던 나는 2000년 5월 WKBL 경기운영 팀장으로 보직을 바꾸게 된다.
1997년 창원 LG세이커스에서 기록원으로 KBL 전산 통계를 운영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WKBL.경기 운영 및 통계의 전산 관리를 맡게 된 것이다. 당시 WKBL 경기 기록은 수기를 통해 입력하는 시스템으로 경기 기록 제공 및 통계에 있어서 열악한 상황이었다.
정 팀장은 LG에서 보고 느꼈던 경험을 WKBL에 효율적으로 풀어냈다. 당시 WKBL은 1년에 여름리그와 겨울리그를 치렀다. 지역 연고 제도가 확립되지 않아 많은 경기를 장충체육관에서 치르고, 지방 중립 경기를 통해 여자 농구를 알리는 형태로 리그가 진행되었다. 국제 대회(아시아 선수권, 아시안 게임, 세계 선수권) 일정에 따라 4라운드 또는 3,5라운드로 여름, 겨울에 나누어 치렀던 것이다.
하지만 기록 시스템이 수기로 입력했기 때문에 ‘정말 힘들다’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상황이었다. 정 팀장은 “참 힘들었던 시기죠. 모든 기록을 수기로 작성하다 보니 정말 힘에 부쳤어요”라고 짧고 굵게 그 시절을 회상했다.
그렇게 정 팀장은 2002~2003 겨울리그까지 WKBL 경기운영 팀장으로 리그를 운영하며, 지금의 전산 통계 시스템과 지역 연고 정착을 위한 기틀을 마련하고자 각 구단의 연고지 경기를 도맡아 운영해왔다.
그리곤 또 한 차례의 변화가 찾아왔다. 2003년 5월 국민은행(현 KB스타즈)으로부터 “프런트로 일해 보지 않겠느냐?”라는 제의가 들어온 것. 정 팀장은 제의를 받아들였다. 새로운 변화를 가져야 할 시점이라는 판단이 들었다고 한다.

구단 프런트로 이직, 그리고 11년
그렇게 5년 동안 여자농구에 몰입했던 정 팀장은 구단 프런트라는 새로운 업무를 만나게 된다. 중,고 선수들이 프로에 진출할 시기가 되어 경기 지원 팀장 역할과 전력 분석의 역할을 겸하며, 신인 선수 선발 자료 수집, 연고지 정착을 위한 마케팅 활동, 비시즌 전지훈련을 위한 타국 팀들과의 유대관계 등. 다양한 업무를 접하며 프런트로서 해야 할 업무들을 경험하게 되었다.
정 팀장이 해낸 지난 일 중 가장 애착이 가는 부분은 바로 KB스타즈의 지난 연고지였던 천안의 안정적인 안착. 지자체의 관심과 연고지 시민들이 참여해서 꾸며내는 다양한 볼거리와 지역 업체와의 협력관계를 통해 KB스타즈를 천안에 널리 알릴 수 있었다.
정 팀장은 “처음에는 정말 난해했죠. 관심이 그다지 높지 않아서 관중들 모으기도 힘들고,비록 남자 배구와의 연고지 중복으로 인해 청주로 옮겨 가긴 했지만, 천안에서의 연고지 정착을 위한 경험이 연고지 이전과 정착에 큰 보탬이 되었던 의미있던 경험”이라고 말했다.
또, 정 팀장은 오랜 WKBL 경험을 통해 ‘여자프로농구단’에 대한 자신의 철학도 내놓았다. 정 팀장은 “대한민국에서 프로 스포츠 구단 운영 목 중 일부는 모기업의 홍보에 있다고 봅니다. 특히, 금융권 기업이 운영하는 WKBL 구단들에게 있어서는 여자농구가 기업 이미지 부각에 충분히 부합되고, 이미 여자농구를 통해 업계 장외 경쟁관계에 놓여있다고 봅니다”라고 말하면서 “여자 프로 농구단의 운영이 수익 사업이 아닌 모기업의 홍보, 팬 서비스, 영업 이익의 사회 환원 차원에서의 접근을 통해 좀 더 지역 사회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상황이죠”라며 여자프로농구단의 가치를 설명했다.
그리고 다소 아쉬운 부분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정 팀장은 “타 프로 스포츠 종목과 다르게 모기업에 속해 있다 보니 프런트 업무의 연속성에 있어서는 열악한 것이 현실이다.인사이동 및 보직의 변경을 통해 프런트 업무가 이어지다 보니, 프런트 전문 인력의 부족으로 연고지와의 협력 관계 및 홈 경기 운영의 전문성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KB스타즈는 조금 다르다. 청주가 이제 연고지를 이전한 지 4년 차에 불과하지만 경기가 있는 날이면 늘 술렁이는 느낌을 준다. 매 경기 관중석이 만원에 가까운 인원이 찾아오고 있는 데다, 매점이나 구단 용품을 파는 곳 역시 한가한 느낌이 없을 정도이다. 최근 여자농구에 불어오고 있는 새로운 바람을 느낄 수 있는 진원지 중이 한 곳이 청주이다.
KB스타즈는 정 팀장을 비롯한 프런트로 오랜동안 프런트 일에 종사하고 있다. 황성현 사무국장 역시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자리를 지키고 있다. 결과로 지난 2년 연속 프런트 상을 받는 등 ‘풍부한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효과적인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는 증거라 할 수있다.
정 팀장은 프로 팀의 성공적이 연고지 정착을 위한 내용을 말해주었다. 정 팀장은 “성공적인 연고제 정착을 위해서는 지자체의 관심, 그리고 교육청과의 적극적인 유대관계 형성을 통해 청소년들의 볼거리 스포츠 문화 컨텐츠로써 지역 사회에서 자리를 잡아야 한다”라고 조언했다.
마지막으로 정 팀장은 “나는 여자 농구로 인해 행복한 사람이다. 그 누구도 못할 경험들을 지난 15년간 해왔다.심판으로, 연맹 직원으로, 구단 프런트로, 또, 구단 사정으로 인한 3번의 코치 대행까지… 그렇게 여자 농구의 매력에 푹 빠져 있으면서 가장 보람을 느끼는 순간은 역시 힘들게 땀 흘린 선수들이 멋진 경기로 승리할 때 이를 축하하고 환호해 줄수 있는 팬들이 가득한 체육관의 모습을 볼 때이다. 지금도, 앞으로도 이를 위해서, 여자 농구를 위해서 열심히 노력할 것이다”라며 인터뷰를 정리했다.
사진 제공 = WKB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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