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 농구를 말하다 ②] 여자동호인 구슬, 그녀의 농구 입문기(1편)
- WKBL / kahn05 / 2014-01-13 10:01:40

[바스켓코리아 = 손동환 기자] 모든 사람이 싫어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모든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것. 바로 ‘편견(偏見)’이다. 스포츠에서는 특히 ‘편견(偏見)’이라는 단어가 많이 쓰이고 있고, 농구 또한 많은 편견이 알게 모르게 자리잡고 있는 스포츠다.
일반 여성이 농구를 직접 한다는 것도 우리 나라에서는 보기 드문 광경이다. 하지만 이러한 틀을 과감하게 깨는 이가 있다. 바로 여자농구동호회 ‘아미카(AMICA)’에서 활약하고 있는 구슬(28) 씨다. 여성스러운 이름과 다르게, 농구에 대해서는 전투적(?)인 애정을 보인 그녀. 그녀가 말한 농구의 매력은 과연 무엇일까?
# 운동이 좋았던 그녀, 농구부 입단까지 생각했지만...
구슬 씨가 농구를 처음 접하게 된 시기는 초등학교 5학년. 이 때는 그저 친구들과 뛰어노는 것이 좋았다. 농구 뿐만 아니라, 축구와 야구까지 섭렵(?)했던 시기였다. 하지만 그녀가 제일 좋아했던 종목은 농구. 그녀는 “어린 마음에 남자들과 비슷하게 할 수 있는 종목을 찾고 싶었어요. 그것이 농구였어요. 어릴 때는 여자 애들이 남자보다 체격도 좋잖아요(웃음)”라며 어릴 때부터 남다른 승부욕(?)을 보였다.
하지만 농구에 대한 열정이 없었다면, 남다른 승부욕도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농구부가 있는 학교로 전학까지 생각할 정도였다. 그렇지만 부모님의 반대로 성사되지 못했다. 그녀는 “농구부가 있는 학교로 가려고도 했어요. 하지만 부모님께서도 너무 싫어하셨죠. 그런데 지금은 농구를 안 하길 잘 한 것 같아요(웃음)”라며 당시 상황을 회상했다.(구슬 씨는 농구부 입단을 막아준 부모님께 감사를 표하기도 했다)
그녀는 비록 농구부가 있는 학교에 입학하지 못했다. 그러나 농구공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그러던 그녀가 여자동호회를 본격적으로 접하게 된 시기는 2002년. 그리고 약 12년 가까이 여자동호회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성적만을 중시하는 엘리트 선수로 활약했다면, 이러한 열정을 보였을지 의문이다. 어떻게 보면, 동호인선수로 활약하는 것이 더 나은 선택으로 보였다.

# 운명의 팀 ‘아미카(AMICA)’, 최고의 추억으로 남아
구슬 씨가 처음 나간 대회는 2002년 아디다스배 3대3 길거리 농구대회. 곱의 어린 나이였다. 그리고 그녀는 중등부에서 ‘예선 탈락’이라는 고배(苦杯)를 마셔야 했다. 하지만 그녀는 “고1 때 나간 아디다스 대회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처음 나간 대회라서 그런 것 같아요. 결과는 좋지 않았어요. 1차전인가 2차전에서 탈락했어요. 억울해서 며칠 동안 잠도 못 자고 그랬죠(웃음)”라며 첫 대회가 가장 많이 기억난다고 답했다.
그리고 그녀는 숙명여자대학교 체육교육학과에 입학했다. 그녀는 대학 시절에도 농구 팀을 만들 정도로 열정적인 모습을 유지했다. 그리고 2010년. 아는 사람을 통해 ‘AMICA’라는 여자농구동호회에 가입했다. 그녀는 “‘아미쿠스’라는 남자 팀에 아는 오빠가 있었어요. 그 오빠가 여자 팀도 만들어보자고 했어요. 그렇게 해서 ‘아미카’라는 팀에 들어가게 됐죠”라며 가입 당시 상황을 회상했다.
그녀는 어느덧 여자동호인 사이에서 꽤 유명한 선수(?)로 자리잡았다. 센터를 맡았던 구슬 씨는 168cm의 단신(?)이지만, ‘2010 점프볼 여자클럽리그 1차대회’ 여자일반부에서 MVP로 선정된 바 있다. 지난 8월에 열린 NBA 3X 길거리 농구대회에서도 우승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하지만 그녀는 “워낙 잘 하던 동료가 많아서 좋은 기억을 많이 남긴 것 같아요”라며 겸손함을 보였다. 10년의 세월이 그녀의 정신력까지 업그레이드시킨 것 같았다.

# 농구에 대한 욕심, 생활체육 심판으로 이어지다
구슬 씨의 농구에 대한 욕심은 좀처럼 멈추지 않았다. 생활체육선수로 활동하는 것도 모자라, 심판까지 해보겠다고 결심한 것이다. 그녀가 심판을 하겠다는 이유는 간단했다. 그저 농구를 잘 하고 잘 알고 싶어서였다. 그녀는 “농구를 잘 하고 싶어서 규칙을 이해해야겠다는 생각에 심판 공부를 하게 됐어요. 그런데 심판이라고 하기에는 부족한 게 많아요. 최근에는 공부를 안 해서 많이 민망해요(웃음)”라며 심판을 하게 된 계기를 설명했다.
하지만 심판은 고충이 많은 자리다. 잘 해도 본전이고, 못 하면 많은 이들의 질타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녀가 심판을 보는 곳이 엘리트 대회는 아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동호인들의 수준이 상승했다. 조금만 판정이 어긋나도, 고성(高聲) 섞인 항의를 감수해야 한다. 그녀는 “여자 심판이기도 하고, 체격도 작다 보니 무시를 당하기도 하죠”라며 심판을 맡을 때 애로사항을 설명했다.
그러나 그녀는 이러한 항의에 쿨(?)하게 대처할 줄 알았다. 그녀는 “어쩌피 다들 생활체육인이고, 즐기려고 하는 거잖아요. 그래서 저도 이왕이면 웃으면서 말하고, 이해할 수 없는 판정에 대해서는 설명하고 이해시키려고 하죠. 무시당한다고 해서 그 때마다 테크니컬 파울을 줄 수는 없잖아요(웃음)”라며 자신만의 대처법을 설명했다. 심판으로써 감당해야 할 숱한 항의도 그녀의 열정을 식히지는 못하는 듯했다.
-> 2편에서 계속
사진 = 이해성 기자, 노진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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