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BA Essay] 마이애미의 우승, 그리고 보쉬의 희생

NBA / Jason / 2013-08-28 10:2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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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스켓코리아=이재승 기자] 지난 2012-2013 NBA 챔피언은 마이애미 히트였다. 마이애미는 파이널에서 난적인 샌안토니오 스퍼스에 시리즈 스코어 4대 3으로 승리하며 2연패를 달성했다. 이로써 마이애미는 향후 시대를 지배할 초석을 다졌다.

그 과정에서 BIG3를 빼놓을 수 없다. 마이애미는 지난 2010년 여름, 7월 9일(이하 한국시간) 드웨인 웨이드와 크리스 보쉬를 한데 앉혔다. 이어 다음날인 7월 10일, 르브론 제임스까지 포섭하며 우승을 위한 만발의 준비를 마쳤다. 마이애미의 BIG3 구성은 가히 파격적이었다. 전성기에 막 접어든(혹은 갓 들어갈) 선수들이 한데 뭉친데다 같은 2003 드래프트 출신으로서 한 팀에 모여 반지원정을 꿈꿨기 때문이다. 여기에 자신들의 몸값까지 낮추면서, 다른 선수들을 영입할 여지까지 남겨뒀다는 점이다.

이후 마이애미는 프랜차이즈 스타인 유도니스 해슬럼과 다소 저렴한 금액에 계약을 체결했고, 마이크 밀러까지 포섭했다(지금 밀러는 사면 후 멤피스 그리즐리스에 새둥지를 틀었다). 이로써 마이애미는 BIG3를 백업함과 동시 이들의 척후역할을 해줄 준척급 선수들까지 함께하게 됐다. 하물며 대다수의 스타급 베테랑들이 몰려들며 마이애미의 선수구성은 가히 최고였다. 비록 이들은 결성 첫 해, 파이널에서 무릎을 꿇었지만, 이어진 시즌에서 연거푸 챔피언 트로피를 들어 올리며 위력을 떨치고 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유독 과소평가 받고 있는 선수가 있다. 바로 올스타 포워드 'CB1' 크리스 보쉬다. 보쉬는 BIG3 구성당시 가장 적은 조명을 받았다. 제임스와 웨이드의 역대급 재능에 가려지기 일쑤였다. 설사 부진하기라도 하면 많은 팬들로부터 비난세례를 받은 적도 적잖았다.

Profile
이 름 : 크리스 보쉬(Christopher Wesson Bosh)
출생일 : 1984. 5. 24
학 교 : 조지아텍
포지션 : 포워드-센터
신 장 : 211cm
체 중 : 106.6kg

토론토에서의 생활을 뒤로하고
보쉬는 토론토의 전부였다. 데뷔 때부터 두 자리 수 득점을 올렸고, 빈스 카터가 팀을 떠난 후 팀의 기둥으로 자리매김했다. 3년차였던 2005-2006 시즌에는 평균 22.5점 9.2리바운드 2.6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올스타에 선정되는 영예를 누렸다. 보쉬는 루키 때부터 득점과 리바운드 카테고리에서 꾸준한 성장세를 보였다. 어시스트 수치도 3년차 이후부터는 평균 3개에 육박했을 정도였다.

그랬던 그가 2010년 여름 팀을 떠났다. 2009-2010 시즌이 끝났을 때는 많은 매체들이 "보쉬가 팀을 떠나는 것은 기정사실"이라며 보쉬가 이적할 것이라 일제히 보도했다. 보쉬도 추운 토론토 생활과 싫증이 난 탓이었을까? 아니, 그 보다 플레이오프에 어렵사리 올라 늘 고배를 마시는 팀 전력에 불만이었는지 끝내 친정팀을 등지고 말았다.

그런 면에서 2006년에 있었던 드래프트에서 토론토의 신인지명이 꾀나 아쉽게 다가온다. 토론토는 어렵사리 얻은 1순위 지명권으로 이탈리아 출신의 안드레에 바르냐니를 지명했다. 지금은 바르냐니가 원만한 성장을 이루지 못하면서 박한 평가를 받고 있지만, 당시에만 하더라도 덕 노비츠키의 뒤를 이을 재목으로 점쳐졌을 정도였다.

즉, 잠재성을 볼 때 바르냐니를 선택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토론토에는 보쉬라는 엘리트 빅맨이 버티고 있었다. 게다가 보쉬의 트레이드마크는 중거리슛이다. 그 가운데 다소 외곽지향적인 바르냐니가 합류한 셈이다. 코트 안에서 두 선수가 공존할 때 밸런스가 맞을 확률은 극히 낮았다. 그럼에도 브라이언 콜란젤로 단장(현재 2선으로 물러남)은 주저하지 않고 바르냐니를 호명했다.

보쉬의 곁에는 타이슨 챈들러와 같은 보디가드가 필요했을 지도 모른다. 일예로 댈러스 매버릭스는 노비츠키 곁에 타이슨 챈들러를 두며 우승을 차지했다. 이처럼 보쉬와 같은 공격적인 빅맨에게는 보쉬의 뒤를 봐줄 센터가 제격이었을 터. 하지만 콜란젤로 단장은 바르냐니를 두둔했다.

결과론적으로 볼 때 이는 패착이었다. 콜란젤로 단장의 생각대로 보쉬와 바르냐니의 공존은 원만하지 못했다. 바르냐니를 주전 센터로 내보냈지만, 해가 갈수록 외곽으로 겉돌기 일쑤였다(하물며 외곽슛도 먹통이었다). 그 와중에도 보쉬만 제 몫을 다했다. 평균 22점 9리바운드 2어시스트를 기록하며 팀을 대서양지구 챔피언으로 견인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만약 바르냐니가 아닌 다른 재능이었다면, 더 큰 시너지를 낼 수도 있었겠지만 토론토에서 보쉬의 뒤를 받혀줄 선수는 없었다.

FA를 앞둔 2009-2010 시즌, 보쉬는 부상이 있었지만, 정규시즌 막판까지 최선을 다했다. 팀을 플레이오프로 견인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토론토는 당시 시카고 불스에 1경기 차로 뒤져 플레이오프에 나서지 못했다. 정규시즌이 막바지로 치닫는 시점에서의 5연패가 너무나도 뼈아팠다. 보쉬는 또 한 번 고개를 떨어뜨렸다.

결국, 보쉬는 '친구'와 함께 '우승'을 택하기로 했다. 보쉬는 이적시장을 통해 마이애미에 새둥지를 틀었다. 아쉬운 것은 그의 이적과정(제임스에 가려서 그렇지) 좋지 못했다는 점이다. 보통 프랜차이즈 선수들이 팀을 떠날 때는 감사의 표시로 신문지면에 광고를 게재하기도 한다. 하지만 보쉬는 토론토 팬들에게 인사를 전하지 않았다. 도리어 토론토에 대해 "토론토에서의 기억을 지우고 싶다"며 악담을 퍼부었다.

이 탓에 보쉬는 현재 카터를 밀어내고 토론토 야유의 가장 많은 지분을 소유하고 있다. 사실 제임스에 가려져서 그랬지 보쉬는 토론토 원정 첫 경기에서 많은 팬들의 야유를 한 몸에 받았다. 토론토 팬들은 보쉬에게 시종일관 야유세례로 일관했다. 토론토의 어느 일간지에서는 'Bosh Bash(보쉬를 맹비난하라)'는 문구까지 실기도 했다.

# 토론토에서의 보쉬
http://www.youtube.com/watch?v=2HnGGu2qt7E

# 보쉬가 갖고 있는 토론토에서의 기록들
10,275점 4776리바운드 600블락(이상 1위)
자유투 시도&성공 1위 / 출전시간 1위 / 더블더블 1위

변화와 희생 그리고 우승
보쉬의 마이애미에서의 생활은 순탄할 것만 같았다. 제임스와 웨이드라는 역대급 선수들과 함께하며 짊어질 부담도 많이 줄었다. 그러나 BIG3의 효과는 생각만큼은 위력적이지 않았다. 제임스와 웨이드의 동선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고, 보쉬는 많은 공격의 기회는커녕 볼을 잡는 횟수도 얼마 되지 않았다. 보쉬의 전매특허는 특유의 중거리슛과 페이스업을 통한 골밑돌파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마이애미에선 제임스와 웨이드의 존재 탓에 보쉬가 직접 공격할만한 여건이 아니었다. 오히려 공격의 중심에서 멀어져 보였다.

설상가상으로 리바운드도 시원찮았다. 보쉬는 1리바운드를 두 차례 기록하는 등 5개미만의 리바운드를 잡는 날도 심심찮게 있었다. 팀내 여러 빅맨들이 있었지만, 보쉬만큼 많은 리바운드를 잡아낼 선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보쉬는 기대만큼 리바운드에서 좀체 힘을 보태지 못했다. 제임스의 존재여부도 크게 작용했다지만 그는 마이애미 합류 전까지 평균 12개가 넘는 리바운드를 기록한 빅맨이었다. 이는 보쉬의 이름에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보쉬는 토론토에서 데뷔할 때 센터로 나섰다. 그러나 보쉬는 시간이 지나면서 포워드로 나서길 원했다. 공공연히 센터 포지션에서 뛰는 것을 불편해했다. 마이애미 합류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보쉬는 포지션을 옮길 수밖에 없었다. 특히나 플레이오프에서 마이애미의 스몰라인업이 본격적인 위력을 발휘하면서 우승을 차지했다. 창단 두 번째 우승이자 BIG3 규합 후 첫 우승의 비기는 스몰라인업이었다.

이 와중에 보쉬의 보이지 않는 희생이 뒤따라했다. 보쉬는 팀의 승리이자 궁극적인 우승을 위해 역할변화를 마다하지 않았다. 이전까지는 공격수였다면, 이제는 블루칼라워커로 거듭났다. 몸싸움은 물론이고 스크린까지 직접서면서 팀이 필요로 하는 퍼즐조각이 되고자 애썼다. 오히려 지난 시즌 개막에 앞서서 오랜 만에 풀타임 센터로 나서는 것에 대해 "센터 역할을 잘 수행해 나갈 것"이라며 자신 있는 응답을 전했다.

아니나 다를까 일각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많았다. "긴 정규시즌에서 스몰라인업은 좋지 않을 것"이라며 단기전에 보다 맞춤전술로 다가가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마이애미는 꾸준히 본인들의 색깔을 밀어붙였다. 그리고 시즌 후반기에 활화산과 같은 기세로 27연승을 내달리는 기염을 토해냈다. 또렷하진 않았지만, 보쉬는 골밑에서 묵묵히 본인의 플레이를 펼쳤다.

이어진 플레이오프. 마이애미는 동부 컨퍼런스 파이널에서 인디애나 페이서스, 파이널에서 샌안토니오 스퍼스를 만나며 힘겨운 싸움을 펼쳤다. 무엇보다 동부결승에서 센터로서 보쉬의 역량이 상대에 비해 현격히 뒤쳐졌다. 정통 센터인 로이 히버트와 팀 던컨을 상대하기엔 보쉬에게는 심히 버거웠다. 보쉬의 공격은 고사하고 상대 센터에게 너무 많은 득점을 헌납할 수밖에 없었다. 이는 지표로도 잘 드러나 있다.

# 지난 플레이오프에서 보쉬의 기록
동부결승 : 7경기 평균 11.0점 4.3리바운드 .377 .500 .850
파 이 널 : 7경기 평균 11.9점 8.9리바운드 .462 .000 .733

그럼에도 보쉬는 이를 극복해냈다. 보쉬가 다 잘해서 승리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보쉬는 최대한 본인의 에너지를 코트 안에 쏟아 부었다. 그 결과 마이애미는 '센터' 보쉬를 앞세워 2연패의 대업을 달성했다. 파이널에서는 던컨을 상대로 최선을 다했다. 보쉬는 6차전에서 4쿼터 종료 직전 결정적인 리바운드를 따내며, 앨런의 3점슛을 도왔다. 7차전에서는 무득점에 그쳤지만 "생애 최고의 무득점 경기였다"며 본인의 경기에 대해 평하기도 했다.

이처럼 보쉬는 챔피언십을 거머쥔 마이애미에서 우승반지를 낄 자격이 충분한 선수다. 정작 본인이 잘 하는 것을 매개로 우승을 차지하진 못했지만 그 이면에는 팀에서 필요로 하는 '역할 변화'를 묵묵히 받아들였고, 이를 성실히 수행한 땀방울의 결과물이었다. 올스타 포워드였던 그였지만, 굳은 일을 도맡으며 팀의 연속우승을 도왔다.

보쉬가 토론토를 떠날 때의 모양새는 그 어느 누구보다 좋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프로무대에 발을 들이면서 본인의 고향인 텍사스에 '보쉬 재단'을 만들며 사회공헌활동을 하며 봉사활동도 꾸준히 하고 있다. '친구와 함께할 수 있는' 마이애미에서의 생활도 만족하고 있다. 다른 어느 무엇보다 우승을 차지했다는 점도 보쉬에겐 값진 추억일 것이다.

언제나 양면은 존재한다. 승자가 있으면 패자가 있고, 좋은 게 있으면 좋지 않은 게 있기 마련이다. 보쉬는 팀을 옮기며 많은 비난에 시달렸다. 심지어 본인의 길을 위해 맞지 않는 옷을 입어야 했음에도 혼신의 힘을 다했다. 보쉬의 선택과 결과를 놓고 가볍게 이야기할지 모르겠다. 이것이 보쉬의 우승(BIG3라서 쉽게 우승했다는)이 폄하될 수 없는 이유가 아닌가 싶다.

보쉬는 본인의 역할을 바꾸면서 우승이라는 큰 꿈을 이룰 수 있었다. 그는 목표를 내딛기 위해 '이적'을 택했고, 포지션 변경을 마다하지 않았다. 이는 우리에게 적용되는 말이기도 한 것 같다. 꿈을 이루는 방법과 선택은 정말로 다양함을 느껴본다. 바꿀 수 없다면, 변화라도 모색해봐야 한다는 것을. 보쉬를 조명하면서 한 번 더 그의 노력과 의지가 거듭 뇌리를 스치는 순간이다.

사진 제공 = NBA 미디어 센트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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