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준모의 미국 유학기] 6편. 라스베가스를 떠나며...

NBA / kj / 2009-08-26 16:07:19
오랜만에 깊은 잠을 자고 나서 상쾌한 기분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잠시 쇼핑시간이 주어져 희석이형과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희석이형과 대학과 프로 때는 그냥 인사만 하는 사이였는데 상무에 갔을 때 우리 방 방장이었다. 남자답고 매너 있고 참 좋은 사람이었다. 상무에 있을 때 같이 마셨던 소주가 엄청났다. 자기 동생같이 챙기며 그렇게 우린 1년이란 시간 동안 정말 친한 사이가 되었다. 그리고 한국도 아닌 미국에서 보니 너무 반가웠다.

저녁이 되어서 호텔로 돌아왔다. 환우형은 내일 있을 용병 신체검사 때문에 자료를 보고 난 약간의 공부를 한 다음 오리온스 통역인 송현수 형이 불러서 방으로 갔다. 내가 오리온스에서 선수생활 할 때 정말 친하게 지냈던 사람이다. 약간 무뚝뚝하긴 하지만 나한테는 형같이 너무 잘해줬었다. 현수형을 보니 오리온스 매니저로 있는 나의 친구 두훈이가 보고 싶었다.

현수형이 바람 쐬러 가자고 해서 나도 마침 분수쇼를 보고 싶어서 화려한 라스베가스의 밤거리를 거닐었다. 말로만 듣던 라스베가스 분수쇼를 보니 정말 환상이었다. 강원랜드에 있는 분수쇼랑은 너무 많은 차이가 있었다. 어느새 시간이 많이 흘러서 현수형도 내일 있을 용병 선발 때문에 자료를 봐야 한다며 가자고 해서 우린 다시 호텔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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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라스베가스에서 또 하루가 지나갔다. 나랑은 상관없었지만 내 일인 양 내일 있을 용병선발에 기대감으로 잠을 청했다.

드디어 신체검사가 있는 당일 날, 우린 오전에 용병선발이 열리는 곳으로 향했다. 정말 많은 용병들이 와있었다. 다들 서로 누가 오는지 누가 안 왔는지 체크하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사실 우리나라 농구현실이 용병 때문에 한 해 농사가 좌지우지 하는 게 사실이기 때문에 다들 어제의 느긋한 모습은 사라지고 긴장감만 흐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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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중 난 도훈이 형을 만났다. 사실 내가 KCC에 첨 입단 했을 때 정말 단내 나게 운동시켰던 도훈이 형을 다시 만나니 너무 기분이 좋았다. 도훈이 형은 그때 나에게 버팔로라는 별명을 만들어 줬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정말 눈물 나게 운동했던 게 내가 어느 팀을 가도 항상 열심히 하는 밑바탕이 된 거 같다. 도훈이 형은 점심을 사주겠다며 전자랜드가 있는 호텔로 나를 데려갔다. 우린 거기서 지난날을 회상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로 시간가는 줄을 몰랐다. 항상 그랬지만 도훈이 형은 운동 시킬 때는 혹독하게 시켰지만, 운동만 마치면 식스맨들에게 정말 뭐하나 더 챙겨주려고 신경을 많이 써줬었다.

주말마다 도훈이 형이 몰래 불러서 일주일 동안 고생했으니 나가서 원 없이 너 먹고 싶은 거 친구들과 먹으라고 도훈이 형 카드를 많이 받았던 기억이 난다. 정말 카드 받을 때는 원 없이 쓸 거 같았는데, 막상 받고 나가서 내가 한턱 쏘는 것처럼 친구들한테 고기산 게 다 인 것 같다. 그 다음날 도훈이 형은 “겨우 이것밖에 안 먹었느냐”며 나를 나무라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우린 호텔에서 맛난 점심을 먹으며 오후에 있을 첫 테스트를 위해 다시 체육관으로 떠났다. 체육관에서 정말 보고 싶었던 서동철 선생님, 김진 감독님, 김지홍 코치님, 그리고 희철이 형, 유재학 감독님, 임근배 코치님 등 반가운 얼굴들을 볼 수 있었다.

희철이 형은 내가KCC에 있을 때한 시즌을 같이 방을 썼었다. 내가 보는 희철이 형은 정말 남자다운 사람이다. 그때 정말 좋은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내 생각에 농구선수 중에서 술은 젤로 잘 마시는 거 같다. 정말 희철이 형이 “준모야 소주한잔 할까”이러면 겉으로는 “네” 이러면서 속으로는 내일 속이 쓰라릴 생각을 먼저 했던 기억이 났다. 내가 어느새 나이를 좀 먹었지만 희철이 형은 아직도 그때 기억이 나는지 나를 편한 동생으로 맞아주셨다.

드디어 첫 시합! 그런데 가만히 있던 내 심장이 너무 가파르게 뛰기 시작했다. 정말 온 몸에전율이 쭉 올라 오는 게 온몸에 흥분이 가시질 않았다. 난 처음엔 내 몸에 이상이 있는 줄 알았다. 가만히 앉아서 생각을 해보니 ‘비록 내가 은퇴를 해서 여기서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어서 다시는 이렇게 긴장과 흥분을 못 느낄 줄 알았는데… 내가 정말 사랑하구 아끼고 흥분되는 곳이 농구코트구나…’ 이런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나에겐 농구라는 것이 정말 내가 사랑하는 것이구나 새삼 다시 느낄 수 있었다. 비록 지금은 공부를 하고 있어도 농구에 관한 공부를 할 것이며 앞으로도 배울게 농구였는데 난 공부와 농구를 따로 생각했었다. 아!!! 나의 인생에서 농구라는 것이 평생 떠나질 않을 거라는 걸 난 내가 은퇴하구 첨 보는 이곳에서 내 심장이 다시 이렇게 뛰는걸 보니 내가 나중에 있어야 할 곳도 이곳이며 내가 농구를 위해 공부를 해야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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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본론으로 들어가서 난 설렘으로 쭉 경기를 지켜봤는데, 솔직히 말해서 실망이 들었다. ‘정말 한 해 농사를 결정하는 이런 자리인데 정말 이런 게임들을 보고 용병을 뽑을 수 있을까?’하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다들 손발이 맞지 않아 허겁지겁 혼자만의 개인플레이만 펼치는, 한 마디로 전부 엉망진창의 게임들이었다.

도대체 뭘 보고 좋은 용병을 뽑는지 난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다들 올해 나온 용병들이 역대 최악이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내가 봐도 아닌데… 물론 그 중에 좋은 선수들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몇 게임만으로 좋은 선수를 뽑는다는 자체가 도박이 아닌가 싶었다. 도박이라서 라스베가스에서 트라이아웃을 하나? 비싼 돈을 들여가면서 먼 미국까지 와서 이렇게까지 해서 용병을 뽑아야 하는지 의구심이 들었다. 보완되어야 할 문제점이 많은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다음 날 떠나기 전 많은 농구인 들을 만날 수 있었고, 만나는 사람들마다 힘내고 열심히 해서 좋은 모범이 되어달라는 격려의 힘을 불어넣어 주었다. 그렇게 나의 모든 라스베가스 일정이 끝났다. 설레임 반, 기대감 반이었는데 둘 다 100%를 채우고, 다시 난 해야 할 공부가 있기에 비행기에 몸을 실어야 했다. 환우 형과 마지막으로 진한 포옹을 한 후 열심히 공부하라며 나를 공항에 내려주시고 난 비행기를 타러 갔다.

그러던 중 UFC에서 뛰고 있는 반드레이 실바를 만난게 아닌가? 내가 “사진 한 장 찍어도 되냐”고 물어봤더니 갑자기 나에게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이러는 게 아닌가. 그래서 내가 한국인인지 어떻게 알았냐고 물어봤더니 그냥 한국사람 같더라고 했다. 내가 한국사람처럼 생겼나? 사실 여기 와서 어딜가도 나보러 일본사람이냐 중국사람이냐고 안 물어보고 다들 "South Korea?"이런다. 여기 사람들 아시아 사람 잘 구별 못하는데 암튼 너무 신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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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됐든 그렇게 즐겁고 간만에 만난 사람들을 만나고 나니 힘도 났지만,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조금은 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다시 도착하자마자 그 동안 못했던 공부를 시작했지만 난 오중일 교수님 왜 라스베가스를 갔다 오라고 했는지, 뭘 느껴야 했는지를 알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내가 라스베가스 가서 맘 편히 지낼 수 있게 초청해주신 KT&G 단장님과 국장님, 그리고 이상범 감독님, 환우 형에게 이 자리를 빌어서 다시 한 번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Texas 에서 준모가

정리 오경진 / 사진제공 성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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