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코 인사이드] 오원강 KBL 경기부장, 그가 모든 경기에 집중하는 이유

BAKO INSIDE / 손동환 기자 / 2021-10-12 08:41:51

본 기사는 바스켓코리아 웹진 2021년 9월호에 게재됐습니다.(바스켓코리아 웹진 구매 링크)

“매 경기 최선을 다하겠다”는 선수는 많다. 하지만 매 경기 100%의 경기력을 보이는 선수는 없다. 그만큼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매 경기 100%의 역량을 다해야 하는 이들이 있다. KBL 경기부다. 경기부에 소속된 인원들은 아무런 문제없이 모든 경기를 치러야 한다. 코트에서는 단 1%의 결함도 허용해서는 안 된다. 그게 KBL 경기부 인원들이 해야 할 임무다.
오원강 KBL 경기부장은 20년 동안 그런 마음으로 일을 했다. 3년 전부터는 경기부의 수장으로, 이전보다 더 막중한 책임감과 사명감으로 모든 경기에 임하고 있다. 앞으로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게 경기부 수장으로서 지녀야 할 마음가짐이라고 여겼다.(본 인터뷰는 2021년 8월 10일 오후 2시 40분에 진행됐다)

부상에 발목 잡힌 유망주, KBL로 입성하다
오원강 부장이 농구와 인연을 맺은 건 1983년 여름. 중학교 1학년이 되던 해에 군산중학교에서 농구를 시작했다. 연계 학교인 군산고등학교에 진학했고, 그 후에는 최부영 감독의 스카우트에 경희대학교로 입학했다.
하지만 이른 시기에 은퇴했다. 부상에 발목을 잡혔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화위복이라고 해야 할까? 오원강 부장은 부상으로 인해 남들보다 빨리 제2의 인생을 시작할 수 있었다. KBL과 빨리 인연을 맺을 수 있었다.

선수 생활을 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중학교 1학년 여름 방학 때 농구를 시작했습니다. 중학교 3학년 때부터 게임을 뛰었죠. 군산에서 농구를 어느 정도 한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전국적으로 잘하는 선수는 아니었습니다. 우물 안 개구리였죠.
그러다가 고등학교 1학년 때, 최부영 선생님께서 저희 집을 찾아오셨습니다. 저를 경희대에 보내달라고 하시더라고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가기 싫었습니다.(웃음) 최부영 선생님께서 군산고 출신이라 저희 학교로 전지훈련을 자주 왔는데, 경희대가 엄청 타이트하고 스파르타식으로 운동하더라고요. 힘들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경희대에 진학했지만, 일찍 그만 뒀습니다. 대학교 2학년 때 춘계연맹전을 뛴 후, 허리가 안 움직이더라고요. 수술 판정을 받았고, 쉬면서 병원 치료를 받았습니다.
돌아오기는 했지만, 완벽하게 회복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3학년 때 허리가 다시 아팠습니다. 최부영 선생님한테 ‘더 봐야 할 것 같다’고 말씀드렸어요. 졸업하고 기업은행에 입단했지만, 일찍 그만뒀어요. 그렇게 선수 생활을 마쳤습니다.
그리고 KBL로 오셨습니다.
1997년 1월 3일에 기업은행을 퇴사했습니다. 당시 KBL이 창설됐고, 저는 창단 구단인 광주 나산 플라망스에서 일하게 됐습니다. 선수단 관리 및 경기 관리 업무를 했죠. 그렇지만 저한테 맞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많이 망설이다 그만뒀죠.
그러고 나서, KBL과 인연이 닿았습니다. KBL은 당시 저한테 ‘선수 출신의 경기 운영 직원이 필요하다’고 하셨습니다. 그 때 뽑힌 사람이 저랑 최준길 경기감독관입니다. 2001년 11월에 입사했고, 그 때의 인연이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 때부터 경기부로 배정받으신 건가요?
경기부 일을 하다가, 개인 사정 때문에 1년 넘게 쉬었습니다. 2004년에 재입사한 후, 지금은 없어진 경기기술위원을 했죠. 그 후에는 계속 경기 관련 업무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선수 출신 경기부 직원, 그가 겪은 시행착오는?
누구나 제2의 인생에서 시행착오를 겪는다. 새로운 인생에서 새로운 경험을 하기에, 겪어보지 않은 어려움과 마주하게 된다.
공부와 담을 쌓을 수밖에 없었던 예전의 농구인들도 마찬가지. 특히, 코치가 아닌 행정 업무를 하는 선수 출신이라면 더 그렇다. 전혀 해보지 않았던 일을 접해야 하기 때문이다.
오원강 부장도 마찬가지였다. 농구공을 잡았던 그는 펜 혹은 컴퓨터 자판과 싸웠다. 그 싸움은 생각보다 길고 어려웠다. 그 싸움이 오원강 부장을 지치게 했다.
하지만 오원강 부장은 그 싸움의 승자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남들보다 오래 책상에 앉았고, 남들보다 많이 기록했다. 그렇게 자신만의 업무 노하우를 쌓았고, 자신만의 업무 체계를 만들었다. 이는 오원강 부장만의 자산이 됐다.

입사 초기에는 어떤 업무를 맡으셨나요?
나산에서는 홈 경기 시설 및 경기 운영을 책임졌습니다. 선수단 관리도 했고요. KBL에 와서도 비슷했습니다. 경기운영팀 소속으로 경기 전에 시설물 점검 및 관리를 했습니다, 경기 후에는 기기 오작동 및 시설물 관련 특이사항을 보고했습니다. 경기장에서 뛰는 선수들을 관리하기도 했고요.
선수 때는 코트에서 뛰기만 하셨습니다. 그렇지만 KBL 입사 후에는 코트를 포함한 경기장의 모든 시설을 점검하셨습니다. 차이가 컸을 것 같은데요.
코트에서 하는 일은 어렵지 않았습니다. 설치해야 하는 시설을 설치하고, 미비한 시설을 점검하면 됩니다. 그런데 그걸 문서화하는 게 어려웠습니다. 업무본 걸 문서로 정리하는 게 어려웠던 거죠.
또, 영어가 문제였습니다. 운동할 때 공부를 안 하다 보니, 영어가 어려웠어요. 아버지께서 “운동을 하더라도, 영어는 공부해야 한다”고 하셨지만, 저는 그 때 ‘훌륭한 선수가 될 건데, 왜 영어를 해야 하나’라는 생각을 했죠. 그런데 KBL이 창설되고 외국 선수가 오니까, 필요성이 바로 와닿더라고요.
시행착오도 많았을 것 같습니다.
선수 시절에는 운동과 연습, 실전 경기를 반복했습니다. 몸으로 하는 게 많았죠. 하지만 KBL에서는 달랐습니다. 주기적으로 업무를 수행해야 했죠. 그 흐름을 파악하는 게 힘들었어요.
일반인도 처음 직장을 가면 업무를 파악하는 게 힘듭니다. 그런데 저는 운동을 했기에, 다른 사람보다 업무를 파악하는 게 더 힘들었던 것 같아요. 그런 곳에서 온 시행착오들이 많았습니다.
경기 운영 규정도 공부해야 하고, 업무 대처 능력도 키워야 했습니다. 남들보다 많은 시간이 필요했을 것 같은데요.
다른 사람들을 따라가기 위해 밤늦게까지 일을 했습니다. 제 앞에 놓인 업무를 제 걸로 만들어야, 나중에 편해진다고 생각했거든요. 또, 제 앞에 놓인 걸 체계적으로 정리한 후, 일을 시작하려고 했습니다. 그런 걸 습관화하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먼저 나오고, 다른 사람들보다 더 늦게까지 남아서 일을 했던 것 같아요.
사실 경기 운영과 규칙은 외울 수밖에 없습니다. 먼저 경기 규칙 같은 경우, 동적인 움직임이 글로 나타나 있습니다. 이해가 안 됐죠. 심판한테 물어보고, 정확히 이해하려고 했습니다.
경기 운영 같은 경우, 구단에서 경험했던 걸 떠올렸습니다. KBL 입사 후 메모도 많이 했어요. 그 후, 제가 경험한 것들과 메모한 것들을 체계화시켰어요. 그래서 지금도 새로운 일을 하게 되면, 무조건 메모를 합니다. 잠깐의 시간 동안 해야 하는 일은 메모를 필요로 하지 않는데, 긴 시간이 필요한 업무에는 그런 과정을 필요로 하거든요.
아까 말씀 드렸듯, 영어도 무조건 필요했습니다. 먼저 대학교 때 농구를 좋아하는 선배 형과 거래(?)를 한 적이 있어요.(웃음) 저는 선배 형한테 농구를 알려주고, 선배 형은 저한테 영어를 가르쳐주는 거였죠.
그런데 그것도 쉽지 않았어요. 결국 혼자 공부했죠. ‘성문종합영어’나 ‘맨투맨’ 말고, ‘삼위일체’라는 기본서를 공부했습니다. 요즘으로 치면, 필요할 때 활용할 수 있는 회화 표현이 적힌 책이었죠. 또, 외국 선수한테 단어 하나하나를 물어본 기억이 있습니다. 그런 것들이 쌓여, ‘이 문서에 있는 이 표현은 이런 뜻이구나’라는 정도로 영어를 알게 됐죠.

경기부에 놓인 중압감, “매 경기를 잘 치러야 합니다”
경기를 치르는 팀이나 선수는 기복을 겪을 수 있다. 잘하는 경기도 있고, 못하는 경기도 있다. 팬들 또한 모든 경기의 승리를 바라지 않는다.
하지만 경기부는 다르다. 경기부의 임무는 ‘경기의 원활한 진행’. 이를 위해 시설물을 경기 2시간 전부터 점검한다. 조그만한 결함도 놓쳐서는 안 된다. 경기부가 1%라도 부족하다면, 그 경기는 선수들의 경기력과 팬들의 응원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오원강 부장은 경기부의 수장이다. 정규리그와 플레이오프, 챔피언 결정전 모두 상상 이상의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그러나 이를 당연한 일로 받아들였다. 경기부의 수장으로서 책임감과 사명감, 부담감과 중압감 모두 안고 있는 듯했다.

경기부장직은 언제부터 수행하신 건가요?
2004년에는 경기기술위원을 맡았고, 2011년에는 경기감독관을 맡았습니다. 그리고 2014년에는 경기운영팀장을 맡았죠. 그 후 2018년부터 경기본부 소속의 경기부장을 맡게 됐습니다.
구체적인 업무는 어떤 건가요?
처음 일했을 때와 지금의 업무 내용은 똑같다고 보시면 됩니다. 먼저 경기 시작 전에 경기장 시설을 관리합니다. 그리고 구단의 문의사항에 답변해줍니다. 시설 규정과 경기 규정 등 세부적인 규정을 알려주는 게 제 역할이고, 그 부분을 체크하는 것도 제 역할이거든요.
경기 후에는 경기원들과 이야기를 나눕니다. 예를 들어, 계시기가 잘못됐을 때, 그 원인을 파악하는 거죠. 경기원들이 오작동을 해서 계시기에 문제가 생긴 건지, 계시기 자체에 문제가 생긴 건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걸 알아야 명확한 조치 방법이 나오거든요.
경기원들이 기기를 잘못 작동한 거라면, 경기부에서 교육을 다시 하면 됩니다. 그러나 기기 자체가 잘못된 거라면, 문제가 달라집니다. 시설관리 주체와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보통 시설관리공단과 이야기하는데, 시설관리공단에서의 업무 절차와 업무 처리 규정 모두 저희와는 다릅니다. 처리 시간 역시 생각해야 하고요.
경기부장은 책임감과 부담감 등을 짊어야 하는 자리 같습니다.
계시기나 부저 등 하나라도 문제가 생기면, 경기를 치르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한 경기를 잘 끝냈다’에 더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물론, 시즌 전체를 잘 치르는 것도 중요하지만, 매 경기가 쌓여야 시즌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경기를 중요하게 여기는 거죠.
사명감도 큽니다. 프로농구를 보는 팬들이 아무런 지장 없이 자연스럽게 경기를 보셔야 하는데, 기계 문제나 경기 감독관의 실수, 혹은 경기원의 실수가 나온다면, 경기는 중단됩니다. 그래서 경기감독관이 경기 시작 2시간 전에 시설을 점검하고, 경기원들이 경기 시작 1시간에 시설을 다시 한 번 점검합니다.
그래도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문제가 생겼다고 해서 그냥 놔두면 안 됩니다. 후속 조치가 수반돼야 합니다. 그걸 체크해놓고, 다음 경기 전에 조치를 다 했는지도 확인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팬들께서는 추후에도 경기를 즐겁게 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저를 포함한 경기 요원 모두 매 경기에 긴장을 하는 것 같아요.

입사한 지 20년, 오원강 부장의 과제는?
오원강 부장은 2001년 11월 19일 KBL에 입사했다. 공백기는 있었지만, 20년이라는 세월을 KBL과 함께 했다.
많은 변화를 경험했다. 하지만 ‘매 경기를 잘 치러야 한다’는 목표 의식만큼은 변하지 않았다. 그 목표 의식을 앞으로의 과제로도 여겼다. 그래서 “이전까지 해왔던 걸 더욱 철저히 하겠다”고 다짐했다.

앞으로의 과제는 어떤 게 있을까요?
무엇보다 팬들께서 경기 마지막까지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게 관전하셔야 합니다. 그게 저희의 첫 번째 임무입니다.
그렇게 하려면, 경기 시설에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계속 체크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해왔던 걸 하는 거죠. 다만, 이전까지 했던 일들을 앞으로도 철저히 이행해야 합니다. 그게 저희가 해야 할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이루고 싶은 목표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제가 처음 KBL에 왔을 때, 경기원들을 관리하는 일부터 체계적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업무 처리 방식이 비효율적이었고, 일을 처리하는 시간 역시 오래 걸렸습니다.
물론, 사람마다 지닌 특성과 습관이 다릅니다. 그렇지만 경기원들이 일을 처리하는 방법과 경기원들이 일을 대하는 자세만큼은 하나로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경기에 임하는 요원들이 똑같은 생각과 방법으로 경기를 진행해야, 경기가 아무런 지장 없이 이뤄질 수 있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그런 점을 경기원들한테 강조하고 있습니다. 업무 체계를 표준화하는 작업으로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잠시 다른 이야기를 하자면, 부장님께서는 숱한 경기를 치르며 숱한 시설들을 확인했습니다. 인프라에 관한 생각을 많이 했을 것 같습니다.
NBA처럼 전용 구장을 갖고 있다면 상관없지만, KBL 10개 구단 모두 지자체의 시설을 빌려서 시즌을 치르고 있습니다. 시설 하나를 고치더라도, 지자체와 상의를 하는 일이 많습니다.
저도 예전에 구단에서 일할 때, 그런 일들을 경험했습니다. 저희가 고칠 수 있는 시설이라면 상관없는데, 지자체에서 고쳐줘야 할 것들이 문제였습니다. 체육관을 관리하는 주체에 이를 건의하면, “그냥 쓰세요”라는 대답을 많이 들었습니다. 시설 관리에 적극적이지 않았던 거죠.
시설을 관리하는 주체가 적극적으로 나와야 합니다. 또, KBL과 구단이 시설을 관리하는 주체한테 그런 마음을 먹게끔 설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어려운 작업이지만, 현실적으로 그래요.
또, 어떤 체육관 같은 경우, 1년에 몇 억을 써도 투자한 티가 나지 않습니다. 노화된 부분이 많아서죠. 그래서 오래 된 체육관은 더욱 어렵습니다. 그 외에 광범한 원인들이 있고요. 그래서 정말 어려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팬들에게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주변에 농구를 좋아하는 분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렇지만 농구장에 와서 응원해주시는 분들은 농구를 좋아하는 분들의 10%도 안 된다고 느꼈습니다. 연맹과 구단 모두 더 많은 팬들을 유치할 수 있도록 고민해야 합니다. 특정 구단 혹은 특정인만의 생각과 힘으로 이뤄지는 문제는 아니기에, 다 같이 지속적으로 고민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농구 시설 관련 규정이나 경기 운영에 관한 전화 문의를 많이 받았습니다. 그 과정에서 잘못된 사실을 알고 계신 분이 많다는 걸 느꼈습니다. 그래서 잘못 알고 있는 것들을 알려드리기 위해, 저희가 노력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말씀드리기 조심스럽지만, 개인적으로 안타까웠던 일들을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극소수이기는 하지만, 특정 팀이나 특정 선수만 좋아하는 분들 중 심판이나 경기부에 과격한 표현을 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특히, 좋아하는 팀이나 좋아하는 선수가 판정 때문에 피해를 봤을 때 그런 표현들을 하시는데, 다시 보면 잘못된 게 전혀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표현을 하신 것에 안타까웠던 적이 있어요.
물론, 저희가 운영을 잘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판정을 잘못하는 경우도 있고요. 그렇지만 경기를 다시 돌아봤을 때, 대부분의 판정이나 운영 규정은 잘못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런 과격한 표현 때문에, 농구를 순수히 좋아하는 사람들이 KBL의 경기 운영 규정이나 심판 판정에 잘못된 인식을 갖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 표현들 때문에, 경기장 분위기가 흐트러지는 경우도 많고요. 그래서 그 분들한테 경기 규칙이나 경기 운영 규정을 더 정확히 알릴 필요가 있다고 느꼈습니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저희 역시 잘못된 것들을 바로 짚겠습니다. 매 경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리고 저희가 잘못하고 있는 것과 저희가 개선해야 할 것들을 경청하겠습니다. 최선의 경기 운영을 위해 한 발 더 뛰겠습니다. 그게 제가 해야 할 임무라고 생각합니다.

사진 = 손동환 기자, KBL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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