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코 인사이드] 어느 위치에서든 남달랐던 퀄리티, ‘해설위원 배길태’가 기대되는 이유
- BAKO INSIDE / 손동환 기자 / 2023-06-09 11:55:28

한 가지 분야에서도 자기 입지를 굳히지 못하는 이들이 많다. 아니, 대부분이다. 그만큼 자기 역할을 해내는 건 쉽지 않다.
그러나 어느 곳에서든 자기 몫을 해내는 이들도 많다. 어떤 역할을 부여받아도, 자기 열정을 다 쏟기 때문이다. 배길태 SPOTV 해설위원이 농구계에서 그런 인물이다. 매니저-전력분석-코치-해설위원 등 어떤 자리에서든 열정과 역량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농구 선수 배길태는 남들과 다른 길을 걸었다. 지금은 해체된 홍익대 농구에서 선수 생활을 했고, 홍익대 출신 선수로서 오랜 시간 프로에서 활약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배길태의 입지는 탄탄했다. 정통 포인트가드로서 자신의 가치를 보여줬고, 코트 밖에서도 성실함을 인정받았다. 청주 SK(현 서울 SK)와 창원 LG, 대구 오리온스(현 데이원스포츠)와 원주 동부(현 원주 DB), 전주 KCC 등 여러 팀에서 10년 동안 선수 생활을 했던 이유.
선수로서의 역량과 성실함 모두 인정받은 배길태는 2007년 코트에서 물러났다. KCC 프로농구단의 매니저로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다. 배길태의 농구인생 2막은 그렇게 시작됐다.
은퇴 후 KCC 매니저로 제2의 인생을 시작했습니다.
2008년까지 선수로 뛸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KCC가 리툴링 개념으로 선수들을 영입했습니다. 저에게는 매니저 제안을 해주셨죠. 하지만 저는 선수를 더 하고 싶었고, 동부에서 함께 했던 전창진 감독님(현 전주 KCC 감독)께 고민을 상담했습니다.
전창진 감독님께 “선수를 더 하고 싶다”고 말씀드렸고, 감독님께서도 다른 팀을 알아봐주셨습니다. 성사 단계에 이르렀죠. 하지만 감독님께서 “나도 매니저부터 시작해 감독을 하고 있다. 너도 지도자로서의 역량을 갖춘 것 같다. 대신, 매니저부터 하면, 지도자 생활에 도움이 될 거다”며 조언을 해주셨어요. 감독님의 말씀에 고민을 했고, 매니저로 제2의 인생을 시작했습니다.
매니저로서 어떤 일을 하셨나요?
최형길 단장님께서 많이 배려해주셨습니다. 매니저로서 최고의 대우를 해주셨고, 저를 도와줄 매니저를 1명 더 배치해주셨어요. 그래서 저는 제 업무 파악에 더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또, 허재 감독님(현 데이원스포츠 대표)께서 “직책은 매니저지만, 코치로서의 역할도 할 거다”며 선수들에게 제 업무를 알려줬습니다. 매니저인 저에게 선수를 가르칠 수 있는 기회도 주신 거죠. 허재 감독님의 배려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겁니다.
선수 때는 스태프의 지원을 받았다면, 매니저는 선수들을 지원하는 스태프였습니다.
선수 때는 운동만 열심히 하면 됐습니다. 그렇지만 매니저는 선수들을 뒷바라지해야 합니다. 그런 차이 때문에, 처음에는 생소했어요.
또, 당시에는 20대 중반부터 매니저를 처음 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30대 중반의 나이에 매니저를 시작했습니다. 저의 케어를 받는 후배들도 불편해하고, 저 역시 매니저 업무를 생소하게 여겼습니다. 그래서 어려웠던 것 같아요.
2011년부터는 KCC의 D리그 코치를 맡았습니다.
2007년부터 2011년까지 매니저를 4년 동안 했습니다. 2년은 매니저로서의 임무에 충실했고, 2년은 전력분석 업무도 같이 했습니다.
그렇게 일하는 와중에, 2군 코치를 맡게 됐습니다. 훈련을 1군 팀과 다른 장소에서 했고, 모든 걸 개별적으로 했어요. 2군이었지만, 제 위주로 팀을 꾸릴 수 있었습니다. 2군으로서는 파격적인 대우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경험치가 더 크게 쌓인 것 같아요.

매니저와 코치를 경험한 배길태는 2014년 또 다른 친정 팀으로 갔다. 2006~2007시즌 소속 팀이었던 원주 동부의 스카우터이자 전력분석원이 된 것.
코치 경험이 있다고는 하나, 스카우터나 전력분석원은 다른 업무를 수행해야 한다. 컴퓨터를 더 많이 만져야 하고, 보고를 위한 정리 작업도 세밀하게 해야 한다.
그러나 배길태는 세밀함을 갖춘 농구인이었다. 처음 하는 일이었지만, 상부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았다. 또, 같은 길을 걷는 후배들에게 자신의 노하우를 알려줬다. 특히, 주태수 국원초 코치는 “배길태 코치님의 가르침이 큰 힘이 됐다”며 전력분석원으로서의 노하우를 전수해준 배길태에게 엄지손가락을 들었다.
2014년부터 동부의 전력분석원이 됐습니다.
KCC 2군이 없어진다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2군 코치로서의 계약 기간이 남아있었습니다. 그때 사무국에서 ‘KCC 본사로 들어가라’며 저를 추천해줬습니다.
그때 김영만 감독님(현 부산 MBC 해설위원)께서 동부의 사령탑으로 부임하셨습니다. 스카우터를 구하고 있었고, 저한테 연락을 주셨어요. 제가 2군 코치를 할 때, 전력분석 업무도 같이 했다는 걸 아셨던 것 같아요.
매니저-코치와는 또 다른 일입니다. 어떤 차이가 있으셨나요?
시간과의 싸움이자 나와의 싸움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들인 시간과 공에 따라, 보고서의 내용과 분석 영상의 퀄리티가 달라지거든요. 제가 가진 모든 걸 쏟아야, 전력분석 업무의 질이 높아진다고 생각합니다.
동부에서 3년 동안 김영만 감독님과 함께 했고, 2017~2018시즌에는 이상범 감독님과 함께 했습니다. 이상범 감독님께서 저에게 늘 하셨던 말씀이 있어요. “동굴에서 좀 나와”라고요.(DB 전력분석실은 조금 폐쇄된 구조에 위치하고 있다. 그래서 이상범 감독이 전력분석실을 ‘동굴’로 빗대었다) 칭찬하시는 의미이기도 하셨지만, 제 건강을 걱정하셨던 것 같아요.
전력분석원으로서의 경험 또한 큰 자산이 됐을 것 같습니다.
이 말씀은 꼭 드리고 싶습니다. 전력분석을 해본 코치님과 그렇지 않은 코치님의 차이는 분명 있다고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전력분석 경험 없이 코치를 하시는 분은 자기 경험으로만 선수들을 지도하지만, 전력분석을 해본 코치님은 다른 선수의 일거수일투족을 더 세밀하게 관찰합니다. 자신과 함께 하는 선수들의 성향과 특성, 마인드 등을 더 철저하게 감안해요. 그래서 선수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려고 하고, 여러 관계에서의 중재 작업 또한 잘한다고 생각합니다. 선수들이 받아들이고자 하는 의지 또한 다르고요.
전력분석원을 할 때 겪은 에피소드가 있으셨나요?
전력분석원을 찾아오는 선수들이 많습니다. 전력분석원을 찾아오는 선수들과는 서로 간의 의견을 공유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일을 해야 하는데 선수들이 너무 많이 찾아와서, 자는 시간이 더 늦어졌습니다. 원래도 새벽 2~3시에 자는데, 선수들의 잦은 방문 때문에 4~5시에 자는 일이 많았어요.(웃음)
자신의 잘못된 점을 확인한 후, 시범을 보여달라고 하는 선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감독님과 코치님께 오해를 살 수 있는 행위거든요.
이전에 인터뷰를 했던 주태수 코치가 “배길태 코치님의 가르침이 큰 힘이 됐다”고 인터뷰한 바 있습니다.
“전력분석에 열정과 진심을 보이면, 모든 시간이 소중할 거다. 농구를 대하는 시선이 더 트일 거다. 그렇지 않다면, 모든 시간이 소중하지 않을 거다”며 주태수 코치에게 이야기했습니다. 이번 시즌부터 전력분석을 시작한 (강)병현이(창원 LG)에게도 “너무 잘 됐다”고 말했고, KT의 주장인 (김)영환이에게도 “전력분석을 꼭 해봐라. 좋은 지도자가 될 수 있는 근간이 될 거다”고 조언했습니다. 또, 위에서 말씀드린 이유 때문에, 전력분석을 경험했던 사람들이 더 높은 위치로 갔으면 좋겠어요.

전력분석을 4년 동안 한 배길태는 2018년부터 다시 코트로 나섰다. 부산 KT(현 수원 KT)의 감독으로 부임한 서동철 감독과 함께, KT의 코칭스태프가 된 것.
배길태 코치는 누구보다 열심히 했다. 서동철 감독이 인터뷰에서 “너무 성실하게 일하는 코칭스태프다. 몸을 아껴가면서 일했으면 좋겠다”고 할 정도로, 배길태 코치는 열과 성을 다했다.
2021~2022시즌에는 수원 KT의 수석코치로 임명됐다. KT의 4강 플레이오프 직행에 기여했다. 그러나 KT는 4강 플레이오프에서 안양 KGC인삼공사에 1승 3패로 졌고, 배길태 코치는 2021~2022시즌 후 야인이 됐다. 얻은 상처 또한 컸다.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지쳤기 때문이다.
2018~2019시즌부터 부산 KT의 코치가 됐습니다. KCC 시절과 달리, 1군 선수들의 코치를 맡았습니다.
KT에서 코치 제의를 받은 후, 이상범 감독님께 저의 상황을 말씀드렸습니다. 이상범 감독님께서는 “당연히 가야지”라며 흔쾌히 보내주셨습니다. 저 스스로 자신도 있었어요. 준비를 계속 해왔거든요.
그렇지만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았습니다. 전력분석원을 처음으로 맡은 (주)태수(현 충주 국원초등학교 코치)에게 인수인계를 했고, 매니저를 처음 시작한 (윤)여권이(현 수원 KT 전력분석원)에게도 알려줄 게 많았거든요. 게다가 박세웅 수석코치님도 프로를 처음 경험하는 거라, 제가 도와드려야 할 게 많았습니다.
수석코치가 된 후에는 더 힘들었습니다.(웃음) 전력분석원과 매니저 모두 교체되면서, 알려줘야 할 것도 피드백 해야 할 것도 많아졌거든요. 게다가 어머님까지 돌아가시면서, 마음의 병이 생겼습니다. 몸도 안 좋아졌고요. 물론, 보람된 시간이기는 했지만, 많이 힘들었습니다.
서동철 감독님께서도 “몸이 아픈데도 불구하고, 자기 몫을 다해줬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프로에서 좋은 감독님과 코치님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그렇지만 서동철 감독님한테는 사람을 대하는 기본적인 자세부터 감명을 받았습니다. 배우고 싶은 게 많았죠.
누군가는 “배길태 코치가 서동철 감독님이랑 좋지 않았던 거 아니냐? 박세웅 수석코치님이랑도 트러블이 있었다고 하더라”라고 했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지금도 서동철 전 감독-박세웅 전 수석코치와 자주 연락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몸이 정말 안 좋아서, 코치직을 내려놓은 거였어요. 계약 기간이 남았는데도, 건강 때문에 포기했죠.
2021~2022시즌 내내 건강이 좋지 않았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21~2022시즌 끝까지 코트를 지키려고 하셨는데요.
저희 팀이 선두로 치고 나갈 때, 제 몸이 많이 안 좋아졌어요. 관계자와 코칭스태프 모두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언제 돌아와도 괜찮다. 배 코치의 몸이 우선이다”며 저를 배려해주셨어요. 하지만 제가 쉬고 있을 때, 팀에서 “몸은 어때? 괜찮아졌어?”라는 연락을 자주 하셨어요.(웃음). 팀이 하향세였고, 그러면서 “배길태 코치님은 어디 간 거예요?”라는 연락을 주변에서 받았던 것 같아요.
저 역시 팀을 생각하는 마음이 컸습니다. 제 컨디션도 조금 나아졌어요. 30에서 40 정도 밖에 올라가지 않았지만, 복귀하기로 결정했어요. 그리고 5주 정도를 버텼는데, 몸이 다시 안 좋아졌습니다. 잠을 자기도 어려웠어요. 그래도 팀에 소속된 만큼, 어떻게든 버티려고 했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쓰러졌습니다. 세상이 빙빙 도는 것 같았고, 구급차에서도 구토를 했어요. 모두가 제 건강을 보고 깜짝 놀랐어요. 팀에서 다시 휴식을 이야기했고, 저도 당연히 휴식을 생각했습니다.(웃음)
그렇게 다시 휴식을 취했는데, 절친인 (표)명일이(전 양정고 코치)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굉장히 열심히 살던 친구가 그렇게 떠나는 걸 보니, ‘열심히 사는 게 무슨 의미인가? 성적이 무슨 의미인가?’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리고 팀에서 다시 연락을 받았습니다.(웃음) 아마 제가 있을 때 팀 성적이 좋아서, 저에게 연락을 했던 것 같아요. 저 역시 ‘이번 시즌만큼은 마무리하자. 이번 시즌만큼은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대신, ‘다음 년도의 계약은 포기하자’고 다짐했죠.
어떻게든 버텼습니다. 그렇지만 팀의 플레이오프 경기력에 힘을 싣지 못했습니다. 감독님한테 너무 죄송했어요. 그리고 죄송한 게 또 하나 있었습니다. 감독님보다 먼저 KT를 나왔다는 점입니다. 며칠 전에 감독님을 만났을 때도, “죄송합니다”라고 사과드렸어요.(웃음)

위에서 이야기했듯, ‘프로 농구단 코치 배길태’는 당분간 없는 직함이다. 그러나 ‘농구인 배길태’는 코트를 떠나지 않았다. KBL 유소년 엘리트 캠프에서 여러 코치들과 함께 자신의 노하우를 전수했다.
그리고 2023년. 배길태는 새로운 분야에 도전했다. 해설위원이다. 부족한 경험과 경직된 어조는 보완해야 하지만, 차분한 설명과 농구 지식의 깊이는 팬들의 호평을 받았다.
하지만 ‘해설위원’으로서의 자신을 부족하다고 여겼다. 지금의 직책을 잘할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그래서 ‘해설위원 배길태’가 가야 할 길을 설정했다. 나아가, ‘농구인 배길태’가 가야 할 길도 생각했다.
2021~2022시즌 종료 후 야인이 되셨습니다.
2022년 4월이었을 거예요. 구단에 “그만두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하지만 구단에서 “그러면 전력분석팀장을 맡으면 어떻겠냐?”고 제의하셨습니다. 서동철 감독님께서도 “쉬고 있다가, 돌아올 수 있을 때 다시 돌아와라. 언제든 다시 와도 된다”고 저를 편하게 해주셨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너무 감사합니다. 그렇지만 지금은 제 몸을 추스르는 게 먼저입니다”고 정중히 거절했습니다.
팀이 적극적으로 구애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절한 이유가 있으셨을 건데요.
저 스스로 건강 회복 시기를 확신하지 못했습니다. 만약에 돌아왔다가 안 좋은 건강을 보이면, 팀은 시즌 중반에 스태프를 다시 선임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문제가 더 커질 수 있어요. 그래서 거절 의사를 정중히 밝혔습니다.
2022~2023시즌 후반부에 SPOTV 해설위원으로 코트에 돌아왔습니다.
2022년 8월이었을 겁니다. 제 건강이 좋아지고 있던 찰나에, SPOTV에서 저에게 해설위원을 제의하셨습니다. 저 스스로 의아했습니다. 저는 유명했던 농구인도 아니고, 말을 잘하는 사람도 아니거든요. 그래서 정중하게 거절했습니다.
그리고 SPOTV에 “왜 저를 해설위원으로 영입하려고 하시나요?”라고 여쭤봤습니다. SPOTV에서는 “배길태 코치님을 좋게 보는 분들이 너무 많으세요”고 하더라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저 스스로 해설을 생각해본 적도 없고, 저의 표현 능력이 좋지 않거든요.
하지만 SPOTV에서 “리허설부터 한 번 해보죠”라고 제의했고, 저도 일단 리허설만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런데 저랑 너무 안 맞더라고요. 그렇지만 PD님의 생각은 달랐던 것 같아요. “괜찮아요. 색다르고 재밌어요”라며 긍정적으로 봐주셨어요. 대신, “시즌 중반부터 들어가시죠”라고 이야기하셨습니다. SPOTV도 고민을 많이 하셨을 거예요.
첫 중계가 기억에 남으실 건데요.
원래는 3라운드에서 4라운드 사이에 저를 투입하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시기가 계속 미뤄졌고, 저는 KCC와 LG의 6라운드 경기(2023년 3월 9일)에 처음 투입됐습니다.
첫 중계는 오히려 이상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괜찮았다고 생각해요. 연습했던 것들을 실전에서 활용했거든요. 그렇지만 제 해설을 처음 듣는 분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더라고요.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많았고요.
어떤 게 이상했다고 하셨나요?
제가 “그렇게 보여집니다”라는 표현을 자주 했습니다. 제 딴에는 조심스러워서, 그렇게 표현했어요. 어떤 플레이든 보는 사람의 시각에 따라 다를 수 있고, 제가 확신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여겼거든요.
또, 전력분석 시절의 습관도 남아있습니다. 전력분석원은 자신의 답을 피력하는 위치가 아니거든요. 그런 어조가 해설에 남아있기 때문에, 바라보시는 분들이 그런 어조를 어색하게 여겼다고 생각해요.
사실 개인적으로는 2~3번째 해설이 엉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어조가 부자연스러웠다”는 평가도 있어서, 제 딴에는 자연스럽고 편안한 어조로 변경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목소리가 너무 작아졌고, 전달력이 약해졌습니다. 준비했던 대로 강하게 이야기했어야 했는데, 이도 저도 아니게 됐어요. 준비를 안 하느니만 못하게 됐죠.(웃음)
해설위원으로서의 목표가 있으실 것 같습니다.
제가 바라봤던 시선 혹은 제가 바라보는 시선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같은 코트에 있어도, 농구를 보는 시선은 자신의 위치에 따라 달라지거든요. 또, 여러 직무를 경험했기 때문에, 제가 가진 경험들을 많이 설명해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저의 경험들을 전혀 꺼내지 못했던 것 같아요. 준비했던 것의 10%도 못 보여줬어요.
또, 제가 삼선중학교 A코치를 맡게 됐습니다. 원래는 재능 기부로 하려고 했는데, 상황상 직함을 달게 됐어요.(“돈을 받지 않고 일을 하고 싶었지만, 학교 규정상 돈을 받고 일을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다 보니, 대회 준비도 해야 하고, 해설 준비도 해야 했어요. 어수선했기 때문에, 해설위원으로서의 임무를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들이 아쉬웠어요.
농구인으로서의 목표도 남아있을 것 같은데요.
학생 선수들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건 프로 선수입니다. 프로 선수가 되기 위해 준비해야 하는 것들과 프로 선수들이 하는 것들을 동시에 연습해야 합니다.
프로 선수들은 자신의 역량을 인정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렇지만 잘못된 습관을 고치기 어렵습니다. “코치님을 어릴 때 만났다면...”이라고 말하는 선수들도 많았어요.
반면, 학생 선수들은 자신의 잘못된 습관과 실수를 고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학생들에게 “프로에 있는 한 선수가 지금의 너로 돌아왔다고 생각해라”며 동기 부여를 하고 있습니다. 선수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겠지만, 지금의 잘못된 것들을 잘 고치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저 개인적으로는 어느 위치에서든 제 강점을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일러스트 = 정승환 작가
사진 = KBL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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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동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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