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코 인사이드] 돌아온 한국 농구의 미래, 용산고 여준석
- BAKO INSIDE / 김영훈 기자 / 2020-06-11 11:5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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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스켓코리아 = 김영훈 기자] 2020년 4월 23일, 한국 농구 유망주인 여준석이 호주에서 돌아왔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급히 그의 인터뷰를 추진했다. 한국 농구 미래와 관련해 농구 팬들의 그에 대한 기대감이 적지 않기 때문. 하지만 코로나19의 여파로 인해 사회적 거리두기가 실행 중이기에 직접 만나지는 못했다. 대신 전화 인터뷰를 통해 그의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농구의 시작부터 미국 진출, 복귀,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목표까지. 여준석에게 궁금했던 모든 것을 물어봤고, 그에 관한 대답을 들었다. 이번 유망주 이야기에서는 한국 농구를 이끌 여준석에 대한 스토리를 풀어 보기로 했다.
가장 과거로 돌아가 시간 순서대로 물어보겠습니다. 처음 농구를 시작한 때는 언제 였나요?
초등학교 4학년 때 형(고려대 여준형)따라서 클럽에서 농구를 시작했어요. 또래에 비해 키가 크다 보니 농구를 잘했죠. 부모님은 초기에만 해도 농구를 시키지 않으려고 하셨는데, 형이 먼저 시작해서인지 어느 순간 자연스레 엘리트 선수를 준비하고 있더군요. 그래서 중학교 때부터 선수를 시작하게 됐죠.
농구를 즐겨하는 아이들도 처음 농구를 시작할 때 지루하고, 어려움을 느낀다고 하는데, 처음 하는 농구가 어렵지는 않았나요?
아무래도 즐기면서 할 때보다는 재미없었어요. 특히 스텝과 슛폼을 잡기가 어려웠거든요. 그래도 당시 코치님이 잘 알려주셨어요. 덕분에 기본을 잘 다질 수 있었어요.
1년을 보낸 뒤 삼일중으로 전학을 갔고, 이후부터 서서히 경기를 뛰었잖아요.
전학을 간 뒤 경기 출전을 하게 됐어요. 그런데, 징계를 받으면서 많은 기회를 잡지는 못했죠. 그리고 그 때는 경기에 나서면 많이 긴장했어요. 처음 나섰음에도 다들 키가 크니까 주목을 받았어요. 그러다 보니 무언가를 보여주려 하게 됐고, 오히려 제가 할 일을 잘 못했죠.
3학년 넘어갈 때, 속초에서 열린 엘리트 캠프에 참가했습니다. 당시 허재 감독이 주목한 중학생 유망주라는 이름으로 뜨거운 화제를 모았잖아요.
저는 단지 인터뷰만 했어요. 그런데 생각했던 거보다 너무 화제가 되었죠. 순식간에 이슈가 되자 많은 부담이 있더라고요. 다행히 주변에서 편하게 마음먹으라고 조언을 많이 해주셔서 더 열심히 노력에만 모든 걸 쏟았습니다.
그러던 중 3학년 때 다시 용산중으로 전학을 갔어요.
당시 용산중에 박민재 코치님이 계셨어요. 중학교 늦게 전학을 갔기에 많은 시간을 보냈지만 제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을 알려주신 분이예요. (구체적인 설명을 부탁한다) 제가 신장이 있기에 골밑에 있을 때가 많았어요. 하지만 코치님은 외곽을 가르쳐 주셨죠. 덕분에 농구가 정말 많이 늘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니 현재까지 제 농구에 있어 가장 큰 변화를 주신 분이시네요.
스스로도 외곽 플레이를 원했나요?
그럼요. 제가 중학생 때는 큰 키이지만, 계속해서 키가 클 수는 없잖아요. 그러니까 미래를 위해 다양한 능력을 갖추길 원했죠. 제가 원하던 외곽 플레이를 할 수 있어서 재밌게 농구를 했던 시기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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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에서 좋은 활약을 펼친 여준석은 고등학교에서 올라가서도 엄청난 실력을 뽐냈다. 1학년이지만 주전으로 뛰며 팀의 우승을 이끌었다. 앞으로 용산고의 시대가 열릴 것만 같았다.
그러나 2018년 10월 여준석은 갑작스레 호주행을 선언했다. 그는 호주에 있는 NBA 아카데미에 진출해 큰 꿈을 향해 도전한다고 밝혔다.
해외로 나가겠다는 결정을 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국내에 있을 때 좋은 코치 선생님들을 만나서 외곽 플레이를 할 수 있었어요. 하지만 제가 센터를 봐야 하는 것은 어쩔 수 없었죠. 그런데 저는 스윙맨을 원했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해외로 나가는 것이 맞겠다고 생각했어요.
또, 다른 일도 있었어요. 2018년 U18 대표팀에 선발되어서 방콕을 다녀왔죠. 놀랍게도 아시아만 가도 농구를 잘하는 선수들이 많더라고요. 반면 저는 많이 부족했어요. 대회 끝나고는 스스로에게 만족을 못해서 잠도 못 잘 정도로 못했어요. 그래서 큰 곳을 향해 나가야겠다는 마음을 먹었어요.
어떤 방법으로 나가게 되었나요?
중학교 3학년 때 중국에서 열린 아시아 퍼시픽 캠프를 다녀왔어요. 당시 (이)현중이 형도 같이 갔었는데, 그 때 대회 관계자가 현중이 형을 좋게 본 덕분에 NBA 아카데미에 갈 수 있었죠. 저도 비슷한 같은 루트로 갔어요.
호주행을 선언했을 때 이현중 선수는 어떤 말을 해줬나요?
당연히 빨리 오라고 했어요. 여기서 배우는 것이 많다며 얼른 도전을 권유했죠. 그래서 저도 결단을 내릴 수 있었고요.
호주를 가보니 어땠어요?
외곽 수비가 확실히 좋아졌어요. 이전에는 힘들었는데 지금은 자신감이 올라선 것 같아요. 또, 슛도 많이 늘었어요. 특히 무빙슛 연습을 정말 많이 했어요. 매일 오전마다 500개 정도를 쏘는데, 항상 들어간 개수를 체크했어요. 점점 날이 가면서 늘더라고요.
그렇다면 농구 외적인 생활은 어땠어요?
솔직히 처음에는 적응을 잘 못했어요. 언어와 농구 모두 힘들었죠. 그러다 현중이 형이 미국으로 가면서 나이지리아, 이집트 친구들을 소개 시켜줬고, 점점 친해졌죠. 그 외의 여가 생활은 할 게 없었어요. 주변에 정말 별 게 없었죠. 아카데미 안에서 쉬거나 가끔씩 영화관에 가는 지루한 생활의 연속이었어요.
도중에 일본에서 열린 2019년 국경 없는 농구 아시아 캠프에서 MVP도 수상했어요.
캠프를 갔는데, 전에 갔던 캠프보다 선수들이 어리거나 동갑이었어요. 그래서 마음먹고 열심히 했죠. 경기하기도 수월했고요. 그래서 MVP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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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준석은 여러 가지 어려움 속에서도 계속해서 큰 꿈을 향해 도전했다. 농구는 물론이고, 소통을 위해 영어를 익히는데도 열심이었다. 이현중이 데이비슨 대학에 진학하면서 여준석에 대한 기대감도 커졌다. 그러나 여준석은 미국이 아닌 한국으로 돌아왔다. 2019년 3월 용산고로의 복귀를 알리며 한국으로 귀국했다.
복귀를 결정한 이유가 있을까요?
우선 부모님이 돌아오시기를 원했어요. 한국에 오면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으니 부모님 입장에서는 그 점을 바라셨죠. 또한, 미국 대학을 가도 너무 힘들 거 같았어요. NCAA를 간다는 보장도 없고, 만약 간다고 해도 영어와 공부를 하다보면 농구에 신경 쓰는 시간도 줄어들 거 같았죠. 여러 가지 이유가 겹치면서 복귀를 결정하게 됐어요.
이현중 선수는 어떤 이야기를 해줬나요?
형이 응원해줬어요. 너와 내가 가는 길이 다를 뿐이니 힘내라고요. 최근에 보니 현중이 형이 매우 잘하고 있더라고요. 당연히 아쉽기도 하지만, 보고 있으면 매우 좋아요.
한국 입국 후 최근 근황이 어떻게 돼요?
아직도 상황이 좋지 않아서 팀 훈련은 못하는 중이예요. 그래도 체육관은 쓸 수 있기에 개인 훈련 위주로 하고 있죠. 발목도 조금 좋지 않아 계속 치료를 받고 있고요.
최근 용산고의 이세범 코치가 인터뷰 한 것을 혹시 봤나요? 호주에서 돌아온 뒤 농구에 임하는 자세가 달라졌다고 했어요.
분명 달라진 부분도 있기는 한데, 아직 안 좋은 습관들이 조금은 남아 있어요. 제가 느끼기에는 그래요. 그래도 호주 있을 때 생각할 시간이 매우 많았어요. 스스로를 돌아봤죠. 그러다 보니 조금씩 마인드를 고친 거 같아요.
이제는 용산고 2학년 여준석의 한 해 목표를 부탁드립니다.
저희 팀의 전력이 괜찮아요. (김)동현이도 있고, (신)주영이와 (박)정환이도 있죠. 그렇기에 우승을 노려보고 싶어요. 목표는 크게 가져야 하니 전관왕을 목표로 2020년을 조준해보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미래에 어떤 선수가 되고 싶은가요?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해외에 대한 제 꿈은 여기서 끝이 아니예요. 더 큰 무대를 향한 갈망은 남아있죠. 미국 뿐만 아니라 유럽도 충분히 제 선택지가 될 수 있어요. 다만, 제가 영어와 농구를 지금보다 더 늘린다는 전제조건 하에서요. 농구는 계속 열심히 연습하고 있고, 영어도 꾸준히 학원을 다니고 있으니 시간이 지나면 가능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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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FIBA, 본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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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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