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코 인사이드] 22년 동안 코트를 지켜온 ‘매의 눈’, KBL 고수진 경기원

BAKO INSIDE / 김준희 / 2019-11-25 17:45:36

[바스켓코리아 = 김준희 기자] 농구 코트 한쪽에는 홈팀과 원정팀을 위한 벤치가 마련되어 있다. 그리고 그 중앙에는 경기 운영을 위한 본부석이 자리 잡고 있다.


언뜻 보면 가만히 앉아 경기를 보고 있는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끊임없이 무언가를 체크하고 기록한다. 그들 사이에는 수많은 대화가 오고 간다.


그중에는 기본적인 경기 운영을 위한 경기원들이 존재한다. 경기원들은 농구 경기에서 빠질 수 없는 게임 클락과 샷 클락, 전광판과 기록을 관리한다.


고수진(45) 씨는 프로농구 원년인 1997년부터 본부석에 앉은 흔치 않은 인물이다. 그녀가 무려 22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본부석을 지킬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일까. <바스켓코리아>에서 고수진 경기원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본 기사는 바스켓코리아 9월호 웹진에 게재된 글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자기소개 먼저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고수진이라고 합니다. 현재 KBL에서 경기원을 하고 있습니다. 경기원이 파트별로 나뉘어 있어요. 24초 계시원, 계시원, 보조계시원, 기록원이 있는데 저는 계시 업무를 주로 하고 있습니다.


경기원이라는 분야에 대해 잘 모르는 분들이 많으실 것 같아요. 파트별로 설명을 해주실 수 있을까요?
경기 전체 시간을 담당하는 게 계시원이에요. 그리고 샷 클락을 담당하는 24초 계시원이 따로 있고요. 보조계시원들은 전광판을 담당해요. 그리고 제일 중요한 게 기록원이죠. 그날 기록을 수작업으로 작성해요. 예전에는 통계까지 같이했는데, 지금은 분업이 돼서 따로 운영되고 있어요.


소속은 KBL이신 건가요?
예전에는 구단에서 운영을 하되, KBL에서 교육을 받는 시스템이었어요. 4년 전을 기점으로 KBL에서 통합해서 교육하고, 배정까지 하고 있죠. 그동안 몇 차례 사고도 있었고, 경기원 교육이 체계적으로 되지 않는다고 해서 운영 방식이 바뀌었어요.


원래는 구단 소속이셨던 거군요.
소속이 애매했죠. KBL 소속이긴 한데, 운영은 구단에서 한 거죠. 또 지방 같은 경우는 서울에서 파견을 하기 힘드니까 구단에서 뽑아서 운영했었죠. 지금은 KBL에서 채용 공고를 내고, 이력서를 받아서 인원을 뽑아요. 시스템이 많이 바뀌었어요. 예전에는 인원 충원을 구단에서 자체적으로 했었는데, 지금은 KBL에서 운영과 교육을 같이 하니까 과거보다는 훨씬 체계적이죠.


주로 어떤 분들이 경기원을 많이 하시나요?
경기원이 주가 될 수는 없어요. 하지만 (스케줄을) 배정을 받기 때문에 경기가 있는 오후 시간을 확실하게 비울 수 있어야 해요. 학교 체육 선생님이나, 스포츠 센터에서 아이들 가르치는 분들이 많죠. 저 같은 경우는 오전에 자율학교로 농구 수업을 나가기도 하고, 센터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기도 해요. 근데 아무래도 농구계에 종사했던 분들이나, 운동했던 사람들이 많이 하죠.


그렇다면 경기원님께서는 어떻게 시작을 하시게 된 건가요.
사실 제가 선수 출신이에요. 옛날에 SK증권이라는 팀에서 현재 BNK 썸을 맡고 계신 유영주 감독님, 은퇴한 (김)지윤이 등과 함께 농구를 했었어요. 제가 24살 정도에 농구를 그만뒀는데, 마침 은퇴하고 1년 뒤에 프로농구가 생긴 거죠. 그러면서 경기원을 모집했는데, 주로 은퇴 선수들에게 제안이 많이 왔어요. 저에게도 제안이 오길래 ‘그럼 나도 할래!’ 하고 시작했죠. 당시 집이 인천이라 인천에서부터 일을 시작했어요.


원년 때부터 하셨다니 놀랍습니다. 그만큼 고충도 많으셨을 것 같아요.
그때는 지금처럼 체계적이지 않았어요. 컴퓨터도 없었고요. 계시와 24초 샷클락, 전광판 빼고는 다 수작업이었죠. 경기 끝나고 통계 낼 때도 다 같이 모여서 정리했고요. 옛날에는 여관방 잡아놓고 계산기 두드리면서 통계를 냈다고 하더라고요(웃음).


프로농구 원년이 1997년이니, 햇수로 무려 22년째 하신 건데요. 이렇게까지 오랫동안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있을까요?
사실 처음에는 창피했어요. ‘운동 관두고 왜 저런 걸 하냐’는 시선이 있었죠. 처음엔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했던 것 같아요. 근데 어느 순간부터 ‘내가 대단한 건 아니지만, 꼭 필요한 일을 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게 한쪽으로 치우치면 안되거든요. 나 때문에 누가 불이익을 받거나, 이익을 얻어서도 안 되고요. 농구가 제한된 시간 내에 펼치는 경기라서 상당히 빨라요. 그만큼 경기원들도 힘든 게 많은데, 오원강 KBL 경기부장님께서 운영을 맡으시면서 소통이 원활해졌어요. 그동안은 관리가 잘 안 됐는데, 오 부장님께서 이야기도 많이 들어주시고, 애매한 상황에선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적극적으로 알려주시니까 일하기 훨씬 편해진 것 같아요.


오래 하셨던 만큼, 기억에 남는 경기도 있을 것 같은데요.
2009년 잠실에서 열렸던 서울 삼성과 원주 동부의 5차 연장전이요. 정말 설마설마하던 일이 일어나더라고요. 이게 경기원들이 가만히 앉아있는 것 같아도, 계속 말을 해야 하기 때문에 물을 많이 마셔요. 시간이 3시간이 넘어가니까, 화장실이 너무 가고 싶더라고요. 5차 연장 막판엔 감독관님께 딱 말씀드렸어요. ‘이번에 또 연장 가면 저 그냥 화장실 갈 거니까 저 오면 시작하세요’라고요(웃음). 그리고 당시 통계 프로그램도 3차 연장까지만 기록할 수 있게 돼 있었어요. 이후로는 다 수작업으로 기록했죠.


정말 역대급 경기를 함께하셨네요.
나중엔 선수들도 다 다리에 쥐가 나서 못 뛰더라고요. 아마 윤호영 선수가 당시에 신인이었을 거예요. 그 뒤로 통계 프로그램도 다시 만들어졌어요. 지금은 10차 연장까지도 기록할 수 있고, 그 뒤로도 시스템이 다 돼 있다고 하더라고요. 지금은 걱정 없을 거예요. 지나고 나니 이것도 추억이네요(웃음).


한순간도 긴장을 놓을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우리는 일반 관중이 게임 보듯이 보면 안 돼요. 그럼 사고 나요. 시간 체크를 계속해야 해요. 심판 휘슬 소리와 손동작도요. 제 의지로 멈출 수 있는 건 골이 들어갔을 때뿐이에요. 그거 말고는 제 의지로 멈출 수 있는 건 없어요. 사실 플레이오프나 챔프전에 가면 휘슬 소리가 잘 안 들려요. 그럴 땐 심판 위치는 어디인지, 누가 어디에 가까이 있는지도 확인해야 해요. 심판들과 호흡도 잘 맞아야 하죠.


스트레스도 어마어마할 것 같은데, ‘그만두고 싶다’고 생각하셨던 순간은 없나요.
그래도 아직은 이 일이 재밌어요. 경기원들끼리 우스갯소리로 ‘우리는 정년이 언제냐’고 하기도 해요. 그러면 ‘손 떨리면 그만둬야 한다.’, ‘버튼 못 누르면 그만둬야 한다’고 해요. 집중력이 떨어지면 관둬야 할 것 같아요. 그건 본인만 알 수 있어요. 룰이 계속 바뀌어요. 더 빨라지고요. 거기에 따라가지 못하고 판단력이 흐려지면 관둬야 할 것 같아요. 근데 아이러니하게 지금이 감이 제일 좋아요. 제 생각엔 10년은 해야 이 일에 대한 감이 올라오는 것 같아요. 저도 생각해보면 7~8년은 아무것도 모르고 그냥 한 것 같아요. 지금은 긴장감이 있어요. 경기 들어가기 전부터 긴장을 엄청 많이 해요. 시설 체크도 해야 하고요. 겉으로는 웃고 떠들고 있지만, 눈은 계속 돌아가고 있는 거죠. (버튼이) 되나, 안 되나 눌러보고요. 그러다 뭐가 안된다 싶으면 바로 뛰어가고(웃음).


원년부터 하셨으니, 당시 농구와 현재 농구의 인기 차이도 크게 실감하실 것 같습니다.
민망할 때가 있어요. 애국가 나올 때 딱 섰는데 관중석을 보면 실감이 나죠. 말로는 ‘아무 생각 없다’고 하지만, 막상 보면 속상해요. 예전에는 스타 플레이어도 많았고, ‘농구선수’ 하면 문경은, 이상민, 이충희 등 선수들 이름이 줄줄이 나왔죠. 지금은 정말 농구를 보는 사람이 아니면 누가 있는지 모르잖아요. 중계도 케이블로 넘어가고, 선택권도 좁아진 걸 보면 ‘농구 인기가 식었구나’라는 게 확 느껴지죠. 속상할 때가 많아요. 관중이 없으면 선수들이 뛸 맛이 안 나거든요. 관중이 있어야 선수들도 있는 거잖아요? 관중이 찾지 않으면 의미가 없죠. 농구계에서 많은 분발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봐요.


경기원으로서 목표가 있으시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여자 심판은 있는데, 여자 감독관은 아직 없어요. 최초로 여자 감독관을 해보는 게 목표예요. 여태까지 여자 혹은 경기원이 감독관을 한 전례가 없어요. 그동안은 주로 선수 출신분들이 감독관을 하셨죠. 아무래도 감독관은 경기 전체를 다 신경 써야 해요. 경기 시작 3시간 전부터 점검하고, 확인해야 하죠. 경기원의 마지막은 감독관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저도 현장에서 20년 넘게 경력을 쌓았기 때문에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제가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시켜주신다면 열심히 잘할 자신이 있습니다(웃음).


사실 ‘언제까지 경기원을 하실 계획인가요’라는 질문이 있었는데, 말씀을 듣다 보니 질문의 의미가 없을 것 같습니다.
열정이 좀 늦게 생긴 것 같아요. 처음에는 아무 생각 없이 했는데, 할수록 긴장감이 생겨요. 10년이 지나면서부터 ‘쉽게 생각할 일이 아니구나’라고 느꼈어요. 그때부터 마음가짐이 달라진 것 같아요. 남들은 잘 모르지만, 책임감을 많이 느끼고 있어요. 저로 인해서 피해 보는 사람이 생기면 안 되잖아요. 잘하면 본전이고, 못하면 KBL과 프로농구가 욕 먹는 것이기 때문에 긴장감과 책임감을 갖고 임하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바스켓코리아> 구독자분들께 인사 부탁드릴게요.
경기원이 그냥 왔다 갔다 하고, 앉아만 있는 사람은 아니에요. 정말 다 열심히 노력하고, 경기 끝나면 부족했던 부분에 대해 공부도 많이 해요. 사람이기 때문에 실수는 나올 수 있어요. 지나면 더 잘할 거고, 지금도 젊은 후배들이 많이 들어와서 열심히 하고 있으니까 좋게 봐주셨으면 해요. 또 하나 바라는 게 있다면, 이 분야가 좀 더 전문적으로 발전해서 경기원이라는 존재가 수면 위로 많이 올라왔으면 좋겠어요.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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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김준희 기자, KBL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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