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장들의 은퇴
- NBA / Jason / 2011-07-27 12:33:02

(바스켓코리아) NBA는 지난 시즌을 끝으로 두 명의 명장과 아쉬운 이별을 나눠야 했다. 지난 20여년간 유타 재즈의 사령탑이었던 제리 슬로언과, 지난 10여년간 LA 레이커스를 이끌어 온 필 잭슨 감독이 그 주인공. 슬로언은 유타를 꾸준한 강팀으로 이끌며 NBA 역사상 한 팀에서 1,000승을 달성한 최초의 감독이 되었고, 잭슨은 시카고 불스와 레이커스에서 세 번의 3연패를 포함해 NBA 역대 최다인 11번의 우승을 차지한 감독으로 남아 있다.
이렇듯 두 감독의 업적은 실로 대단했다. 시즌 결산의 마지막 시간에는 두 명장의 아쉬운 이별에 대해 다뤄봤다.
‘유타의 산증인’ 제리 슬로언
슬로언은 유타의 살아 있는 역사다. 유타에서만 1,000승을 올린 것은 물론, 스몰마켓의 불리함에 불구하고 팀을 14시즌 연속 플레이오프에 올리기도 했다(감독 대행이었던 1988-1989시즌은 제외). 그만큼 많은 성과를 거뒀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픽앤롤 플레이다. NBA의 대표적인 픽앤롤 콤비였던 칼 말론-존 스탁턴이 슬로언의 제자인 점을 고려하면 따로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 유타는 픽앤롤을 기반으로 오랫동안 서부컨퍼런스 강호로 군림했다. 1996-1997시즌부터 1997-1998시즌까지는 두 시즌 연속 서부컨퍼런스 정상을 밟기도 했다. 비록 잭슨과 마이클 조던이 이끄는 시카고에 분패하며 아쉽게 우승 타이틀을 차지하지는 못했지만, 당시 파이널에서 유타는 시카고와 명승부를 펼쳐 많은 박수를 받았다.
이후 말론-스탁턴 시대가 저물자, 슬로언은 러시아 특급인 안드레이 키릴렌코를 중심으로 팀을 재편하기 시작했다. 말론과 스탁턴 없이 맞이한 2003-2004시즌 유타는 42승을 거두며 5할 승률은 넘어섰지만, 플레이오프 진입에는 실패하고 만다. 무려 20년만이었다. 이때 슬로언은 은퇴를 결심한 듯 보였다.
하지만 때 아닌 비극이 그를 다시금 일어서게 했다. 당시 슬로언의 아내는 오랜 시간 동안 암 투병생활을 해왔다. 그랬기에 슬로언은 더욱 아내 곁으로 가고 싶어 했다. 그러나 그의 아내는 끝내 세상과 이별을 하고 말았다. 이는 슬로언의 도전의식을 다시 한 번 더 불태웠다. 유타 역시 유망주들을 끌어 모으며 움츠렸던 날개를 펼치기 시작했다. 2004년 여름에는 FA로 풀린 카를로스 부저를 잡았고, 2005 드래프트에서는 3순위로 데런 윌리엄스를 지명하며 미래를 위한 준비를 마쳤다.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부저와 윌리엄스는 ‘포스트 말론 & 스탁턴’이라는 칭호를 받으며 성장해나갔고, 슬로언 감독의 픽앤롤 역시 나날이 위력을 떨쳤다. 결국 유타는 2006-2007시즌 4년만에 플레이오프에 진출한 것은 물론, 톱시드인 댈러스 매버릭스가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에게 업셋을 당한 행운까지 더해져 9년만에 처음으로 서부컨퍼런스 파이널에까지 올랐다.
그러나 2006-2007시즌 이후 유타는 강호 자리를 지키지 못했다. 팀의 주축인 메멧 오쿠어와 키릴렌코는 잦은 부상에 허덕였고, 2010년 여름에는 부저와도 결별하며 리빌딩 수순을 피할 수 없었다. 이어 지난 시즌에는 더욱 충격적인 소식이 유타를 강타했다. 올스타 브레이크 전인 2월 11일(한국시간), 슬로언이 사임하고 만 것이다. 무엇보다 불과 3일 전에 팀과 1년 연장계약까지 체결했기에 농구 팬들의 놀라움은 더욱 컸다.
슬로언의 사퇴 이유는 윌리엄스와의 불화가 가장 크게 작용했다. 감독과 선수의 마찰은 어느 팀에나 흔히 있는 일이지만, 유타에서 벌어진 상황은 실로 심각했다. 슬로언과 윌리엄스의 언쟁은 좀처럼 그칠 줄 몰랐고, 라커룸에서까지 충돌이 끊이지 않았을 정도로 불협화음이 컸다. 결국 둘 중 한 명은 팀을 떠나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고, 슬로언의 사퇴와 윌리엄스의 트레이드로 상황은 일단락되었다.
이렇듯 슬로언의 오랜 감독 생활은 허무하게 막을 내렸다. 별다른 기념행사도 없었다. 은퇴 발표 기자회견이 전부였다. 그렇게 휘어질 줄 모르는 대나무처럼 강직했던 감독은 쓸쓸히 정든 코트를 떠났다. NBA에 굵직한 족적을 남긴 명장의 퇴장이라 하기엔 너무 초라했다. 하지만 언젠가 명예회복을 위해서라도 감독으로 복귀하는 날이 오지 않을까? 그가 다시 지휘봉을 잡을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대해본다.
‘Zen Master’ 필 잭슨
이미 지난 시즌 전부터 “2010-2011시즌을 끝으로 감독 자리에서 물러날 것”임을 밝혔던 잭슨은, 시카고와 레이커스에서 무려 11회나 우승을 거둔 NBA 최고의 명장이다. 시카고에서 두 번의 3연패, 2000년대 이후에는 레이커스에서 3연패와 2연패를 더하며 역사상 가장 많은 우승 타이틀을 보유한 감독이 되었다. 게다가 파이널은 13회나 진출했는데, 이는 NHL의 스카티 바우먼 감독과 함께 미 4대 프로스포츠 통틀어 최고 기록으로 남아 있다. 더불어 플레이오프에서 거둔 229승은 4대 스포츠 통산 최다승이며, 플레이오프에서 1차전을 승리한 시리즈에서는 단 한 차례도 패하지 않은 기록도 보유하고 있다.
이 뿐만 아니다. 2000-2001시즌에는 플레이오프에서 단 한 번만 패하고 우승을 차지했다. 이만하면 ‘우승청부사’가 아니라 ‘우승전도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잭슨하면 그와 함께한 무수한 슈퍼스타들이 떠오른다. 시카고에서 함께했던 조던-스카티 피펜은 물론이고, 레이커스에서는 코비 브라이언트-샤킬 오닐을 직접 지도하며 팀을 꾸준히 우승시켰다. 이 때문에 잭슨은 “슈퍼스타와 함께했기에 우승이 가능했다”는 비아냥의 대상이 되기도 했지만, 여러 슈퍼스타들이 뭉쳤음에도 우승을 한 팀보다는 하지 못한 팀이 더욱 많았음을 볼 때 잭슨의 역량은 다른 여타 감독들과는 분명 다르다고 할 수 있었다.
잭슨은 카리스마도 범상치 않았는데, 독특하게도 종교적인 힘이 원천이었다. 특히 ‘선(善)’ 사상을 지도철학으로 삼을 정도로 신념이 강했다. 이에 잭슨이 맡은 팀은 경기 전 항상 명상의 시간을 가져야 했다. 효과도 컸다. 선수들은 집중력을 끌어올린 상태에서 경기에 임할 수 있었고, 이는 많은 승리로 이어졌다.
또한 잭슨은 선수들에 대한 신뢰가 높은 감독으로도 유명했다. 다른 감독들과는 다르게 좀처럼 자리에서 일어나는 법도 없었다. 작전시간 역시 잘 부르지 않았다. 되도록 선수들이 직접 문제를 해결하게 믿고 맡겼다. 이런 잭슨만의 독특한 지도방식은 선수들과의 관계를 더욱 끈끈하게 만들어주는 발판이 되었다.
잭슨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하나 또 있다. 바로 트라이앵글 오펜스다. 이것은 모두가 알다시피 잭슨에게 수많은 우승을 안겨주었다. 원래 트라이앵글 오펜스의 창시자는 어시스턴트 코치인 텍스 윈터였지만, 잭슨이 시카고에 감독으로 부임하자마자 주요 전술로 기반을 다져 더욱 완성도 있게 만들었다.
이처럼 잭슨은 안목도 뛰어났다.
명장이 되려면 사람도 잘 다뤄야 한다. 잭슨 역시 감독 재직 시절 내내 항상 같은 동료들과 함께 했을 정도로 넓은 포용력을 자랑했다. 윈터 코치를 필두로, 짐 클레먼스-존 바흐-프랭크 헴블런 등이 잭슨의 든든하게 뒷받침했고, 이밖에도 커트 램비스와 브라이언 쇼도 수제자로서 잭슨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
하지만 잭슨의 마지막은 슬로언만큼이나 좋지 못했다. 브라이언트는 2010-2011시즌이 잭슨 감독의 마지막 시즌인 만큼 동료들을 고취시키며 우승에 대한 열망을 드러냈지만, 레이커스는 서부컨퍼런스 세미파이널에서 탈락하고 말았다.
문제는 경기 내용조차 좋지 못했다는 것. 레이커스는 4전 전패로 무릎을 꿇은 것은 물론, 론 아테스트와 앤드류 바이넘이 스포츠맨쉽에 어울리지 않는 파울을 저지르며 경기를 엉망으로 만들어버렸다. 특히나 잭슨의 마지막 경기가 되어버린 서부컨퍼런스 세미파이널 4차전에선, 4쿼터 막판에 바이넘이 JJ 바레아를 팔꿈치로 밀치는 하드 파울을 범해 잭슨의 얼굴에 먹칠을 하고 말았다. 그야말로 잭슨 입장에서는 제자들이 자신의 마지막 경기를 망친 꼴이 됐다.
잭슨의 세 번째 3연패 도전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하지만 지난 플레이오프에서의 실패가 잭슨의 모든 것을 말해주진 않는다. 과연 소속팀을 이처럼 꾸준히 우승시켰던 감독이 몇이나 더 있을까? 잭슨의 업적과 그가 감독시절 보여준 무게는, 다른 어느 누구보다도 강렬했고 인상적이었다.
바스켓코리아 이재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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