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코 인사이드] WKBL이 낳은 최고 여제, 우리은행 '또치' 박혜진

BAKO INSIDE / 김영훈 기자 / 2020-06-19 17:3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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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스켓코리아 = 김우석 기자] 박혜진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WKBL이 낳은 최고의 농구 여제다.

이번 FA를 통해서도 여실히 증명된 부분이다. 우리은행을 포함한 모든 구단이 박혜진 영입에 관심을 보일 정도였다. 모두 여자농구 상한 금액인 3억을 불사하더라도 박혜진을 불러 들이고 싶어했다.
하지만 박혜진은 고심 끝에 우리은행을 선택했다. WKBL 역사상 가장 훌륭한 선수로 기억될 박혜진을 둘러보는 시간을 가져보자.

‘또치’ 박혜진 그녀는 누구인가?
먼저 그녀의 스펙을 알아보자. 1990년 7월 22일생인 박혜진은 부산 대신초를 졸업하고 동주 여중과 삼천포여고를 거쳤다. 통상 동주여중 이후는 동주여고로 진학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박혜진은 또 다른 농구 명문인 삼천포여고를 선택했다.
당시 동주여상에는 강아정(청주 KB스타즈)이 존재했다. 박혜진 1년 선배였던 강아정은 당시 변연하 뒤를 이을 슈터로 평가받던 재목이었다. 박혜진은 “중학교 시절에 아정 언니와 함께 했다. 성적도 좋았고, 관계도 좋았다.”고 전했다. 이유가 궁금했다.
박혜진이 삼천포여고로 진학한 이유는 언니 박언주 때문이었다. 박언주는 삼성생명과 우리은행 그리고 하나은행에서 WKBL을 경험했던 선수다.
박혜진은 “언니가 삼천포여고 먼저 진학을 했다. 어린 시절 키가 커서 센터를 주로 보았는데, 이후 신장이 커지지 않아 외곽으로 포지션을 변경하는 과정에서 삼천포여고로 진학하게 되었다. 언니와 따로 있고 싶지 않아서 가게 되었다.”고 전했다.
또, 박혜진은 “삼천포여고에서 스카우트 제의도 있었다. 언니도 그렇고, 저도 그랬다. 어쨌든 부산을 떠나 삼천포여고로 가게 되었다.”고 전한 후 “사실 언니가 나 때문에 농구를 한 케이스다. 언니는 어릴 적에 키가 컸다. 그래서 농구와 배구부가 있는 학교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많이 받았다. 나는 작았다. 하지만 운동이 하고 싶어 부모님께 졸랐다. 어느 날 TV를 보는데 농구가 나왔다. 너무 재미있게 보았다. 그래서 농구로 결정했다. 나 때문에 언니가 먼저 농구를 하고 나도 따라서 시작했다.”고 전했다.
탁월했던 운동 센스에 열정까지 충만했던 박혜진은 나날이 성장했다. 중학교 시절에도 위에 언급한 대로 강아정과 함께 전국 무대를 누비고 다녔다.
박혜진이 합류한 삼천포여고는 천하무적이었다. 1학년 때부터 많은 출전 시간을 부여 받았던 박혜진이 2학년이 되던 2007년에 3관왕에 주연이 되었다. 27연승이라는 기적적인 성적도 남겼다. 2008년에도 전국 대회 상위권에 올랐다. 당시 아쉬운 사건이 발생하며 주춤했지만, 김유경(전 신한은행, 은퇴), 윤나리(전 우리은행, 은퇴)와 함께 만들어낸 대단한 성적을 남기고 무대를 프로로 옮겨갔다.
박혜진은 아마추어 시절에 대해 “정말 재미있게 운동을 했던 기억이 있다. 1학년 때부터 우승도 많이 했다. 3학년 때 조금 불미스러운 일이 있어 전국체전만 우승을 했다. 운동량도 엄청 많았다. 아시겠지만, 삼천포여고 운동량은 상상 이상이다. 아마도 위성우 감독님 운동을 견뎌낼 수 있는 원동력이 되지 않았나 싶다. 처음에는 조금 거부 반응이 있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적응할 수 있던 계기였다고 생각한다. 나는 상복도 많고, 성적 운도 좋은 것 같다. 그리고 운동 복은 정말 타고난 것 같다.”며 밝게 웃었다.
나는 상복도 많고, 성적 운도 좋은 것 같다. 그리고 운동 복은 정말 타고난 것 같다.”며 밝게 웃었다.
그렇게 고교 무대를 평정했던 박혜진은 2009년 WKBL 신인 드래프트 전체 1순위로 춘천 우리은행(현 아산 우리은행)에 입단했다.
박혜진은 신장이 178cm다. 가드로서 작지 않은 신장이다. 체형 역시 농구 선수에 어울린다. 스피드와 센스도 갖추고 있다. 탁월한 수비력은 물론이고, 득점 기술 역시 다양하다. 3점슛과 미드 레인지 점퍼 그리고 다양한 형태의 레이업 슛 능력 또한 탁월하다.
임영희(현 우리은행 코치)이 은퇴한 이후에는 리더로서 모습도 갖추기 시작했다. 리더십보다는 득점과 수비에 중점을 두었던 박혜진은 코트의 지휘자 역할도 충분히 해냈다.
 

 

프로 입문 그리고 시련
아마추어 시절 엘리트 코스를 밟아왔던 박혜진은 많은 기대와 함께 WKBL에 입문했다. 당시 우리은행은 하위권을 맴돌고 있었다. 2007-08시즌 11승 24패로 5위에 머물렀던 우리은행은 박혜진 입단 후인 2008-09시즌 7승 33패를 기록하며 6위로 주저 앉았다.
박혜진은 신인 신분 임에도 불구하고 29경기에 나서 평균 34분 58초를 뛰었던 박혜진은 평균 7.07점 3.28리바운드 3.07어시스트 1.28스틸 이라는 놀라운 기록을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팀은 6위에 자리해야 했다.
데뷔 당시 박혜진은 두 번의 좋지 않은 기억이 있다. 두 경기에서 노 마크 결승 레이업을 놓치는 장면을 노출했다. 신인으로 충격이 적지 않을 듯 했다.
박헤진은 당시를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박혜진은 “분명히 기억을 하고 있다. 데뷔 시즌에 두 경기에서 결승 레이업을 실패했다. 근데 돌이켜보면 성공보다는 실패의 기억이 더 많다. 그 만큼 실패를 더 많이 했다는 증거가 아닐 까 싶다. 여튼, 그 경기는 진짜 소름 돋고 추운 기분이 든다. 지났으니까 하는 말이지만, 신입생이라 용서가 되는 일이었다. 진짜 생각도 하기 싫다. 언니들이 죽이고 싶을 것 같다.”며 또 한번 환한 웃음을 남겼다.
당시 우리은행에는 김계령(MBC해설위원), 김은혜(KBSN해설위원), 홍현희(은퇴), 김은경(은퇴), 고아라(부천 하나은행) 등이 존재했다.
박혜진에게 닥친 첫 번째 시련이었다.
이듬해 박혜진 역시 주춤했다. 소포모어 징크스였을까? 2년 차에 접어든 박혜진은 26분 정도 경기에 나섰고, 평균 5.41점 2.44리바운드 2.59리바운드를 남겼을 뿐이었다. 신인 때 성적과 비교할 때 아쉬움이 떠오르는 숫자들이었다.
3년 차에 접어든 박혜진은 훨훨 날아 올랐다. 데뷔 3번째 시즌 만에 두 자리 수 득점(10.44점)을 만들었고, 4.56리바운드 3.56어시스를 기록했다. 평균 출전 시간은 무려 37분 46초에 달했다. 자신의 WKBL 커리어 4번째 시즌에도 훌륭한 기록을 남겼다. 출전 시간이 30분 대로 줄었지만, 평균 8.03점 3.44리바운드 2.53어시스트 1스틸을 생산했다. 가성비에서 높은 점수를 줄 수 있는 스탯이었다.
하지만 팀은 박혜진 활약에도 불구하고 계속 6위에 위치하며 좀처럼 순위표 상단으로 올라서지 못했다.
9승 31패(2009-10), 5승 30패(2010-11), 7승 33패(2011-12)라는 아쉬운 성적표와 함께 꼴찌에서 탈출하지 못했다.
그렇게 박혜진은 프로 입단 후 4년 동안 꼴찌라는 순위와 함께 지나쳤다. 아마추어 시절 도무지 패배라는 단어를 몰랐던 박혜진이 경험해야 했던 충격적인 성적이 아닐 수 없었다.
삼천포여고 시절 27연승이라는 기록과 함께하는 등 승리의 기쁨만을 만끽했던 박혜진에게 인정하기 힘든 현실의 끝은 좀처럼 보이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또, 그 힘겨웠던 4년 동안 코칭 스텝과 불화설로 인해 적지 않은 마음 고생도 해야 했다. 김광은 감독 경질에 있어 주연(?)으로 몰리기도 하는 등 팀 성적 뿐 아니라 외적인 부분까지도 힘겨운 상황을 겪어야 했다.
박혜진은 위 감독 이전 4년 동안 3명의 감독을 경험했다. 박건연 감독과 1년을, 정태균 감독과는2년을 함께했다. 이후 정 감독은 고문으로 승격되었고, 그 자리에 김광은 감독이 자리했다. 이때 문제가 발생했다.
박혜진은 당시 상황에 대해 “의도치 않게 언론에 크게 노출이 되니 어린 나이에 많이 당황했다. 솔직히 너무 무서웠다. 부풀려진 부분이 있었다. 해명을 하기도 힘들었다. 그 시즌 끝내고 그만두어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전한 후 위 감독님이 부임하시고 일찍 소집 훈련을 시작했다. 그때 언니가 FA 계약에 실패하며 짐을 쌌다. 그때 나는 ‘이렇게 그만두면 안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떻게든 내가 열심해 해서 ‘언니를 복귀 싶기도 싶었다.’는 생각을 했다. 결과적으로 성공했다.”며 또 한번 기억 저편에 자리잡은 추억에 웃음을 남겼다.
연이어 박혜진은 계속 좋은 성적과 함께 하다 4년 동안 꼴찌를 했던 기억에 대해 “4년 동안 가장 무서웠던 건 패배의식 이었다. 처음에 질 때는 너무 속상했다. 계속 패하다 보니 익숙해져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무섭고 속상했던 때였다.”고 전했다.
그렇게 박혜진에게 WKBL 데뷔 4년은 어쩌면 지옥과도 같은 현실의 연속이었다. 계속되었다. 하지만 이후 박혜진에게 그 4년이라는 시간은 지금의 박혜진을 만드는 자양분이 되었다.
2012-13시즌부터 박혜진은 지금까지 ‘꽃길’만 걷고 있다. 

 

 

통합 6연패 그리고 ‘에이스’ 박혜진
프로 입문 후 4시즌이라는 결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여러 어려움을 겪었던 박혜진은 위성우 감독 부임 이후 터닝 포인트를 맞게 되었다. 불운, 꼴찌, 갈등과 같은 단어가 아닌 행복, 우승, 에이스, 절대 존재감과 같은 긍정적인 단어와 함께 하게 되었다.
다시 꼴찌를 할 것이라는 예상을 뒤엎고 정규리그 우승에 이은 챔피언 결정전까지 접수했던 우리은행에 핵심으로 떠올랐다. 임영희(우리은행 코치), 이승아(은퇴), 배혜윤(용인 삼성생명), 양지희(부산 BNK 썸 코치) 그리고 티나 톰슨과 함께 2012-13시즌을 접수했다.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과정과 결과였다.
박혜진은 위성우 감독의 전폭적인 신뢰(?) 속에 무려 37분 33초라는 긴 시간 동안 경기에 나섰고, 10.37점 5.94리바운드 3.6어시스트 1.43스틸을 기록했다. 득점과 수비 그리고 어시스트에 있어 높은 수치와 효율성을 기록, 우리은행 재건의 일등 공신이 되었다.
그렇게 지옥에서 탈출했던 박혜진은 이후 5시즌 동안 꾸준한 활약과 함께 우리은행 핵심 멤버로 떠올랐다.
우리은행은 이후 5시즌 동안 정규리그와 챔피언 결정전에서 우승을 차지, 두 번째 전성기를 지나쳤다. 박혜진은 매 시즌 알토란 같은 활약과 함께 우승에 힘을 보탰고, 자신은 계속 존재감을 넓혀갔다.
통합 6연패를 달성했던 2017-18시즌에는 무려 38분 15초 동안 뛰면서 14.51점 5.17리바운드 5.09어시스트 1.23스틸을 기록, 이승아와 배헤윤 그리고 양지희가 차례로 이탈하는 위기 속에도 우리은행이 우승을 차지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냈다.
당시 위성우 감독은 “나도 (박)혜진 출전 시간이 길다는 것에 대해 동의한다. 하지만 그 만큼 혜진이가 절대적이다.”라는 심경을 남기기도 했다. 박혜진은 “출전 시간에 대해 전혀 아쉬움이 없다. 오히려 벤치에 있는 것이 이상할 정도다.”라는 반문에 가까운 답변을 남기기도 했다.
그렇게 박혜진은 우리은행의 통합 6연패 기간 동안 임영희의 보조 역할과 함께 자신의 플레이를 모두 살려내며 다섯 번의 정규리그 MVP를 수상했다. 그리고 세 번의 챔피언 결정전 MVP에도 올랐다. 거의 절대적인 존재감을 갖게 된 박혜진의 현재다.
통합 6연패를 돌아봐 달라는 질문을 던졌다. 박혜진은 “위 감독님과 첫 시즌에 하루 하루가 너무 힘들었다. 아시다시피 ‘지나가는 개도 부러울 정도’라는 멘트가 나올 정도로 너무 힘들었다. 그렇게 힘들게 운동을 했고, 우승을 하면서 보상을 받으니 잊혀지는 것들이 있더라. 이후 위기가 진짜 많긴 했다. 그러나 우리 팀 장점이라고 할 수 있는 열심히 하는 것으로 모든 위기를 넘기고 지금에 이르렀다고 생각한다. 사실 매 시즌 운동량이 계속 줄기는 했다. 지금 입단하는 선수들은 믿지 않는다. 하지만 사실이다. 역시 첫 해를 버텼다는 것에 대해 정말 큰 자부심을 갖고 있다.”며 웃음을 남겼다.
연이어 통합 6연패의 원동력에 대해 물었다. 박혜진은 “기본적인 것에 충실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기본적인 것을 잘 지키다 보니 6연패를 할 수 있었다고 본다. 기본적인 것이 안되면 여지 없이 감독님의 불호령이 떨어진다. 아시다시피 견딜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웃음)”고 전한 후 “또, 체력이 충분했기 때문이다. 체력 훈련 싫긴 하다. 하지만 지나고 보니 체력이 뒷받침되어야 좋은 기술이 나온다고 생각이 든다. 선수로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이유도 있었다. “선수단 전체에 기본적인 것에 대해 ‘해야 한다’보다 ‘하고 있다’는 정신이 생긴 것 같다. 특히, 리바운드와 수비에서 꾸준함이 그렇다. 이제는 확실히 몸에 밴 것 같다. 그것도 기술의 일종이다. 어린 선수들은 그런 언니들과 같이 훈련을 하다 보니 하드해진 것 같다.”고 전했다.
계속 설명을 이어갔다. “일단 상대 수비를 죽도록 막아야 한다. 위에 언급한 대로 한 골이라도 쉽게 주면 감독님을 피해갈 수 없다(웃음). 근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내 경기력에 일부가 되어 있었다. 처음에는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을 했지만, 언젠가부터 골을 주면 자존심이 상했다. 이것도 통합 6연패의 원동력이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4년 동안 많은 인고의 시간을 보냈던 박혜진은 이후 6년 동안을 모두 우승과 함께하며 최고의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박혜진이 남긴, 전설이 될 기록들
박혜진은 현재 자유투 연속 성공과 역대 최다 1위에 올라있다. 2012-13시즌 후반 자유투 38개를 연속으로 성공시켰던 박혜진은 2013-14시즌 초반에 얻은 자유투 7개를 모두 성공시키며 연속 성공 숫자를 45개를 늘렸다.
종전 기록은 정선민(전 인천 신한은행 코치)이 보유했던 42개. 정선민은 2009-10시즌 39개와 함께 2010-11시즌 3개를 더하며 완성한 기록이었다.
박혜진은 2013-14시즌 11월 15일 구리 KDB생명(현 부산 BNK 썸)과 경기에서 3개를 성공시키며 대기록을 완성했다. 앞서 연속 42개를 성공시켰던 박혜진은 이날 경기를 통해 종전 기록에 3개를 더한 연속 자유투 성공 45개라는 기록을 남길 수 있었다.
당시 박혜진은 43개를 성공한 당시를 떠올리며 “이제까지 시도했던 자유투 중 가장 떨렸다. 팀 성적이 좋아서 함께 인터뷰를 하면 좋은데, 그렇지 못해서 팀 동료들에게 미안하다. 자유투를 쏠 때 떨리지는 않는다. 이제는 ‘안 들어가도 그만’이라는 생각으로 던질 계획.”이라는 멘트를 남기기도 했다.
자유투 상은 총 5번을 수상했다. 역시 정선민이 보유하고 있는 4회에 한 차례 앞선 기록이다. 게다가 2013-14시즌 기록한 94.9%라는 높은 자유투 성공률은 단일 시즌으로 한정할 때 최고의 수치다.
5번의 정규리그 MVP 기록은 아직 7회 수상에 빛나는 정선민에게 뒤져 있다. 최 전성기에 들어선 만큼, 아직 기회는 충분하는 것이 중론이다.
2013-14시즌을 시작으로 2014-15시즌과 2016-17시즌 그리고 2017-18과 2019-20시즌에 선수 최고의 영애인 MVP 자리에 올랐다
또, 챔피언 결정전 3회 연속 MVP 기록도 있다. 연속으로는 최초의 기록이며, 횟수로는 하은주(은퇴), 타미카 캐칭(전 우리은행)과 타이를 이루고 있다. 2014-15시즌을 시작으로 2015-16시즌에 이어 2016-17시즌 챔피언 결정전 MVP를 수상했다.
박혜진은 우리은행에서 12년째 한솥밥을 먹고 있다. 향후 4년 동안 역시 큰 이변이 없는 한 우리은행과 함께 하게 된다. 데뷔 후 줄곧 삼성생명에서 뛰었던 박정은 WKBL 부장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다. 이 부분은 이미선 삼성생명 코치가 지난 19년이 최고 기록이다.
이외에도 여러 부분에서 박혜진은 최고와 관련해 근접한 기록을 만들어가고 있다. 그녀의 활약상이 더욱 가치 있는 이유다.
박혜진은 이번 FA 계약 후 위성우 감독이 언급한 지도 방식 변화에 대해 “사실 저를 잡겠다고 그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실 몇 년 전부터 감독님께서 조금씩 변화가 있었고 ‘나도 힘들다’라는 말씀도 하셨다. 하지만 경기장에서는 그게 잘 안되셨던 것 같다(웃음) 그리고 나 역시 훈련에 있어서는 타협을 바라지 않는다. 나 역시 어린 선수들과 그 부분에 대해서는 차이가 있는 것 같다. 감독님에게 다정하거나 부드러운 걸 바라는 것보다 자신을 위해서라도 변하시는 건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스타 플레이어 다운 답변을 내놓았다.
마지막으로 박혜진은 “이번 FA는 정말 중요한 사안이었다. 그래서 시간을 길게 가져간 부분이 있다. 너무 후련하고 1%도 후회하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은행에서 꼭 성적을 내고 싶다.”고 전한 후 “타 팀 선수들이 우리 팀에 오는 걸 부담스러워 하는 부분이 있다. 속상하다. 내가 주장이고 얼굴이다. 이미지 쇄신을 해서 오고 싶은 팀으로 만들고 싶다.”며 인터뷰를 정리했다. 

 


사진 제공 = WKBL

김영훈 kim95yh@basket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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