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코 인사이드]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소년, 호계중 석준휘

BAKO INSIDE / 김영훈 기자 / 2020-12-21 21:20:30

※ 본 인터뷰는 10월 중순에 진행했으며, 바스켓코리아 웹 매거진 11월호에 게재됐습니다. (바스켓코리아 웹진 구독 링크)


11월에는 어떤 선수를 소개해야 하는지 고민에 빠진 어느 날.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전화를 건 이는 “호계중에 유망주를 찾았다”며 감탄했다. 그의 이름은 석준휘(189cm, 가드 겸 포워드). ‘유망주’ 석준휘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곧바로 그를 알아보기로 결정하고 11월의 유망주로 선정했다.

축구와 농구 중 고민하던 소년, 농구를 택하다
충주 국원초등학교를 다니던 석준휘는 축구를 사랑하는 소년이었다. 그는 학교 클럽에서 축구를 즐기며 초등학교 저학년 생활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잠시 체육관에 들어갈 일이 있었다.

그런 그를 눈여겨본 이가 있었으니, 국원초 농구부의 신지영 코치였다. 당시 초등학교 3학년이던 석준휘의 신장은 150cm 정도. 또래와는 남다른 발육을 자랑하는 석준휘를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신 코치는 곧장 그에게 ‘농구를 시작해보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을 했다.

하지만 축구를 사랑하는 소년의 마음을 바꾸기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축구와 농구를 병행해도 된다는 조건 하에 농구부 입단을 받아냈다. 동시에 두 개의 스포츠를 하게 된 석준휘. 이로 인해 초등학생 석준휘의 하루 일과는 매우 바빴다.

“아침 7시 30분까지 학교에 갔어요. 30분 동안 농구부 아침 훈련을 소화했죠. 그리고는 바로 운동장으로 나갔죠. 8시부터는 축구를 해야 했거든요. 1시간 동안 스포츠 클럽에서 축구를 하고 수업을 들었어요. 그리고 학교가 끝나면 다시 농구부 훈련을 소화했죠. 힘들기는 해도 재밌는 시간이었어요.”

축구와 농구, 한 가지도 놓치기 싫었던 석준휘는 3년 넘게 ‘이중생활’을 이어갔다. 하지만 중학교를 넘어가서는 이런 방식을 유지할 수 없었다. 이제는 그에게 선택의 시간이 다가온 것이었다. 석준휘의 선택은 ‘농구’였다. 그는 “이유는 크게 없 었어요. 농구가 재밌었어요. 매력에 빠졌죠. 이왕 농구를 하게 된 것 제대로 해보고 싶었어요”라며 농구를 하게 된 이유를 간단히 설명했다. 


충주중으로 진학한 석준휘, 그에게 찾아온 두 번의 승리

충주에도 중학교 농구부가 있다. 충주중학교. 그러 나 충주라는 지역 특성상 선수 수급이 매우 어렵다. 석준휘가 진학했을 때도 6명의 선수가 전부였다. 3학년은 없었고, 2학년 4명에 1학년 2명이었다. 심지어 그중 한 명은 중학교에서 농구를 접했다. 제대로 훈련을 진행하기도 어려운 상황.

하지만 석준휘에게는 즐거움의 연속이었다. “훈련도 간단한 패턴이나 2대2 훈련 등이 전부였죠. 힘들지 않았 다고 하면 거짓말이죠. 그런데 나름 즐거웠어요. 형들과 초등학교 때부터 같이 생활했거든요. 친하기도 해서 재밌는 생활이었죠.” 생활은 재밌었을 수 있다. 하지만 성적이 어느 정도 받쳐줘야 재미가 배가 될 수 있다. 그러나 6명이 전 부인 충주중과 좋은 성적은 거리가 먼 이야기였다.

1년 동안 그들이 거둔 승리는 단 두 번. 첫 번째는 주말리그였다. 충주중은 주성중, 상주중, 침산중, 성성중에게 연달아 패했다. 이미 왕중왕전은 출전은 불가능한 상황. 그들의 마지막 경기는 계성중이었다. 계성중 역시 4패를 당했다.

충주중에게 첫 승을 거머쥘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충주중은 이를 놓치지 않았다. 후반에 집중력을 발휘하며 63-52로 승리, 2018년 대회 첫 승을 올렸다. 하지만 석준휘는 이때를 떠올리며 “첫 승이라 기분이 좋을 수도 있었는데, 저희 팀 플레이가 매우 좋지 않았어요. 그래서 이겼는데도, 우울한 느낌이었어요”라고 말했다.

이후 충주중은 종별농구선수권에서 여천중을 올리면서 2번째 승리를 챙겼다. 6명의 선수로 거둔 2번의 승리. 힘든 조건 속에서도 해낸 의미 있는 결과였다. 그러나 석준휘는 이번에도 만족하지 않았다.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고 싶은 꿈이 있었다. 그래서 그는 전학을 결정한다.

그가 선택한 학교는 주말리그에서 21점차 패배를 선사했던 성성중이었다. “주말리그 때였어요. 성성중 코치님이 저에게 ‘우리 학교로 오는 게 어때?’라고 하셨죠. 지금 생각 해보면 농담처럼 던지신 말씀이었던 것 같은데, 그 때는 잠시 고민에 빠지기도 했어요. 그러다가 1학년 후반 즈음에 부모님이 먼저 전학을 가보는 게 어떻겠냐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그때 성성중 코치님 말씀이 생각나서 성성중으로 가겠다고 했어요.”석준휘가 밝힌 전학을 결정한 배경이다.

오래도록 동고동락(同苦同樂)한 선배, 동기들을 놔두고 떠난다는 게 신경 쓰이지는 않았을까. 석준휘는 “사실 미안하기는 했어요. 다들 고등학교까지 같이 올라가자고 했었거든요. 그런데 미래를 볼 필요가 있었어요. 더 좋은 선수가 되기 위해서 전학을 결정했죠. 저도 많은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이었어요”라며 당시의 심정을 밝혔다. 하지만 석준휘는 혼란 속에서도 자신의 꿈을 위해 도전을 선택했다.


석준휘, 한 번 더 도전을 결정하다

성성중은 석준휘에게 ‘신세계’나 다름없었다. 6명 의 선수들이 있던 충주중과는 달리 성성중에는 선수가 넘쳤다. 그는 “분위기가 많이 차이 났어요. 많은 선수들이 서로 힘도 북돋아 주고, 토킹도 많이 하니 힘이 나더라고요. 새로운 느낌이었어요”라며 성성중의 분위기를 설명했다.

하지만 중고농구연맹은 전학을 간 선수에게 주관 대회 1년 출전정지 징계를 내린다. 때문에 석준휘는 오래도록 성성중에서 공식경기를 치르지 못했다. 연습경기에 나선 것이 전부. 그러나 연습경기를 통해 석준휘는 다른 선수가 되었다. “코치님이 저를 많이 키워주셨어요. 연습경기에서 많은 시간을 뛴 덕분에 농구가 정말 많이 늘었어요.”

석준휘의 이야기는 2019년 열린 종별선수권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3경기 평균 36분을 뛰며 20.3 점을 몰아쳤다. 전학을 온 선수가 팀 내에서 가장 많은 득점을 올린 것이다. 팀은 3패로 아쉬움을 삼켜야 했으나, 석준휘에게는 큰 의미를 가져다준 대회였다.

“징계 기간 동안 정말 열심히 운동했어요. 종별선 수권에 나갔을 때는 성성중으로 전학한 뒤 첫 대회여서 정말 많이 준비했어요. 그래서 개인적으로 봤을 때, 경기력은 좋았어요. 그런데 팀이 한 번도 못 이긴 게 너무 아쉬웠죠. 안남중, 삼선중 같은 강팀들과 조가 편성되기는 했어도 한 경기는 이길 수 있을 거 같았거든요. 두고두고 아쉽죠.”

자신감을 얻은 석준휘는 이번 동계훈련 때 더욱 실력을 키웠다. 하지만 코로나로 인해 대회가 열리지 않았다. 그렇게 징계도 풀려 자신의 기량을 보여줄 수 있는 무대를 기다렸건만, 이번에는 하늘이 도와주지 않았다.

아쉬움 속에 1년의 시간을 보내던 석준휘. 그에게 한 번의 도전을 선택할 기회가 찾아왔다. 호계중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온 것이다. 호계중의 연계학교인 안양고의 전형수 코치가 그를 눈여겨봤고, 같이 해볼 것을 원했다.

전형수 코치를 만난 뒤 그의 이야기에 믿음이 생긴 석준휘는 다시 한번 전학을 결정하게 되었다. 코로나로 대회가 없어져서 허무함 속에 시간을 보내던 석준휘는 빠르게 전학을 결정했다.

그는 이제 더 나은 미래를 꿈꾸기 위해 노력 중이다. “전형수 코치님은 무조건 저에게 자신 있게 하라고 해주세요. 또, 2대2를 할 때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플레이해야 하는지 자세히 알려주세요. 제가 슛이 약점인데, 슛을 잡아주시기도 하시고요.”

2001년 KBL 신인드래프트 2순위의 주인공인 전형수 코치는 프로에서만 13년을 보낸 경험이 있다. 189cm라는 뛰어난 피지컬을 가진 석준휘가 전 코치의 가르침을 받고 어디까지 성장할 수 있을까. 도전을 멈추지 않는 석준휘의 미래를 기대해보자.

사진 = 김우석 기자

바스켓코리아 / 김영훈 기자 kim95yh@basket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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