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코 인사이드] 부상 딛고 본격적인 커리어를 시작하는 용산중 박태환

BAKO INSIDE / 김영훈 기자 / 2020-08-20 20:09:39


본 기사는 바스켓코리아 7월호 웹진에 게재됐습니다.(바스켓코리아 웹진 구독 링크)

몸이 재산인 운동선수에게 부상은 어느 종목을 막론하고 치명적인 일이다. 피지컬적인 문제는 물론이고 심리적으로도 타격을 준다. 이로 인해 부상 직후 슬럼프가 오는 선수들이 부지기수이다.

그런 부상을 어린 나이에 두 번이나 겪은 선수가 있다. 용산중 박태환(185cm, 75kg)의 이야기이다. 그는 운동 시작 후 5년 동안 두 번의 작지 않은 부상을 경험했다. 아킬레스건과 발목을 다쳤다. 농구 선수에게는 모두 치명적인 부위이다. 농구 인생 첫 번째 페이지, 시작점에서 겪어야 했던 시련이다.

그러나 박태환은 이를 이겨내고 농구 선수의 꿈을 이어가고 있다. 두 번의 부상을 넘어 희망적인 이야기로 농구 인생 두 번째 페이지를 채워가고 있는 박태환을 직접 만나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자연스레 하게 된 농구, 하지만 연이어 찾아온 부상
박태환에게 농구란 친숙한 운동이었다. 가족 중에만 농구에 관련된 인물이 두 명이나 있기 때문. 아버지는 KBL 출신이자 현재 상주중을 지도하고 있는 박종덕 코치이며, 형은 용산고에서 열심히 농구 선수의 꿈을 키우고 있는 박정환이다.

그렇기에 박태환 또한 자연스럽게 농구를 시작하게 됐다. 그는 “형이 먼저 선수를 시작해서 나도 체육관에 많이 따라다녔다. 그러다 보니 나도 어느새 농구를 하게 됐다. 직접 경험해보니 재밌더라.”며 농구를 시작하게 된 배경에 대해 언급했다.

하지만 농구의 재미를 느끼던 박태환에게 곧바로 시련이 찾아왔다. 그는 “언제부터 인지 모르겠지만, 아킬레스건이 아파왔다. 다행히 휴식을 취하다 보니 통증은 가라앉았다. 하지만 이때는 몰랐다. 이것이 시작이란 것을 말이다.”라고 말했다.

두 번째 부상은 2년 뒤에 찾아왔다. 이번에는 발목이었다. 간단한 부상이 아니었다. 핀을 박을 정도로 큰 수술을 해야 했다. 이제 13세의 소년이 감당하기 어려운 수술이었다. 긴 재활 기간이 필요했고, 그는 결국 자신의 기량을 보여줘야 하는 6학년 때 단 한 번의 대회 출전에 그쳤다.

끝이 아니었다. 중학교 1학년 시절, 수술을 또 경험해야 했다. 핀을 박았던 부위의 재수술이었다. 2번의 수술과 1번의 부상. 농구를 시작한 지 채 5년 밖에 되지 않은 학생이 겪은 가혹한 시련이었다.

박태환은 “계속 다치니 솔직히 농구가 싫을 때도 있었다.”며 당시의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냈다. 연이어 그는 “그러던 중 중학교 2학년 때 마음을 바꿔 먹었다. 그때부터 다시 농구에 재미가 붙기 시작했다.”며 다음에 들려줄 이야기를 궁금하게 했다.




농구를 즐겁게 바꿔준 은사, 신석 코치
누구나 살면서 한 번쯤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은사를 만나기 마련이다. 박태환에게는 그런 인연이 바로 신석 코치였다.

그는 “중학교 2학년 때 신석 코치님이 용산중으로 오셨다. 그전에 무룡고에 계셨는데, 가르침을 받던 형들이 신 코치님의 운동이 엄청 힘들다고 하더라. 그러면서 ‘너네는 이제 죽었다’고 겁을 줬다. 진짜 무서웠다.”며 신 코치에 대한 첫인상을 솔직하게 밝혔다.

하지만 호랑이 같았던 신 코치의 부임이 박태환에게 호재로 바뀌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는 세세한 코칭 스타일로 박태환에게 많은 관심을 쏟았다. 긴 휴식을 마치고 돌아온 박태환에게는 자세한 가르침이 큰 도움이 되었다.

박태환은 “코치님이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자세하게 알려주셨다. 훈련을 하면서도 점점 농구가 늘어가는 게 느껴지더라. 너무 감사했다.”며 신 코치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단순히 현재 지도자에게 잘 보이려는 아부성 멘트가 아니었다. 그의 실력이 급상승한 것은 공식 경기에서도 드러났다. 그는 2019년 주말리그 송도중 전에서 자신의 인생경기를 그려냈다. 24분 출전에 19점 11리바운드를 기록, 더블 더블을 작성한 것이다.

박태환은 “형들이 초반에 점수차를 벌려 놓은 뒤에 경기에 들어갔다. 처음에는 단지 열심히 하자는 생각으로 뛰었다. 그러다 보니 리바운드도 잘 잡았고, 돌파도 잘 되었다. 경기 끝나고 보니 어느새 19점을 넣었더라. 온종일 기분이 좋았다.”며 행복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이후 자신감이 생긴 박태환은 180도 달라졌다. 그는 “그전에는 적극적으로 공격을 시도하지 않았다. 실수를 두려워해서 어설픈 플레이가 많았다. 그래서 코치님에게 많이 혼났다. 그런데 송도중과 경기 이후에 자신감이 생기다 보니 모든 것이 적극적으로 변했다.”며 자신에게 생긴 변화를 설명했다.




자신감으로 가득 찬 박태환, 새로운 농구 인생을 시작한다
한 해 동안 확실한 소득을 얻은 박태환은 이제 중학교 3학년이 되었다. 팀 내 최고참이기에 맡은 비중도 당연히 커졌다. 2학년 때 식스맨으로 뛰며 수비와 궂은일에 초점을 맞췄던 그는 이제 공격에서도 어느 정도 역할을 책임져야 한다.

박태환은 이를 위해 슈팅 보강이라는 목표로 겨울을 보냈다. 그는 “동계 훈련 때 슈팅 연습을 매우 열심히 했다. 동기들과 서로 공을 잡아주면서 야간에만 몇백 개씩 던졌다. 주말에도 마찬가지였다. 솔직히 진짜 힘들었는데, 그래도 슛이라는 무기를 가지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했다.”며 그간의 수고를 설명했다.

겨우내 흘린 땀은 그를 배신하지 않았다. 박태환은 세트슛은 물론이고, 무빙슛도 던질 수 있는 수준까지 올라왔다. 장족의 발전이다.

하지만 지금은 이를 증명할 기회가 없다. 코로나19로 인해 춘계연맹전, 협회장기, 연맹회장기, 심지어는 주말리그까지 모두 연기 또는 취소되었기 때문. 본격적으로 커리어를 쌓아가는 시점에 자신을 뽐낼 무대가 사라진 것이다.

하지만 박태환은 이를 오히려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기회로 삼고 있다. 지금의 시간을 통해 자신의 능력을 발전시키려고 노력 중이다. 그는 “내가 포지션에 비해 신장이 작은 편이 아니다. 그래서 미스매치를 살릴 줄 아는 것도 필요하다. 그 점을 연습하고 있다”며 현재 중점으로 두는 것을 밝혔다.

박태환이 밝힌 올해 용산중의 전력은 8강권. 물론, 팀원들끼리 호흡이 잘 맞는다면 더 높이 바라볼 수 있다는 자신감 넘치는 이야기를 털어 놓기도 했다.

그는 “코치님이 올해 우리 팀 전력이 최하위라고 하셨다. 그래서 동계 때 더욱 열심히 했다. 그 덕분인지 다른 팀과 붙었을 때 평균적으로 8강은 갈 거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나부터 잘해야 한다. 수비부터 하나하나 하면서 공격에서도 많은 보탬이 되겠다.”는 올해의 목표를 드러냈다.

에필로그 : 가족이라는 든든한 후원자
현재 상주중에서 지도자 생활을 하고 있는 ‘박태환의 아버지’ 박종덕 코치는 과거 SK와 TG(현 DB)에서 선수를 했던 인물이다. 농구에 잔뼈가 굵은 아버지가 있는 것이 박태환에게는 큰 도움이 될 터.

그는 “아버지와 매우 친하다. 아직도 목욕탕을 같이 다닐 정도이다. 그래서인지 농구에 대해서도 많이 말씀해 주신다. 꾸중을 하시는 게 아니라 편한 분위기에서 보완해야 할 점을 말씀해 주신다.”며 아버지와의 관계를 설명했다.

형인 박정환은 용산고 2학년으로 팀에서 핵심적인 위치이며, 촉망받는 가드 유망주이다. 또한, 그가 1대1을 할 때는 연습상대가 되기도 한다. “형과는 1대1을 100번 하면 99번은 진다.”는 박태환은 “형을 보면 자극도 되고, 본받고 싶다는 생각도 있다.”며 형에 대한 존경심을 드러냈다.

그 뿐 아니라 어머니 역시 그의 진로에 대해 아낌없이 응원해주는 서포터이다. 이처럼 그의 곁에는 항상 그를 응원해주는 가족이 존재한다.

하지만 박태환은 롤모델을 꼽아 달라고 했을 때는 냉정했다. “NBA에서는 조 해리스이며 한국에서는 유기상이다. 둘 모두 슛이 좋은 선수들이다. 하지만 슛만 던지지 않고 여러 플레이를 할 수 있어 배우고 싶다.”고 말했다. 그에게 ‘아버지나 형이 아니냐?’는 기자의 질문에 ‘아니다’라며 단호한 모습을 보여줬다.



사진 = 김우석 기자

바스켓코리아 / 김영훈 기자 kim95yh@basket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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