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코 인사이드] 초기 KBL에 등장했던 득점 기계, 에릭 이버츠
- BAKO INSIDE / 김영훈 기자 / 2021-05-07 15:07:09

본 기사는 바스켓코리아 웹진 2021년 4월호에 게재됐습니다.(바스켓코리아 웹진 구매 링크)
올 시즌 인천 전자랜드는 팀 매각이라는 이슈와 함께하고 있다. 시즌 전 좋지 않은 이슈가 겹쳤지만, 전자랜드는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며 챔프전을 바라보기도 했다.
이에 앞서 헝그리, 언더독의 대명사로 불렸던 팀이 있다. 02-03시즌의 여수 코리아텐더이다. 당시 코리아텐더는 최하위 후보라는 평가를 뒤집는 저력을 발휘했다. 그런 코리아텐더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선수가 에릭 이버츠다.
초기 KBL에 등장했던 득점 기계 이버츠의 이야기를 돌아봤다.
#1. 다사다난했던 에릭 이버츠의 KBL 입성기 그리고 비운의 스토리
NCAA의 명문대인 빌라노바 출신의 에릭 이버츠. 그러나 그의 KBL 입성 과정은 쉽지 않았다. 프로농구 창설을 앞두고 열린 KBL 외국 선수 드래프트. 총 14명의 선수가 선발되었으나 이버츠의 이름은 없었다.
그런 가운데. 변수가 생겼다. 참가 예정이었던 상무의 불참으로 한 팀이 더 필요했다. 이 과정에서 생긴 팀이 바로 광주 나산이었다. 나산은 기업은행 선수들을 주축으로 전력을 구성했다.
문제는 국내 선수들은 구했지만, 외국 선수가 없었다. 나산이 참가를 선언했을 때는 이미 외국 선수 드래프트가 끝난 시점이었다. 나산은 하는 수 없이 드래프트를 신청한 선수 중 나머지 선수들로 계약을 해야 했다. 트라이아웃을 보지도 못해 서류를 중심으로 선발했다. 여기서 선택된 선수가 이버츠였다.
가장 늦은 전체 16순위로 입단했지만, 이버츠의 파급력은 대단했다. 그는 정교한 슈팅력을 기반으로 엄청난 득점력을 자랑했다. 다른 외국 선수들과 다르게 동료를 활용할 줄도 알았다. 패스도 잘했으며, 유기적인 움직임을 가져가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21경기에 출전한 이버츠는 32.2득점 11.1리바운드 2.3스틸 1.1블록을 기록했다. 득점은 리그 2위였으며, 스틸 3위, 블록 4위에 올랐다. 단순히 득점만 높았던 게 아니었다. 효율도 좋았다. 야투율은 61%에 육박했으며, 3점 정확도도 36%에 달했다.
이버츠의 맹활약 덕분에 최하위 후보였던 나산은 정규리그에서 9승 12패를 기록, 5위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다만, 플레이오프에서는 대구 동양에게 1승 3패로 무너지며 시즌을 마감했다.
첫 시즌 엄청난 활약을 선보인 이버츠. 그러나 나산은 그를 재계약 하지 않기로 했다. 더 좋은 선수들이 있을 것이라는 게 표면적인 이유였다.
재계약이 불발된 이버츠는 한국 복귀를 원했다. 그리고 그는 97-98시즌 가까스로 트라이아웃에 신청하며 다시 기회를 잡았다.
그러나 어찌 된 영문인지 이버츠는 다시 선택을 받지 못했다. 인천 대우가 외국 선수 교체를 통해 이버츠를 영입한다는 이야기가 있었지만, 이마저도 불발됐다(이를 두고 나산의 주도로 나머지 팀들이 담합했다는 당시 공공연한 비밀처럼 돌았다).
이버츠는 98-99시즌 전 열린 트라이아웃에도 참가했다. 그러나 마지막 날 돌연 드래프트장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버츠는 후에 “당시 교통사고가 있었다. 그래서 참가하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20대 초반의 젊은 나이, 한창 전성기를 구가할 나이에 이버츠는 2년을 쉬었다.
이전삼기. 이버츠는 다음 해에도 드래프트에 참가한다. 마침내 이버츠는 전체 1순위로 KBL에 돌아왔다. 그를 지명한 팀은 광주 골드뱅크. 공교롭게도 나산에서 이름만 바꾼 팀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복귀한 그는 다시 광주 팬들을 마주하게 됐다(물론, 당시 골드뱅크는 대부분의 경기를 군산과 여수에서 치렀다).
2년 동안 아이스크림 사업과 학업으로 시간을 보낸 이버츠.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이버츠의 활약은 그대로였다. 그는 골드뱅크 시절 27.7점 10.7리바운드 2.1어시스트 1.7스틸을 기록했다. 득점은 1위였으며, 리바운드도 7위로 상위권이었다.
여전히 득점력은 뛰어났지만, 문제는 팀 성적이 너무 저조했다. 골드뱅크는 99-00시즌 9위로 떨어졌다. 저조한 성적으로 인해 이버츠는 골드뱅크와도 재계약을 맺지 못하며 다시 한 번 한국을 떠났다.

#2. 공격 농구의 선봉장에 선 이버츠의 LG 시절
다시 백수가 된 이버츠. 다행히 이번에는 그를 불러주는 팀을 찾았다. 김태환 감독이 취임하며 공격 농구를 선언한 LG였다.
이버츠의 영입은 신의 한 수가 되었다. 이버츠는 조성원 현 LG 감독과 함께 ‘쌍포’로 이름을 날렸다. 이버츠는 00-01시즌에도 평균 27.8득점을 책임졌고, 조성원도 25.0득점을 담당했다. 여기에 조우현과 알렉스 모블리도 거들었다.
그 결과, LG는 시즌 평균 103.3점을 몰아치며 역사에 길이 남을 화끈한 농구를 선보였다. 성적도 좋았다. 30승 15패로 리그 2위에 올랐다.
4강 플레이오프에 직행한 LG의 상대는 청주 SK였다. SK에는 로데릭 하니발과 재키 존스라는 외국인 듀오에 서장훈과 조상현이 버티고 있었다. 강한 라인업 답게 SK는 만만치 않았다. LG를 5차전까지 물고 늘어졌다. 다행히 LG는 5차전에 35점을 퍼부은 이버츠의 활약을 앞세워 천신만고 끝에 챔프전에 올라섰다.
하지만 5차전까지 치른 대가가 너무 컸다. 3일이나 더 쉬고 올라온 수원 삼성(현 서울 삼성)은 전력도 튼튼했다. 주희정-강혁-문경은으로 이어지는 트리오에 아티머스 맥클래리와 무스타파 호프가 버티고 있었다.
이버츠는 챔프전에서도 평균 28.4점을 올리며 자신의 몫을 다했다. 그러나 삼성에는 그보다 더 무서운 득점 기계가 있었다. 맥클래리는 챔프전에서만 평균 35.5점을 퍼부으며 이버츠를 뛰어넘는 폭발력을 자랑했다. 이버츠의 LG는 그렇게 무너지며 우승의 꿈이 좌절됐다.

마지막 관문을 넘지 못했지만, LG는 공격 농구의 기조를 유지하기로 했다. 이버츠도 재계약을 맺으며 팀에 남았다. 그리고 맞은 01-02시즌. 대릴 프루 대신 말릭 에반스가 합류했고, 대형 신인 송영진도 전력에 추가됐다. LG의 강세는 여전할 것 같았다.
그러나 무언가 이상했다. LG는 1라운드부터 6연패를 당하며 추락했다. 공격력은 이전 시즌과 같이 100점을 넘겼다. 다만, 수비에서도 100점 가까운 실점을 내준 것이 문제였다. 주춤한 LG의 순위는 2라운드가 되어도 좀처럼 올라갈 것 같지 않았다. 여전히 중위권을 전전했다. 준우승 팀의 예상 밖 부진이었다.
부침이 이어지자 LG는 한 가지 결단을 내린다. 4대4 트레이드를 단행한 것. LG는 에릭 이버츠와 말릭 에반스, 황진원, 이홍수를 내주고 코리아텐더의 마이클 매덕스, 칼 보이드, 김병천, 김동환을 받아왔다. 이버츠는 그렇게 익숙했던 호남의 땅으로 다시 짐을 옮겼다.

#3. 친정팀으로 돌아온 이버츠, 그리고 헝그리 신화
이버츠에게 코리아텐더는 낯설지 않은 팀이었다. 이름만 바뀌었을 뿐 골드뱅크의 멤버들이 팀에 남아있었다. 그리웠던 친정팀으로 돌아온 것이다.
그러나 이전과 상황은 많이 달랐다. 골드뱅크 때 팀을 이끌던 현주엽은 군 입대를 했다. 황진원-정락영-전형수 등이 고군분투했지만, 이버츠를 도와주기에는 부족했다. 이버츠는 그 시즌 평균 28.3점으로 득점 1위에 올랐지만, 코리아텐더는 7위를 기록하며 플레이오프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코리아텐더는 이버츠와 재계약을 맺었다. 나산과 골드뱅크 시절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사이 팀 사정은 더 악화됐다. 모기업의 경영난으로 훈련장도 찾지 못했고, 그나마 팀의 에이스 역할을 하던 전형수를 현금을 받고 울산 모비스로 보냈다. 수장도 없었다. 진효준 감독 사퇴 후 사령탑을 찾지 못해 이상윤 코치가 감독대행을 맡았다.
하지만 건재한 것이 하나 있었다. 바로 이버츠의 존재였다. 이버츠는 녀느 때와 같이 자신의 역할에 충실했다. 출중한 득점력 하나로 팀에 중심을 잡았다. 이번에는 그를 도와줄 안드레 페리도 있었다.
국내 선수들도 최선을 다했다. 황진원과 정락영이 떠난 전형수의 몫까지 채웠으며, 김기만과 진경석, 변청운 등도 투혼을 불살랐다.
여러 선수들의 투지가 합쳐진 결과, 코리아텐더는 대이변을 그려냈다. 유력한 꼴찌 후보였던 코리아텐더는 28승 26패로 정규리그 4위를 차지했다. 지금도 회자되는 ‘헝그리 군단의 반란’이었다.
코리아텐더의 6강 플레이오프 상대는 서울 삼성. 당시 삼성 또한 코리아텐더와 같은 28승 26패를 기록했을 정도로 두 팀의 전력 차이는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하지만 코리아텐더에게는 절실함이 있었다. 그들은 신들린 외곽포로 삼성을 이변의 희생양으로 만들었다. 코리아텐더는 2경기 도합 63%(26/42)라는 경이로운 3점슛 성공률을 앞세워 2승 0패로 손쉽게 제압했다.
코리아텐더의 두 번째 상대는 김승현-김병철-마르커스 힉스로 이어지는 대구 오리온스. 기세가 오른 코리아텐더지만, 디펜딩 챔피언 오리온스는 너무 강했다. 3경기 모두 접전이었으나, 승자는 모두 오리온스였다. 코리아텐더로서는 6강 플레이오프 때 신들린 것처럼 들어갔던 3점이 침체를 겪은 게 아쉬웠다(3점 성공률 23.1%, 15/65).
이로써 이버츠의 5번째 시즌도 끝이 났다. 이번에도 코리아텐더는 이버츠에게 손을 내밀었고, 이버츠도 흔쾌히 재계약을 할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2003년 7월 20일, 재계약 완료를 하루 앞둔 시점. 갑작스레 이버츠가 재계약을 거부하는 일이 벌어졌다. 사유는 개인사정.
자세히 살펴보면 복합적인 이유가 겹쳤다. 당시 보도에 따르면, 한반도 전쟁 가능성을 이유로 들었다. 두 번째는 아내와 오랜 별거 생활 탓에 미국 생활을 하고 싶다는 것. 이밖에도 이버츠는 그동안 미국에서 개인 사업을 하고 있었다. 레스토랑을 운영하던 이버츠는 2호점을 열면서 사업에 집중하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추가적으로 코리아텐더의 불확실한 미래도 더해졌을 것이라는 게 주변의 추측이다.
사유야 어쨌든 이버츠는 그렇게 한국 생활을 마무리했다. 동시에 이버츠는 농구 선수 생활도 마무리했다.
이버츠의 KBL 통산 기록은 218경기 출전 27.6점 9.9리바운드. 기록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득점력이 뛰어났던 선수였다.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젠틀한 이미지와 타고난 득점력. 그가 떠난 지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남긴 인상만큼은 확실했던 선수였다.
사진 제공 = KBL
바스켓코리아 / 김영훈 기자 kim95yh@basket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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