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코 인사이드] 프로농구 초창기 골밑의 파수꾼, 데릭 존슨

BAKO INSIDE / 이재승 기자 / 2022-12-06 13:07:12

※ 본 기사는 바스켓코리아 웹진 2022년 11월호에 게재됐습니다. (바스켓코리아 웹진 구매 링크)

 

프로농구 초반에 골밑에서 존재감을 발휘했던 이도 있다. 바로 데릭 존슨이다. 존슨은 원주와 서울 삼성에서 뛰면서 자신을 알렸다. 원주에서 두 시즌을 보낸 그는 프로 초창기에 골밑을 장악한 선수를 떠올릴 때 빠지지 않는 선수였다. 원주 TG에서 김주성, 허재와 함께 하면서 우승에 힘을 보탰던 그는 이후 삼성에서 서장훈과 뛰기도 했다. 프로농구 초반 그가 선보인 골밑에서의 묵직함은 단연 돋보였다.

대학 시절
존슨은 NCAA 2부(Division Ⅱ)에 위치한 버지니아유니언대학교에 입학했다. 첫 해부터 주전 자리를 꿰찬 그는 팀의 핵심 전력으로 거듭났다. 입학과 동시에 주전 자리를 꿰찼고, 버지니아유니언 팬더스는 존슨의 활약에 힘입어 CIAA(Central Intercollegiate Athletic Association) 컨퍼런스 우승을 차지했다. 이어 NCAA 2부 토너먼트에서는 준결승으로 견인했다. 비록 1부 대회는 아니었지만, 존슨의 기량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첫 시즌 활약이 누구보다 대단했던 그는 컨퍼런스 올해의 신인에 선정이 됐다.
 

2학년이던 지난 1991-1992 시즌은 훨씬 더 대단했다. 2부 전체에서 선정하는 세컨드팀에 뽑혔을 정도로 대학 무대를 휩쓸고 다녔다. 이게 다가 아니다. 작년에 준결승에서 탈락의 고배를 마셨던 존슨은 이번에 팀을 결승까지 이끌었고, 버지니아유니언은 정상을 밟았다. 그는 토너먼트 최우수선수(MOP)에 선정이 됐으며, 당연히 베스트5에도 이름을 올렸다.
 

이후 존슨이 이끄는 버지니아유니언이 우승권 전력을 유지하지 못했으나 존슨만큼은 돋보였다. 4학년인 지난 1993-1994 시즌에는 2부 전체에서 뽑는 퍼스트팀에 이름을 올렸으며, 『USA Today』에서 선정하는 NCAA 2부 올 해의 선수가 됐다. 그만큼 NCAA 2부 최고 센터이자 빅맨으로 이름을 떨쳤음을 알 수 있다.
 

NBA 진출을 노릴 여지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센터치고는 신장이 작았으며 NBA의 기동력을 따라가기 쉽지 않았다. 결정적으로 지난 1994 NBA 드래프트에서는 제이슨 키드(댈러스 감독), 그랜트 힐 등 내로라하는 선수들이 나섰던 만큼, 존슨에게 기회가 돌아오지 못했다. 그는 당시 여러 하부리그 중 하나인 CBA(Continental Basketball Leagues)에서 한 시즌을 보냈다. 이후 아르헨티나, 폴란드, 브라질을 거쳤다.
 

한편, 그는 지난 2010년에 모교가 주최하는 명예의 전당에 헌액이 됐다. 대학시절 4년 동안 팀의 간판으로 활약했음을 물론 팀을 우승으로 이끈 공로가 실로 컸기 때문. 뿐만 아니라 2부 무대에서 늘 정상급 기량을 유지했으며, 우승 당시 MOP에 선정되는 등 누구보다 빛났던 만큼, 버지니아 유니언은 그를 명예의전당으로 불러들였다.

원주에서 1998-1999 시즌
존슨은 지난 1998 외국 선수 드래프트에 참가했다. 존슨은 2라운드 2순위로 부산 기아(현 울산 현대모비스)의 부름을 받았다. 그러나 기아는 지명한 존슨을 트레이드 카드로 활용해 직전 시즌 외국인 선수상을 수상한 제이슨 윌리포드를 데려왔다. 

 

기아는 원주 나래(현 원주 DB)와 이전에 허재(고양 캐롯 사장)와 정인교를 트레이드했다. 허재의 공백을 메우기 쉽지 않을 것이라 여겼던 기아는 외국 선수 교환을 통해 공격을 풀어가고자 했다. 이미 클리프 리드라는 검증된 빅맨을 보유하고 있었던 만큼, 공격의 다변화에 초점을 두고자 했다.
 

반면, 허재를 데려오면서 전력을 끌어 올린 나래는 높이 보강이 시급했고, 존슨을 데려오기로 하면서 높이를 든든하게 했다. 공교롭게도 존슨과 윌리포드는 대학교 동문이다. NCAA 2부인 버지니아유니언대학교 동문으로 막역한 사이였다. 미 2부 대학을 나온 이들이 한국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간 것도 신기할 수 있으나 둘이 트레이드까지 되는 등 남다른 인연(?)이었다. (해당 거래는 프로농구 최초로 외국 선수 트레이드였다.)
 

신체 조건만큼이나 안쪽에서도 우직한 플레이를 선보였던 그는 정통 센터답게 골밑에서 존재감을 발휘했다. 당시 외국 선수 중 가장 큰 신장(205cm)을 자랑했던 그는 육중한 체구(111kg)를 내세워 골밑에서 위력을 떨쳤다. 높이에 갈증이 많았던 나래 없어서는 안 될 조각이 됐다. 

 

존슨은 시즌 초반 평균 블록 1위, 평균 리바운드 12위에 오르는 등 2선 수비에서 단연 위력을 보였다. 존슨이 안쪽에서 안정감을 발휘한 사이 허재가 공격을 주도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다른 외국 선수인 토니 해리스도 힘을 내면서 나래가 다채로운 농구를 펼칠 수 있었다.

 

상대 수비도 허재에게 집중된 수비를 펼치기 쉽지 않았기 때문. 존슨과 해리스, 허재까지 막아야 했기 때문. 이 틈을 타 허재는 다수의 어시스트를 뿌렸다. 허재는 프로농구 최초로 연속 경기 트리플더블을 작성했다. 물론, 당시는 경기 수가 45경기로 적었고, 마침 나래의 경기 일정이 널널한 것도 있었다. 12월 13일 광주 나산(현 수원 KT)과의 경기 후, 26일에 안양 SBS(현 안양 KGC)와 경기 2주 가까운 휴식도 크게 작용했다. 

 

그러나 나래의 선전에도 불구하고 상위권과는 거리가 적지 않았다. 당시 프로농구는 조니 맥도웰이 이끄는 대전 현대(현 전주 KCC)와 기아의 양강 구도가 명확했기 때문. 나래는 인천 대우(현 대구 한국가스공사)와 선전했으나 27승 18패로 현대와 기아에 이어 세 번째로 높은 승률을 기록했다. 대우와 상대 전적에서 밀렸기 때문이다.
 

존슨의 약점이 읽힌 게 컸다. 안쪽에서 공을 잡고 적극적인 몸싸움을 통해 공격에 나서는 것은 용이했으나 수비에서 한계가 뚜렷했다. 체중이 적지 않았던 만큼, 기동력이 떨어졌다. 무엇보다, 블록 수치 대비 수비에서 기민함이 모자랐다. 수비 반경도 넓지 않았다. 즉, 출중한 빅맨 수비수들이 상대 돌파 동선까지 제어할 수 있는 것과 달리 존슨은 평균 이하의 수비력을 보여줬다.
 

공격에서도 상대 도움 수비를 좀처럼 활용하지 못하기도 했다. 상대 도움 수비에서 비어있는 선수에게 기회를 제공할 필요가 있었지만, 존슨은 자신의 공격을 고집했다. 공격 전개가 생각만큼 매끄럽지 않았다. 또, 파워포워드가 취약했던 나래는 맥도웰의 현대에 약할 수밖에 없었다. 이로 인해 시즌 초반 기대와 달리 훨씬 더 좋은 승률을 구가하지 못했다. 

 

존슨은 첫 시즌에서 평균 18.8점 8.1리바운드 1.4어시스트 2.1블록을 기록했다. 존슨이 포진한 나래는 6강 플레이오프에서 5위인 창원 LG를 만났다. 존슨은 1차전에서 18점 13리바운드로 활약했고, 이어진 2차전에서는 홀로 22점을 올리 것은 물론 10리바운드를 더했다. 존슨이 플레이오프 첫 두 경기 모두 더블더블을 작성하자, 나래 역시 플레이오프 세 경기를 내리 접수했다. 손쉽게 4강 플레이오프에 진출

 

하지만 4강 플레이오프 상대는 리그 1위였던 현대였다. 존슨 홀로 맥오뒐과 재키 존스를 상대하기 어려웠다. 비록 그는 1차전과 3차전에서 홀로 30점씩 책임을 졌으나 다른 선수의 지원도 부족했다. 나래와 존슨 모두 아쉬움을 삼켜야 했다.

 


원주에서 2002-2003 시즌
1998~1999 시즌 후, 존슨은 시즌 후 재계약이 유력했다. 그러나 시즌 후 최명룡 감독이 경질됐고, 존슨도 재계약을 따내지 못했다. 그러나 문제는 존슨 이후였다. 나래 이후 구단명이 바뀌는 사이 원주의 골밑은 무주공산이 됐다. 안드레 페리라는 수준급 외국인 선수가 거쳐가기도 했지만, 토종 선수 전력난에 시달렸다. 노장 대열에 들어선 허재도 한계를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TG는 지난 2002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1순위 지명권을 획득했다. TG는 김주성(DB 코치)을 지명했다. TG는 외국 선수로 존슨과 데이비드 잭슨을 낙점했다. 경험자인 존슨이 김주성과 함께 막강한 더블포스트를 구축했고, 잭슨은 양경민과 함께 외곽 공격을 주도했다. 허재는 경험을 통해 주전 포인트가드로 나서면서 짜임새있는 라인업을 구축했다. 벤치에서는 김승기(캐롯 감독)와 신종석(인헌고 코치)까지 있어 선수층이 탄탄했다.

 

존슨과 잭슨이 제 몫을 해냈고, 김주성과 양경민이 뒤를 받치는 등 TG는 시즌 내내 돋보였다. 비록 직전 시즌 우승을 차지했던 대구 동양과 리그 2위에 오른 LG에 밀려 리그 3위에 머물렀으나 여느 때 리그 3위보다 강한 면모를 뽐냈다. 

 

그러나 TG는 정규시즌 막판에 큰 악재와 마주했다. 존슨이 정규시즌 6경기가 남은 시점에서 오른쪽 어깨 부상을 당하고 만 것. 존슨이 시즌을 마감했다. 존슨의 부재로 안쪽에서의 무게감이 크게 떨어졌지만, 리온 데릭스가 다른 스타일로 존슨의 부재를 메웠다. 다양한 옵션을 지닌 데릭스가 팀의 공격 동선을 다양하게 만들었기 때문.
 

플레이오프에 진출한 TG는 6강 플레이오프에서 모비스와 마주했다. 잭슨이 맹공을 퍼부었다. 1차전에서 28점을 올렸고, 2차전에서 22점을 몰아쳤다. TG는 4강 플레이오프에서도 대단했다. 2승 2패로 균형을 맞춘 사이 5차전에서 37-55로 크게 밀렸지만, 그러나 잭슨의 공격력에 힘입어 경기를 뒤집었다. TG는 3위로 정규시즌을 마치고 프로농구 역사상 처음으로 결승에 오른 구단이 됐다.

 

TG는 챔피언 결정전 6차전에서도 흔들렸다. 하지만 신종석이 3점슛 5개를 시도해 모두 집어넣는 기염을 토해냈다. 이에 힘입어 TG는 우승을 차지했고, 잭슨은 챔프전 MVP에 선정이 됐다. 비록, 존슨은 시즌 막판 부상으로 인해 낙마했지만, TG가 우승을 차지하는데 일조한 것은 분명했다.

서울에서 2003-2004 시즌
존슨은 2003 외국 선수 드래프트에 신청했으나 부름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삼성에서 지명했던 외국 선수(쉘리 클락)가 개인사정으로 귀국했고, 급기야 데려온 외국 선수(랜스 윌리엄스)는 시즌 개막 전 방출됐다. 존슨과 로데릭 하니발이 삼성의 대체 외국 선수가 됐다. 두 선수 모두 예전의 기량이 아니었지만, 삼성은 선전했다. 개막 첫 9경기에서 8승을 수확한 것.

 

하지만 존슨이 좀처럼 시즌 초반과 같은 활약을 펼치지 못했다. 직전 시즌에 당한 어깨 부상 이후 체중 관리가 쉽지 않았고, 시즌 내내 무릎 부상에 시달려야 했다. 하니발 역시 느려진 몸놀림으로 상대의 먹잇감이 됐다. 여기에 서장훈이 버티고 있었기에 기동력에서 문제점을 노출했다. 첫 9경기 이후 삼성은 이어진 9경기에서 단 3승을 추가하는데 그쳤다.
 

삼성은 시즌 중에 외국 선수 교체라는 강수를 꺼내 들었다. 삼성은 존슨을 안드레 페리를 영입했다. 페리의 기동력은 나쁘지 않았지만, 안쪽 공격에만 국한됐다. 서장훈과 호흡이 원활하지 않았다. 삼성은 우승을 차지하지 못했다. 존슨은 지난 2003-2004 시즌을 끝으로 은퇴했다.

 

사진_ KB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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