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코 인사이드] ‘법조인 출신 최초’ 김희옥 KBL 총재, 공정성과 투명성을 강조한 이유
- BAKO INSIDE / 김우석 기자 / 2021-10-02 12:30:23

‘두려움 없는 당당한 삶’
법조인 출신 최초로 KBL 수장에 오른 김희옥(72) 총재의 어린 시절 어른 들에게 전해 들었던 삶의 철학 중 하나로, 오랜 동안 법조계에 몸 담았을 당시에도 늘 머리 속 한켠을 지배했던 단어였다고 한다.
김 총재는 언 듯 농구와 연이 없어 보이지만, 헌법 재판관 시절 KBL에서 심판상을 시상한 경력이 있으며, 동국대 총장 시절 농구부가 우승을 차지하는데 있어 보이지 않은 역할을 해내기도 했다.
더위가 한껏 물러선 8월 초 어느 날, 신사동 KBL 접견실에서 김 총재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길었던 법조인, 공직자의 삶 ‘45년의 여정’ ... 핵심은 ‘공심’
약관(弱冠)을 지나 이립(而立)에 이르던 20대 후반, 검사를 시작으로 법조인의 삶을 시작했던 김희옥 신임 KBL 총재는 이후 무려 45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법조계와 공직자의 길을 걸어왔다. 동국대 총장과 정부 공직자 윤리위원장이라는 공직까지 포함된 짧지 않은 세월이었다.
김 총재는 28년 동안 검찰과 관련된 업무를, 2006년부터 헌법 재판관으로 재임했다. 이후 모교인 동국대학교 총장직을 지낸 후 2014년부터 정부 공직자 윤리위원장을 거쳐 2021년 제 8대 KBL 총재에 취임했다.
김 총재는 학창 시절 ‘두려움 없는 당당한 삶’을 들려주신 어른들 말씀을 삶의 모토로 삼아 자라며 ‘사회와 관계에 있어 어떤 일을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할까?’라는 치열한 고민 끝에 법조인을 선택했다고 한다.
과정이 순탄치는 않았다. 치열한 도전 끝에 비로소 법조인으로 자격을 갖추게 된 김 총재의 철학 혹은 기준에 대한 고민에 빠졌고, 깨달음과 구원이 본질인 종교에서 수단으로 계율과 계명이 필요하듯이 우리 사회에서도 본질인 국민의 자유와 행복이 보장될 수 있도록 법률이 그 기능을 제대로 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법조인과 공직 생활에 임했다고 한다.
핵심 키워드는 공심. 김 총재는 공심이라는 원칙을 통해 작은 것도 소홀히 생각하지 않으며 사회 공동체의 가치를 중히 여겼으며,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법조인의 역할에 충실하려 했다고 한다.
늘 마음에 지니고 있던 두 단어도 있었다고 한다. 바로 감사와 겸허였다. 일상의 소소한 행복에 감사하며, 자신을 낮춰 상대를 존중하는 것이 진정 스스로의 가치를 높일 수 있다는 철학을 바탕으로 쉽지 않았던 법조인과 공직자라는 중책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고 한다.

결코 짧지 않았던 법조인의 길을 마감했던 김 총재는 2014년 모교인 동국대학교 총장으로 부임했다. 동국대 부임 이전 KBL 심판상 시상이 농구와 연이 있었던 김 총재는 총장직을 수행하면서 본격적으로 농구와 인연을 맺게 되었다.
당시는 대학리그 초창기 시절로, 하나부터 열까지 혼돈의 상태였다. 김 총재는 선수들이 좀 더 좋은 환경에서 운동과 공부를 병행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할 수 있도록 동분서주했다고 한다.
‘대학리그 초창기 시절이었다. 농구를 좋아하는 팬으로, 학교 행정을 총괄하는 수장으로 우리 선수들이 좋은 환경에서 운동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동료 교수들과 사업 계획을 짜고, 예산 확보를 위해 열심히 뛰었던 기억이 있다. 학교 농구 팀을 위해 노력했던 때다.“
김 총재의 말이다. 김 총재의 노력은 결실을 맺었다. 동국대는 대학리그에서 늘 중위권 성적을 유지했다. 또 다른 기쁨도 있었다. 종별선수권 대회에서 우승을 거머 쥐었다. 당시 김 총재는 현장을 방문, 우승 팀의 고유 권한인 헹가래를 받기도 했다고 한다.
이후 김 총재는 정부공직자 윤리위원장에 재직 후 KBL 총재직을 제의 받았다고 한다. 걱정이 앞섰다고 한다.
”무척 좋아하는 스포츠 종목의 수장 제의는 무척이나 영광스러운 일이었지만, 관련 분야는 분명히 아니었다. 걱정이 앞섰다. 게다가 예전이 비해 인기가 훌쩍 떨어진 현재에 ’떨어진 위상을 찾아야 한다‘라는 부분도 부담 아닌 부담이었다.“
고심했다. 그리고 수락했다.
”다양한 이해집단이 협력하고 경쟁하는 대학 사회에서 통합과 조정을 위한 역할을 했던 것이 총재직을 수행하는데 분명 도움이 될 수 있다는 판단이 섰다. 40년 동안의 공직 생활로 쌓은 경험과 노하우를 효과적으로 접목 시킨다면 ’반등시킬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디딤돌은 될 수 있다. 재도약의 돌파구를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했다.“
김 총재가 수락한 또 다른 배경은 스포츠의 매력 중 하나가 ’사회적 갈등을 통합하고 치유한다‘라는 부분이었다. 공직을 수행하면서 매 순간 원칙과 신뢰를 바타응로 갈등을 중재하고 통합했던 것과 일맥상통한다는 점이었다.
그렇게 김 총재는 망팔(望八, 71세 - 여든을 바라 봄을 의미)을 지나 희수(喜壽, 77세 - 80을 바라봄을 의미)로 향하는 중간 점에서 새로운 도전을 나섰다.

’농구를 얼마나 보셨습니까?‘라는 질문을 해보았다. 외부에서 많은 전문가와 팬들이 궁금해 하는 부분이었다.
명확한 답변이 돌아왔다.
”40년 농구팬이다. 젊은 시절 신동파, 김인건, 박한 등 한국 농구를 대표했던 선수들의 팬이었다. 1990년대 ’오빠부대‘로 대변되던 시절의 농구도 즐겨 보았다. 프로농구 출범 이후에는 주로 TV를 통해 농구를 접했다.“
또 다른 이유도 있었다. 바로 금년초 운명을 달리했던 고(故) 정상영 KCC 명예회장과 관계였다. 고(故) 정상영 명예회장은 주말이면 서초동에 위치한 KCC 사옥에서 농구 경기를 관람하는 것은 잘 알려진 일이다.
김 총재는 이 때 김 총재와 자주 농구를 함께 관람했다고 한다.
”자주 (故) 정상영 명예회장님과 농구를 봤다. 농구를 너무 잘알고 계셨다. 해설을 정말 잘해주셨다. 농구를 무척이나 아끼고 사랑하셨던 분이셨다. 물심양면으로 후원을 아끼지 않으셨다고 알고 있다.“
이 친분은 김 총재 KBL 총재직을 수락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로 작용하기도 했다.

”한 달 정도가 지나고 보니 지난 24년 동안 많은 노력들이 있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새로운 생각과 시도를 보태 보다 내실있는 연맹을 만드는 것이 현 집행부의 책무라는 생각을 했다. 조직이 젊어 에너지도 넘친다. 이러한 에너지를 새로운 동력으로 만들기 위해 조직을 개편했다. KBL이 밝고 역동적으로 변화하는데 있어 터닝 포인트가 될 것.“
KBL보다 크고 중요한 조직을 이끈 경험이 많은 김 총재의 생각은 좀 달라 보였다. 어려운 현실에서도 긍정적인 부분을 찾아 극대화시키겠다는 의도가 엿보였다.
김 총재가 롤 모델로 삼고 있는 인물은 현 NBA 총재인 아담 실버 이전의 고(故) 데이비드 스턴 총재였다.
”작고한 데이비드 스턴과 현재 아담 실버 NBA 총재 모두 법조인 출신이었다. 그 중 스턴 총재를 롤 모델로 삼고 있다. 미국 연방법원 판사로 재직했던 스턴 전 총재는 1984년 NBA 총재로 취임하며 구성원들의 윤리와 공정성을 강조하며 분위기를 바꿨다. 약물, 복장, 음주 등으로 물의를 일으키는 구성원들을 철저히 배제시키는 원칙을 적용, NBA의 터닝 포인트를 이끌어낸 인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고(故) 스턴 총재를 롤 모델로 삼는 이유가 명확했다. 그가 법조인으로서 철학으로 삼았던 키워드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도 있었다. NBA를 글로벌 라이징 시켰다는 점이다. 당시 NBA는 NFKN을 타고 한국에서도 시청이 가능했다. 당시 탄생한 스타가 마이클 조던, 찰스 바클리, 칼 말론 등이다. 아직도 NBA 올드팬들에게 익숙한 이름으로 남아있다.
김 총재는 ’확장‘을 키워드로 고(故) 스턴 총재의 발자취를 따르려는 듯 했다.
마지막 이유는 ’갈등의 봉합‘이었다. 이 역시 김 총재가 법조인 시절 지켜려 했던 하나의 철학이었다.
”전 세계 국민들이 사랑받는 NBA가 되기까지 리그와 구단의 수많은 갈등을 중재했다. 하나의 목표를 향해 상승 에너지를 만들었다. 팬들의 신뢰를 얻기 위해 공정한 경기 운영 시스템도 도입, 원칙과 기본에 충실한 개혁을 해냈다는 것이 마음 속 깊이 와닿았다.“
취임 이후 김 총재는 줄곧 공정성, 투명성, 윤리성을 강조해왔다. 사실, 농구에 매우 필요한 단어다. 최근 농구계에는 많은 도적적 해이와 관련한 이슈가 터져 나왔다.
”어떤 조직이든, 크게는 국가도 구성원 간의 신뢰가 존재해야 원만히 돌아갈 수 있다. 팬들에게 신뢰받는 경기 운영과 판정이 있어야 한다. 경기 분석 시스템을 개선하고 판정의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인적, 물적 토대 확충에 힘쓰려 한다. 또, 심판과 팬들의 소통을 늘릴 수 있는 방안도 마련하고 있다. 많은 스킨십은 공감과 이해의 폭이 넓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공정, 투명, 윤리라는 키워드가 핵심이다.“

지금, 대한민국 농구계는 공조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김 총재 역시 이 부분에 대해 크게 공감하고 있었다.
이미 대한민국농구협회 권혁운 회장, 여자농구연맹 이병완 총재와 만나 농구를 주제로 많은 대화를 나누었고, 여러 부분에 걸친 공감대를 형성했다.
”농구 중흥과 국제 경쟁력 제고와 위상을 높이기 위한 힘을 모으기로 했다. 가장 먼저 저변 확대를 위해 유망주 육성, 장신자 지원 등에 효율성을 부여하고, 한정된 자원과 인력을 효과적으로 배치하자는 의견을 나누었다. 국가대표 경쟁력 강화를 위한 지원에게 체계성을 갖추고, 국민들이 ’농구를 쉽게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데 관심을 갖자‘는 부분에도 공감대를 가졌다.“
김 총재의 이야기였다. 이전 집행부까지 부족한 부분이었다. 국가대표 지원은 늘 도마 위에 올랐고, 보여주기 식 저변 확대 프로그램도 많은 논란이 있었다.
농구인 출신이 아닌 기업가(대한민국농구협회), 정치가(WKBL), 법조인(KBL)이라는 각각 특색이 다른 수장들의 공조를 위한 정책에 많은 기대가 모아지고 있다. 또 한번의 탁상공론이 되지 않기를 많은 팬들이 바라고 있는 부분이다.
보이지 않는 반목과 대립으로 일관되었던 이전 10년과는 다른 그림이 그려질 수 있는 출발선에 선 듯 하다.
한국 농구의 방향성, 그리고 목표와 바람
지난 8월, 한국여자농구는 12년 만에 올림픽에 출전했다. 도쿄 올림픽이었다. 남자농구는 1996년 애틀란타 올림픽 출전이 마지막이었다. 20년이 넘게 올림픽 무대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여자농구 대표팀은 예상과 달리 분투 끝에 3패로 대회를 마감했다. 기대 이상(?)의 성과였다. 세 경기 모두 대패를 당할 것이라는 예상이 있었지만, 두 경기는 ’아쉬웠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좋은 경기력을 선보인 것.
더욱 강렬하게 김 총재 눈을 사로잡은 나라가 있었다. 바로 이웃나라 일본이었다. 일본 여자농구는 많은 강호들을 넘고 결승전에 진출했다. 미국에 패했다. 최종 성적은 준우승. 분명 기대치를 훨씬 웃도는 성적표였다. 김 총재 역시 이 부분에 대해 많은 생각이 있는 듯 했다.
”이번 도쿄 올림픽 여자농구 결승전에서 일본이 세계 최강인 미국을 상대로 선전했고, 준우승을 차지했다. 깊은 인상을 받았다. 오랜 시간 동안 투자한 것으로 알고 있다. 저변을 넓히고, 유망주를 키우는 등 계속된 투자를 통해 일궈낸 결과라고 본다. 한국 여자농구도 가능성을 볼 수 있었던 무대였다.“
김 총재는 일본과 한국 여자농구를 통해 남자농구도 도약할 수 포인트를 확인한 듯 했다.
”남자농구는 전 세계에 앞서 아시아에서 중국, 일본 그리고 중동 국가들과 힘겨운 경쟁을 하고 있다. 국내 인지도 역시 높지 않아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어려울수록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유소년 유망주 발굴과 최대의 투자를 통해 국제 경쟁력을 높이려는 계획을 수립했다. 모든 농구인이 힘을 모은다면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 재임 기간 동안 반전의 ’변곡점‘을 만들어 보겠다. 초심을 잃지 않고 사심 없이 헌신하겠다.“
남자농구의 현주소에 대해서도 명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반전의 키워드는 유망주 육성과 초심 그리고 자신이 법조인 시절 철학으로 삼았던 공심(公心)이었다.
김 총재가 남긴 마지막 이야기는 팬들에 대한 인사였다.
”국민에게 재미와 꿈 그리고 감동을 드릴 수 있는 KBL을 만들어 보겠다. KBL 임직원과 똘똘 뭉쳐 최선을 다해볼 생각이다. 코로나 팬데믹이 하루 빨리 종식되어 체육관에서도 팬들이 즐겁게 응원하는 모습도 보고 싶다. 많은 관심과 성원 부탁 드린다.“
김 총재는 여러 매체를 통해 공정성과 투명성을 강조했다. KBL과 농구계에 꼭 필요한 단어다. 농구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 중 하나이기도 하다. 과연 김 총재는 3년이라는 길지 않은 시간 동안 농구에 공정성과 투명성을 주입 시킬 수 있을까?
사진 = 이주한 포토그래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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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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