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코 인사이드] KBL 육성팀 이경민 트레이너의 파란만장 인생 스토리

BAKO INSIDE / 김영훈 기자 / 2021-08-13 10:47:56

본 기사는 바스켓코리아 웹진 2021년 7월호에 게재됐습니다.(바스켓코리아 웹진 구매 링크)


2019년 5월, 프로농구의 기초를 다지기 위해 신설된 KBL 육성팀은 지난 2년 동안 여러 프로젝트를 통해 유소년 양성에 힘을 기울였다. 그중 이경민 트레이너도 육성팀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다. 팀 내 유일한 농구 선수 출신인 그는 직접 뛰는 대신 유망주 육성을 통해 KBL의 부흥에 일조하고 있다. 유소년 농구의 밝은 미래를 꿈꾸고 있는 이경민 트레이너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Q. 농구 선수 출신으로 알고 있습니다.
중학교 1학년 때 안남중학교에서 선수를 시작했어요. 그런데 1년 만에 그만뒀습니다. 어린 마음에 힘든 걸 참지 못하고 농구부를 나왔죠.

Q. 다시 농구를 시작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농구를 그만두고도 매일 길거리 농구를 했어요. 부모님이 다시 농구를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제물포고등학교 김영래 감독님을 찾아갔죠. 감독님이 제가 중학교 때 모습을 아시더라고요. 그래서 다시 농구를 할 수 있었죠.

Q. 제물포고 시절은 어땠나요?
제가 농구부에 들어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송도고와 전국체전 평가전을 치러야 했는데, 팀에 4번이 없었어요. 그래서 바로 경기에 나설 수 있었어요. 당시 저희 팀 멤버가 좋았어요. 한희원, 이현석, 박래윤, 류지석 등 모두 프로에 갈 만큼 잘했던 선수들이었죠. 저는 그 선수들 만큼 잘하지 못했어요. 단지 힘이 좋고 절실했죠. 가끔 고등학교 때 경기 영상을 찾아보는데, 제가 했던 거는 농구가 아니더라고요. 수비하고 종종 속공에서 득점하고. 그게 끝이었어요.

Q. 상명대학교로 진학했는데, 1년 만에 다시 팀을 나왔어요.
경기를 뛸 수 있는 곳을 원했는데, 마침 상명대에 이상윤 감독님이 오시면서 가게 됐죠. 1학년 때는 식스맨으로 경기를 뛰었어요. 하지만 2학년부터 못 뛰었죠. 그러면서 점점 미래를 고민하다가 결국 학교를 나오기로 결심했습니다.

Q.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 같아요.
농구를 더 할 수도 있었고, 만약 농구를 더했다면 프로에 갈 수도 있었겠죠. 하지만 프로에 가서 1,2년 뒤에 그만두면 미래가 막막한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이왕 일찍 도전을 하는 게 좋다고 생각했죠. 사실 저는 2학년 때 나온 것도 늦었다고 생각해요. 미래가 보장되지 않는다면 조금이라도 빨리 새로운 길을 찾는 게 좋다고 생각하거든요.

Q. 세종대로 편입을 했어요.
편입을 하는 것에 있어 가장 좋은 곳이 세종대였죠. 인서울이기도 하고, 편입 시험을 볼 때 영어를 안 보더라고요. 농구만 통과하면 편입을 볼 수 있어 고민을 할 이유가 없었어요. 나중에 알았는데 농구만 시험 보는 이유가 있었죠.

Q. 그 이유가 무엇이죠?
학교에 들어간 뒤에 알았어요. 세종대에 대학 2부 팀이 있더라고요. 농구는 다시 생각도 안 하고 있었는데, 다시 농구를 하게 됐죠.

Q. 세종대 농구부는 어땠나요?
선수 출신이 한 명도 없더라고요. 코치, 감독도 없어 학생들끼리 훈련하는 팀이었어요. 그래서 제가 감독 겸 트레이너 겸 선수 역할을 맡았어요. 훈련부터 워밍업 프로그램, 패턴 모두 제가 만들었죠. 선배, 형들도 제가 선수 출신이라고 하니 모두 맡기고 의지했죠.

Q. 세종대의 전성기를 이끌었어요.
그렇게 기초부터 만들고 2015년 MBC배를 출전했어요. 당시 2부 대학에는 목포대와 초당대가 양분하는 추세였어요. 그런데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던 저희가 준우승을 차지했어요. 제 농구의 전성기(?)이자, 세종대 농구의 전성기였죠. 하지만 그리고 얼마 뒤에 바로 입대를 했죠(웃음).

Q. 군 복무를 마친 뒤에는 어땠나요?

전역 후에는 학교생활에 집중했어요. 공부하면서 시험 점수도 잘 나오고, 장학금까지 받았죠. 그러면서 농구 선수의 길이 아닌 일반 회사원을 해보자는 목표도 생겼어요.

Q. 회사원의 길을 꿈꾸셨다고 했는데, 2018년에 KBL 신인드래프트에 도전했어요.
드래프트를 얼마 앞두고 중국에서 열린 대회를 나갔어요. 그 팀에 프로 선수 출신 형들이 있었거든요. 그 형들이 저보고 그래도 드래프트에 한 번 도전해보는 건 어떻냐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경험이나 쌓을 겸 해서 지원했죠.

Q. 아쉽게 프로에는 낙방했지만, 이후 KBL에 입사하게 됐어요.
드래프트는 당연히 안 됐죠. 그러고 며칠 뒤에 KBL로부터 문자가 왔어요. 선수 출신 트레이너를 모집한다는 공고요. 문자를 보자마자 ‘나를 위한 기회구나’ 싶었습니다.

Q. 자신감의 이유가 궁금합니다.
세종대에서 선수들을 가르치면서 지도자 꿈을 꿨어요. 지도자 자격증도 취득했었죠. 게다가 저는 군필이었잖아요. 대학에서 선수 생활을 하던 친구들보다 여러 부문에서 유리하다고 생각했죠. 그리고 제 옆에는 취업을 준비하는 일반 학생 친구들도 있었어요. 조언을 많이 받았죠.

Q. 입사 후 곧바로 2019년 신설된 육성팀에 발령을 받았어요.

전에 계시던 이정대 총재님이 유소년에 신경을 많이 쓰셨어요. 그 일환으로 육성팀을 만들었고, 제가 가게 됐죠. 사실 저도 제가 육성팀에 갈지 몰랐어요. 이렇게 오래 있을지도요(웃음).

Q. 육성팀의 가장 좋은 점과 어려운 점이 무엇일까요?
신설된 팀이다보니 어떤 일을 하더라도 새로운 길을 가는 거죠. 장신 선수 발굴, 유소년 측정 사업, 엘리트 캠프 등 지금까지 해온 일인데, 대부분 새롭게 시도한 것들이죠. 반대로 새로운 길을 가기에 어려운 점도 있습니다. 아직 시스템이 제대로 구축되지 않았거든요. 다른 종목들과 비교했을 때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시스템이 많아 일을 추진할 때 어려움이 많죠.

Q. 그래도 보람찬 것도 있을 것 같아요.
선수들이 커가는 걸 볼 때가 가장 뿌듯하죠. 제가 KBL에 온지 2년이 넘었는데, 그 사이에도 선수들의 실력이 확실히 성장했어요. 최근 IMG를 다녀온 (이)주영이나 (구)민교는 그전에도 실력이 좋았지만, 더 좋아지고 있죠. 특히 장신 선수들은 정말 성장 속도가 빠르고요. 이런 모습을 볼 때 가장 뿌듯하죠.

Q. 언젠가는 그 선수들을 프로에서 만나지 않을까요?
그렇죠. 이제 얼마 남지 않았어요. 프로 선수가 되어 KBL에서 만난다면 느낌이 색다를 것 같아요. 그 순간이 기다려져요.

Q. 마지막으로 꿈꾸는 미래가 있을까요?
전국 각지에 유소년 유망주를 위한 체육관이 하나씩 있었으면 좋겠어요. 트레이너들도 지금보다 훨씬 많았으면 좋겠고요. 지금은 서울에도 갖춰지지 않았지만, 전국에 선수들이 트레이닝 할 수 있는 곳이 생겼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당장 쉽지 않겠지만, 유소년은 장래를 위한 투자라고 하잖아요. 그런 프로그램 속에 해외에 진출하는 선수 한 명 나오면 소원이 없을 것 같아요.

사진 제공 = KB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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