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코 인사이드] ‘원주산성의 시초’ 왓킨스, 리그 호령한 최고 센터
- BAKO INSIDE / 이재승 기자 / 2021-12-09 09:03:40

본 기사는 바스켓코리아 웹진 2021년 11월호에 게재됐다. (바스켓코리아 웹진 구매 링크)
프로농구는 지난 2004-2005 시즌부터 외국 선수 선발을 기존 드래프트에서 자유계약으로 바꾸었다. 프로 출범 이래 처음으로 몸값이 높은 선수들이 들어오면서 각 팀의 전력이 크게 요동쳤으며, 기존 국내 선수 전력이 탁월했던 팀들은 순식간에 전력을 끌어 올렸다. 당시 대표적인 구단이 원주 TG삼보(현 DB)였으며, TG삼보는 외국선수로 자밀 왓킨스를 낙점하면서 엄청난 골밑 전력을 구축했다. 이에 힘입어 리그를 대표하는 강호로 거듭났다.
왓킨스는 지난 2004-2005 시즌에 KBL에 진출했다. 외국선수 선발이 바뀌면서 내로라하는 선
수들이 국내 무대를 두드렸다. 왓킨스 외에도 단테 존스(당시 SBS), 애런 맥기(당시 KTF), 게이브 미나케(당시 KTF), 네이트 존슨(당시 오리온스), 로버트 잭슨(당시 오리온스), 크리스 랭(당시 SK), 제럴드 허니컷(당시 LG) 등이 둥지를 틀었다. 이중 존스와 허니컷은 NBA 진출자로 많은 관심을 모았으며, 존스는 대체선수로 들어온 직후 리그 판도는 물론 관중 유치까지 확실하게 바꿔놓았다. 당시 안양체육관은 홈경기 매진은 물론 존스와 안양 SBS(현 KGC)의 농구를 보기 위해 많은 관중이 운집했다.
존스발 광풍이 대단하긴 했으나 존슨과 맥기가 선보인 기량도 실로 대단했다. 팀을 확실하게 끌고 가면서 간판으로 자리매김했다. 직전 시즌 최고 선수로 군림했던 찰스 민렌드(당시 KCC)와 앨버트 화이트(당시 전자랜드)도 변함없는 위력을 떨쳤다. 부상으로 아쉽게 교체된 잭슨과 미나케도 수준 높은 기량을 펼쳤다. 새로 가세한 외국 선수들의 가세로 프로농구는 단연 많은 주목을 받았으며 각 팀이 펼치는 각축전도 대단했다. 그중 왓킨스도 빼놓을 수 없다. 왓킨스는 화려한 측면에서 여타 선수에 비해 아쉬울 수 있었으나 골밑에서 묵직한 존재감과 안정감을 선보이면서 TG삼보의 중심으로 거듭났다.
고교 및 대학 시절
뉴욕주 브루클린 태생인 왓킨스는 폴로버슨 고교를 졸업했다. 농구 명문인 조지타운대학교로 진학했다. 조지타운 출신으로는 패트릭 유잉, 알론조 모닝, 디켐베 무톰보, 앨런 아이버슨, 로이 히버트, 그렉 먼로가 대표적이며, 현역 선수로는 제프 그린(덴버), 오토 포터 주니어(골든스테이트)가 있다. 국내에서 뛰었던 헨리 심스(전 전자랜드)도 조지타운을 졸업했을 정도로 유능한 선수들이 두루 거쳤다.
NCAA 조지타운 호야스에서 네 시즌을 보냈다. 그러나 첫 시즌부터 두각을 보이지 못했다. 신입생이던 지난 1995-1996 시즌에는 세 경기에 나선 것이 전부였으며 평균 9분 동안 2.6점 2.7리바운드에 그쳤다. 그러나 이듬해 나아지기 시작했다. 완연하게 주전 자리를 꿰찬 것은 아니었지만, 안쪽에서 주요 전력으로 나섰다. 주전 선수가 부상으로 자리를 비우면서 그에게 기회가 왔고, 서서히 실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웨스트버지니아와의 경기에서는 자신의 생애 최다인 16리바운드를 잡아냈다. 그는 31경기에 나서면서 경기당 4.5점 4.9리바운드를 기록했다. 첫 시즌에 많은 경기에 나서지 못한 그였으나 이듬해 많은 경기에 나선 것이 실로 고무적이었다.
1998-1999 시즌부터 팀의 핵심 전력감으로 거듭났다. 이전까지는 벤치에서 출전했으나, 이제
주전 센터가 됐다. 그는 생애 최다인 평균 7.8점 7.2리바운드를 책임졌다. 팀에서 평균 득점이 5번째로 많았으며, 무엇보다 안쪽에서 기여도를 고려하면 그의 활약은 단연 영양가가 높았으며 팀에 필요한 부분이었다. 졸업반일 당시에도 뚜렷하게 주전으로 출장하지 못했다. 조지타운에는 새롭고 유능한 신인이 꾸준히 입학하기 때문. 그는 경기당 12.3분을 소화하며 4.1점 3.3리바운드 1.1블록을 기록했다.
그러나 NBA 프리드래프트캠프인 포츠머스인비테이셔널토너먼트(PIT)에서 그는 두각을 보였다. 지금이야 어린 선수들이 대학을 졸업하지 않고 NBA에 진출하고 있으나 당시에는 대졸자들이 프로 무대에 뛰어들었기 때문. 이에 PIT에서 활약한 향후 NBA는 물론 다른 리그 진출의 큰 교두보라 할 수 있다. 최근까지도 PIT를 누빈 선수들이 NBA에서 지명을 받았을 정도로 인지도가 대단했다. 당시에는 더할 나위 없었을 터. 이 때 왓킨스가 대회 평균 12.3점 9리바운드로 맹활약했다. 그의 활약에 힘입어 조지타운은 정상에 섰으며, 그는 결승전에서 16점 11리바운드를 기록하며 팀의 우승에 크게 기여했다. 이에 힘입어 PIT 올-토너먼트팀에 선정이 됐다. 대학 진출 이후 주로 벤치에서 나서면서 크게 두각을 보이지 못했으나 생애 처음으로 큰 상을 받은 것이다.
KBL 진출 이전 만만치 않았던 프로 생활
대졸 후 그는 미 하부리그 생활을 시작했다. 당시에는 NBA의 하부리그가 현재의 G-리그로 일원화되어 있지 않았다. 그는 CBA(Continental Basketball Association)와 ABA(American Basketball Association)를 거쳤다. 그는 지난 2001-2002 시즌 16경기에서 경기당 25.2분을 뛰며 9.5점(.509 1.000 .614) 7.5리바운드 1.6블록을 기록했다. 단기 계약으로 대서양 건너 스페인으로 향하기도 했다. 프로에서 첫 시즌을 마친 그는 2001-2002 시즌부터 본격적으로 외국 선수로 활약을 시작했다.
전반기를 이탈리아에서 보낸 그는 D-리그(현 G리그)로 향했다. 시즌 후에는 푸에르토리코에서 뛰면서 꾸준히 경기에 나섰다. 2002-2003 시즌에도 D-리그에서 뛰면서 좀 더 실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50경기에 나선 그는 이중 48경기에서 주전으로 출장하며 자리를 확실하게 잡았다. 평균 21.2분을 소화하며 8.4점(.521 .--- .550) 6.4리바운드 1.2블록을 올렸다. 전반적인 기록은 이전만 못했으나 많은 경기에 나서면서 자신을 확실하게 알렸다.
이후 아시아에서 선수 경력을 이어갔다. 2004년 중반에 중국의 베이징 덕스와 잔여시즌 계약을 체결했고, 필리핀으로 건너가 다양한 나라와 여러 지역에서 뛰었다. 안쪽에서 역할을 해줄 수 있는 만큼, 많은 팀들이 관심을 보인 결과이기도 했다. 필리핀에서 그는 10경기에서 평균 27.3점 18리바운드 3.9어시스트 2.8블록 1.1스틸을 기록하며 이름을 떨치기 시작했다. 아시아에서 주요 선수로 자리매김하면서 인지도를 쌓았고, 해당 시즌의 활약을 바탕으로 국내 구단이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이윽고 그는 2004년 여름에 TG삼보와 계약했다.
원주에서 보낸 전성기
TG삼보는 왓킨스와 처드니 그레이의 합류로 탄탄한 전력을 꾸렸다. 신기성도 군대에서 전역하면서 ‘신기성-그레이-양경민-김주성-왓킨스’로 이어지는 탄탄한 전력을 구축했다. 지난 2003-2004 시즌 챔피언 결정전에 오르고도 아쉽게 전주 KCC에 패했지만, 재차 결승 진출을 노릴 만한 전력이었다. 허재가 2003-2004 시즌 챔피언 결정전을 끝으로 은퇴했으나 신기성의 합류로 백코트가 좀 더 탄탄해졌다. 왓킨스가 골밑을 묵직하게 책임지면서 김주성의 부담이 크게 줄었다. 왓킨스와 김주성이 책임지는 안쪽 전력은 단연 리그 최강으로 손꼽혔다. 당시 서울 삼성이 서장훈을 중심으로 바카리 핸드릭스, 이규섭으로 이어지는 프런트코트를 구축했으나 수비적인 측면에서 TG삼보의 트윈타워는 단연 독보적이었다.
왓킨스는 여느 외국 선수와의 매치업에서 밀리지 않았다. 필요할 때 안에서 득점을 올리는 등
꾸준히 평균 ‘20-10’에 버금가는 활약을 펼쳤다. 여기에 국내 선수 중 최고의 블로커였던 김주성까지 더해 TG삼보의 안쪽 전력은 단연 돋보였다. 왓킨스와 김주성이 안쪽에서 힘을 내면서 자연스레 외곽에서 기회가 어렵지 않게 나올 수 있었다. 외곽슛이 정확한 신기성과 양경민은 높은 성공률로 외곽슛을 던졌다. 신기성은 정확한 중거리슛을 꾸준히 곁들였으며, 그레이도 공격을 확실하게 주도했다.
당시 TG삼보 선수들은 큰 부상도 없었다. 왓킨스도 마찬가지. 그는 54경기에 모두 나서 경기당 16.9점 12.6리바운드 1.2어시스트 1.9블록 1.1스틸을 기록했다. 외곽슛은 갖추고 있지 않았으나 안쪽에서 주는 무게감이 상당했다. 그는 무려 60%가 넘는 필드골 성공률을 자랑하면서도 기록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많은 리바운드를 따냈다. 그의 활약에 힘입어 TG삼보는 이전 시즌 아쉬움을 달래듯이 리그 1위로 정규시즌을 마쳤고, 플레이오프도 어렵지 않게 통과했다. 결승에서 만난 KCC와 접전 끝에 TG삼보가 우승을 차지했다.
당시 KCC는 강력한 2연패 후보로 관심을 모았다. 찰스 민렌드를 필두로 이상민, 조성원, 추승균이 건재했다. 그러나 외국 선수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직전 시즌 좋은 모습을 보인 R.F. 바셋이 안쪽에서 경쟁력을 보이지 못했다. 바셋은 몸 관리에서 다소 아쉬웠으며, 자유계약으로 합류한 외국 선수와의 대결에서 밀려나고 말았다. 결국, KCC는 외국 선수를 교체했다. 최종적으로 제로드 워드와 함께하기로 한 것. 그러나 워드는 센터가 아닌 포워드다. NCAA에서도 스몰포워드로 나섰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센터로 나선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즉, 높이 경쟁에서 TG삼보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KCC가 민렌드와 조성원을 내세워 득점을 올렸으나 실점을 극복하기 쉽지 않았다. KCC는 끝내 TG삼보를 넘지 못하며 2연패를 달성하지 못했다.
그만큼 왓킨스의 역할이 컸다. 왓킨스가 부상 없이, 무리 없이 인사이드를 확실하게 휘어 잡았기 때문. KCC는 좀처럼 TG삼보의 안쪽을 공략하지 못했다. TG삼보의 외국 선수 교체도 주효했다. TG삼보는 시즌 막판에 그레이를 아비 스토리로 교체했다. 그레이가 스윙맨인 반면 스토리는 포워드다. 즉, KCC의 주득점원인 민렌드와의 매치업에 나설 수 있었으며, 이로 인해 김주성이 외국 선수 수비 부담을 덜었다. 플레이오프에서 김주성은 토종 선수를 막으면서 상대 외국 선수가 공격에 나설 때 쉐도우블로커로 나섰다. 김주성이 대인 수비에 대한 부담을 덜고 조직적인 수비의 주요 앵커로 활용되면서 TG삼보가 기존 구성원의 장점을 극대화한 수비를 꺼내들 수 있었다. 단연 핵심은 왓킨스였다. 골밑에서 그를 견제할 이는 아무도 없었다. 공수 양면에서 늘 돋보이진 않았으나 그가 있어 TG삼보가 타이틀을 탈환할 수 있었다.
TG삼보는 이듬해 동부화재로 인수가 됐다. 이에 원주 동부로 거듭났으며, 왓킨스도 당연히 재계약을 체결했다. 그는 KBL 2년차가 되어도 여전했다. 변함없이 54경기에 나선 그는 경기당 16.9점 12.4리바운드 1.2어시스트 1.9블록 1.2스틸을 책임졌다. 전반적인 기록은 소폭 하락했으나 그는 어김없이 원주의 골밑을 지켰다. 동부는 지난 2005-2006 시즌에 리그 3위에 올랐으며, 당연히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그러나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 김승현이 이끄는 대구 오리온스(현 오리온)를 넘어서지 못했다. 높이에서 단연 독보적인 전력이었으나 단기전인 첫 관문에서 오리온스의 빠른 농구를 극복하지 못했다. 동부는 오랜만에 1라운드를 치른 가운데 분위기를 내준 것이 화근이었다. 지난 2002-2003 챔피언 결정전에서 오리온스를 꺾고 우승을 차지한 바 있으나 단기전에서 빠른 농구의 희생양이 되고 말았다.
KBL 최초 외국 선수 주장
왓킨스는 2006-2007 시즌에도 함께 했다. 그는 외국 선수로는 처음으로 주장을 맡았다. 이전까지 양경민이 주장을 맡았으나 그가 징계로 나설 수 없게 되면서 다른 국내 선수가 아닌 왓킨스가 주장을 맡은 것. 당시 팀에서 영향력이 적지 않았으며 국내 선수와의 유대에서도 크게 뒤지지 않았기 때문. 동부의 전창진 감독은 그를 새로운 주장으로 낙점했다. 당시만 하더라도 외국 선수가 주장을 맡은 것은 이례적이었다. 추후 리카르도 포웰이 인천 전자랜드(현 대구 한국가스공사)에서 주장으로 선수들을 이끈 바 있으나 2000년대 중후반임을 고려하면 다소 파격적인 선택이었다.
당시 동부의 가드인 이세범(용산고 코치)은 시즌 중에도 왓킨스가 다른 선수에게 모범이 되고 있으며 국내외 선수를 막론하고 꾸준히 소통하고 있음을 강조한 바 있다. 표명일(양정고 코치)도 묵묵하게 자신의 역할을 해내면서 코트에서 적극적인 목소리로 선수들을 독려한 그를 높이 평가했다. 당시만 하더라도 외국 선수들이 각 팀의 주요 전력이 된 후, 다소 아쉬운 행동을 보이거나 짜증 섞인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러나 왓킨스는 리그를 호령하고 있는 선수임에 도 오히려 선수단을 잘 이끌었다.
사실 주장이 되기 전에도 왓킨스는 냉철했다. 특유의 무표정이 모든 것을 말해주진 못하겠지만, 코트 위에서 기복이 없었으며 화려하진 않았으나 수비에서의 기여도를 생각하면 이미 대체불가였다. 게다가 전 감독이 추구하는 조직적인 수비에서 단연 최후보루로 역할을 꾸준히 한 만큼, 다른 선수와 소통에 꾸준히 나섰다. 리그 최초로 외국 선수 주장이 되기 이전부터 그는 꾸준했던 만큼, 문제될 것이 없었다. 이에 전 감독도 그를 주장으로 낙점하는 것이 이해가 되고도 남았다. 그러나 동부는 시즌에는 부침을 겪었다. 왓킨스가 52경기에 나서면서 변함없는 건재함을 과시했으나 토종 선수의 부상이 많았다. 김주성(현 DB 코치), 손규완(현 안양 KGC인삼공사 코치)이 부상으로 많은 경기에 나서지 못하면서 동부도 이전처럼 정규시즌에서 위력을 떨치지 못했다.
다른 리그 진출 및 KBL 복귀
원주에서의 세 시즌을 뒤로 하고 그는 국내 무대를 떠났다. 동부와 재계약을 체결하지 못한 가운데 다른 구단과의 계약도 어려웠다. KBL에서 뛸 때도 오프시즌에 쿠웨이트와 미국 USBL에서 뛰기도 했다. 주로 그는 중국에서 뛰었다. 푸젠 스터전스, 장수 드래건스, 지린 타이거스에 몸 담았으며, 오프시즌에는 푸에르토리코, 레바논 등에서 뛰면서 선수생활을 꾸준히 지속했다.
그런 그가 지난 2011-2012 시즌에 다시 국내 무대에서 뛸 기회를 잡았다. 전주 KCC가 디션 심스를 내보내고 왓킨스를 품기로 한 것. 당시 동부에는 로드 벤슨이 골밑을 지키면서 강세를 뽐냈다. 이에 리그 내 다른 팀이 안쪽 보강을 위해 외국 선수 교체에 나섰다. KCC는 왓킨스, 안양 KGC는 로드니 화이트를 크리스 다니엘스로 바꿨다. 부산 kt(현 수원 kt)는 임시 대체로 레지 오코사를 영입했다. 벤슨이 책임지는 골밑에 대항하기 위함이었다. 왓킨스는 물론 오코사도 동부에서 뛰었고 안쪽 전력 구성을 위해 높이에서 경쟁력을 갖춘 이들을 불러들였다.
왓킨스는 여전했다. 시간이 지났음에도 여전한 역할을 했다. KCC에서는 6경기에서 21.2점 10
리바운드 2.8어시스트 1.7블록을 기록했다. KCC는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으나 첫 관문에서 울산 모비스를 넘어서지 못했다. KCC에는 하승진이 있었기에 왓킨스와 공존하기 쉽지 않았다.
그도 이전과 같은 기동력을 뽐내기엔 한계가 있었다. KCC에서는 주로 수비 보강 차원에서 나서면서 역할을 했으나 이후 재계약을 따내기는 다소 모자랐다. 왓킨스의 문제보다 KCC의 국내 선수 구성과 새로운 외국 선수를 찾아야 했기에 어쩔 도리가 없었다.
복귀했던 국내 무대를 뒤로 하고 그는 뉴질랜드, 일본, 레바논을 거쳤다. 일본에서 두 시즌이나 보냈으며, 이후 뉴질랜드로 향했다. 뉴질랜드의 NBL은 준프로리그이다. 왓킨스는 NBL의 웰링턴 세인츠와 2016년 3월 말에 2주 계약을 맺으면서 마지막 불꽃을 태웠다. 계약기간 동안 평균 7.7점 6.3리바운드를 기록했으며, 한 차례 더블더블을 작성하는 등 노익장을 선보였다. 그러나 계약 이후 새로운 계약을 체결하지 못했고, 뉴질랜드에서 뛴 것을 끝으로 은퇴했다.
사진_ KBL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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