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코 인사이드] 한국의 스테판 커리를 꿈꾼다, 광신중 김경진

BAKO INSIDE / 김영훈 기자 / 2020-06-08 15:25:53

본 기사는 바스켓코리아 5월호 웹진에 게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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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스켓코리아 = 김영훈 기자] 신장 191cm, 몸무게 84kg에 불과한 스태판 커리는 NBA 평균 신체 조건에 한참 미치지 못한다. 하지만 그는 3점슛이라는 무기를 통해 NBA를 평정했다. 뿐만 아니라 농구의 트렌드도 바꿔 놓았다.


그를 보고 농구 선수의 꿈을 키우고 있는 소년들은 적지 않다. 한국에도 존재한다. 바로 광신중의 김경진(165cm, 가드)이다. 또래에 비해 작은 키임에도 뛰어난 3점슛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이 커리와 닮았다. 심지어 3점슛 라인 한 발 뒤에서 던지는 모습도 매우 유사하다.


커리와 흡사한 플레이 스타일을 지닌 김경진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았다.


축구를 좋아했던 아이, 농구에 발을 들이다
초등학교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는 축구이다. 점심시간이 되면 대부분의 남학생들은 운동장에 뛰어나와 축구를 한다. 규칙도 어렵지 않으며 변변한 골대가 없어도 공 하나에 모두가 뛰어놀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김경진 역시 초등학교 때까지 축구를 좋아하던 소년이었다. 그러나 5학년 때, 키가 잘 자라지 않자 부모님은 그에게 농구를 권유했다. 김경진은 이를 수락했고, 집에서 가까운 고양 오리온 유소년 농구 클럽에 들어갔다.


김경진은 농구 시작 초반에만 해도 흥미를 느끼는 것이 전부였다. 그러던 그는 점점 농구에 두각을 나타냈다. 또래에 비해 슛 등에서 재능을 보이며 취미반에서 선수반으로 넘어갔다.


그는 한 단계 높은 곳으로 올라갔지만, 전혀 주눅 들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장기인 슈팅을 통해 선수반을 지배했다.


이러한 모습을 눈여겨본 지도자가 있었다. 광신중학교의 하상윤 코치였다. 그는 오리온 클럽 대회에서 김경진을 처음 봤고, 스카우트를 마음먹었다. 그리고는 김경진과 부모님을 만나 직접 설득에 들어갔다.


처음에는 당연히 쉽지 않았다. 부모님도 엘리트 체육까지 가는 것을 원하지 않았을 뿐더러 김경진도 선수 도전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이 있었다. 그는 “광신중에 가서 형들이 농구를 하는 것을 봤다. 키도 크고 나보다 빠르더라. ‘내가 농구할 곳이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벽을 느꼈던 당시를 떠올렸다.


하지만 하상윤 코치는 포기하지 않고 설득했다. 결국 그는 김경진의 부모님을 만나 수락을 얻어냈고, 김경진의 마음도 돌리는데 성공했다. 김경진은 “농구를 시작했기에 한 번은 도전을 해보는 것도 괜찮을 거라고 마음먹었다. 그래서 과감히 도전하기로 했다”며 선수의 꿈을 결심한 이유를 설명했다.


광신중의 주전으로 올라서다
중학교에서 본격적으로 농구를 시작한 김경진의 데뷔전은 매우 일찍 찾아왔다. 시작한지 반 년도 되지 않았던 2018년 4월 열린 제 43회 연맹회장기가 그 무대였다. 광신중은 예선에서 금명중과 만났다. 전반 내내 답답한 공격을 보인 광신중은 후반 들어 여러 가지 수를 시도했다.


그중 하나가 김경진의 투입이었다. 하지만 처음이었던 탓인지 김경진은 별다른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 3분을 뛴 그의 기록은 0득점 0리바운드였다. 그는 데뷔전을 회상하며 “너무 무서웠다. 긴장이 되어서 아무 것도 하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3점슛도 3개 던져 한 개도 못 넣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경진은 이후 좌절하고 있지만 않았다. 그러나 김경진은 좌절하지 않았다. 되려 엄청난 연습으로 다음을 준비했다. 하 코치 또한 그에게 격려를 통해 자신감을 북돋아줬다.


연습에 매진한 김경진은 다시 찾아온 기회를 붙잡았다. 3학년들의 이탈로 연맹회장기에서 로테이션 멤버로 낙점됐고, 평원중과의 예선전에서 20분을 뛰며 9점을 넣었다. 모두 3점슛으로 올린 득점이었다.


그는 이후 광신중의 주전 2번 자리를 꿰찼다. 2학년 때는 포인트가드도 겸해서 소화했다. 그렇게 김경진은 광신중에서 대체 불가능한 선수가 됐다. 농구를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서 말이다.


김경진과 3점슛에 대해
이번에는 김경진을 유명하게 만든 3점슛에 대한 심도 깊은 이야기를 나눠 보았다.


그에게 3점슛에 대해 영감을 준 인물은 스테판 커리였다. 김경진은 “중학교에 입학할 때 키가 160cm에 불과했다. 그렇다고 내가 매우 빠르거나 수비를 엄청 잘하지도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커리의 영상을 봤는데, 3점슛으로 NBA를 평정하더라. 나도 저렇게 하면 충분히 성공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3점을 시도하게 된 이유를 밝혔다.


그러나 커리 정도의 정확도를 가지지 않고서 홀로 빈번한 3점슛 시도를 가져가기 어렵다. 아직도 보수적인 한국농구는 더욱 그렇다.


그러나 김경진은 가능했다. 그의 뒤에 하상윤 코치가 있었기 때문이다. “코치님은 기회만 나며 슛을 던지는 것을 선호하신다. 만약 던져서 안 될 상황이었으면, 경기 후에 피드백을 해 주신다. 일단 던지고 이후 잘못된 것을 보완하면 된다고 하신다. 덕분에 내가 자유롭게 슛을 시도할 수 있었다”며 김경진은 하 코치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뿐만 아니라 김경진은 3점슛 라인 한 발 뒤에서도 시도한다. 김경진은 이에 대해 묻자 살짝 웃으며 “그게 내 슛에 장점이다. 팀원들도, 상대도 당황할 때 슛을 던진다. 그럴 때 성공하며 짜릿한 느낌이 있다”고 답했다.


물론, 그가 하루 아침에 3점슛을 던지게 된 것은 아니다. 여기까지 오기에 피나는 노력이 있었다. 김경진은 “슛을 연습하기 위해 새벽에 일어나서 던졌다. 하루에 기본 500개는 던졌다. 밸런스가 안 잡히는 날이면 더 연습한다. 또, 하나를 시도하더라도 집중해서 하는 것이 내 비법이다”며 자신의 3점슛 연습 비결을 밝혔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3점슛에 대한 자부심을 물어봤다. 그러자 김경진은 “3점은 현재 중학교 무대에서는 내가 최고인 거 같다”며 당찬 모습을 드러냈다.


‘주장’ 김경진의 2020년 목표, 1번으로의 변신
김경진은 1번으로의 전환을 준비하고 있다. 이는 2학년 때부터 준비한 것으로 아직까지(삭제) 현재진행형이다.


김경진은 “포인트 가드를 경험했는데 너무 힘들더라. 연습경기를 할 때마다 실책을 10개 이상 한 거 같다”며 “너무 실수만 하니 멘탈이 붕괴됐다. 심리적으로 위축되니 슬럼프도 왔다”며 포인트가드에 대한 어려움을 토로했다.


포지션 변신에 고전하던 김경진의 뒤에는 역시 하상윤 코치가 있었다. 그는 끊임없이 과감한 시도를 장려하며 김경진의 든든한 버팀목이 됐다.


그는 “코치님이 실수를 하는 것에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다. 그래서 계속 부딪혔다. 그래서인지 조금씩 실력이 늘더라. 이제는 실책을 많이 줄인 거 같다. 코치님께 너무 감사하다”며 하 코치에게 한 번 더 고마움을 표했다.


물론, 하 코치가 지적하는 것이 없지는 않다. 김경진이 포인트 가드 역할에 집중해 이전만큼 공격력을 보여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타적인 플레이만 생각하니 내 장점이 없어지더라. 그래서 코치님에게 혼났다. 이제는 이타적인 것과 공격적인 것의 중간 지점을 찾은 거 같다. 1번과 2번의 사이인 듀얼 가드 역할에 어느 정도 적응했다.”는 김경진의 말이다.


김경진은 이번 시즌 광신중의 주장을 맡았다. 그는 경기외적으로도 많은 신경을 쓰고 있었다. 김경진은 “솔직히 주장이 힘들기는 하더라. 신입생들도 많고, 코치님과 선수들의 중간 역할을 하니 신경쓸 게 많더라. 그래도 코트 안에서 중심이 되어 경기를 끌고가는 것이 재밌기도 하고 뿌듯하기도 하다”며 성숙한 반응을 보였다.


그는 끝으로 한 해 목표에 대해 “우리 팀 전력이 떨어진 거는 부정하고 싶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8강에 꾸준히 올랐으면 좋겠다”고 밝힌 뒤 인터뷰를 마쳤다.


사진 제공 = KB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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