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코 인사이드] '절치부심' 상명대 김태호 "농구는 나의 전부예요"

BAKO INSIDE / 방성진 기자 / 2023-02-16 16:22:37

본 기사는 바스켓코리아 웹진 2023년 1월호에 게재됐으며, 본 기사를 위한 인터뷰는 2022년 12월 16일 오후 1시에 진행됐다(바스켓코리아 웹진 구매 링크).


김태호는 제물포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단국대학교에 진학했다. 신입생 때부터 많은 기회를 받으며 대학 무대 신인왕을 수상했다.
대학교에서 2년을 보낸 뒤, 얼리 드래프트로 프로 무대에 도전했다. 그러나 프로 구단들은 김태호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김태호는 프로 무대 진출의 꿈을 놓지 않았다. 상명대학교 편입을 노렸다. 하지만 이 역시 여의치 않았다. 1년간 공백기를 보내야 했다.
방황하던 시간도 잠시, 김태호는 절치부심했다. 부모님과 삼촌의 도움을 받아 재기를 위해 구슬땀을 흘렸다.
상명대학교 편입에 성공한 뒤, 대학 무대 복귀에 성공했다. 공백기를 가진 만큼, 김태호는 한 발 더 뛰며 훈련하고 있다.

 

최근에는 어떻게 지냈나요?
비시즌이기도 하고, 대학교 수업도 들어야 하는 상황이에요. 운동을 많이 하지 못했어요. 팀 훈련도 하루에 한 번만 하고 있죠. 대신 수업 전에 개인 운동을 하고, 팀 훈련에 집중하고 있어요. 남는 시간이 생기면, 개인 운동을 더 하고 있어요.

농구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요?
어릴 때 시흥에 살았어요. 방과 후 수업 때 농구를 선택했죠. 일반인 사이에서 농구하면서, 제가 농구를 제일 잘하는 줄 알았어요. 부모님께 “농구부에 입단하고 싶다”고 억지를 부렸어요. 하지만 시흥에 농구부가 없었고, 안양에 있는 벌말초등학교가 그나마 가까웠어요. 버스를 1시간 30분 동안 타고 다니면서 농구부에 들어갔어요. 그게 초등학교 5학년 때였어요.

농구부 선수들과 비교하면 실력이 어땠나요?
골밑슛만 겨우 할 수 있는 실력이었어요. 농구 규칙도 잘 몰랐죠. 일반 학생들 사이에서나 조금 잘하는 정도였어요.
 

주변에 농구 선수를 했던 분이 계셨나요?
삼촌이 고등학교 때까지 농구를 하셨어요. 하지만 삼촌이 농구를 했다는 걸 전혀 몰랐어요. 어머니도 저를 농구의 길로 들어서지 않게 하려고, 농구의 ‘농’ 자도 꺼내지 않으셨어요. 사실 (어머니와 삼촌은) 농구 선수가 되는 방법을 다 알고 계셨지만, 제가 처음 운동하고 싶다고 말씀드렸던 건 초등학교 4학년 때였어요. 주변 친구들과 형들을 통해 농구 선수가 되는 길도 찾아봤고요. 어머니도 제 고집을 꺾지 못하셨죠.

벌말초등학교 졸업 후 연계 학교인 호계중학교 대신 안남중학교로 진학했어요.
벌말초등학교 때 동기만 9명이었어요. 다들 잘하는 선수들이었고, 성적도 잘 냈어요. 오히려 드리블도 하지 못하는 저를 받아주신 게 기적이었어요. 경기도 거의 뛰지 못했죠.
호계중학교로 간다고 해도, 경기에 출장하기 힘든 상황이었어요. 그래서 안남중학교로 가게 됐어요.(“어머니께서 중학교 때 경기 출전 경험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셨다. 연계 고등학교인 제물포고등학교도 고려하셨다”고 덧붙였다) 안남중학교는 그때 잘하지 못했고, 선수도 적었어요. 제가 1학년 때부터 바로 경기를 뛸 수 있었죠. 안남중학교에서 3년 동안 예선 통과를 한 번 밖에 하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좋은 경험이었어요.

안남중학교에서 기량이 많이 늘었나요?
신체 발달이 더딘 편이었어요. 힘도 없었고, 스피드도 느렸어요. 키마저 작았죠. 중학교 때 기량이 늘었다고 생각하진 않았어요. 하지만 그때를 돌아보면, 제가 작고 느려서 아등바등 노력했던 것 같아요. 머리를 최대한 쓰면서 플레이했어요. 그게 성장하는데 큰 도움이 됐어요. 그리고 코치님께서 운동을 많이 시키셨고, 수비를 강조하셨어요. 코치님 덕분에 좋은 습관을 잡고, 고등학교에 진학했어요.

제물포고등학교에 올라간 뒤 1년 유급했죠?
고등학교 1학년 때 바로 유급했어요. 중학교 졸업했을 때 키가 176cm였고, 코치님께서 신체적으로 성장할 거라고 예상하면서 유급을 권유하셨어요. 190cm 가까이 클 것 같다고 말씀하셨죠. 신기하게도 코치님의 예상대로, 키가 꾸준히 크고 몸도 좋아졌어요. 기량도 자연스럽게 늘고, 재밌게 농구했었어요.

고등학교 시절을 회상한다면 어땠나요?
유급도 했고, 실력도 특출나지 않았어요. 주변 상황에 많이 치이기도 했고, 인정도 별로 받지 못했어요. 하지만 악을 쓰고 더 열심히 했어요. 그러면서 고등학교 3학년 때 기록을 내기 시작했어요. 자신감이 붙었고, 노력의 성과도 봤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제가 잘했다기보다 코치님과 동료들이 저를 많이 배려해줬던 것 같아요.

단국대학교 2학년을 마치고, 얼리 드래프트를 선언했어요.
신입생 때 기회를 많이 받았어요. 운이 좋아서 신인상도 받았죠. 하지만 2학년 때는 코로나19 때문에, 경기를 많이 뛰지 못했어요. 대학교에서 나와 새롭게 도전하고 싶었죠. 잘하는 선배님들이 많았지만, 도전할 만하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제가 부족했어요. 덜 성숙했고, 어린 마음에 급한 결정을 내렸어요.

상명대학교는 어떻게 편입했나요?
편입에 한 번 실패했어요. 코로나19로 인해, 특기자 전형의 정원이 없었거든요. 일반 전형이 있기는 했지만, 학점을 통해 경쟁해야 했어요. 일반 학생들을 상대로, 학점에서 앞서기 힘들었어요. 하지만 달라진 저를 보여주는 방법은 대학농구리그에서 뛰는 것 밖에 없었어요. 일반인 드래프트가 아닌 단체 생활을 통해 증명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정말 간절했어요.

상명대학교 편입 전, 1년간 공백기를 보내야 했어요.
말이 1년이지, 정말 긴 시간이었어요. 초반에는 방황하기도 했죠. 상황을 인정하지 않고 주변을 탓했어요. 또, 2022년 편입도 미지수였어요. 다행히 부모님과 삼촌의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많이 혼나기도 했고요. 그러면서 농구장 밖에서의 제 모습을 돌아봤어요. 부족한 점을 알게 됐어요. 행동과 생활 방식까지 하나하나 뜯어고쳤어요. 지금은 기억도 잘 나지 않네요.

대학 무대에 복귀한 소감은 어땠나요?
불안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팀 소속으로 경기에 뛸 수 있었던 설렘이 더 컸어요. 대학 선수들과 부딪히며, 부족한 점을 많이 느꼈어요. 공백기를 가진 만큼, 더 노력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2022시즌 몸 상태는 괜찮았나요?
비시즌 때 부상이 많았어요. 허리 디스크와 피로골절 때문에, 운동을 제대로 못 했어요. 몸을 제대로 만들지 못했어요. MBC배만 정상적인 몸 상태로 임했어요. 1학년 때에 비해 날렵함이 없어져서, 체중 감량을 통해 보완하고 있어요. 

 

스스로 생각하는 장단점은 무엇인가요?
항상 파이팅 넘치는 게 장점이에요. 팀에 활력소를 불어넣죠. 수비도 할 줄 알고, 득점력도 있다고 생각해요.
실책이 많은 건 단점이에요. 경기 중에 흥분하는 경향도 있어요. 그것 때문에, 감독님한테 많이 혼나고 있어요(웃음).

롤 모델로 삼은 선수가 있나요?
원래는 김민구 선수(삼일상고 A코치)의 팬이자 롤 모델이었어요. 그렇지만 이제는 정해놓지 않아요. 앞선 선수들의 영상을 두루두루 보고 있어요. 선수들의 장점을 모두 가져오고 싶어요. 롤 모델을 정했더니, 한 선수만 보게 되더라고요.

김태호 선수에게 농구란 무엇인가요?
1년 공백기를 가지며, 제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느꼈어요. 농구가 없다면, 저는 아무것도 아니더라고요. 그래서 농구는 저의 '전부'예요.
그리고 예전에는 좋은 경기를 하면, 제 노력의 산물이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밖에서 보니까, 한 선수를 키우기 위해 여러 명이 노력하는 걸 알 수 있었어요. 혼자서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앞으로의 목표는 무엇인가요?
목표를 크게 잡지는 않았어요. 단점을 고쳐나가기 위해 하나하나 노력하다 보면, 언젠가 제 위에 있는 선수들도 잡을 수 있을 거예요. 프로 무대에는 당연히 진출하고 싶어요. 프로 무대에 진출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거예요.

 

사진 = 본인 제공

일러스트 = 정승환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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