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코 컬럼] KBL 최초 감독 700승 달성, ‘만수’ 유재학이 걸어온 '반 백년' 농구 인생

KBL / 김우석 기자 / 2021-11-13 11:10:38

울산 현대모비스 유재학(58) 감독이 KBL 감독 최초 700승의 금자탑을 쌓았다.

1998년 35세 나이로 인천 대우 제우스 감독으로 부임했던 유 감독은 SK 빅스, 전자랜드를 거쳐 2004년 이곳 현대모비스로 옮겨왔다.

이후 15년이 넘는 동안 울산을 지켜온 유 감독은 12일 창원실내체육관에서 벌어진 2021-22 정관장 프로농구에서 700 번째 승리의 기쁨을 맛보았다. 창원 LG를 상대로 80-61로 승리하며 대 기록의 주인공이 되었다.

유 감독은 선수 시절 ‘천재 가드’로 불리웠다. 상명초 3학년 때 농구에 입문했던 유 감독은 상명초 전국 제패를 시작으로 용산중과 경복고를 늘 정상의 자리에 올려 놓았다. 용산중에서는 체벌 금지, 공부 보장이라는 조건을 받았을 정도로 당시 유 감독의 실력은 넘사벽이었다.

연세대로 진학한 이후에도 유 감독의 실력은 여전했고, 졸업 후에는 실업 무대를 양분했던 현대와 삼성이 아닌 창단 팀이었던 기아자동차에 입단했다. 유 감독 이외에도 당시 중앙대를 졸업했던 한기범, 김유택 등이 ‘팀 기아’의 일원이 되었고, 이후 허재, 강동희 등이 입단하며 기아자동차는 어렵지 않게 실업 무대를 제패할 수 있었다.

그렇게 ‘선수 유재학’은 승승장구하며 자신의 전성 시대를 펼쳐갔다. 하지만 운동 선수에게 시련은 필수(?)적인 법. 유 감독도 다르지 않았다. 부상이 찾아왔다. 과정이 잘못되었다. 한국에서 가졌던 두 번의 무릎 수술이 실패로 돌아갔다. 일본을 찾았다. 수술은 잘 되었다. 하지만 이전 기량을 회복하기에 앞선 수술 실패가 너무 컸다.

 

3년 전 어느날, 유 감독은 "당시 아무것도 모르고 한국에서 수술을 했고, 기브스를 했는데 살이 쭉쭉 빠지더라. 나중에 알고 보니 수술을 해야 할 부위가 아닌 다른 부위에 메스를 댔다. 이후 일본에서 수술한 이후 재기를 노렸지만 여의치 않았다. 너무 아쉬웠다."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결국 유 감독은 28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은퇴를 선택해야 했다. 대한민국이 배출한 천재 가드 한 명이 선수 생활을 마감해야 했던 당시였다. 유 감독은 농구대잔치 시절 한 경기 21어시스트라는 대 기록을 남긴 채 레전드가 되었다.

이후 연세대 코치로 부임했다. 4년 동안 코치직을 수행했다. 교직원 신분이었지만, 유 감독은 프로를 선택했다. 당시 새로 창단했던 인천 대우증권 코치로 자리를 옮겼다. 2년이 지났을까? 유 감독은 바로 정식 감독으로 임명되었다. 위에 언급한 대로 35세라는 어린 나이였다.

4년 동안 계속 모 기업이 바뀌는 경험을 했던 유 감독은 현대모비스를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지금까지 18년 동안 현대모비스 수장으로 자리하고 있다.

 

당시 많은 언론에서는 앞선 4년 동안 4강 이상의 성적을 만들지 못했던 감독을 파격적인 액수와 함께 영입한 것에 대해 논란이 존재했다. 하지만 유 감독은 어수선했던 현대모비스를 단숨에 변화 시키는데 성공하며 지금에 이르렀다.

1년 동안 팀을 관찰(?)했던 유 감독은 2005-06시즌 크리스 윌리엄스와 양동근을 중심으로 정규리그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챔피언 결정전에서 서울 삼성에 4전 전패로 물러서긴 했지만, 앞선 시즌에 좀처럼 하위권에서 탈출하지 못했던 팀을 탈바꿈시켰다는 부분에서 큰 주목을 받았다.

승승장구했다. 이듬해 다시 정규리그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고, 챔프전에서 부산 KTF(현 수원 KT)와 명승부 끝에 4승 3패를 기록하며 통합 우승을 차지했다. 이후 KBL는 ‘만수 유재학’을 주목해야 했다. 정규리그 우승과 챔프전 우승을 밥먹듯이 해냈기 때문.

2009-10시즌을 두 번째 우승을 시작으로 2012-15시즌을 집어 삼킨 것. 그리고 3년이 지난 후였던 2018-19시즌 다시 통합 우승을 차지하며 자신과 현대모비스를 농구 명가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지난 시즌까지 17년 동안 유 감독이 플레이오프에 탈락한 것은 단 세 번 뿐이다. 부임 첫 해였던 2004-05시즌(7위)과 2007-08시즌(9위) 그리고 2019-20시즌(8위)이다. 대단한 기록이 아닐 수 없다.

그렇게 유 감독은 지난 17번 시즌 동안 6번의 우승을 경험하며 KBL 최장수 감독 타이틀과 함께 최다승 기록을 이어가고 있다. 2023년 계약이 만료되는 ‘감독 유재학’은 앞으로도 더 많은 승수를 쌓을 수 기회가 있다.

‘감독 유재학’을 특정하는 또 하나의 사건이 있었다. 2014년 인천 아시안 게임, 당시 아시아 최강이라 평가 받았던 이란을 넘어서는 기적을 연출한 것. 하메디 하다디 등 NBA 리거가 다소 포함되었던 이란을 격파하고 금메달을 대한민국에 안겼던 유 감독은 이 시대가 낳은 농구 최고의 감독이라는 평가를 받게 되었다.

 

유 감독의 700승 여정을 돌아보자.


100승은 현대모비스 이전 인천 SK 빅스(현 대구 한국가스공사) 시절이었다. 2002년 12월 7일 서울 삼성을 상대로 만든 기록이었다.

이후는 모두 현대모비스에서 작성 중이다. 2006년 2월 15일 대구에서 오리온스를 상대로 200승 달성에 성공했다. 이후 3년 정도를 주기로 100승을 추가했다. 300승은 2009년 11월 4일 울산 동천체육관에서 인천 전자랜드(현 대구 한국가스공사)를 상대로 만들었고, 400승은 2012년 12월 18일 울산에서 고양 오리온과 대결에서 승리하며 작성했다.

2015년 2월 15일, 울산에서 서울 SK 나이츠를 격파하며 500승 고지에 올라선 유 감독은 2018년 3월 3일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서울 삼성을 상대로 600승의 기쁨을 누렸다.

그리고 20201년 11월 12일 금요일 경상남도 창원실내체육관에서 창원 LG를 상대로 승리하며 KBL 사상 첫 700승 감독이라는 금자탑을 쌓아 올렸다. 전인미답의 기록이다.

경기 후 유재학 감독은 다소 담담한 느낌의 멘트를 전했다. 그는 “그 동안 함께했던 모든 단장님들께 감사를 드리고 시팓. 구단 프런트와 임근배, 김재훈 전 코치 뿐 아니라 조동현, 양동근 코치와 선수들에게도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앞으로 목표는 없다. 팀 성적이 좋았으면 좋겠다.”라고 전했다.

유 감독은 초등학교 3학년, 10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농구 선수의 길로 접어들어 환갑을 앞둔 지금까지 농구와 연을 맺고 있다. 성공과 좌절 그리고 다시 지도자를 키워드로 성공 시대를 지나치고 있다.

그의 농구 여정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본인도 모르지만, 분명히 코칭과 지도 그리고 관리에 있어 한 획을 그은 지도자임은 부인할 수 없어 보인다. 농구만을 위해 지나온 지난 49년의 여정이었다.

사진 제공 = KB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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