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코 인사이드] 박성진이 해내고 싶은 일, 생각을 몸으로 이행하는 것!
- KBL / 손동환 기자 / 2023-03-13 10:31:06

세상에 존재하는 인간은 모두 ‘생각’을 한다. 그러나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 이는 많지 않다. 과거를 돌아볼 때, 가장 많은 후회를 남기는 요소.
한때 최고의 유망주였던 박성진(G.O.A.T BASKETBALL)도 그랬다. 본지와 인터뷰에서 “과거에는 생각했던 걸 행동으로 옮기지 못했다. 이제는 그러면 안 된다. 몸이 움직여야 한다”며 ‘실천’을 중요하게 여겼다. 실천하지 못했던 지난 날을 후회했기 때문이다.

박성진은 김해가야고 시절부터 주목받는 가드였다. 가드로서 지녀야 할 모든 걸 갖췄다. 경기 조율과 패스, 슈팅과 돌파 등 다양한 옵션을 지닌 선수였다.
중앙대학교에 입학한 박성진은 날개를 달았다. 윤호영(원주 DB)-강병현(창원 LG 전력분석원) 등 최고의 선배와 함께 했고, 오세근(안양 KGC인삼공사)-김선형(서울 SK) 등 최고의 후배와도 시너지 효과를 냈다. ‘중앙대학교 52연승 신화’의 한축을 이뤘다.
그런 그가 2009년에 열린 KBL 국내신인선수 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로 인천 전자랜드(현 대구 한국가스공사)에 입성했다. 전력이 떨어졌던 전자랜드였기에, 박성진의 가세는 전자랜드에 반가운 일이었다. KBL 또한 박성진의 입성을 꽤 기대했다.
2009 KBL 국내신인선수 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로 프로에 입성했습니다.
‘뽑혔으면 좋겠다’고만 생각했어요. 지명되는 것 자체만으로도, 기분이 좋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선수 박성진’은 당시 강력한 1순위 후보였습니다.
지명 순위에는 아무런 욕심을 내지 않았습니다. 1순위로 전자랜드에 입단했을 때도, 운이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기분도 너무 좋았고요.
비하인드 스토리도 있을 것 같아요.
국내신인선수 드래프트 하루 전, 귀화혼혈선수 드래프트가 먼저 열렸습니다. 당시 대학교 관계자 분들 사이에서 “국내 선수들을 먼저 선발해야 하는 거 아니냐?”는 여론이 형성됐습니다. 그런 것 때문에, 드래프트장을 잠시 떠났다가 들어오기도 했습니다. 제 기억이 100%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랬던 기억이 납니다.
개인적인 에피소드도 있으셨나요?
드래프트 전날에 트라이아웃을 뛰었어요. 하지만 몸이 좋지 않았어요. 턱 쪽에 염증이 있었거든요. 볼이 부은 상태에서 경기를 뛰었죠. 드래프트 당일도 마찬가지였어요. 그렇지만 결과가 좋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전자랜드 농구단의 첫 인상은 어떻던가요?
연습 경기 때 전자랜드 농구단을 많이 방문했습니다. 그렇지만 입단하는 건, 다른 문제였어요. 전자랜드 농구단이 제 직장이 된 거니까요.
당시 (서)장훈이형(방송인)과 (신)기성이형, (정)영삼이형(이상 SPOTV 해설위원) 등 뛰어난 형들이 전자랜드에 있었습니다. 그런 형들과 함께 해서 좋았어요. 형들한테 많은 걸 배울 수 있었거든요.

박성진은 드래프트 동기들 중 가장 먼저 프로 팀의 부름을 받았다. 꽃길이 예상됐다. 하지만 프로에 입단하고 보니, 숱한 가시밭길이 박성진 앞에 펼쳐졌다.
박성진은 먼저 전자랜드의 많은 훈련량을 소화해야 했다. 꽤 힘들었다. 하지만 부족함을 채워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다. 그래서 험난한 훈련 일정을 착실히 소화했다. 그 결과, 프로 선수로서 한 번 밖에 탈 수 있는 신인왕을 차지했다. 전자랜드 구단 역사상 최초 신인왕인 것 역시 의미 있는 발자취였다.
전자랜드는 훈련량이 많은 팀으로 유명했습니다.
제가 데뷔할 때, 전자랜드가 최하위를 했습니다. 반등하기 위해 운동을 더 많이 했어요. 새벽과 오전, 오후와 야간 모두 소화했습니다. 새벽부터 일어나야 하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쉴 틈도 없었고요. 전자랜드 운동이 많이 힘들기는 했습니다.(웃음)
2009년 10월 16일. 데뷔전을 치른 날입니다.
(박성진은 서울 SK를 상대로 23분 24초 동안 2점 4어시스트 3리바운드 3스틸을 기록했다)
기억이 정확하게 나지는 않지만, ‘잘해보자. 한 번 씹어먹자’는 마음이 강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는 크더라고요. 외국 선수의 유무도 컸고, 당시에는 ‘수비자 3초룰’(수비자가 수비 의사 없이 페인트 존에 3초 이상 있으면, 수비하는 팀이 자유투 1개와 공격권을 상대에 줘야 한다)도 존재했습니다. 모든 게 새로웠어요. 그래서 시간이 더 필요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신인왕을 차지했습니다.
저 스스로는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했어요. 힘과 경기 운영 등 기본이 부족했어요. 부족한 걸 메우려고 운동을 열심히 했는데도, 많이 부족하더라고요.(웃음) 하지만 유도훈 감독님(현 대구 한국가스공사 감독)과 코칭스태프께서 저를 신인왕으로 만들어주기 위해 노력하셨습니다.

위에서 이야기했듯, 박성진은 김해가야고와 중앙대 시절 특급 유망주로 인정받았다. 그러나 프로에서는 아마추어 때만큼의 활약을 하지 못했다.
물론, 커리어 하이 시즌도 있었다. 그러나 기대만큼의 기록은 아니었다. 게다가 커리어 하이를 찍은 후, 박성진의 경기력이 급격히 떨어졌다. 출전 기회 역시 점점 줄어들었다. 박성진에게도 ‘은퇴’라는 단어가 찾아왔다.
2013~2014시즌 커리어 하이를 찍었습니다.
(해당 시즌 정규리그 전 경기에 출전한 박성진은 경기당 23분 20초 동안 7.1점 2.7어시스트 1.6리바운드를 기록했다)
신인왕을 차지했던 시즌과 비슷했던 것 같아요. 유도훈 감독님께서 기회를 많이 주셨어요. 그래서 저도 공격적이고 적극적으로 할 수 있었죠. 그렇게 한 게 좋은 기록으로 연결된 것 같아요.
2016~2017시즌부터는 기회를 얻지 못했습니다.
(박성진은 데뷔 시즌부터 2015~2016시즌까지 정규리그 50경기 이상을 뛰었다. 그러나 2016~2017시즌부터 2018~2019시즌까지 도합 20경기를 뛰는데 그쳤다)
부상이 있는 건 아니었어요. 다만, 제가 감독님의 기대를 충족하지 못했어요. 많이 모자랐다고 생각해요.
2019~2020시즌 종료 후 은퇴하셨습니다.
더 있어봐야, 경기를 뛰지 못할 것 같았어요.(웃음) 조금이라도 기회가 있다면, 더 버텼을 건데... 기회가 전혀 없을 거 같았어요. 다른 일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죠.

‘goat’는 ‘염소’를 의미하는 영 단어다. 그러나 다른 의미도 있다. ‘G.O.A.T(the Greatest Of All Time)’로 ‘역사상 최고의 인물’을 뜻하기도 한다. 스포츠에서는 ‘역사상 최고의 선수’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박성진이 은퇴 후 운영하고 있는 체육관 이름이 ‘G.O.A.T BASKETBALL’이다. 자신이 가르쳤던 선수가 최고가 되길 바란다는 의미다. 덕분에, 박성진의 근황을 알 수 있었다. 박성진의 현재 직업은 ‘유소년 농구 강사’다.
은퇴 후에는 어떻게 지내셨나요?
1년 넘게 푹 쉬었습니다. 결혼도 했고요. 그리고 할 일을 찾았습니다. 고향인 김해로 내려왔고, 2021년 2분기쯤 ‘G.O.A.T BASKETBALL’을 만들었습니다. 제가 가르치고 있는 유소년 친구들이 최고가 됐으면 하는 마음에, ‘G.O.A.T BASKETBALL’이라는 이름을 걸었습니다.
유소년을 가르치게 된 이유가 있으신가요?
원래는 수도권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려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자리가 없더라고요. 그러다가 고향(김해)으로 가는 길에 창고 하나를 봤습니다. 거기에 체육관을 만들기로 결심했죠.
또, 저희 때만 해도, 김해 쪽 농구가 괜찮았습니다. 하지만 경남 농구가 최근에 많이 떨어졌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런 이유 때문에, 경남 농구에 이바지하고 싶은 마음도 컸습니다.
눈높이를 많이 낮춰야 하는 일입니다. 쉽지 않으셨을 것 같아요.
프로에서는 잘하는 선수들만 경험했습니다. 그렇지만 어린 선수들을 가르치려면, 말씀하신 대로 눈높이를 낮춰야 합니다. 하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더 낮춰야 되더라고요.(웃음)
처음에는 많이 당황했습니다. 그러나 눈높이를 더 낮추고, 아이들과 이야기도 많이 했습니다. 특히, 농구가 재미있는 스포츠라는 걸, 아이들에게 알려주고 싶었어요. 아이들이 농구에 흥미를 느끼게 하는 게, 제 임무라고 생각했습니다.
‘뭐하고 지내세요?’의 마지막 주제는 자신의 농구 인생을 돌아보는 것이다. 박성진에게도 같은 질문을 했다. “자신의 농구 인생이 어땠냐?”고 말이다.
박성진은 한참을 생각했다. 그가 내린 결론은 하나였다. “행동을 실천으로 옮겨야 한다”였다. 후회의 감정이 섞인 멘트였기에, 박성진이 내린 결론은 진솔해보였다.
‘농구’는 어떤 의미인가요?
농구를 오랜 시간 했습니다. 좋았던 기억도 안 좋았던 기억도 있죠. 하지만 앞으로는 좋은 기억만 있기를 바랍니다.(웃음)
‘박성진의 농구 인생’을 한 번 돌아봐주세요.
음...(질문을 들은 박성진은 한참을 생각했다. 많은 생각에 잠긴 듯했다)
예전에는 생각했던 걸 행동으로 옮기지 못했습니다. 많이 게을렀던 것 같아요. 하지만 이제는 생각했던 걸, 행동으로 옮겨야 합니다. 더 이상의 후회를 남기지 않으려면, 몸이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태어나도 농구를 하실 건가요?
글쎄요.(웃음) 농구도 매력적인 스포츠지만, 다른 스포츠도 한 번 해보고 싶어요. 또, 어릴 때 농구를 안 했다면, 축구를 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물론, 운동이라는 게 쉽지는 않지만. 그래도 운동선수를 할 것 같아요.(웃음) 어릴 때부터 공을 가지고 하는 운동을 좋아했거든요.
일러스트 = 정승환 작가
사진 제공 = KBL, 박성진(본문 5~6번째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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