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코 인사이드] 짧았던 전성기만큼 화려하게 빛난 별, 아티머스 맥클레리

BAKO INSIDE / 김영훈 기자 / 2021-03-11 00:33:12

※ 본 기사는 1월 중순에 작성했으며, 바스켓코리아 웹진 2021년 2월호에 게재됐습니다.(바스켓코리아 웹진 구매 링크) 


2000-2001시즌은 삼성에게 잊을 수 없는 시즌이다. 단 두 번 뿐인 삼성의 우승 역사에서 첫 번재 페이지에 기록된 시즌이다. 당시 삼성은 주희정-이규섭-문경은 등 화려했던 국내 선수에 아티머스 맥클래리가 방점을 찍으며 화려하게 빛났다.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지만, 첫 시즌 화려하게 빛나며 엄청난 임팩트를 남긴 아티머스 맥클래리의 이야기를 다뤄보았다.

물음표가 가득했던 맥클래리, KBL에 입성하다
2000-2001시즌을 앞두고 KBL은 외국 선수 규정을 변경했다. 두 명의 외국 선수 신장 합계가 399cm를 넘지 않도록 했다. 또한, 한 명의 키가 208.3cm를 넘지 않도록 확정했다.

이후 열린 KBL 외국 선수 드래프트. 수원 삼성(현 서울 삼성)은 버넬 싱글턴과 손을 잡지 않고 새롭게 출발을 다짐하며 외국 선수 드래프트에 참가했다.

하지만 그들에게 주어진 순번은 전체 10순위. 당시 드래프트에서 1순위 유력 후보로는 마이클 매덕스가 거론된 가운데, 이어 에릭 이버츠, 데이먼 플린트, 리온 데릭스 등도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이들은 삼성과 거리가 멀었다.

당시 지휘봉을 잡고 있던 김동광 감독은 다른 곳으로 눈을 돌렸다. 그는 힘이 좋고 다부진 체격을 갖춘 한 선수를 눈여겨보고 있었다. 191cm의 신장에 골밑 플레이어인 아티머스 맥클래리가 그 주인공이었다.

김동광 감독은 “당시 외국 선수 스카우터가 맥클래리가 좋다고 추천했다. 트라이아웃에서 봤는데, 나도 의아했다. 키도 작은데, 인사이드 공격이 많더라. 과연 좋은 모습을 보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고심 끝에 김동광 감독의 선택은 맥클래리였다. 삼성은 이어 11순위로 무스타파 호프를 선발했다. 전 시즌 대구 동양(현 고양 오리온스)에서 활약한 호프는 궂은일에 능한 선수였다. 맥클레리가 득점력이 있다고 확신했기에 받쳐줄 만한 선수인 호프를 영입하며 외국 선수 구상을 마쳤다.


“누가 나를 의심해?” 실력으로 증명한 아티머스 맥클래리

사실 다른 구단들은 맥클래리 선발에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때문에 누구도 주목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러한 시선이 뒤집히기까지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맥클래리는 시즌 전 열린 시범경기에서 자신을 향한 평가를 뒤집었다. 시범경기 4경기 평균 27.3점 9.3리바운드 6.3어시스트를 기록했다. 내외곽 공격이 모두 가능하며, 수비와 리바운드 능력도 탁월했다.

시즌에서도 맥클래리의 위력은 그대로 이어졌다. 개막 6경기 연속 더블더블을 작성하며 팀의 6연승을 이끌었다. 뛰어난 힘과 유연함, 볼 핸들링과 넓은 공격 범위 등 다양한 능력을 갖춘 그는 팀의 중심이었다.

꾸준히 좋은 모습을 보인 맥클래리는 45경기 전 경기에 출장해 25.1점 10.3리바운드를 기록했다. 이타적인 모습도 보이며 4.8어시스트를 남겼다. 1.8개의 스틸과 1.6개의 블록슛도 더했다.

맥클래리를 앞세운 삼성은 독주를 내달렸다. 정규리그가 펼쳐진 123일 가운데, 107일 동안 1위를 사수했다. 맥클래리를 필두로 주희정, 이규섭, 문경은이라는 국내 선수에 호프도 제 역할을 하며 삼성의 선두를 내주지 않았다.

정규리그를 휩쓴 삼성은 4강 플레이오프에서 안양 SBS를 만났다. 자신감이 오른 삼성은 3승 1패를 거두며 SBS를 제압했고, 정상을 향해 한 걸음만 남겨뒀다.

챔프전 상대는 창원 LG. 김태환 감독이 이끌며 조성원이 주축인 팀이었다. 하지만 LG 역시 삼성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1차전부터 115-99, 16점차 대승을 챙기며 기선제압에 성공했다. 맥클래리는 33점 10리바운드 8어시스트라는 트리플더블급 활약을 펼치며 팀에 첫 승을 안겼다.

2차전에 주춤하며 패한 삼성은 3,4차전 적지에서 두 번의 승리를 따냈다. 그리고는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열린 마지막 5차전에서 승리하며 마침내 첫 우승을 차지했다. 맥클래리는 마지막 경기에서 41점을 퍼부으며 팀이 전 시즌 준우승의 설움을 푸는 것에 일조했다.

챔프전 우승을 일등공신은 단연 맥클래리였다. 5경기 연속 30점 이상을 기록한 그는 5경기 평균 35.4득점 13.8리바운드 5.0어시스트를 기록했다. 챔프전에서 35점 이상 기록한 선수는 그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맥클래리는 첫 시즌 만에 외국 선수상, 베스트5, 올스타전 MVP 등 여러 타이틀을 휩쓸었다. 2000-2001시즌을 자신의 시간으로 만든 맥클래리는 한 번 더 삼성과 손을 잡았다.

영원할 줄 알았던 맥클래리, 부상에 눈물 짓다
삼성은 맥클래리와 호프 듀오를 다시 앉혔다. 문경은이 우지원으로 바뀌었지만, 이규섭과 주희정이 건재하기에 삼성은 상위권에 위치할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예상과 달랐다. 삼성은 하위권 팀들에게도 패하며 중위권에 머물렀다. 이유는 외국 선수들의 경기력 저하. 맥클래리는 두 번째 시즌 무릎 부상으로 인해 예년과 같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김동광 감독은 “두 번째 시즌부터 알았는데, 그동안 맥클래리가 무릎 관리를 못했다고 했다. 계속 외곽에 나와서 3점만 던지더라. 그래서 그 때 알았다. 심지어 호프도 똑같이 무릎을 다쳤다”고 기억했다.

무릎이 좋지 않았던 맥클래리와 호프는 1월 초 이후로 한 달간 휴업에 들어갔다. 삼성은 제런 콥과 이산 스캇을 대체로 영입했다. 하지만 이들의 기량은 호프와 맥클래리 듀오에 한참 못 미쳤다. 삼성은 8연패의 수렁에 빠지며 하위권까지 추락했다.

결국 삼성은 맥클래리와 호프를 다시 데려오며 막판 도약을 꿈꿨다. 그러나 이미 삼성의 순위는 너무 내려간 상태였다. 맥클래리가 21.9득점 9.7리바운드 4.4어시스트 2.2스틸을 기록했음에도 팀은 8위로 정규리그를 마쳤다.

당시 맥클래리와 함께 뛰었던 호프는 국내 한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그때도 우리는 좋은 팀이었다. 하지만 부상이 우리의 경쟁력을 떨어뜨렸다. 프로에서 2년 연속 우승이 얼마나 힘든지 알게 됐던 시즌이었다”며 2001-2002시즌을 회상했다.

결국 맥클래리는 부상으로 인해 경쟁력이 없다고 판단되었고, 다음 시즌 재계약을 하지 못했다.


임팩트를 남겼던 맥클래리, 그의 KBL 마지막 이야기

맥클래리는 한 시즌 동안 충분한 휴식을 취하며 무릎 컨디션을 끌어올렸다. 잠시 필리핀에서 뛰며 소속 팀을 우승시키기도 했다.

한국과 다시 인연이 없을 것 같았던 맥클래리는 2004년 1월, 깜짝 소식을 전한다. 대구 오리온스(현 고양 오리온)의 대체 외국 선수로 KBL을 다시 찾은 것이다. 복귀 후 그는 20경기에서 21.5득점 8.4리바운드 2.9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준수한 모습을 보여줬다.

맥클래리가 활약한 오리온스는 정규시즌 3위에 올르며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하지만 팀은 안드레 페리맨과 빅터 토마스가 활약하던 6위 창원 LG에게 1승 2패로 패하며 4강 진출에 싪패했다(당시 3차전은 토마스의 라인크로스 오심으로 지금까지 회자되고 있다).

KBL에서의 3번째 시즌을 짧게 마친 맥클래리는 한국과 안녕을 고했다. 외국 선수 제도가 자유계약으로 바뀌면서 더 이상 그를 찾는 팀이 없었기 때문. 이미 서른을 넘긴 맥클래리는 이후 필리핀에서 한 시즌을 더 뛴 뒤 농구 선수 생활을 마쳤다.

맥클래리의 첫 시즌 임팩트는 지금도 회자될 정도로 대단했다. 하지만 그의 전성기는 한 시즌에 불과했다. 아티머스 맥클래리, 그를 짧지만 화려했던 별로 비유할 수 있을 것 같다.

사진 제공 = KBL

바스켓코리아 / 김영훈 기자 kim95yh@basketkorea.com

[ⓒ 바스켓코리아.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김영훈 기자 김영훈 기자

기자의 인기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