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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코 인사이드] 추억의 외인(外人) - 소리 없이 강한 외국인 선수, 찰스 민렌드

기사승인 2020.02.24  17:0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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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스켓코리아 = 김영훈 기자] 바스켓코리아는 매달 추억의 외국인 선수를 짚어보는 시간을 가지고 있다.

5번째 시간의 주인공은 찰스 민렌드. 시작은 많은 말들이 나왔으나 경기에서는 소리 없이 조용했던 선수. 9위 KCC를 정상으로 올려놓은 선수. KBL이 찾는 정석적인 외국인 선수.

찰스 민렌드의 이야기를 되짚어보았다.

※ 본 기사는 바스켓코리아 12월호 웹진에 게재된 글입니다.

민렌드가 나와? 왜?
2003년 7월 중순, KBL 10개 구단 감독 및 관계자들이 미국 시카고에 모였다. 외국인 선수 선발을 위해서였다. 그곳에 모인 농구인들은 일제히 한 선수를 놓고 이야기했다. 바로 찰스 민렌드.

KBL에 올 선수가 아니었기 때문. 그의 이력에서 답을 알 수 있었다. 카메룬 태생인 민렌드는 메이저 컨퍼런스 중 하나인 BIG EAST의 세인트 존스 대학교에 입학한다. 신입생부터 준수한 활약을 펼친 그를 막은 것은 부상. 햄스트링 부상으로 1년을 쉰 민렌드는 졸업 이후 해외로 눈을 돌린다. 

민렌드의 첫 소속팀은 프랑스 리그의 몽펠리에. 민렌드는 자신의 첫 직장에서 3시즌을 뛴다. 마지막 해에 득점 1위를 차지한 그는 한 단계 높은 이스라엘로 거취를 옮긴다. 

무대의 수준은 높아졌으나 민렌드의 활약은 여전했다. 2년 연속 득점왕에 리그 MVP 수상. 유럽에서도 상위 레벨인 이스라엘 리그를 씹어 먹은 것이다.

프랑스를 넘어 이스라엘까지 삼킨 민렌드의 선택은 KBL이었다. 당시는 물론 지금 생각해도 의문이었다. 유럽에서 손꼽히는 곳들을 차례로 평정한 그가 선택한 곳이 아시아의 작은 나라, 대한민국이었다. 

이유야 어쨌든 민렌드가 온다는 소문에 KBL이 들썩거리는 것은 당연했다. 1순위만 나온다면 그를 뽑지 않을 것이 없었다. 

모두가 바라던 첫 번째 지명은 전주 KCC에게 돌아갔다. 당시 재임하던 신선우 감독은 고민 없이 곧바로 민렌드를 지명했다. 이것이 민렌드와 KCC 그리고 KBL과의 인연의 시작이었다.

정상 탈환 조건은 갖춰졌다, 그런데.... 
민렌드가 들어온 KCC는 정상 탈환의 여건이 마련되었다며 행복한 웃음을 지었다. 신선우 감독도 “민렌드가 오면서 국내 선수들이 자신감을 얻는 계기가 되었다”며 밝은 미래를 꿈꿨다. 

여러 기대 속에 맞은 시범경기. 그런데 무언가가 이상했다. 시범경기부터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첫 경기 34점 19리바운드를 올린 것을 제외하면 조용했다. 주위에서도 너무 큰 기대 탓에 실망의 목소리가 많았다. 

2003-2004 시즌은 ‘포스트 힉스’가 누구인지 찾는 것에 모두가 혈안이 되어 있을 때였다. 마르커스 힉스는 앞선 두 시즌 KBL 무대를 제패했던 선수. 그가 떠난 뒤 정상에 오를 외국인 선수는 민렌드가 유력했다. 

하지만 민렌드가 가장 앞선 것으로 예상된 최고 외국인 선수 후보 자리에는 몇 명이 더 있었다. 앤트완 홀(당시 원주 TG)과 RF 바셋(당시 울산 모비스), 앨버트 화이트(인천 전자랜드) 등이 같이 자리했다. 민렌드를 두고서는 “외곽슛 정확도가 떨어진다”, “팀 플레이를 깨는 경우가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조금의 의심이 생긴 뒤 개막한 시즌, 민렌드는 첫 경기에서 25점 11리바운드를 기록했다. 팀이 넣은 76점 중 3분의 1을 홀로 했으니 좋은 활약이었다. 하나, 민렌드의 대한 평가는 박했다. 후반에 서장훈에게 막히며 승부처에 조용했던 것이 문제였다. 서장훈 역시 “세트 오펜스 상황에서는 민렌드를 충분히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민렌드, 모두의 의심을 지우다 
첫 경기에서도 좋지 않은 모습이던 민렌드는 다음 경기부터 진가를 보여줬다. KCC가 두 번째로 만난 상대는 원주 TG. 전 시즌 우승 팀이었다. 이상민도 없는 KCC는 TG를 격파했다. 민렌드는 결승골을 올렸고, 18점 11리바운드로 제 몫을 다했다. 

이후 민렌드는 순항을 이어가면서 리그를 평정하기 시작했다. 시즌 전 소문대로 화려한 개인기와 탁월한 득점 능력으로 꾸준히 득점포를 가동했다. 54경기에 출전해 20점 이상 기록한 경기만 해도 44게임. 즉, 코트에만 내보내면 20점은 무조건 해줬다.

민렌드가 의심을 지우자 KCC도 날아다녔다. 이상민, 조성원, 추승균 트리오와 민렌드, 무스타파 호프 등이 시너지를 낸 KCC를 막을 팀은 많지 않았다. 

연일 승전보를 울리던 KCC의 시즌 최종 정적은 39승 15패. 원주 TG에 1경기차로 뒤진 정규리그 2위였다. 전 시즌 9위였던 KCC는 불과 한 시즌 만에 2위로 치고 올라온 것이다. 

여러 이유들이 있었겠지만 가장 큰 요인은 민렌드였다. 전 시즌 전희철까지 있었음에도 꼴찌를 했던 이유는 외국인 선수들의 기량 미달. 그러나 민렌드가 들어오면서 이를 지워냈다. 여름 KBL을 뜨겁게 달군 자신의 진가를 확실히 보여줬다. 

민렌드의 시즌 평균은 27.2점 11.8리바운드. 득점은 1위였고, 리바운드는 2위였다. 이름값을 그대로 증명해낸 셈이다. 민렌드는 결국 한국에 온지 한 시즌 만에 외국인선수상을 수상했다.

9위에서 정상으로, 우승청부사 민렌드 
KCC는 트레이드 마감 직전, 대형 거래를 성사시킨다. 모비스에 있던 RF 바셋을 영입하면서 무스타파 호프를 내주는 트레이드였다. 민렌드의 고군분투가 안쓰러웠던 KCC는 그의 짐을 덜어줄 선수를 구해온 것이다.

(KCC는 모비스에 트레이드 권리 한 장도 넘겨준다. 이는 1라운드 1픽이 되었다. 결국 전체 1순위로 모비스에 넘어간 선수는 양동근. 훗날 모비스에 6번의 우승을 선사하는 선수가 된다.)

승부수를 던진 KCC는 플레이오프에 들어서서 본격적으로 대권 도전에 나선다. 4강 플레이오프 상대는 LG. KCC는 손쉽게 LG를 물리친다. KCC는 모든 부분에서 우위에 있었고, 3전 전승으로 챔프전에 직행한다. 

챔프전 상대는 정규리그 1위 원주 TG. 하지만 정규리그 전적은 KCC가 4승 2패로 유리한 상황이었다. 상대 전적의 우위는 1차전부터 드러났다, 민렌드를 앞세운 KCC는 8점차 승리를 따냈다. 2차전에서는 16점으로 격차를 더 벌렸다. 적지에서 2승을 챙긴 KCC의 우승이 가까워진 순간이었다. 

그러나 TG도 만만치 않았다. 전주에서 2승으로 갚아주면서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다. 균형인 상태에서 열린 5차전, KCC에 영웅이 나타났다. 바로 찰스 민렌드. 33점을 퍼부으면서 KCC에게 3번째 승리를 안겼다. 

그러나 너무 방심했을까. KCC는 6차전에 68점을 넣는 빈곤한 공격력 탓에 무릎을 꿇었다. 

운명의 7차전. KCC에게 두 번의 실수는 없었다. 1쿼터 열세를 서서히 극복하면서 83-71로 승리를 거뒀다. 민렌드도 16점 10리바운드로 준수한 활약을 더했다. 결국 2003-2004 시즌의 챔피언은 전주 KCC의 차지였다. 

민렌드는 한국에 온 첫 시즌만에 우승을 거머쥐었다. 이스라엘에서 하위권 팀을 정상에 올려놓은 것을 한국에서도 재현한 셈이다. 하지만 우승청부사 민렌드의 한국 시즌은 이제 시작이었다.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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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 = KBL

김영훈 kim95yh@basket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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