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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무대’ NBA로 향하는 황인태 심판 “최대한 즐기면서 많이 배우겠다”(일문일답)

기사승인 2020.01.06  14:4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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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스켓코리아 = 신사/김준희 기자] “최대한 즐기면서 많이 배우고, 그걸 심판들과 나눠서 한국 농구 발전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 싶다.”

KBL(한국농구연맹)은 6일 서울 신사동 KBL센터에서 아시아 최초로 ‘NBA Referee Development Program’에 초청받은 황인태 심판의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황 심판은 2004년 대한민국농구협회 심판을 시작으로 2008년부터 KBL 심판으로 활약했다. 플레이오프 포함 총 465경기에 출장한 베테랑이다. FIBA(국제농구연맹) 국제 심판으로 국제 대회도 다수 참가했다. 특히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선 여자농구 결승전 심판으로 활약한 바 있다.

황 심판이 초청받은 ‘NBA Referee Development Program’은 NBA, G리그, WNBA 심판이 되기 위한 교육과정으로 총 85명의 교육생이 참가하고 있다. 대학/고등부 경기 등에서 심판으로 활동하고, 경기가 없을 시에는 ‘NBA Referee Operation 팀’의 일원으로 NBA 사무국에 출근해 경기분석 방법, 프로 심판 활동에 필요한 자료 제작 참여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학습할 계획이다. 해당 교육 과정 수료 후에는 NBA 심판으로 활동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인터뷰에 앞서 홍기환 KBL 심판부장은 “NBA와 FIBA가 협약을 맺어서 글로벌 서머캠프를 운영한다. FIBA에서 매년 유럽과 아시아에서 우수한 심판들을 한두 명씩 추천한다. 그 심판들이 NBA에 초청받는 식이다. 황 심판은 2017년부터 2019년까지 3년 연속 초청을 받았다. 2019년엔 정식적으로 라스베이거스 서머리그에 투입돼 4경기를 소화했다”고 황 심판의 경력에 대해 설명했다.

이어 “(황 심판이) 지난해 6월 1차 시험에선 고배를 마셨다. 이후 NBA 심판위원장인 미쉘 존슨으로부터 이메일을 통해 정식적으로 이 프로그램에 대한 제의를 받았다. 3번의 기회를 주겠다고 했다. 황 심판도 도전 여부에 대해 고심한 끝에 지난해 12월 결정을 내렸다”고 프로그램 참가 계기에 대해 밝혔다.

다음은 황인태 심판과 나눈 일문일답.

처음 제의를 받았을 때 어떤 느낌이었나?
믿기지가 않았다. NBA는 TV에서나 보는, 정말 꿈에서나 그리던 무대다. 서머리그 가서 심판을 봤을 땐 ‘좋은 경험한다. 잠깐이지만 배워간다’는 생각이었다. 이 프로그램을 수료한다고 곧바로 NBA 심판이 되는 건 아니다(프로그램 수료 후 G리그 심판으로 활동 가능. 이후 NBA에 도전할 수 있다). 그래도 이런 기회가 주어졌다는 생각에 꿈만 같다. 내가 잘해서 간다거나 다른 심판들보다 뛰어나서 가는 건 아니다. 운이 좋았던 것 같다. 앞서 선배님들께서 길을 닦아 놓으셨기 때문에 한 발 다가갈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낯선 도전인데 두렵지는 않나?
지금도 두렵다. 모든 게 다 새로운 경험이다. 나 혼자 간다면 어떻게든 부딪쳐볼 수 있겠지만, 가족이 함께 가야 하기 때문에 기본적인 부분부터 생각을 많이 했다. 망설였고, 두려운 부분이 많았지만 그래도 가족들이 응원해줘서 결심할 수 있었다.

구체적인 대우는 어떻게 되나?
연봉을 밝힐 수는 없다. 여기서 받는 연봉보단 조금 적다. 심판 신분이 아니고 교육생 신분이기 때문이다. 거기서 3년 동안 기회가 주어진다(매년 6월 테스트가 열린다). 합격하게 되면 G리그 심판이 된다. G리그 심판이 되면 지금보다 연봉은 올라간다. 이후에는 특별한 제한 없이 NBA 심판에 도전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감회가 남다를 것 같은데, 지금까지 심판 경력을 돌아보면 어떤가?
아직까지 많이 모자란 것 같다. 갑자기 가게 돼서 준비할 게 너무 많다. 도착해야 숨을 고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잠깐 생각해보면, 심판이란 직업은 욕 먹는 직업이라고 하지 않나. 어느 정도 사실이다. 심판들끼리 하는 얘긴데, ‘우린 100점에서 깎아 먹고 나오는 직업’이라고 한다. 욕을 많이 먹기 때문이다. 그래도 나는 농구가 너무 좋다. 농구가 있었기 때문에 이 자리에 있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심판이 주인공이 되면 안되고, 될 수 없지만 농구의 한 부분으로써 꼭 필요한 직업이다. 농구를 그만큼 좋아하기 때문에 많은 생각이 든다(황 심판은 이 대목에서 눈물을 약간 글썽였다).

NBA에 도전하게 된 구체적인 계기가 있을까?
머릿속으로만 생각하는 정도였다. 어떻게 해야 될 수 있는지도 몰랐다. 열심히 하다 보니 서머리그도 가게 됐다. 운이 좋았던 것 같다. KBL에서도 기회를 열어줬다.

NBA 심판과 한국 심판은 어떤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나?
NBA도 보면 실수가 나온다. 서머리그 때 가서 느낀 건 일관성이다. 어떤 상황에 대해 콜이 나오는 건 사람이니까 다를 수 있다. 그러나 규칙이나 시그널, 선수들의 질의응답 이런 건 매뉴얼이 있다. 획일적으로 탁 치면 탁 나오는 일관성이 있다. 기본에 충실하더라.

언어적인 준비는 어느 정도 되어있나?
언어적인 부분이 크다. 제일 큰 문제다. 미국에서 하는 영어 뉴스를 하루에 3시간씩 들어서 듣는 부분은 문제없다. 다만 환경상 영어로 말을 할 수 없다 보니 그 부분이 부족하다. 실생활하는 부분에 있어서 애로사항이 있을 것 같다. 국제 대회도 나가보고, 서머리그도 가봤지만 생활은 다 똑 같은 것 같다. 여담이지만 KBL 외국 선수들과 타임아웃 전이나, 자유투 던질 때 잠깐 서는 기회가 있다. 그럴 때 ‘미국에선 저지를 바지 속으로 넣으라는 말을 어떻게 하느냐’ 등 한마디씩 물어봤었다. 친절하게 가르쳐준다. 그런 식으로 배웠고, 나름대로 준비했다.

NBA처럼 더 큰 무대로 가야겠다는 동기부여는 어디서 얻었나?
막연하게 머릿속에는 있었다.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처음 심판이 됐을 때 꿈이 올림픽에 가서 한 경기라도 보는 거였다. 그게 내 꿈이었다. 근데 지난 2016년 올림픽에서 여자농구 결승 심판을 봤다. 내가 꿈꿔왔던 것 이상을 이뤘기 때문에 그 이후부터는 보너스라고 생각한다. 심판은 절대 혼자 잘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기회가 왔기 때문에, 가서 선진 문화를 보고 배워서 다른 심판들과 나누고 싶다. 그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동기라고 생각한다.

동료 심판들의 반응은 어땠나?
다 축하해줬다. 우스갯소리로 가면 돌아오지 말라고 하더라(웃음).

한국을 대표해서 간다는 책임감, 부담감이 있을 것 같은데?
부담감이 크다. 내가 선수도 아니고, 심판이 주인공이 아니다. 이렇게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도 많이 부담스럽다. 그러면서도 열심히 해야겠다는 사명감이 생기는 것 같다.

구체적인 업무 절차가 어떻게 되나.
뉴욕과 뉴저지에 사무실이 있다. 두 군데 다 출근한다. 뉴욕과 뉴저지를 비롯해 코네티컷 등 총 4개 주에 있는 대학에서 심판을 본다. 이벤트성 대회도 참가한다.

2016년 리우올림픽 여자농구 결승전 심판을 봤을 땐 어땠나?
16강 이후에 경기가 없었다. 심판 배정이 없어서 여기까지라고 생각했다. 올림픽까지 왔고, 꿈꿔왔던 이상으로 이뤘으니까 나머지 일주일은 좋아하는 농구 관중석에서 편하게 보다가 가자는 생각이었다. 남자농구 준결승전을 보고 있는데, 뒤에서 스페인 심판이 어깨를 주무르면서 축하한다고 하더라. ‘뭘 축하하느냐’고 물어봤더니 ‘결승전 심판으로 배정됐다’고 했다. 농담하지 말라고 했더니 휴대폰으로 배정표를 보여주더라. 처음엔 보고 멍했다. 눈물이 나더라. 한국 사람이라는 자긍심이 들었다.

‘이 경기는 꼭 심판을 보고 싶다’는 게 있나?
솔직하게 말씀드리겠다. 그런 거에 욕심 내본 적은 없다. 심판이란 직업은 한 경기, 한 경기가 소중하다. 어떤 경기든 들어가면 잘 끝내고 나오고 싶다는 욕심은 있다. 특정 경기의 심판을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한 번도 없다.

댓글을 보니 ‘이름을 잘 모르는 심판인 걸 보면 잘 보는 심판’이라는 말이 있더라.
저희 심판 쪽에서는 이렇게 얘기한다. ‘욕 많이 먹는 심판이 잘 보는 심판’이라고. 어려운 판정을 많이 한다는 거다. 어려운 판정이기 때문에 그만큼 위험성이 있다. 실수하는 경우가 나온다. 그게 부각되서 심판들이 부각되는 것 같다. 팬들이 이름을 잘 모른다고 해서 잘 보는 심판은 아닌 것 같다. 나는 배워야 할 게 더 많다.

연세대 정재근 감독과 트러블이 있었다고 들었다. 당시 ‘심판 생활에 대한 회의감이 들었다’고 했던데.
심판 경력 중에 지나가는 낙엽이라 생각한다. 농구가 과격한 경기이기 때문에 감정적으로 흥분하는 경우도 나온다. 그래도 다른 리그 보면 한국 리그는 양반인 것 같다. 불미스러운 일도 있었지만, 지나간 에피소드라 생각한다.

다른 나라에선 KBL 심판들이 판정을 잘하는 편이라고 한다. KBL 심판으로서 평가절하되고 있다는 생각에 서럽진 않나?
그게 서럽다고 생각하면 심판 관둬야 한다. 하나 자부할 수 있는 건 KBL 심판들은 아시아는 물론, 유로리그 심판들과 견줘도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각오를 말해달라.
첫번째는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현재 내가 목표했던 것 이상으로 나아가고 있다.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보너스라고 생각한다. 최대한 즐기면서 많이 배우고, 그걸 심판들과 나눠서 한국 농구 발전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 싶다. 열심히 하고 오겠다.

감사한 사람들이 있나?
다 감사하다. 특히 동료 심판들하게 감사하게 생각한다. KBL 심판은 연차가 적든, 오래됐든 다른 사람보다 뛰어난 게 분명히 한 가지씩은 있다. 거기서 좋은 점을 하나씩만 뽑아도 나를 제외하고 19개다. 그동안 은퇴하신 선배님들을 비롯해 좋은 점을 하나씩 배울 수 있었던 것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한다.

(홍기환 심판부장에게) 황인태 심판의 장점 소개와 덕담 한 마디 부탁한다.
우선 저희 심판부에 전력 손실이 크기 때문에 운영에 애로사항이 많아졌다(웃음). 황 심판의 장점은 강직성이다. 앞서 말씀하셨지만, 이름이 거론되지 않는다는 건 그만큼 강직하기 때문이다. 방향성이 좋은 심판이다. 개인적으로 얘기했던 게, 미국에서 성공해서 더 이상 한국에서 보지 말자고 했다. 나 역시도 NBA 무대를 꿈꿔왔던 사람이다. 황 심판한테 고맙다고 했다. 도전에 대해 고뇌하면서도, 가족들까지 데리고 가서 도전하겠다고 해서 고맙다고 했다. 우리도 일종의 대리만족인 셈이다. 우리가 꿈꿔왔던 무대에 가기 때문에, 도울 수 있는 건 뭐든지 돕겠다는 마음이다. 너무 자랑스럽다.

사진제공 = KBL

김준희 kjun0322@basket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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